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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7화 (17/200)

# 17

17화 제3 세력의 암계(2)

오즈는 심란했다.

솔직히 마탑을 어디로 이전하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교수진이 편히 연구할 수 있고,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로 가득한 영지면 족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고, 욕심을 부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욕심을 부리고픈 조건을 갖춘 영지가 나타났다. 영지민의 경제 수준은 높은데 이너프 산맥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유학 보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즉, 영지 내의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모두 프랑크 마탑으로 몰릴 테니, 학생의 확보는 따 놓은 당상이다.

그뿐이랴. 자료에 따르면 남아도는 땅이 많아서, 영주가 협력만 해 준다면 넓은 부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은 영약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산맥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루크가 가져온 상자에는 돈이 있어도 쉬이 구할 수 없는 영약이 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확인하셨으면 가져가겠습니다.”

잠시 후, 제랄드가 양해를 구하며 영약이 담긴 상자를 회수해 갔다. 어디까지나 견본으로 보여 주려고 가져온 것이지, 선물로 주려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오즈는 과자를 빼앗긴 아이처럼 멀어지는 상자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시선을 느낀 오즈가 헛기침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크흠! 루크 남작님이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저희 프랑크 마탑의 마법 학부 수준은 중위권에 속해도 나머지 학문들은 최상위권이지요. 영지의 일부로서 영지 발전에 이바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인선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뿐이라면 많이 모자라군요.”

“마탑의 본래 역할이 그뿐인데 그 이상의 조건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저는 학문에는 밝아도 정치에는 까막눈이니, 남작님이 원하시는 바를 읊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조건은 별거 없습니다.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몇 년 이내에 마법 학부의 수준을 국내 최고까지 끌어올려 주십시오.”

“국립 수도 마탑의 마법 학부 수준으로 말입니까?”

“그 이상이면 더욱 좋고요.”

“하하하, 바라신다면 약속 드리지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 늙은 몸뚱이 안에 있는 걸 팔아서라도 갚아 드리리다. 그래도 일단 정규 절차는 거쳐야 하니, 후보지로 남겨 두고 운영진과 직접 현장을 시찰해 보고 싶은데, 그리해도 될는지요?”

“예정 부지에 다른 시설을 설립하려다가 중단시킨 것이니, 이왕이면 빨리 결정하시길.”

“아무렴요. 건네주신 서류대로라면 운영진도 흔쾌히 승인을 내릴 겁니다.”

말이 후보로 남겨 둔다는 거지, 사실상 드래프트 영지로 이전이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란데 백작을 제외한 모든 귀족은 여지없이 허탈한 심정을 드러냈다.

기껏 후보지로 선정되려고 이것저것 준비해 왔는데 순식간에 결정이 되어 버렸으니 허탈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다. 심지어 가장 가망이 없을 거라 여긴 드래프트 영지가 선정되었으니, 상대적인 박탈감 또한 장난이 아니다.

유리처럼 얇은 멘탈은 망치로 찧은 양 산산조각 나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귀족들은 드래프트 영지가 발전한 것도 놀라웠지만, 루크의 영악함에 두 번 놀랐다. 그럼 여태껏 영지의 상황이 개선됐는데도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귀족들을 약 올려 왔다는 것 아닌가! 최약체 영지라며 귀족들이 무시할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비웃고 있었을까.

그리 생각하니 제 스스로 흑역사를 쓴 듯하여 감히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이보다 더 귀족들의 멘탈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귀족들은 이 한 방을 위해, 여태껏 가만히 있던 루크의 영악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 무난하게 루크만 이득을 보는 형태로 간담회가 마무리되나 싶던 찰나.

별안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장내가 격하게 술렁거렸다.

“쿨럭! 쿠어억!”

시작은 사이온 자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루크의 옆자리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마시던 사이온 자작이 별안간 피를 왈칵 토해 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잇따라 다른 귀족들도 각혈을 해 댔다.

“컥! 커억!”

“쿨럭! 쿨럭! 쿨럭!”

더불어 삽시간에 사이온 자작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안색이 나빠지는 것을 확인한 루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작가의 고용인들을 다그쳤다.

“독이다! 빨리 해독제를 가져와!”

“도, 독 말입니까? 어떤 해독제를…….”

“있는 대로 전부 가져와!”

독을 먹은 자들 가운데는 그란데 백작과 오즈도 섞여 있었다. 아마 어제 들은 암중 세력의 소행일 터. 목적은 남서부 귀족들을 전원 독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란데 백작의 말에 의하면, 놈들의 목적은 겐크 왕국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 하였다. 남서부가 구석에 시골 영지만 모인 지방이라 할지라도 십수 명이나 되는 귀족이 한꺼번에 죽었다간 왕국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루크의 외침과 함께 집사와 하녀들이 우르르 해독제를 가지러 뛰어나갔다.

그사이 귀족들의 상태를 살핀 제랄드가 입을 열었다.

“출혈로 창백해진 것보다는 독 자체가 한기를 발하는 성질을 품고 있는 것 같군요. 윈터 스네이크의 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하나?”

“겨울 산악 훈련을 하다 보면 종종 병사들이 물리곤 합니다. 신발 끈과 허리띠, 윗옷 단추를 풀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눕히십시오.”

산맥을 무대로 삼아 매일같이 훈련을 해 온 기사답게 독에 대한 지식은 약초꾼이나 의원 못지않았다. 그래도 귀족들이 데려온 기사들은 눈치라도 있는지 제랄드의 말을 듣고, 냉큼 조언대로 자신들의 주인들을 바닥에 눕혔다.

잠시 후, 제랄드는 집사와 하녀들이 가져온 해독제 중에서 윈터 스네이크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약을 골라 귀족들에게 먹였다. 해독약을 먹인 후에 곧바로 모든 이를 방으로 나눠 옮기고, 추이를 살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귀족들을 두고, 루크는 눈매를 날카롭게 세웠다.

“누군지는 몰라도 시건방진 짓을 해 주었군.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독은 귀족들에게 분배된 찻잔에 섞여 있었다.

한데 똑같은 차를 마신 루크의 찻잔에만 독이 발려 있지 않았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뻔하다. 루크를 범인으로 몰고 가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남서부 지방의 귀족이라면 누구라도 루크를 싫어했고, 루크도 다른 귀족들을 싫어했으니 살해 동기는 충분하다. 루크에게 누명을 씌우고 진범은 유유히 빠져나가려 했을 터.

단지 누명을 씌우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루크를 이용해 먹으려 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가 누굴 이용해 먹어?

암중 세력 따위 알 바 아니라 여겼으나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면 얘기가 다르다.

‘독살은 제 놈이 해 놓고, 책임은 나보고 져라? 잘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거리를 해 주었군.’

루크는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것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똑같은 짓거리를 하려던 자를 어찌 가만둘쏘냐.

범인에게 이용할 사람을 잘못 골랐다는 것을 톡톡히 알려 주리라.

* * *

해독제가 제 역할을 수행하면서 귀족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죽다 살아난 귀족들은 루크만 독을 먹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했다.

“놈이 범인인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놈의 찻잔에만 독이 안 들어 있는 이유가 없잖나!”

“기어이 그놈이 사고를 치고 마는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처음 여기 올 때부터 딱 봐도 사람 죽일 상을 하고 있었다니까.”

안 그래도 간담회 내내 쪽도 못 쓰고 당한 것이 가슴에 맺혔는지, 귀족들은 이때다 싶어 루크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려고 난리였다. 알고는 있을까? 자기네들의 반응이 진범이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지. 알면 루크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려 하지 않았을 테니.

귀족들은 예상대로 행동하는 반면, 의외의 인물들이 루크의 아군으로 돌아섰다.

각 귀족들이 데려온 기사들은 그들이 쓰러진 후의 상황을 목격했기에 있는 그대로를 전했다.

“자작님, 루크 남작님과 제랄드 경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돌아가셨을지도 모릅니다. 두 분이 곧바로 독의 종류를 구분해 주셨기 때문에 고비를 넘기신 겁니다.”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루크의 편을 들어 주었으나 이 꽉 막힌 귀족들은 눈과 귀를 막고 제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었다.

“그럼 왜 놈은 독을 먹지 않은 것이냐? 놈이 범인이야, 놈이 범인이라고.”

“하지만…….”

“어째서 놈을 감싸려 들지? 놈에게 무슨 말을 들었지? 뭐라고 하더냐? 뭐라고 하며 네게 그따위 말을 하게 만들더냐?”

이쯤 되면 열등감이 아니라 정신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귀족들의 모습에 정나미가 확 떨어졌다.

자기네들의 주군이 평소에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어도 생명의 은인까지 욕하는 모습이 마냥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왜 그런 기본적인 부분은 못 지키고, 남이 자신한테 굽실거리는 것만 바라는 걸까. 모르겠다, 귀족이 아니라서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기사들은 루크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귀족들의 모습에 막 큰일을 치른 후처럼 허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랄드에게 부러움을 느끼며 생각했다.

나도 저런 주군을 모시고 싶다고, 드래프트 영지의 기사가 되고 싶다고.

* * *

루크는 그란데 백작이 정신을 차렸다는 말에 곧바로 그를 찾아갔다. 암중 세력이 역겨운 짓을 해 줬으니 그에 준하는 대답을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슴속에 품은 ‘불의에는 적의’라는 신념은 놈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를 위해서 놈들에 대해 잘 아는 그란데 백작과의 정보 공유가 필요했다.

그란데 백작은 루크가 올 줄 알았는지 흔쾌히 방에 들였다.

“언제 오나 목 빠져라 기다렸네. 이리 와서 앉게나.”

“이래 봬도 깨어나셨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온 겁니다.”

“자네가 발 빠르게 조치해 줬다지? 감사의 말부터 전해야겠군.”

“제 기사가 독에 해박하여 큰 공을 세운 것이니 후에 적절히 포상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어젯밤에 말한 내용 기억나나?”

“제3 세력… 암중 세력이 겐크 왕국에 혼란을 야기하려고 사방팔방 암수를 뻗는 중이라 하셨지요. 이번 일도 놈들의 소행이 맞습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왜 혼란을 야기하려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나도 그 부분 때문에 골치 아프다네. 왜 혼란을 야기하려는지 목적을 알 수 없으니 왕궁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더군. 명확한 목적이라도 알면 왕궁이 직접 움직이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그란데 백작도 정체불명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까지만 알지, 놈들의 최종 목적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목적을 알 수 없으니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없어서, 마탑 유치 간담회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내가 정신을 잃은 후에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

“바로 저택 안팎을 폐쇄하고, 모든 내부인과 외부인의 짐을 검사해 봤는데, 이렇다 할 단서는 없더군요.”

“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찻잔을 나눠 준 하녀겠군. 독을 바르지 않은 찻잔을 자네에게 주기 위해선 직접 전해 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미 물어봤습니다. 컵 받침 밑에 귀족들의 이름이 쓰여 있어서 이름대로 분배해야 하는 줄 알았다더군요.”

“머리를 잘 썼군. 막상 마시는 사람은 컵 받침 아래를 볼 일이 없으니 말일세. 후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건가.”

이렇다 할 단서가 없으니 용의자조차 선정할 수 없다. 이번 일 때문에 마탑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는데, 도리어 독을 마시게 해 버렸으니 그란데 백작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숨을 쉬는 그란데 백작과 다르게 루크는 여유만만이었다.

“벌써 포기하시는 겁니까?”

“별수 없지 않은가. 단서가 있어야 뭐라도 해 보지.”

“없으면 만들면 되지요.”

“무슨 묘안이라도 있나?”

“목숨 빚에 이번 일까지 더하면 갚기 힘드실 텐데, 괜찮겠습니까?”

“목숨 빚으로도 이미 한도 초과일세. 마음대로 하게.”

루크는 이미 범인을 잡기라도 한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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