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20화 (20/200)

# 20

20화 배신자들에게 보내는 폭탄(1)

드래프트 영지로 돌아온 이후,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루크에게 온갖 일거리가 밀려들었다.

가장 먼저 오즈와 마탑의 운영진이 찾아와 영지의 시설과 마탑을 건설할 부지를 둘러보고 갔다. 마탑의 유치가 정식으로 결정되었으니 해야 할 게 많았다. 건설 부지를 중심으로 도로를 뚫어야 하고, 아카데미에서 마탑으로 입학하려는 자를 위한 교육 제도를 제정해야 했다. 게다가 시설 근처에 생겨날 관련 업종의 상업 단지와 주거지역의 구획을 정리해야 하며, 그로 인해 발생할 비용과 예상 수익을 산출해 내야 했다.

오즈와 마탑의 운영진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오크와 공존하는 영지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영지에서 머무르는 며칠 동안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지의 환경을 둘러보고, 이렇게까지 조화를 이루게 한 루크의 수완에 감탄했다.

마탑 유치 간담회을 통해 드래프트 영지의 경제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며, 그 소식이 겐크 왕궁까지 전해졌다. 겐크 왕국의 모든 영지는 추수철마다 영지 수익의 일정 금액만큼 왕궁에 납세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를 부릴 구석이 있었다. 왕궁으로 보내는 세금은 ‘예산으로 쓰고 남은 순수익’의 일정 금액으로, 예산을 많이 쓰는 영지는 수익이 많다 하더라도 세금을 덜 냈다.

마탑 유치 때문에 도로 공사와 구획 정리로 막대한 예산을 쓰게 된 드래프트 영지는 예전과 별다를 것 없는 금액을 납세하게 되었다. 괜히 간담회에서 영지의 재정 상태를 낱낱이 공개한 것이 아니다. 마탑만 유치하면 겐크 왕궁의 배를 불려 줄 일이 없다는 것까지 계산하고서 공개한 것이었다.

왕창 벌어서 그걸 그대로 다시 투자하고, 투자한 만큼 얹어서 더 벌고, 또 투자하고…….

흔히 말하는 거품 경제 시절, 빗나가지 않는 재산 증식법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물론 지속적으로 활용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다만 ‘투자-이익-투자’의 순환 구조가 한계에 이를 때 즈음이면 드래프트 영지의 힘은 겐크 왕국 전체를 감당하고도 남을 수준이 될 것이다.

* * *

두 달 후, 본격적으로 마탑의 시설 공사가 시작될 즈음이 되어서야 루크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길 때 즈음 생각지도 못한 낭보가 들어왔다. 남서부 귀족가 소속의 기사들이 하나둘 본래의 기사 작위를 내려놓고, 드래프트 영지로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탑 유치 간담회에서 제대로 멘탈이 무너진 귀족들이 영지를 운영하는 데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면서,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태가 속출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책임을 기사들에게 돌리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사직을 내려놓은 자들이 드래프트 영지로 몰려든 것이다.

때아닌 고급 인력의 유입에, 안 그래도 부족하던 지휘관을 인재들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마나유저 초급 5명, 중급 3명이 새로운 기사 작위를 받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랄드의 보고에 루크가 결재를 마친 서류를 옆으로 휘리릭 던지며 턱을 괴었다.

“경력직이라고 해서 막 받아들일 수 없지. 정보원들을 시켜서 신원을 조사시키고, 너와 러스트가 1차 면접 보도록 해. 그다음에 내가 2차 면접을 보고, 기사 작위를 내리든 말든 하자고.”

“최종 합격한 자들은 오백인장의 직위를 내리시는 게 어떨는지요?”

“거기에 기사 양성소 교관도 겸하도록 해야겠군. 견습 기사들에게 다양한 방면의 경험을 흡수시키는 게, 여러모로 성장에 도움이 될 테니.”

“찾아온 이들에게 면접이 있음을 전하겠습니다.”

보고가 끝났건만, 제랄드는 물러나지 않고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제랄드로부터 질문이 날아들었다.

“저, 남작님, 암중 세력에게 제재를 가하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난 간담회에서 발생한 독살 시도 사건 이후에도 겐크 왕국의 곳곳에서 각종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했다. 그러나 암중 세력의 꼬리는 잡히지 않았다. 항상 암중 세력이 끌어들인 제삼자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단순한 범죄 사건으로 일단락되기 일쑤였다.

나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나면, 으레 백성들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며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벌써 세간에선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며 산적이 늘어나고, 사이비 종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 말로 암중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라가 기울어가고 있는 셈이다.

드래프트 영지에서 암중 세력의 존재를 아는 자는 루크와 제랄드뿐이다. 이 충성심 깊은 기사는 아직도 자랑스러운 주군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사건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 듯하다.

안 그래도 루크 역시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저쪽도 슬슬 날 경계 리스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새로운 인력들이 유입되기 쉬운 이때를 노려 공작원을 투입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 이쪽에서 공작원을 투입할 루트를 만들어 내자고.”

“일부러 공작원을 투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입니까?”

“토끼를 잡을 땐 구멍을 하나만 남겨 두고 연기를 들여보낸다잖아? 이쪽에서 저쪽의 움직임을 조종하면 역이용하기도 쉬워지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긴 한데, 실제로 먹힐까요?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만.”

“내 개인 보좌관 공모를 내도록 해. 스펙은 높게, 연봉은 싸게. 공모 내용을 본 사람이 내가 이 스펙으로 이 돈 받으면서 일해야 되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개인 보좌관이란 루크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영주의 일을 보조하는 역할을 말한다. 여태까지 드골이 도맡았으나 지금 드골은 저택의 관리와 행정부 관리자의 일만으로도 벅찬 마당이다.

영주 대행의 권한은 드골에게 그대로 일임한 채, 오로지 루크 개인의 공적인 업무만 보좌해 줄 보좌관을 고용할 생각이었다.

스펙을 높이면 그만큼 일반 공모자가 줄어들 것이고, 연봉을 낮게 잡으면 어지간해선 응모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서라도 드래프트 영지에 올 사람이라면, 아레나 공국에서 투입한 공작원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루크의 통찰력까지 더해지면 십중팔구 공작원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어차피 면접은 루크가 직접 볼 테니 말이다.

제랄드는 ‘과연 말처럼 잘될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주군의 명령이니 믿고 따르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조건을 짜 맞춰서 공모를 내겠습니다.”

* * *

촛불 하나만 켜져 있는 어두운 방 안.

촛불의 조명과 어둠이 맞닿는 경계선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불빛이 닿는 구역에 드러난 것이라고는 사내의 손뿐이었다. 사내의 손에는 단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딱히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국의 국왕을 뒤에서 찌른 이후부터 혼자 있을 때 단검을 들고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이후 겐크 왕국 혼란 공작대, 일명 ‘쉐도우 나이트’의 단장으로 임명되어 지금까지도 계속 활동하는 중이다. 겐크 왕국만 점령하면 공국은 왕국으로 승격할 것이고, 그는 개국공신으로 공작 위를 부여 받기로 되어 있다.

그런 만큼 겐크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반드시 할 것이다.

방 안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차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온 이 역시 어둠 속에 머물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양초의 불빛이 닿는 거리에서 드러난 털이 난 손을 통해 들어온 이가 남성임을 알 수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에 새로 쉐도우 나이트 일원으로 임명된 바리엘입니다.”

“다음부턴 시간을 잘 지키도록. 우리가 일분일초 늦을 때마다 왕국 승격의 꿈이 늦춰지는 거라 생각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첫 임무를 부여하지. 이번에 드래프트 영지에서 영주 보좌관을 새로 뽑는다고 하더군. 루크 남작의 보좌관이 되어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해라.”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여긴 남서부 귀족 독살 사건이 실패로 돌아갔다. 거기다 폴까지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폴이 누구에게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나마 알아낸 거라고는 루크란 자가 개입하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뿐이다.

드래프트 영지에 사람을 투입하여 예전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다는 것은 알아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루크에 대한 정보는 거의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 정보를 캐낼 빈틈을 보이지 않아 곤란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인 보좌관을 공모한 덕에 놈의 옆에 공작원을 붙일 기회가 생겼다.

이 기회를 놓칠쏘냐.

개인 보좌관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기존의 공작원으로는 응모가 어렵기에 본국에 새 인재를 요청했다. 아레나 공국에서 엄선한 끝에 보내온 자가 바로 바리엘이었다.

바리엘은 공작원으로서 자신에게 처음 부여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리란 각오를 내비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겠습니다.”

사내가 손가락을 튕겨, 쥐고 있던 종이 뭉치를 바리엘의 발치에 던졌다.

개인 보좌관의 공모를 거치며 주의해야 할 사항과 합격 시 정기 보고서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바리엘은 종이를 양초의 불빛에 비춰 몇 번을 읽고, 모두 암기한 후에 종이를 촛불 위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불이 붙은 종이를 모래밖에 없는 벽난로에 던졌다. 벽난로 속의 모래 위에서 종이가 잿더미가 될 때쯤 그는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사내는 단검의 검신 위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아련히 중얼거렸다.

“또 이 검으로 찌를 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 나타나 줬으면 좋으련만.”

* * *

드래프트 영지의 내부는 물론이고, 타 영지에도 개인 보좌관을 공모하다는 모집 공문이 전달되었다. 공문은 각 영지의 공개 게시판에 게재되었으며, 이제 신청자가 드래프트 영지로 오는 것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제랄드는 타 영지까지 다녀온 정보원으로부터 임무를 완료했다는 보고를 듣고, 직접 루크에게 보고서를 전달하기 위해 남작가의 저택을 방문했다.

“지시하신 대로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영지 내에선 너도 나도 신청하고 싶은데 조건을 보고 포기하더군요.”

“다른 영지에선?”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연봉이 낮다고 포기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거름망은 설치해 뒀으니, 목표물이 병 안에 떨어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만약에 공작원이 오지 않고 일반인이 신청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땐 그냥 값싸고 능력 좋은 노동력을 한 명 거저 얻는 것이지. 그다음 이후의 계책을 생각하면 될 일이야. 어느 쪽이든 손해 볼 일은 없지.”

“아.”

제랄드는 저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떻게 해도 손해는 안 본다.

제랄드는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둔 주군의 혜안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더불어 이제 곧 채용되게 될 개인 보좌관에게 미리 애도의 묵념을 해 주었다.

공작원이든 아니든 무진장 고생하게 될 것이기에.

걸려도 하필 자신의 주군에게 걸리게 될 인물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