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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0화 (30/200)

# 30

30화 제 그릇으론 감당할 수 없는 사내예요(2)

“그러시죠. 차창 쪽에 얼굴을 내밀지만 않으면 아무도 못 알아볼 겁니다.”

“그란데 백작은 잘 따라오고 있나요?”

“한참 뒤에서 따라올 겁니다. 이번 작전에서 백작님은 뒤처리 담당을 도맡기로 되어 있어서요.”

“아, 그럼 실제로는 저랑 남작이랑 둘이서 작전을 시행하는 거… 아츄!”

앙증맞게 재채기를 하던 그녀는 먼지가 묻은 로브를 조심조심 개어 놓고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정말로 남몰래 왕궁에서 나오게 될 줄이야. 뭔가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두근거리네요.”

“실제로 좋은 일이라곤 할 수 없지요.”

“루크 남작은 참 신기해요.”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보통은 자기 자신을 좋게 포장하기 마련인데, 루크 남작은 가식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면서도 숨기고 싶은 건 철저하게 숨기고 있죠. 저로선 루크 남작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 말이죠.”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네?”

“무엇이 궁금하신지 물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아, 아뇨, 정말로 대답해 줄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개인적인 질문도 괜찮나요?”

“상관없습니다. 질문을 하셔도 제가 솔직하게 대답해 드릴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래요! 그런 부분! 가식은 없는데 솔직하진 않은 거! 꼭 사람 놀리는 것 같다니까요.”

“싫으십니까?”

“싫다기보단…….”

“싫다기보단?”

“후우, 말을 꺼낸 제가 바보죠. 그냥 하던 대로 해 주세요. 하여간 어디 가서 바보 소리는 들은 적 없는데, 이상하게 남작이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바보가 된 기분이 든단 말이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차는 골디브를 빠져나와 한적한 들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마차의 속도를 높이고, 휴식도 없이 계속 달려서 하루 만에 골디브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란데 백작과 거리가 벌어져, 제삼자가 보기엔 루크 혼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형태가 되었다.

* * *

날이 저물 무렵, 골디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한 후에야 마차가 멈춰 섰다. 하루 종일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지친 말을 교체할 겸 말을 교체할 수 있는 고급 여관을 잡았다.

“1인실 하나, 그리고 타고 온 마차의 말을 교체해 줘.”

혹여나 누가 알아볼까 봐 로브를 쓰고 루크를 따라다니던 엘리나는 1인실이란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부야 다른 여관에서 자고 오니 제외한다 치더라도 두 사람이 남는다. 한데 루크가 방을 1인실 하나만 달라고 하고 있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엘리나는 혹시 자신의 존재가 잊힌 건가 싶어 루크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요, 루크 남작? 저도 있어요.”

아! 혹시 방값은 따로따로 내자는 건가?

빈틈없는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약간의 현금을 가져왔으니, 하룻밤 머무를 방값 정도는 낼 수 있다.

한데 이어지는 루크의 말에 따르면 방값을 따로 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네, 같이 1인실에서 하룻밤 보낼 겁니다. 종업원에게 물어봤는데, 두 명이서 써도 괜찮다고 하는군요. 올라가시죠.”

법규 준수, 품행 단정을 신조로 삼아 온 요조숙녀인 엘리나에겐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행동이었다.

몰래 왕궁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허용량을 까마득히 넘긴 꼴인데, 게다가 외간 남자와 한방을 쓴다?

작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루크를 따라 1인실에 들어간 그녀는 좁은 1인용 침대에 걸터앉아선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 루크 남작? 이거도 작전의 일환인 거 맞죠?”

루크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사실대로 말씀드려도 되겠군요.”

“네? 사실대로요?”

“작전에 대한 설명 말입니다.”

“아~ 그거 말이죠? 그건 줄 알았어요. 당연히 알고 있었죠.”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이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테니까요.”

“그냥 모른 척 넘어가도 될 걸, 꼭 그렇게 사람을 놀려야겠어요?”

“부끄러움을 덜어 드리기 위한 배려지요.”

“배려가 너무 과해서 체할 지경이네요. 아무튼 어디 한번 그동안 꽁꽁 숨겨 두었던 작전의 개요나 들어 보죠.”

“사실 작전이라곤 해도 별거 없습니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드래프트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암살자들이 습격해 올 겁니다.”

“확실한 정보인가요?”

“거의 9할 9푼 확실하다고 보면 됩니다. 반드시 암살자를 파견하게끔 로메우 공왕을 자극해 뒀으니 말이죠. 로메우 공왕 성향상 렌디에게 절 제거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마치 로메우 공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조금만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한 나라를 지배하는 왕의 성향은 곁에서 지켜본 자가 아니면 쉬이 파악하기 힘들다. 엘리나는 루크가 직접 로메우를 알현했다기보다는 로메우의 측근 중 하나를 포섭한 것이겠거니 하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리 생각해야 앞뒤가 맞으니까.

“루크 남작의 말대로 무조건 암살자가 온다고 가정하죠. 이제야 왜 저를 데리고 나왔는지 이해가 가네요.”

“네. 저 혼자일 땐 귀족 암살죄를 적용시킬 수 있지만, 왕녀님이 계시면 왕족 암살죄를 적용시킬 수 있으니까요.”

“왜 지금까지 작전을 숨겼는지 알겠네요. 위험도를 감안하면 그란데 백작이 극구 반대했겠죠.”

“속이는 듯한 형태가 된 건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꼬리를 감추고 있는 적을 끌어내려면 응당 위험을 감수해야죠. 하지만 저한테까지 끝까지 말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네요. 작전을 미리 들으면 제가 겁먹을 거라 생각했나 보죠?”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루크 남작, 이걸 봐 주세요.”

엘리나가 눈매를 날카롭게 하며 남다른 기백을 표하더니 로브를 벗어 던졌다. 아니, 로브를 벗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윗옷의 어깨끈을 옆으로 넘기더니 몸을 돌려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고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어릴 때 별궁에 불이 나서 타 죽을 뻔했죠. 그때 난 화상 자국이에요. 그리고…….”

등에는 심각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짓무른 상태에서 아문 자국은 그 어떤 고급 포션을 써도 낫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흉터는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더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엘리나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번엔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 올려 허벅지를 드러냈다. 허벅지에는 한 뼘이나 되는 꿰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건 5년 전에 행사에 참가했을 때 갑자기 샹들리에가 떨어져서 입은 상처예요. 다리가 깔려서 6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죠. 항상 암살 위협 속에서 살아온 저예요. 그런데 이번 일이라고 무서워할 것 같나요?”

공격적인 태세로 돌변한 엘리나의 기세는 확실히 다른 왕족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녀는 루크를 직시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전 이런 여자예요. 얕보지 마세요.”

루크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끈을 올려 주며 입을 열었다.

“다음부턴 거기까지 감안해서 말씀드리도록 하죠.”

어색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루크의 매너에 엘리나는 뒤늦게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발끈해서 벌인 짓이라고는 하나, 본인도 본인의 대담함에 놀란 참이다.

그녀는 어색함을 숨기고자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본제로 돌아갔다.

“렌디를 통해 암살자를 파견한다면, 제삼자를 고용하거나 언니의 직속부대를 이용할지도 모르겠네요. 만약에 언니의 직속부대가 온다면 곤란해져요. 전원 마나유저 중, 상급으로 이루어진 부대라 어지간한 기사단보다 강하거든요. 루크 남작, 암살자를 제압하기 위한 병력은 얼마나 준비해 뒀나요?”

“없습니다.”

“그렇군요. 없군요… 엥? 놀리지 마세요. 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숨기는 건가요?”

여태까지 작전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으니, 병력에 대한 것도 숨기는 것이 아닐까 하여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다른 병력은 없는 것인지 루크는 고개를 젓고는 1인용 침대의 이불을 젖혔다.

“아무 문제없으니 편히 쉬십시오. 왕녀님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요.”

* * *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릴 무렵.

차디찬 겨울 밤바람에게 출입 금지령을 내리듯, 마을의 모든 집이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더불어 잠행복을 입은 다수의 사내가,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밤거리를 빠르게 횡단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마을 외곽에 있는 고급 여관이었다.

사내들은 여관의 담벼락을 넘어, 뒤뜰에 있는 별채를 포위했다. 그들은 행여나 별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목소리가 들릴까 싶어 자기들만의 수신호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표적이 안에 있는지 확인해 봐.’

‘방금 확인했습니다. 침대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둘이 누워 있군요.’

‘뭐? 표적은 혼자 다닌다고 하지 않았었나?’

‘실루엣으로 봐선 여자랑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도 끝내겠다, 자축하고자 여자를 불렀나 보군.’

‘어떻게 할까요?’

‘창부 하나쯤 더 죽인다고 문제 될 건 없겠지. 같이 죽여.’

돌입하기에 앞서, 전원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창문 틈새로 철사를 끼워 넣어 소리 없이 창문의 잠금쇠를 위로 젖히고, 창문을 천천히 열었다.

혹여나 겨울바람의 쌀쌀함에 표적이 잠에서 깰세라 잽싸게 방 안으로 몸을 날린 순간.

푸른 궤적이 번뜩이며 첫 번째로 방 안에 들어선 자의 몸을 양단했다.

서걱!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내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침대에 누워 있던 표적은 어느새 일어나 있었고, 그의 손에는 짙은 푸른색의 마나 오라가 맺혀 있었다.

표적이 잘 때도 검을 품고 잔 것인지, 아니면 자기네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인지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사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가장 먼저 냉정을 되찾곤 수적 우위를 강조했다.

“당황하지 마라! 감이 좋은 녀석을 상대하는 게 처음인 것도 아니지 않느냐! 혼자인 건 마찬가지이니 머릿수로 압박해라!”

그러나 머릿수의 차이 따윈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사내들의 표적, 루크는 창문 바깥으로 검을 겨누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증언대에 올릴 사람은 한 명이면 충분해. 지금이라도 제비뽑기로 살 사람을 결정하지 그래? 그 정도는 기다려 주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내들은 본인의 임무를 다하고자 저마다 단검에 마나 오라를 부여했다. 알아차렸다고 해도 적은 고작 한 명뿐. 십수 명에 달하는 실력자를 상대로 배겨 낼 턱이 없다.

그러나 상황은 금세 반전되었다.

루크의 검에 맺힌 마나 오라에서 살벌한 기세를 품은 실오라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마나마스터의 경지를 증명하는 현상 앞에서 복면 아래, 사내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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