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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9화 (19/200)

# 19

19화 제3 세력의 암계(4)

검끝에 걸린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떨어지는 솔잎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뒤로 젖혀 검을 피해 낸 것이다.

검은 로브의 사내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며 간격을 벌렸다. 그러고는 장검에 마나 오라를 부여하며 쉬이 접근해 오지 못하도록 거리를 유지했다. 마나 오라의 푸른빛에 상대방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사내도 아는 얼굴이다. 어찌 모르랴, 이번 계획에서 덤터기를 쓸 역할을 맡은 자이거늘.

검은 로브의 사내는 이런 외진 곳에 루크가 있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기사들도 못 따라오던 걸음을, 변두리 영지의 망나니 남작이 따라올 줄은 몰랐군.”

한 마디를 받으면 두 마디를 돌려준다고, 루크의 입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입가에 거품을 묻히고 할 말은 아닐 텐데? 허세를 부릴 거면 후들거리는 다리부터 부여잡지 그래?”

마냥 망나니 남작이라 치부하기에는 루크의 검에 맺힌 오라의 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언뜻 봐도 사내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 말인즉 루크의 경지가 마나유저 상급에 이르러 있다는 증거였다.

‘마나유저 중급, 그마저도 수련을 게을리해서 별 볼일 없다고 들었는데, 언제 상급까지 끌어올렸지?’

정보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법이니, 예전에 수집한 정보가 틀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보다 마찬가지로 같은 루트를 뛰어왔을 텐데, 숨이 하나도 거칠어지지 않은 것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루크가 사내의 얼굴을 슥 보더니 금방 정체를 알아냈다는 점이다.

“폴? 아레나 왕궁 기사단 소속이 수작질이나 하고 있다니 놀랄 노 자로군. 암중 세력의 배후는 공국이었나. 음흉한 짓거리만 골라서 하는 건 여전하군.”

정체를 들킨 폴은 하마터면 헛숨을 들이켤 뻔했다. 공식적으로 아레나 왕궁 기사단을 탈퇴한 지 몇 년이나 지난 데다, 그간 세간의 유명 인사들과도 접촉을 극도로 피해 왔다. 루크와는 일절 면식이 없건만, 오라의 빛으로 어렴풋이 본 것만으로도 곧장 얼굴을 알아봤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루크란 사내의 깊이를 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이상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예정과는 다르지만 루크를 죽일 수밖에.

“멋대로 착각하는 건 네 마음이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나불거리는구나.”

“머리가 나쁘면 주둥이의 자물쇠가 헐렁해진다지. 내 귀에는 내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소리로 들리는군.”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날 따라온 것까진 칭찬해 주지. 하지만 주제를 모르고 혼자 설렁설렁 걸어 나온 건 실수였어.”

“과연 그럴까?”

실수란 말을 부정하듯 루크의 마나 오라가 빛을 발했다. 그에 따라 오라의 농도가 더더욱 농밀해지며, 테두리로부터 다수의 푸른 실오라기가 나풀거렸다.

모름지기 마나유저라면 마나가 실오라기처럼 나풀거리는 현상을 모를 수가 없었다.

폴은 눈앞에서 복잡하게 뒤엉켰다가 풀리길 반복하는 마나의 움직임을 보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마, 마나마스터! 이런 제길!”

그야말로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은 격이다.

주제도 모르고 의기양양하게 구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마나유저 상급의 힘으로 마나마스터를 이길 수는 없다. 주변 환경과 집중력에 따라 마나유저 초급은 중급을, 중급은 상급을 이길 수 있다지만, 상급과 마나마스터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저쪽이 방심이라도 해 준다면 모를까, 이론상으로는 힘의 격차가 커서 그마저도 쉽지 않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데, 루크가 가볍게 검을 뻗어 왔다.

그저 휘두를 뿐인 단순한 동작이건만, 실오라기 같은 마나블레이드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폴은 발악하듯 검을 마구 휘둘렀다. 마나블레이드의 궤도는 기술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아아!”

폴이 기합을 토해 내며,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루크에게 발각된 시점에서 운이 다한 폴에게, 요행으로 마나블레이드를 걷어 내는 행운은 따라붙지 않았다.

애당초 걷어 내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폴의 마나 오라는 마나블레이드에 걸리는 족족 파괴되었고, 은빛 자태를 자랑하던 장검은 나무토막처럼 쉬이 잘려 나갔다.

서걱! 서걱!

루크의 마나블레이드는 폴의 장검을 베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폴의 양쪽 다리를 거침없이 베어 냈다.

폴의 허벅지에 얇게 붉은 선이 생겨나더니, 몸과 다리가 분리되었다. 대량의 출혈과 함께 폴의 상체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엎어졌다.

“크아아악!”

루크는 더 이상 마나블레이드를 쓸 것도 없다 여겨 마나를 갈무리하였다. 그러고는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폴을 내려다보며, 꼬챙이에 고기를 꿰듯 장검으로 폴의 어깨를 내리 찔렀다.

푸욱!

“커헉! 크어억! 자, 잠깐 기다려! 허억, 허억, 그만! 그만!”

고통스러워하는 폴을 내려다보는 루크의 눈빛은 북방의 한겨울을 옮겨 담은 양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정작 필요할 때 등을 돌린 자들 중 한 명이다. 왕궁 호위대가 해산할 때만 하더라도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온갖 청승을 떨었다.

‘안 됩니다, 전하! 전하를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데, 어떻게 전하를 등지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선두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자가 렌디이며, 폴은 그의 부하로 있던 사람이다. 당시의 눈물은 거짓이었고, 충성을 표하던 말들은 모두 가식이었다. 그렇게 믿을 건 그들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해 놓고, 사람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이런 식으로 재회하고 나니 기특할 따름이다. 안 그래도 언제 한번 조지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제 발로 찾아와 주었으니 말이다.

루크는 폴의 어깨에 박아 넣은 장검을 천천히 비틀며 입을 열었다.

“왕궁 기사단이 해체된 직후 곧바로 겐크 왕국 공작원으로 편성되었나 보군. 공식적으론 왕궁과 연을 끊은 지 오래된 녀석들이니, 버리는 돌로 쓰기엔 안성맞춤이었겠지.”

“우린 버리는 돌이…….”

“뭐, 아무래도 좋아. 거래를 하자고. 다른 공작원들에 대한 정보를 불면 반병신으로나마 여생을 보내게 해 주지.”

“모른다! 발뺌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 모든 임무는 지령서를 통해 전달된다고! 스카리치도 이번 작전을 위해 내가 직접 포섭한 녀석이야! 진짜야!”

“더러운 짓은 남에게 시키고 뒤에서 이득만 보려 했다? 주인을 닮아서 지저분한 수법을 애용하는군.”

“살려 주면 재판대에서 뭐라도 증언하겠어. 그러니 지혈을… 어서 지혈부터…….”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누굴 속이려 드는 건가.

일단 목숨부터 부지해 놓고 막상 증언할 때 딴소리를 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을 반병신으로 만든 루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뒤통수치는 것에 익숙해진 놈이 생각할 것이라고는 뻔하다.

이미 폴에게는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었다. 증언대에 세운다 한들, 아레나 공국은 오래전에 제적한 자라며 자신들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할 테니.

이내 루크는 폴의 어깨에서 장검을 빼내었다. 검을 빼는 행동을 살려 주는 것이라 착각한 것인지 폴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루크는 검을 높이 들며 폴의 착각을 단숨에 부숴 주었다.

“남이 버린 돌에는 흥미 없어.”

차갑기 그지없는 루크의 한마디와 함께 검이 폴의 목을 그었다.

서걱!

* * *

이후의 일은 모두 그란데 백작이 원만하게 처리했다.

사실은 루크가 범인이라고 말한 것은 진범을 끌어내기 위한 작전의 일부였으며, 진범은 마탑의 스카리치라는 것을 밝혔다.

루크가 범인이랍시고 떠들어 대던 귀족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지은 표정은 아주 볼만했다. 거기에 대고 루크는 철저하게 그들의 멘탈을 부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꺅꺅, 징징. 언제부터 영주들 모임이 부인회로 바뀌었는지 모르겠군.”

이날의 발언은 세간에까지 흘러들어 이후 몇 년 동안 음유 시인들의 노래 가사로 활용되었다.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오즈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제자가 자신에게 독을 먹였으니, 남들보다 배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세 기분을 다잡고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스카리치는 녀석들에게 이용당한 것이었군요. 원래 출세 욕심이 많은 아이였지요. 제가 죽으면 그 자리를 자기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뭐, 이 일과는 별개로 마탑 유치는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조만간 운영진과 드래프트 영지에 들르도록 하죠.”

처음에 세 곳의 후보지를 선정하기로 했으나 다른 귀족들이 워낙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탓에 다른 후보지는 모두 누락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곧 드래프트 영지에 마탑을 유치하기로 확정 지은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이었다.

* * *

“죽이지 말고 생포하지 그랬나?”

간담회가 끝나고 귀족들이 모두 떠났으나 루크만은 그란데 백작의 요청으로 백작가에 남았다.

루크는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한 움큼을 삼킨 뒤에야 입을 열었다.

“증언대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게 뻔히 보이더군요. 악취 나는 쓰레기통에 향수를 붓는다고 쓰레기통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수확이 있어서 다행이군. 배후는 아레나 공국이었던 건가. 상대가 공국이라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말이지.”

“천천히 하나씩 끌어내면 우두머리의 목에 칼이 닿지 않겠습니까?”

“별일이군. 이런 일에 관심 없을 줄 알았건만.”

“배후를 알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레나 공국에 원한이라도 있나?”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건드리려는 부분이 역린인지 아닌지 구분할 눈치는 있으실 테죠.”

“끄응, 이거야 원.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내겠구먼. 이번 일로 자네의 역량을 알았으니, 괜한 일로 감정 상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걸세. 지속적으로 정보를 모아 자네에게도 전달해 줄 테니, 자네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내게 연락 주게나.”

“상황에 따라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번 일로 완전히 루크의 칼 같은 성향을 알게 된 그란데 백작은 저도 모르게 루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백작이 남작의 눈치를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하나 이 루크란 사내에게 역설적인 면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대할 가치가 있었다.

잠자코 루크의 눈치를 보던 그란데 백작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궁금해서 묻는 말이네만, 폴은 어떻게 제압한 건가?”

그란데 백작가의 기사들도 쫓아가지 못해서 놓친 자를 루크는 손쉽게 추격하여 처치했다. 게다가 폴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몸에 생채기도 하나 나지 않았고 말이다. 대외적으로 루크의 실력은 마나유저 중급으로 알려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루크는 표정 하나를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질문을 받아넘겼다.

“제압하려고 하니 제압해지더군요.”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역린 운운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만.”

“끄응, 미안하게 됐네. 못 들은 걸로 하세나. 아무튼 마탑이 유치되면 많은 입학 지망생들이 드래프트 영지로 몰려들겠군.”

“산맥을 넘어서까지 오려는 자가 있겠습니까. 주로 영지민들의 자식들로 정원을 채우게 되겠지요.”

“혹시 모르지. 우리 영지의 아카데미 기숙사생 중에서도 가고 싶어 하는 자가 있을지도.”

“데레피온 마탑과 제휴 관계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휴 관계라 해서 꼭 그쪽으로만 유학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니잖나. 만약에 시설이 완공되면 마법 학과 지망생 중 희망자를 뽑아서 자네 쪽으로 보내 주겠네.”

“편한 대로 하십시오.”

드래프트 영지로 누굴 보내려는 건지 식사 내내 저 혼자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그란데 백작이었다.

루크는 그란데 백작이 언급한 마법학과 지망생에 대해 1도 신경 안 쓰며 담담히 고기를 썰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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