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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24화 (24/200)

# 24

24화 수도로 가는 길(2)

청문회에 참가하려면 겐크 왕국의 수도로 가야 한다.

장기간 자리를 비우게 된 루크는 드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나서 수도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에는 마부만 대동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상비군 정원을 추가로 1,000명 더 늘린 터라 총대장인 제랄드가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말이 마부만 대동한다는 것이지, 사실상 루크 혼자서 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에 드골과 제랄드가 격하게 반대했다.

“혼자서라니, 그건 안 될 말씀이십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혼자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최소한의 호위 병력이라도 대동하십시오. 남작님 혼자만 가면 수도의 귀족들이 안 좋게 볼지도 모릅니다.”

마치 애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의 말투이다. 그런 의도가 아닌 건 알고 있다. 그만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루크는 가볍게 팔을 휘저으며 혼자서 가기를 고수했다.

“이번 여행길은 혼자 가는 게 나아. 혼자이기 때문에 뜻밖의 수확이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혹시라도…….”

“제랄드.”

제랄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안다. 루크라면 청문회에서 아레나 공국의 사절단을 한껏 물 먹일 것이다. 그리되었을 경우, 심사가 뒤틀린 아레나 공국에서 보복을 위해 몰래 암살자를 파견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한 호위 병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레나 공국이 단순한 수작을 부릴수록 루크는 고마울 따름이다.

머리를 쓸 것도 없이 암살자를 붙잡아 증거물로 선보이면, 아레나 공국은 빼도 박도 못하고 수세에 몰릴 것이다. 뭐, 로메우가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겠지만, 미끼를 뿌려 둬서 나쁠 것은 없다.

제랄드는 자기도 모르게 암중 세력에 대해 말할 뻔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루크와 제랄드는 암중 세력에 대해 알고 있을지라도 드골은 모르고 있었다. 루크가 세우는 작전들은 하나같이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사소한 낌새라도 내비쳐선 안 된다. 드골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신중함을 기하기 위해서 루크는 암중 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삼가고 있었다.

제랄드도 그걸 알기에 고개를 숙인 것이고 말이다.

“둘 다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내가 어디 가서 당하고 살 사람처럼 보여?”

“하긴 남작님이 당하고 산다니, 상상하기 힘들긴 하군요.”

“상대 쪽이 불쌍할 정도지요.”

“알면 됐어. 돌아올 때까지 영지나 빈틈없이 관리해 둬.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두 사람을 납득시킨 루크는 마차의 문을 닫으며 마부에게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차 바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루크는 처음으로 겐크 왕국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게 되었다.

* * *

루크 혼자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왕 시절에는 로메우의 수작 때문에 거의 왕궁 안에서만 지내야 했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이후부터는 어딜 가든 제랄드나 드골이 따라붙었다.

주변에 호위 병력이 없는 것만으로도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그동안은 풍경에 항상 호위 병력이 섞여 있었다면, 지금은 모든 풍경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왕궁 안에서만 있었고, 지금은 미친 듯이 일만 하다 보니, 여유가 전혀 없었군.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걸.’

제랄드나 드골 등 주변 사람들은 루크를 취미도, 여가 생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만, 실은 루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빡빡하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사적인 시간에 더더욱 느림의 미학에 끌리게 되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나뭇잎에 쌓인 눈이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또한 풍류라면 풍류일 터.

아쉬운 게 있다면 창틈으로 칼바람이 들어와 얼굴을 할퀸다는 점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겨울의 풍물시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너프 산맥을 넘고, 남서부의 영지를 하나둘 거치다 보니 금세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 * *

겐크 왕국의 남서부 지방에서 수도가 있는 중부 지방으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그란데 백작령을 거쳐야 한다.

루크는 지친 말을 교체할 겸 그란데 백작가에 들렀다.

“일이 있어 수도로 가던 중에 들렀습니다. 말을 교체하고 싶은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근 1년 만에 루크와 재회한 그란데 백작은 처음엔 루크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아~ 자네였나. 이거 오랜만이구먼. 1년 만이던가?”

“그새 얼굴을 잊으셨나 보군요.”

“내가 못 알아본 게 아니라 자네가 많이 변한 걸세. 1년 사이에 많이 완숙해졌구먼.”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엔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만.”

“원래 자신은 자기 변화에 둔하지 않은가. 수도로 가는 거면 청문회 때문이겠군.”

“벌써 소문을 들으셨군요.”

“그게 아니라 내게도 청문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네. 마탑 유치 건 이후로 내가 자네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처럼 소문이 났더군. 아마 왕궁에서도 소문을 듣고 내 의견을 묻기 위해 부른 걸 테지. 그나저나 이번 일은 자네가 단독으로 시행한 작전인가?”

“작전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빈틈없기가 철벽같구먼. 일단 자네는 연관 없는 걸로 해 두겠네. 나중에 나와 자네의 말이 엇갈리면 큰일이니까. 청문회에서 자네를 지원할 생각이니 하나만 말해 주게나. 이번 일로 암중 세력에게 크게 한 방 먹였나?”

“글쎄요.”

“하하하! 그런가? 그거면 충분히 대답이 됐네. 그나저나 바로 수도로 떠날 건가, 아니면 하룻밤 묵고 갈 텐가?”

그란데 백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탑 유치 사건 이후부터 루크에게 무한한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일전에 루크의 생일 때도 직접 참가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호화로운 선물을 챙겨 줄 정도로 말이다.

어지간히 루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간만에 혼자 여행하는 맛을 보고 있기에 동행은 힘들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호위 병력 없이 혼자 온 거였구먼. 안타깝게도 나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동행은 힘들 듯하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늦게 출발할 것 같아. 그러니 수도에서 보세나.”

한바탕 호탕하게 웃은 그란데 백작은 집사를 시켜, 말을 교체해 주라고 지시했다. 루크는 지금처럼 조용히 갈 수 있게 되었기에, 그란데 백작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 * *

루크가 그란데 백작가를 떠난 후, 그란데 백작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쉽구먼, 아쉬워. 지금같이 남작과 마차를 타고 올라가면 딱 좋았겠거늘. 하필 그새를 못 참고 집을 나가 버릴 줄이야.”

현재 그란데 백작령에 있는 아카데미가 겨울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란데 백작의 유일한 자식도 얼마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란데 백작은 부모, 자식 간의 추억이라도 쌓을 겸 딸에게 같이 수도로 올라가자고 권하였다.

처음에는 수도로 간다는 말에 좋아하더니, 어디선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안 가겠다고 하더라.

중간에 루크와 합류하여 함께 갈 계획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지금의 루크는 예전의 루크가 아닌데 말이다.

“예전 일을 잊으라는 건 내 욕심인 건가. 나도 참 마음만 앞서서 몹쓸 짓을 해 버렸군.”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그란데 백작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다고 집을 나갈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어디로 갔는지 알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걱정이 태산이던 차에 백작가 소속의 기사가 황급히 뛰어와선 보고를 올렸다.

“백작님! 아가씨를 찾았습니다!”

“정말이더냐?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영지 북쪽으로 향하는 걸 봤다는 목격담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에서 알고 지내던 학우분의 집으로 향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거기로 가 보자꾸나.”

“며칠 뒤면 청문회인데, 시간상 너무 빡빡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가는 길이지 않느냐. 시간을 많이 빼앗기진 않을 테니, 사과라도 한마디 하고 올라가자꾸나.”

* * *

그란데 백작가를 떠난 루크는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란데 백작가를 벗어나면 곧바로 중부 지방에 들어서고, 그 후 다시 한참을 달려야 수도가 나온다.

그나마 중부 지방과 인접해 있는 그란데 백작령도 수도와 이만큼이나 떨어져 있는데, 그보다 더 먼 드래프트 영지는 오죽하랴. 왕궁에서 괜히 드래프트 영지에 사람을 보내기를 꺼리는 것이 아니다.

차창에 턱을 괴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루크를 마부가 불렀다.

“남작님, 전방에서 누군가가 태워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루크는 졸음을 떨쳐 내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전방 50미터 부근에서 남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두 손을 흔들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무언가 큰 소리로 외치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는데, 태워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 보도록 하지. 세워 봐.”

“네.”

로브를 쓴 자가 있는 곳까지 다다라서 마차가 멈췄다.

로브를 쓴 자는 가까이서 보니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로브 아래로 기다란 은발이 흘러내려 와 있으며, 몽환적인 느낌의 회색빛 눈동자와 백설처럼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20대 초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이고 도움을 청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앞에 있는 마을까지만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 제 걸음으론 밤이 되기 전에 도저히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사례비는 드릴게요.”

그녀에게 충동적으로 백작령을 떠나야 할 법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무런 준비 없이, 걸어서 횡단하기엔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다.

다른 영지의 영지민일지라도 백성은 백성이다.

사람 한 명을 마을까지 못 데려다줄 정도로 루크는 각박하지 않았다.

루크는 손수 마차 문을 열어 주며 탑승을 허락했다.

“사례는 됐어. 마침 가는 길이었거든.”

“감사합니다.”

덜컹덜컹.

마부의 말에 의하면, 다음 마을까지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두 마차로 3시간이면, 사람 걸음으론 한참이 걸린다. 아마 루크의 마차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한겨울에 맨몸으로 노숙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차에 탄 여성은 새빨개진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넣어 팔짱을 끼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 모습이 마치 눈에 파묻혔다가 구조된 흰 토끼를 연상케 하였다.

보다 못한 루크가 마부석 아래에 있는 수납장에서 담요를 꺼내 건넸다.

“이거 써.”

“아, 고맙습니다. 5시간을 내리 걸었더니 춥긴 춥네요.”

“이 앞에 있는 마을에 꼭 가야 할 이유라도 있나 보지?”

“그런 건 아니고요.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아버지랑 싸웠거든요. 홧김에 집을 나와서 친구 집으로 가고 있는데, 들었던 것보다 훨씬 머네요. 친구는 금방이라고 했는데, 완전히 속았어요.”

“사례 받는 셈 치고, 하나만 참견해도 되나?”

“참견이요?”

“응어리가 풀렸다 싶으면 제대로 화해해. 쌓아 두면 후회만 늘어나니까.”

“그러고 싶은데 이번 일만큼은 저도 용납할 수가 없어서요. 예전에 저한테 엄청 저질스러운 행동을 하던 남자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남자가 요즘 달라졌다면서 인사라도 나눠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대판 싸웠죠.”

“그건 좀 심한데?”

“그렇죠? 15살한테 외설스러운 편지를 보내던 남자라니까요.”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할 텐데, 들으면 들을수록 가출한 이유가 납득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5살한테 그런 편지를 보내냐.

여인에게 남자의 얘기를 들은 루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개인적인 소감을 내뱉었다.

“정신 상태가 의심되는 사람이군.”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네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흥분할 만하지. 신경 쓰지 마.”

“후우, 오랜만에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기분이 좋네요. 태워 주신 것도 그렇고, 담요도 그렇고, 정말 감사드려요.”

“평생 받을 감사를 다 받겠군. 됐으니 몸이나 녹여.”

“후후후, 선의에는 호의로 대답하는 게 제 좌우명이거든요.”

“나랑은 정반대군. 난 불의에는 적의로 대답하는 편이지.”

“반반씩 섞으면 딱 맞겠네요.”

“섞어 버리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러네요. 뭐든 어중간한 건 별로죠.”

“동감이야.”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의 들판, 그 위를 달리는 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이렇게까지 죽이 맞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3시간 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여인은 마차에서 내렸으며, 루크는 가던 길 그대로 수도로 향했다.

그렇게 과거에 한번 엉킨 실이 지금에 이르러 다시 교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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