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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8화 (18/200)

# 18

18화 제3 세력의 암계(3)

다음 날 아침, 해독제가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면서 대다수의 귀족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만큼 회복되었다.

귀족들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그란데 백작이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귀족들의 관심은 오로지 범인이 누구냐는 것에 쏠려 있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루크였다. 녀석만 독을 먹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번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란데 백작이 루크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인 터라 다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란데 백작의 지시하에 모든 귀족이 모였는데 루크만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그란데 백작으로부터 그들이 원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다들 뜻하지 않은 변고에 내심 속앓이를 많이 했을 테지. 하지만 이젠 걱정 말게. 범인인 루크 남작을 구속하여 투옥시켰네. 빠른 시일 내에 왕궁으로 호송해서 죄질에 맞는 형벌을 받게 할 테니, 다들 한시름 놓게나.”

행사 내내 루크를 감싸고 돌던 그란데 백작이다. 그래서 그가 직접 루크를 투옥시켰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확실한 증거를 잡았기 때문에 루크를 투옥시킨 것이리라.

안 그래도 루크가 마음에 안 들던 귀족들은 철천지원수라도 쓰러뜨린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그렇지! 자기 영지 안 도와줬다고 찡찡거릴 때부터 알아봤어. 그거 때문에 앙심 품고 이따위 망할 짓을 벌인 거겠지. 암 그렇고말고.”

“사람의 탈을 쓰고서 어찌 이다지도 흉측한 짓을 획책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국왕 전하께서도 사태의 위중함을 깨닫고 적합한 형벌을 내리실 겁니다.”

“역시 그란데 백작님이십니다. 그 짧은 시간에 놈을 꼼짝도 못 하게 만들 증거를 찾으신 겁니까? 다시금 존경심이 부풀어 오르는군요.”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의 턱살과 볼살을 흔들어 대며 껄껄거리는 귀족들의 모습에 그란데 백작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귀족들을 보고 있자니 허무함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이전에는 귀족들이야 원래 비틀려 있는 자들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란데 백작도 귀족계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들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의 성숙해진 루크를 본 이후에 귀족들을 보니, 이 나라가 얼마나 역겨운 지경에 이르러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에 소금 간을 세게 해서 먹던 이가 소금기가 없는 음식을 먹고 본래의 식습관으로 되돌아가면 그동안 얼마나 짜게 먹었는지 실감하는 것처럼. 지금 보니 이 작자들에게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중앙 정계라고 다를 건 없다.

허영심, 과시욕, 명예욕 등등…….

실체도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작자들 천지다.

그런 작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아등바등하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루크를 욕하는 귀족들을 앞두고 그란데 백작은 남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루크 남작, 자네 말대로 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영 불편하구먼.’

마음 같아서는 루크 대신 욕이라도 해 주고 싶다만, 이 또한 루크가 짜 놓은 작전의 일부이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눈치 없는 귀족들은 그란데 백작의 기분도 모르고 마탑 유치 건을 꺼내 들었다.

“하면 마탑을 유치하는 건 어떻게 됩니까? 이대로 흐지부지하기도 그렇고, 분위기가 분위기인데 재개하기도 그렇고…….”

“물론 재개할 걸세. 오즈 학장과 대화를 나눠 봤는데, 별문제 없으면 행사를 내일까지 연장해도 상관없다고 하더군.”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본래 마탑 유치 건 때문에 모였으니 깔끔하게 결정하고 돌아가야 축하주를 마시든, 홧술을 마시든 하지 않겠습니까?”

유력 후보이던 루크가 제외되었으니 자기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거라 여겨 한껏 들떠 있는 귀족들이었다.

그란데 백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 나라 귀족들의 수준을 다시금 실감했다. 더하여 귀족들의 행태에 질린 자는 그란데 백작만이 아니었으니. 대회의장 한편에서 일렬로 늘어서 있는 각 귀족들의 호위 기사들도 한껏 질려서 그란데 백작과 마찬가지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독의 영향이 남아 있을 것을 대비하여 그란데 백작을 비롯한 모든 귀족은 하루 내리 휴식을 취하였다. 아직 비상령이 해제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저택 안팎의 출입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서쪽 하늘에서 몸을 한껏 불린 보름달이 월광을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저택의 정원에서 그림자 하나가 일렁거렸다.

푸른 로브를 두른 한 사내가 정원을 가로질러 수풀 속에 숨었다. 그러고는 경비병이 지나가고 없는 장소를 골라 담벼락을 넘었다. 며칠 동안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온 그에게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저택 바깥으로 나온 사내는 한참을 달려 저택 뒤편에 있는, 인적이 없는 산 어귀로 이동했다. 사내가 바짝 마른 소나무 잎을 밟으며 거목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잠시 기다리자 맞은편 수풀 사이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가 나타났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푸른 로브의 사내와 접촉하자마자 쓴소리를 날렸다.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거늘, 결국 일을 꼬이게 만드는군.”

“닥쳐라. 루크 남작과 놈의 기사가 훼방만 안 놓았어도 반드시 성공할 계획이었다.”

“이미 결과가 나왔는데 만약을 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지. 이래선 통일 후의 지위를 보장 받기 힘들 거야.”

“닥치라고 했을 텐데?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계획의 일부는 적중했어. 루크 남작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니 이젠 방해할 놈도 없지. 한 번 더 독을 타면 백발백중 성공한다. 그래서, 부탁했던 물건은 어떻게 됐지?”

검은 로브의 사내가 소매 안쪽으로 손을 넣어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윈터 스네이크의 독이 든 병이었다. 이전에 쓴 독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병째 처분했으니, 새로운 독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계획이 한 번에 성공했다면 조직원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었을 터이나 루크가 훼방을 놓았으니 별수 없이 다시 구해야만 했다.

푸른 로브의 사내가 독이 든 병을 건네받은 순간, 검은 로브의 사내가 푸른 로브를 입은 사내의 가슴팍을 떠밀었다.

팍!

푸른 로브의 사내가 떠밀리며 거목의 기둥에 등을 부딪쳤다.

“윽! 갑자기 무슨 짓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살 한 대가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어선 푸른 로브를 입은 사내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검은 로브 사내가 밀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불귀의 객이 되었을 거다.

푸른 로브 사내의 가슴팍을 스쳐지나간 화살이 멀리 떨어진 나무기둥에 틀어박히며 화살깃을 파르르 떨었다.

투퍽!

간발의 차로 화살에 맞는 것을 면한 푸른 로브의 사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기습이 날아들었다는 것은 근방에 적이 있다는 것이다. 적이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미행을 당했다는 뜻이잖은가!

검은 로브의 사내가 열이 바짝 올라선 푸른 로브의 사내를 탓했다.

“제기랄! 멍청한 자식! 꼬리에 뭐가 붙었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여전히 푸른 로브의 사내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갑자기 횃불이 드문드문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그란데 백작가 소속의 기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하였다.

“꼼짝 마라! 두 사람 모두 귀족 암살 미수죄로 체포하겠다! 허튼 생각 말고 순순히 투항해라!”

함정이었나!

루크에게 덤터기를 씌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란데 백작과 루크, 둘이 짜고 일부러 속아 넘어간 척하며 범인이 새로운 독을 입수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동시에 왜 범인을 확정 짓고도 저택의 출입 제한을 풀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저택을 빠져나가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일부러 출입 제한을 걸어두고 담장 안팎을 몰래 감시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란데 백작의 기사단에는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기사들이 더러 섞여 있다. 그들이 총출동했다면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푸른 로브의 사내는 당황을 금치 못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내가 끌어들인 게 아니라고!”

“그래, 네가 끌어들인 게 아니라 네 멍청함이 끌어들였지. 이대로 네놈을 버리고 가고 싶지만, 아는 게 많으니 별수 없군.”

“이 은혜는 잊지 않으… 커헉!”

검은 로브의 사내가 영락없이 자신을 데리고 가는 줄 알았던 푸른 로브의 사내였으나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 냈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단검을 꺼내어 그의 가슴을 찔렀기에.

가차 없이 동료를 찌른 검은 로브의 사내는 단검을 놓으며 몸을 돌렸다.

“버리고 가지 않는다 했지, 데려간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만?”

검은 로브의 사내는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 동료마저도 가차 없이 살해하고, 땅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포위망 중에서도 일반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분을 찾아내어 발도했다.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옴과 동시에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오라가 일렁이며 병사들을 양단했다.

한순간에 포위망의 일부를 무너뜨린 사내는 짙은 어둠을 엄폐물 삼아 몸을 감추며 유유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기껏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그란데 백작가의 기사들은 포위망이 허물어지자마자 재빨리 대응했다.

“한 놈이 도망쳤다! 서너 명만 남고 나머지는 추격해라! 감히 대규모 독살을 꾀한 놈이니 놓쳐선 안 된다!”

기사단장의 외침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부랴부랴 추격에 나섰다. 그 짧은 순간에 포위망의 가장 약한 부분을 꿰뚫고 빠져나갈 줄이야. 보통 실력이 아니다. 일대일로 붙는다면 기사단장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가담하고 있는 조직이라니. 반드시 배후를 캐내야 한다.

대부분의 병력이 추격에 나서고, 몇몇만 남아 얼른 푸른 로브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로브의 후드 부분을 걷어 내자 사내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기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참 오즈 학장님의 실망이 크시겠어.”

“쩝,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수제자가 범인이었을 줄이야.”

푸른 로브의 사내는 다름 아닌 오즈의 수제자이자 젋고 촉망 받는 마법사인 스카리치였다.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가운데, 모두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스카리치의 출신이 바로 아레나 공국이라는 점이었다.

* * *

검은 로브의 사내는 한밤중이라는 점과 산속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그대로 이용하여 추격대를 뿌리쳤다. 산 하나를 통째로 넘어선 후에야 추격대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후우, 스카리치 그 머저리 같은 것 때문에 예정에 없는 진땀을 뺐군. 제길, 돌아가서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계획이 실패한 것보다 미행을 당한 것이 더 뼈아프다. 여태까지 분란을 조장하는 행위가 실패하더라도 범인이 잡히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이번 함정으로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게 들켜 버렸다. 특히 암중 세력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던 그란데 백작에게 조직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준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돌아가서 윗사람들에게 왕창 깨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한숨을 돌리고 움직이려던 찰나, 별안간 등 뒤에서 살을 저밀 듯 예리한 살기와 함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남의 낯짝에 오물을 던져 놓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따라붙는 자가 없다는 것을 수십 번도 더 확인했건만, 어떻게?

지금은 의문보다 경계심이 앞서야 할 때였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대응하기 위해 장검을 뽑아 몸을 돌리는 순간, 푸른 오라를 두른 검이 사내를 덮쳤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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