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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21화 (21/200)

# 21

21화 배신자들에게 보내는 폭탄(2)

바리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명문가의 자제였던 사람이다. 아레나 공국이 왕국이었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끝까지 국왕을 믿고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겐크 왕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맺으면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그날,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충성할 나라가 사라졌다며 술에 절어 살다가 스스로 목을 매었다.

무너진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싶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했다. 학문에 있어서는 마탑 경영과 4년을 수료하여 집무관이든, 보좌관이든 소화할 수 있도록 공부를 마쳤으며, 무력에 있어서는 원래 재능이 있어 마나유저 중급의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현실은 매정했다.

이미 몰락한 가문의 후계자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가문이 몰락한 자리에는 공국의 건국과 함께 신흥 귀족이 된 자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카인 국왕을 원망했다. 국왕이 나라를 겐크 왕국에 팔아넘기지만 않았으면 아비가 목을 맬 일도 없었을 것이며, 가문이 몰락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원망이 첩첩산중의 절벽 아래처럼 깊어질 무렵, 공국의 왕궁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쉐도우 나이트가 될 생각이 없느냐?’

겐크 왕국에서 공작원으로서 활동하며, 겐크 왕국 정벌에 일조하면 포상을 내리겠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포상은 특례로 이미 몰락한 귀족가에 다시금 작위를 부여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가문의 재건이 현실이 될 수 있는데,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바리엘은 반드시 작위를 따내리란 부푼 꿈을 안고 드래프트 영지로 향했다.

* * *

서류 전형과 1차 면접은 가볍게 통과했다. 1차 면접 내내 제랄드란 자가 집요하게 루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아서 얼이 빠지긴 했는데, 그런대로 무사히 면접을 통과했다. 그 정도면 찬사가 아니라 찬양하는 수준이다. 대체 얼마나 세뇌를 시켰기에 사람이 사람을 그 정도로 신격화할 수 있는 걸까?

최종 관문이자 2차 면접은 루크와 직접 면담하는 것이었다.

“아레나 공국에서 집무관으로 일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퇴직. 그 후 요양을 통해 회복하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겐크 왕국으로 넘어왔다가 모집 공모를 보게 되었다는 거군.”

바리엘은 자신의 본래 성격에 활발함을 덧씌우며 의욕이 넘치는 구직자를 가장했다.

“네!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기도 뭐해서 구직 중이었는데, 요즘 떠오르는 샛별인 남작님의 소문을 듣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뽑아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향이 파크라 영지로군. 영지를 다스리는 가문이 바뀌면서 영지의 사정이 악화되었다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지?”

“네? 실례지만, 면접과 관련 있는 질문인가요?”

“영지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지. 영지 상황이 나빠지는 현상에 대한 자네의 일반적인 견해가 어떤지 알아보고 싶어서 말이야.”

“영주는 항상 영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죠. 그런데도 영지의 상황이 나빠지는 건 대부분 운이 따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주는 나쁘지 않다?”

“영주도 사람이니까요. 어쩌다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요. 그를 보좌하기 위해서 아랫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하지만 루크 남작님은 워낙에 능력이 출중하시니, 잘못된 방향으로 갈 일은 없겠지요. 변두리 땅에 불과했던 이곳을 남서부 최고의 영지로 만든 남작님의 인품과 능력에 반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존경하는 남작님의 행보에 일조하고자 이 한 몸 바치고 싶으니, 곁에서 보좌하게 해 주십시오.”

바리엘은 적절히 아첨과 열의를 섞으며 루크를 추켜세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했으니 루크도 예외는 아닐 터. 루크가 간담회에서 다른 귀족들에게 고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이미 조사한 바이다. 고자세를 취하는 자들은 모두 자존심이 세다. 그러니 너무 튀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은 아첨을 던져 주면 금세 환심을 살 수 있다.

은근한 아첨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실무에서도 방금 언급한 자세를 보여 주길 바라지.”

“그 말은…….”

“합격이야. 저택에서 머무르면서 내 개인 보좌관으로 업무를 수행해 줬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거 봐라.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의도한 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

이렇게 싱거워서야 이번 임무에서 보람이나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살 계획을 저지한 것도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겠지. 본국에서도 경계한다기보다는 어떤 놈인지 알아나 두자는 눈치였고 말이다.

바리엘은 싱거운 임무가 될 것을 예감하며 속으로 루크를, 그리고 개인 보좌관의 업무를 얕잡아 보았다.

* * *

가장 큰 난관인 취직 단계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바리엘은 합격 통보를 듣자마자 곧바로 남작가 저택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다음 날, 곧바로 드골로부터 업무를 인계했다.

바리엘은 겐크 왕국에서 백작가의 집무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기에 남작가의 개인 보좌관쯤은 껌일 것이라 여겼다. 행정 업무를 보는 집무관과 다르게 개인 보좌관은 남작의 개인 스케줄과 업무만 보조해 주면 끝이니까.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상상을 초월한 막대한 업무량이었다.

“남작님의 스케줄은 분 단위로 꿰고 있어야 하고, 이동 수단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네. 식사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늘 짬이 나면 따뜻한 음식을 드실 수 있게 눈치껏 준비하게나. 저택 안에선 주방장에게 부탁하면 되고, 저택 바깥에서 해결하게 될 때는 바로 드실 수 있되 남작님의 품격에 맞는 음식을 선정하게나. 그리고 이건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일세. 매일 아침마다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회수하고, 결재 끝나면 각 부서에 다시 분배하게나. 그것 말고도…….”

수첩에 메모를 하면서 듣고 있는데도 너무 많아서 손이 따라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라면서 가져온 서류의 양이 앉은키보다 높았다.

남작령에 처리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다고?

드래프트 영지가 남작령치고는 넓은 편이라고 듣긴 했다만, 일거리까지 이리 많을 줄은 몰랐다.

개인 보좌관의 첫 업무로, 결재 서류를 루크에게 전달했다.

바리엘은 결재 서류를 전달한 후 한 번 더 놀라야 했다.

“작년 자료가 누락됐군. 바리엘, 나중에 기획부에 자료 첨부해서 다시 가져오라고 전해.”

“네.”

“그리고 행정부 자료가 기획부 자료에 섞여 있어. 첫날이라 봐주겠지만, 내일부터는 부서별로 서류를 따로 분류해서 가져와.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아, 죄송합니다. 신경 써서 분류하겠습니다.”

“다음 스케줄은?”

“각 부족의 족장과 오크 보병의 질적인 강화를 위한 회의가 있습니다.”

“각 부족 족장의 도착 시간은 알아 뒀나?”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것도 앞으론 아침에 미리 해 놔. 멀리서 오는 족장도 있으니까, 일정에 공백이 생길 수도 있어. 보통 공백이 생기면 뒤쪽 스케줄을 앞당겨서 먼저 실시하니, 그때그때 조정해 둬.”

“네, 주의하겠습니다.”

바리엘은 아침 댓바람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하나 이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매 시간마다 일감은 계속 밀려들었다. 루크는 시도 때도 없이 바리엘을 불러 온갖 잡일을 떠맡겼다. 숨을 돌릴 틈도 안 줄 생각인지 돌아서면 부르고, 다시 돌아서면 또 부르길 반복해 대는 탓에 앞머리가 쉴 새 없이 찰랑거리며 산발이 되어 흐트러졌다.

“바리엘.”

“네, 갑니다.”

“바리엘!”

“네네, 지시하신 자료 가져왔습니다. 여기요.”

“바리엘.”

“다음 스케줄 말씀이시죠? 잠시만요.”

업무는 많지, 루크의 스케줄은 시시각각 변하니 그때마다 대응해야 하지, 그 와중에 식사를 챙겨 드리고, 자기도 식사해야 하지.

바리엘의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어느 집무관이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가 바리엘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고 많으십니다. 그래도 아직은 할 만하죠? 추수철 되면 진짜 죽어요. 업무량이 지금의 몇 배로 뛴다니까요.”

이 정도로 일을 시키는데, 연봉은 말단 보좌관의 초봉 수준이다. 어째서 대대적으로 모집 공고를 냈는데도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이 정도면 혹사가 아니라 아예 쥐어짜 내는 수준이다.

폭풍 같던 첫날 근무가 끝날 즈음, 시곗바늘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9시부터 내리 일했으니, 꼬박 15시간 동안 일한 셈이다.

바리엘은 방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엎어졌다.

풀썩!

“에고고, 죽겠다. 정보 수집이고 뭐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잖아. 낙승인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어. 최악의 임무야.”

바리엘은 첫날부터 후회를 했으나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가문의 작위가 걸려 있다. 가문의 작위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쥐어짜는 직장 생활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움직이자. 어떻게든 정보를 수집하는 거야.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없어. 감시하다 보면 하나쯤은 약점을 찾을 수 있겠지.

바리엘은 지급 받은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기분을 전환할 겸 수집할 정보가 없을까 싶어 저택을 한 바퀴 돌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돌아다닌 끝에 유일하게 얻은 정보라고는 저택이 엄청 깨끗하다는 점뿐이었다.

방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저 멀리, 수련장 안에서 불빛이 아른거리는 게 보였다.

저택 내의 수련장은 루크의 개인 수련장인 걸로 알고 있다.

설마 이 시간에 수련을?

그럴 리가. 하녀가 잘못 켜 놓은 거겠지. 아침부터 밤까지 업무를 맡은 건 루크도 마찬가지이다. 바리엘보다 더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 냈는데, 그 뒤에 또 수련을 한다? 강철 체력이라도 무리다.

바리엘은 설마설마하는 마음에 수련장의 입구 안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살폈다. 설마가 진짜가 된다고, 정말로 수련장 안에는 루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명상을 하고 있는 건지, 수련장의 한복판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 수련까지 한다고? 스케줄에 개인 수련 시간이 포함되어 있긴 했는데, 정말로 하고 있을 줄이야.’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쯤 되니 임무 대상인 것을 떠나서 존경심이 들 지경이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소가 뒷걸음질 쳐서 쥐를 잡은, 운이 좋은 케이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성공하는 자는 왜 성공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개인적인 감상과 임무는 따로 생각해야 한다. 바리엘도 저만의 목적이 있는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크의 약점 혹은 본국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캐내야 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관찰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방으로 돌아간 바리엘은 쉐도우 나이트의 단장에게 보낼 첫 보고서를 작성했다.

[루크 관찰 일지 1차 보고서]

[업무 처리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성격인 것으로 판단됨. 현재로선 그 외의 별다른 약점은 발견하지 못함. 생활 패턴으로 보건대, 희박한 확률로 과로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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