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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6화 (16/200)

# 16

16화 제3 세력의 암계(1)

이튿날, 본격적으로 간담회 행사가 진행되었다.

모두 긴장이 풀려 있던 첫날과 다르게 둘째 날부터는 모두가 사뭇 진지한 자세로 행사에 임했다. 루크나 그란데 백작이 보기에는 무능함 그 자체인 자들이지만,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저마다 마탑 유치에 자신이 있는지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번 간담회에서 후보지 세 곳을 선정하고 사전 답사 후에 어디에 유치하는지 결정한다죠? 후보지 안에는 들어야 할 텐데, 준비한 게 없어서 걱정입니다.”

“하하하, 벌써부터 견제 들어가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자작님 영지 수준이면 후보지 안에 드는 건 따 놓은 당상이지요.”

“마탑 유치를 위해서 예상 부지에 미리 도로 공사까지 시작해 뒀는데… 제발 선정됐으면 좋겠군요. 안 그러면 괜한 생돈만 날린 셈이니 말입니다.”

간담회가 펼쳐질 대회의실 안에 귀족들이 하나둘 들어와 제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마탑의 수장인 오즈는 테이블 상석의 가로 좌석에 앉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상석에 가까운 귀족일수록 오즈에게 의견을 어필하기 편하다.

이게 정식으로 이루어진 영주 회담이라면 지정석이 정해져 있겠지만, 사설 단체인 마탑과 그란데 백작가의 협력 행사이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부터 자유롭게 앉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례란 게 있다 보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작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상석 쪽에, 낮은 사람일수록 말석에 앉았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여한 사람 중 유일하게 관례 따위 개나 주라는 듯 행동하는 이가 있었으니…….

드드드드!

루크는 대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상석 쪽에 남아 있는 자리로 가서 의자를 뒤로 빼, 자리에 착석했다.

루크의 행동에 모든 귀족이 눈살을 찌푸렸다. 관례대로라면 남작인 루크는 좀 더 말석 쪽에 앉아야 한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아예 끄트머리에 앉아야 할 사람이다. 남서부 지방의 영지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영지의 영주이면 당연히 눈치껏 말석에 가서 앉아야 할 것 아닌가.

주제를 알아야지. 제일 유치될 가능성이 없는 처지에 어떻게든 유치해 보겠답시고 시건방지게 구는 것이 아니꼬울 따름이었다.

보다 못한 귀족들이 루크에게 눈치를 주었다.

“흠흠! 루크 남작, 자네 자리는 여기가 아닐세. 말석으로 내려가게나.”

하지만 신경 줄이 굵은 것으로 둘째가라 할 사람이 순순히 자리를 내줄 리 없었다.

“오늘 간담회는 지정석이 아닌 걸로 압니다만.”

“자네를 보고 있자면 같은 귀족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군. 지정석이든 아니든 작위가 높은 사람부터 상석 쪽에 앉는 것이 관례일세. 기본 교양이니 몰랐다면 지금이라도 머릿속에 집어넣게나.”

“그거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군요.”

“지금 농담하는 줄 아나?”

“관례가 중요하다는 걸 아시는 분들이 이웃 영지가 힘들면 지원한다는 관례는 무시해 왔으니 말입니다.”

“이 사람이 비교할 게 따로 있지, 자네 영지 일이랑 간담회 자리 앉는 거랑 똑같은 줄 아는가?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않나.”

“어떤 부분에서 다릅니까?”

“뭐?”

“똑같은 관례인데 시답잖은 시시콜콜한 부분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고, 사람 목숨 걸린 부분은 안 지켜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꼭 듣고 싶군요. 기본 교양이라 하셨으니 이유도 말씀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이웃 영지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과 자유로운 착석이 허락된 자리에서 편한 곳에 앉는 것.

어느 쪽이 더 뻔뻔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루크는 제랄드에게 시선을 주며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년 사내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 하였다. 그러자 제랄드가 낮은 목소리로 ‘사이온 자작’이라고 알려 주었다.

사이온 자작인가.

안 그래도 남서부 귀족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이온 자작이 제대로 얻어걸려 주었다. 사이온 자작을 본보기로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각인시켜 주리라.

루크의 화술에 말린 사이온 자작은 주춤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본인이 속 좁은 사람이라는 게 말하기 쉽진 않지요.”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속 좁은 사람? 당장 사과하게!”

“속 좁은 거 외의 다른 이유가 있다면 꼭 좀 들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자네 영지로 가는 길이 험한 걸 우리 탓으로 돌리는 겐가?”

“길이 험하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뭐든 예외는 있는 법일세.”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굳이 관례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인 스스로 인정하셨으니, 저도 여기 앉아도 되겠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사이온 자작만 바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자기 입으로 관례는 꼭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 놓고, 다시 관례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여기서 한 마디 더했다가는 말 그대로 ‘자리에 앉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무슨 애기들이 하는 의자 빼앗기 싸움도 아니고, 자리를 가지고 언성을 높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한순간에 사이온 자작이 바보가 되는 꼴을 본 귀족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사이온 자작 정도면 말을 꽤 잘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쪽도 못 쓰고 깨갱거리고 말았다. 다른 이가 말을 꺼낸다고 루크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루크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더더욱 눈꼴이 시리면 시렸지, 결코 좋게 보진 않았다.

귀족들 간의 신경전이 일단락됨과 동시에 그란데 백작과 마탑의 수장 오즈가 대회의실에 들어왔다.

전원이 기립하여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이 착석하자마자 전원 같이 착석하여 본격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오즈로 말할 것 같으면 기다란 장발의 백발과 긴 흰 수염, 나이 때문에 살짝 쳐진 눈꼬리와 웃는 상이 인상적인 온화한 분위기의 노인이었다.

오즈는 챙이 넓은 마법사용 고깔모자를 벗어 같이 온 마탑의 마법사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서부의 귀족 여러분. 프랑크 마탑의 수장을 맡고 있는 오즈입니다. 시설의 노후화와 동부의 마탑 시설 증가로 부득이하게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발전과 인재 육성을 위해 새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오니 많은 협력 부탁드립니다.”

마탑은 국립 마탑과 사립 마탑으로 나눌 수 있다. 마탑에서는 마법사의 양성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의 연구도 겸하고 있었다. 마법이나 학문에 뜻이 있는 자들은 시험을 쳐서 마탑에 들어갔다.

보통 사립 마탑에서는 마법 학부, 인문 학부, 의예과, 교육과, 연금술과, 경영과를 운영하고 있다. 사립 마탑을 졸업한 자들은 사회에서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어 좀 더 높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대신 학비가 비싸서 어지간히 부유한 사람이 아니면 학비를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마탑 경영도 일종의 장사다 보니, 교수진과 학생를 확보하기 위해서 부유한 영지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부유한 영지이자 교통 및 주거 지역의 시설이 확보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부동산 가격이 적절한 영지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란데 백작이 진행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간담회의 사회를 맡았다.

“마탑의 유치를 원하는 자는 거수해 주게. 차례차례 자기 지역을 어필하고, 그중에서 최종 후보 세 곳을 골라 마탑의 운영위원회가 직접 현지 시찰에 나설 예정일세.”

“백작님은 참가하지 않으십니까?”

“우린 데레피온 마탑과 제휴 관계라 학생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동부로 유학을 보내게 되어 있다네. 그러니 내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 있게 어필해 주게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제외되었으니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생긴 셈이었다. 그란데 백작이 빠졌으니 해 볼 만하다 여겼는지 너도 나도 거수하며 준비해 온 것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대회의실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간간이 하녀들이 다과를 날라 귀족들 앞에 놓아 주었다.

다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무의식중에 홍차를 홀짝였고, 막 어필을 마친 사람도 숨을 돌릴 겸 홍차와 과자에 손을 대었다.

루크 역시 차를 입에 대며 한참 동안 추이를 살폈다.

다들 가지각색의 조건을 들고 와선 오즈를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누군가는 부지 비용과 후원금을 많이 내놓겠다며 재정 지원을 약속했고.

누군가는 영지민들의 학구열이 높다며 영지민의 수준을 장점으로 내세웠고.

누군가는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며 마탑 학과 졸업자의 취직률이 99퍼센트에 달할 것임을 어필했다.

모두가 스스로 을이 되어 고개를 낮추는 가운데 루크가 거수했다.

“드래프트 영지의 루크 남작입니다. 저도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만든 자리이니 가감 없이 얘기해 주십시오.”

루크의 차례가 되자 귀족들이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가장 가망이 없는 영지이면서 대체 뭘 내세울 거냐고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루크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제랄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랄드, 준비한 자료를 전해 드리도록.”

“네.”

오즈에게 서류가 전달되자마자 루크는 본격적인 설명에 나섰다.

“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드래프트 영지의 영지민 평균 수입은 남서부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란데 백작령보다도 높지요. 그리고 3개의 아카데미에서 기초 교육을 받은 첫 기수가 내후년에 졸업할 예정입니다. 진로 조사 결과, 졸업자의 절반 이상이 마탑 진학을 희망하고 있으니, 지금부터 마탑 설립에 들어간다면 첫 기수 졸업에 맞춰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란데 백작령보다도 영지민의 경제 수준이 높다는 말에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고는 일제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들은 양 테이블을 손으로 치며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드래프트 영지가 그란데 백작령보다 재정 상태가 좋을 리가 없잖나!”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구먼! 이 자리가 장난치는 자리인 줄 아는가? 거짓말을 늘어놓을 거라면 당장 꺼지게!”

쾅!

귀족들의 비난이 빗발치던 중 그란데 백작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장내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란데 백작은 강렬한 행동으로 모두의 이목을 끌고서 루크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는 발언을 했다.

“루크 남작이 말한 건 모두 사실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게.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나.”

“저, 정말입니까, 백작님?”

“자네들 눈엔 내가 헛소리하는 것처럼 보이나?”

“백작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란데 백작까지 루크의 편을 들고 나서니, 더 이상 의심할 구석이 없었다. 동시에 그란데 백작이 루크와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걸로 어제 침실에까지 찾아가며 의심한 것을 퉁 치자는 의미였다.

루크는 어젯밤의 일을 빚으로 남겨 놓고, 나중에 두고두고 우려먹을 작정이었는데, 빨리도 갚아 버렸다. 그란데 백작이 빚을 갚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은 셈이다.

능글맞은 아저씨 같으니.

귀족들이 깨갱거리는 동안 루크는 준비해 둔 재료를 하나 더 선보였다. 이번에는 제랄드를 시켜 작은 상자 하나를 오즈에게 전달했다.

“마탑은 교육 기관이기도 하지만, 연구 기관이기도 하지요. 특히 마법 학부의 수준은 마탑의 수준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은 드래프트 영지에 있는 이너프 산맥에서 채집한 것이고, 앞으로 프랑크 마법 학부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즈 학장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오즈는 이미 학생군이 구축되어 있는 것에서 크게 마음이 기운 참이었다. 게다가 상자의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확인한 순간, 오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게 동요했다.

“드래프트 영지에선 이것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루크는 오즈의 반응에서 갑과 을의 입장이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테드가 채집해 온 영약들이었다. 창공 버섯 외에도 각종 영약을 담아 와서 견본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모름지기 마법사라면 영약의 산지에 자리를 펴는 것을 마다할 리 없을 터. 이제 루크가 마탑을 유치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오즈 쪽에서 마탑을 유치하게 해 달라고 매달려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판세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 루크는 가차 없이 갑의 자세로 돌아섰다.

“자, 이쪽의 카드는 여기까지만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마탑에서 어떤 조건을 내걸지 한번 들어 볼까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평범한 조건으로는 부지를 내줄 수 없다는 게 저희 쪽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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