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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1화 (31/200)

# 31

31화 제 그릇으론 감당할 수 없는 사내예요(3)

복면의 사내들, 나탈리 휘하의 블랙 카우 부대는 그늘에서 그녀를 대신해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왔다. 납치, 암살, 횡령, 여론 조작 등등 그들이 여태까지 해 온 일을 나열하면 종이 한두 장으론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나탈리가 제아무리 절세 미녀이고, 서열 1위의 왕위 계승권자라 할지라도 그것만 가지고 세력을 끌어 모을 순 없다. 그녀의 미모와 계승권, 거기에 수면하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수작이 합쳐져서 지금의 나탈리를 만든 것이다.

블랙 카우 부대의 대원들은 이번 임무를 그야말로 가벼운 산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호위 병력도 없이 혼자 다니는 남작 하나를 사냥하는 일이지 않은가. 자고 있을 때 죽여서, 남모르게 시신을 처분하면 범인을 찾을 수 없는 미해결 실종 사건 하나가 탄생한다.

때문에 쉽게 여기고 있었거늘…….

“크어억!”

“이런 망할! 마나마스터란 말은 없었잖아! 어떻게 된… 컥!”

“대장! 지시를!”

바다의 바위에 앉아 해풍으로 멱을 감는 세이렌의 푸른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마나 줄기가 흩날렸다. 비슷한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유려하게 반짝이는 자태에 홀려 멋모르고 다가갔다가는 불귀의 객이 된다는 것까지 매우 흡사하다.

마나 블레이드가 흩날릴 때마다 블랙 카우 대원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서걱!

검으로 막아도 소용없다. 검까지 두 토막 내며 몸을 갈라 버리니까.

서걱!

잠행복 안에 덧댄 경갑도 무의미했다. 마나 블레이드 앞에선 종이 갑옷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서걱!

순전히 경지의 격차만 있으면 모를까, 기술 또한 남달랐다. 신장이 큰데도 불구하고 루크는 자유자재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날랜 공격을 뿜어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연계를 이루는 과정에서 잡음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마나 블레이드의 위력은 화염과도 같이 거셌고,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검술은 태산처럼 빈틈없이 견고했다.

실타래가 가닥가닥 하늘거릴 때마다 공중에 핏물이 치솟았다.

블랙 카우 대원들은 힘 한번 제대로 못 써 보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십수 명에 달하던 대원들이 모두 쓰러지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나마스터의 희귀함과 강함, 그리고 루크를 경시한 탓에 대원들의 집중력이 저하되어 있던 것이 어우러지며 일방적인 결과를 빚어냈다.

남아 있는 자는 오직 한 사람, 블랙카우 부대의 대장뿐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음을 자각한 대장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젠장, 이 작자가 마나마스터란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설마 지금껏 마나마스터이면서도 숨겨 온 건가? 왜? 왜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마나마스터인 것만으로도 대우가 달라지고, 가문의 이름을 왕국에 널리 알릴 수 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버리고 지금까지 실력을 숨겨 왔다? 무엇을 위해서? 설마 상대를 방심시키려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 남자는 독종 중에서도 독종이다. 불확실한 미래, 즉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때를 위해 당장의 부와 명예를 포기한 것이지 않은가!

‘놈은 증언대에 올릴 사람은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했어. 여기서 잡히면 내 배후, 나탈리 왕녀님이 위험해져!’

도망치기 위해 체면 불구하고 담장을 향해 뛰려던 찰나, 마나 블레이드 한 줄기가 뻗어 나와 대장의 허벅지 뒤쪽을 깊숙하게 베어 내었다.

서걱!

“크어어억!”

대장이 넘어짐과 동시에 고급 여관의 본채 건물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연이은 비명 때문에 종업원들이 하나둘 깨어나 원인 파악에 나선 것이었다.

더불어 별채 안에서 루크와 함께 자고 있던 여자가 뛰어나왔다.

“루크 남작! 여관 사람들이 소란을 감지한 모양이에요. 일반인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남작은 증인을 확보해 두세요.”

“한 놈만 남겼으니 포박만 하면 끝납니다. 그리고 왕녀님, 아마 지금쯤이면 그란데 백작님이 이 마을에 도착하셨을 테니 불러 주십시오. 시체의 뒤처리는 그란데 백작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게 많긴 한데, 일단 이번 작전부터 마무리하고 보죠.”

루크가 마나마스터인 것만으로도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지경인데, 왕녀가 있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왕녀라면 엘리나를 말하는 것일 터.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유분수지, 엘리나 왕녀가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엘리나의 존재로 인해 이번 사건의 성향이 180도 바뀌었다. 그녀가 존재함으로써 귀족 암살 미수가 왕족 암살 미수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만약에 여기서 자신이 나탈리 휘하의 부하임이 밝혀지면 사달이 난다. 제아무리 왕족이라도 같은 왕족을 살해하려고 한 죄가 밝혀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옥살이, 아무리 못해도 유배형이 떨어질 것이다.

블랙 카우 부대의 대장은 어금니를 악물 준비를 하였다. 여차할 때를 대비하여 입안에 숨겨 둔 독약을 깨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루크에 의해 저지당했다.

와드드득!

자결의 낌새를 눈치챈 루크가 대장의 입에 주먹을 내리쳤다. 내리친 주먹은 대장의 치아를 박살내며 입안을 틀어막았다.

루크가 손을 빼냈을 때, 손에는 대장이 깨물어 부수려던 독약이 들려 있었다.

“사람 죽이러 와 놓고, 저 혼자만 편하게 도망치려고 하면 쓰나. 갈 땐 가더라도 대가는 치르고 가야지?”

사람을 부수는 데 이토록 망설임이 없을 수 있을까.

나탈리 밑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아 왔는데, 사람이 무섭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은 언제나 두려움을 주는 쪽에 속했고, 상대는 두려움을 느끼는 쪽에 속했다. 마음껏 죽여도 나탈리라는 뒷배가 살인 면죄부처럼 작용했으니, 사람을 죽이는 것이 두려울 리 없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야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 남자에 의해서 말이다.

루크는 이를 부순 것도 모자라 힘줄까지 끊어 내고선 질문을 날렸다.

“자, 일단 나탈리 직속 부하인지, 아니면 의뢰를 받은 암살 길드인지부터 말해 보실까?”

“아으으, 어으으.”

“벙어리 연기를 하시겠다? 그럼 일단 말부터 가르쳐야겠군.”

루크가 블랙 카우 대장의 발을 잡고 별채 안으로 질질 끌고 갔다. 고문을 예감한 대장은 죽기 살기로 뒤뜰의 잡초를 부여잡아 보려 했으나 팔다리의 힘줄이 끊긴 터라 저항조차 불가능했다.

“아, 암살 길드에서 왔습니다! 의뢰인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자길 먹여 주고 뒤를 봐줬답시고 나탈리의 정체만은 숨기려 하였다. 그러나 말로 속여 넘기기엔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그래, 말 잘하네. 자, 다음은 솔직하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 보자구나.”

“으아아! 살려 줘! 사람 살려! 사람 살려!”

* * *

거리를 두고 루크를 뒤따르던 그란데 백작은 느지막이 마을에 도착한 참이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노곤한 몸을 누이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다.

고급 여관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리로 향했고, 때마침 여관 사람을 시켜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던 엘리나와 마주쳤다.

“그란데 백작!”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기 계셨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참, 백작한테는 작전을 설명 안 했었죠. 일단 백작의 호위 병력을 시켜서 통제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곳 영주의 저택에 신고가 들어간 것 같아요. 그 부분까지 포함해서 뒤처리 부탁드려요.”

“네. 그거야 어렵지 않으니, 바로 지시를 내리도록 하죠. 슬슬 저도 내막을 알고 싶은데, 설명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뒤뜰에 루크 남작이 있으니 가면서 얘기해요.”

엘리나는 그란데 백작을 데리고 뒤뜰로 가면서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귀족 암살 미수를 왕족 암살 미수로 둔갑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실제로 암살 부대가 찾아왔고, 그들을 제압한 부분까지 말해 주었다.

사정을 들은 그란데 백작은 근본적인 부분을 짚었다.

“뭐, 말한 대로 실현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군요. 그런데 루크 남작이 몰래 병력을 숨겨 놓기라도 했습니까? 혼자서는 못 막았을 텐데요.”

“그게… 알고 보니 마나마스터였어요.”

“응?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루크 남작이 마나마스터였다고요.”

“하…….”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두 번째로 듣고 나선 탄성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야 저번 독살 사건 때, 진범이 그토록 쉽게 제압된 것인지 이해가 갔다.

그래도 마나마스터는 너무 비약적이다 싶어서 배제했는데, 정말로 마나마스터였을 줄이야.

곡창지대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지에 악마적인 두뇌, 거기다 최고의 무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쯤 되면 아군이니 마니 하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여기에 시간이 흘러 마탑 유치, 함선 구축까지 완비되면 일개 영지라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왜 루크가 중앙 정계 진출에 관심이 없는지 납득이 갔다.

스스로가 중앙 정계를 구축할 역량이 되니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쉬이 입에 담기 힘든 부분이라 망설이고 있던 와중 의외로 엘리나가 먼저 운을 띄웠다.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어요. 제 그릇으론 감당할 수 없는 사내예요. 어쩌면 겐크 왕국도…….”

“그쯤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왕녀님. 그 이상 말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눈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루크 남작을 멀리하기엔 벌써 너무 깊게 관여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이 나라의 개혁이에요. 그게 설사 제 그릇에 루크 남작을 담는 게 아니라 루크 남작의 그릇에 제가 담기는 거라 할지라도 이룰 수만 있으면 상관없어요.”

“흐음.”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 두죠. 당장은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해요.”

“별수 없군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좋은 눈이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 * *

뒤뜰에 가니 루크가 블랙 카우 부대의 대장을 붙들고 교육(?)을 마친 참이었다.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블랙 카우 부대의 대장의 몰골에서 어떤 교육이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교육 덕분인지 블랙 카우 부대의 대장은 증언대에서 바른대로 고할 마음을 갖추고 있었다.

그길로 날이 밝자마자 루크와 엘리나는 도로 골디브로 상경하였고, 그란데 백작은 현장에 남아 현지 귀족에게 적당히 둘러대는 등 뒤처리를 하였다.

* * *

다음 날, 왕궁이 발칵 뒤집어졌다.

다들 나탈리 휘하에 직속부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쉬하며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직속부대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무엇보다 문제시되는 것은 암살 부대가 살해하려고 한 대상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암살 부대가 투입된 곳에 엘리나 왕녀가 있었다. 제삼자가 봤을 땐 나탈리가 그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 부대를 파견한 것처럼 보였다.

블랙 카우 부대의 대장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하면서 나탈리에겐 빠져나갈 길이 없어졌다.

이 사실을 모르는 나탈리는 전날 밤 남정네들을 궁에 들여 밤늦게까지 즐기고선 새벽이 되어서야 잠든 참이었다. 그녀에게 소식이 전해진 것은 궁 안이 한바탕 들썩인 후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왕궁 기사단의 앞에서 그녀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벙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엘리나를 암살하려 했다고? 왜 그렇게 되는데? 이거 놔! 내가 누군 줄 알아?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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