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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5화 (35/200)

# 35

35화 갑판 위로 떨어진 재앙(1)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

여름 내내 태풍이 연달아 겐크 왕국을 관통하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병력의 일부를 돌려 피해 복구에 나섰다.

그 틈을 노린 듯 최전방으로부터 겐크 왕궁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아레나 공국군이 바제노 영지를 침공했다!

여름이 끝나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아레나 공국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아레나 공국군은 더위 속에서 먼 길을 오느라 극도로 지쳐 있었지만, 이재민 구호 때문에 병력이 빠져나가 있던 바제노 영지는 아레나 공국군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요충지를 내주고 말았다.

바제노 영지는 기다란 산맥이 뻗어 있는 국경 지대 중에서 몇 안 되는 평탄한 지형이다. 바제노 영지가 뚫렸다는 것은 아레나 공국이 보급로를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겐크 왕궁에선 바제노 영지가 뚫렸다는 사실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바제노 영지가 뚫리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제아무리 병력의 일부가 빠져나갔다 하더라도 바제노 영지엔 클라반이 있잖느냐!”

바제노 영지에는 겐크 10대 마나마스터, 아니 정확히는 루크까지 포함하여 겐크 11대 마나마스터 중 한 명인 클라반이 상주하고 있었다. 회수 기능이 달려 있는 마법창인 리턴 스피어를 사용하여, 마나스피어를 내뿜는 투창을 구사하던 사람이었다. 일명 ‘움직이는 발리스타’라 불리며 일당백도 마다하지 않던 맹장이었다. 그런 그가 지키던 바제노가 뚫렸다고 하니 믿으려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급전을 가지고 온 연락병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했다.

“5명의 마나마스터가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클라반 경이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결국 놈들의 손에…….”

“5명! 공국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모든 마나마스터가 바제노로 몰려왔단 말이냐?”

“그, 그게 아니라… 기존 마나마스터들이 아닌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흥 마나마스터들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국에는 5명의 마나마스터밖에 없었다.

한데 기존의 5명에 새로이 5명이 추가됐다고 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겐크 왕국과 맞먹는 숫자의 마나마스터를 확보해 둔 것이다.

“어쩐지 자신만만하게 선전포고를 한다 싶었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마나마스터는 마나마스터로 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겐크 왕국에 널리 퍼져 있는 마나마스터들을 소집해 주십시오.”

“바쁘더라도 돌다리는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하지 않겠느냐. 병무국에 언질을 넣어 참모들을 모두 왕궁으로 불러 모아라! 적의 진로를 파악한 후에 대응책을 마련한다! 그때까지 왕국 내의 모든 마나마스터는 제자리를 지키되 적의 공세를 막아 내지 못할 것 같으면 즉시 후퇴하라고 전해라!”

겐크 국왕의 명령하에 계엄령이 떨어지며 마나마스터들에게 왕명이 담긴 공문이 전달되었다.

마나마스터들에게 전달되는 10개의 공문 중엔 루크가 있는 드래프트 영지로 향하는 공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 * *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제랄드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공문의 내용을 물었다.

공국군의 거센 공세로 인해 최전방에선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이젠 모두가 드래프트 영지의 군사력을 알게 되었으니 당장 병력을 차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루크는 다 읽은 공문을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두며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공국군이 마나마스터 사냥에 치중하고 있으니 수비를 굳히고 위험해질 것 같으면 도망치라는군.”

“소집령이 아니었습니까? 놀랍군요. 전쟁광이라 불리는 국왕 전하께서 소극적인 대처를 명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극적인 게 아니라 신중한 거지. 생각해 봐, 저쪽은 쉐도우 나이트 활동을 통해 왕국의 정보를 모두 빼갔어. 반면 왕국은 공국군의 전력을 전혀 모르고 있지. 섣불리 반격에 나섰다간 도리어 급소만 드러내는 꼴이 될걸?”

“저희야 최후방 중에서도 최후방이니 한참 뒤에나 참가할 수 있겠군요.”

드래프트 영지는 지형의 특성상 소집령이 떨어져도 곧바로 참가하기 힘들다. 최후방 중에서 최후방인 데다 3,000명에 달하는 상비군이 한꺼번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이너프 산맥은 호락호락한 지형이 아니다.

300명씩 나누어 조금씩, 조금씩 병력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동하기 껄끄럽다.

제랄드는 앞날을 생각하여 제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미리 이너프 산맥 너머로 병력을 옮겨 두는 건 어떻습니까?”

“언제 소집령이 떨어질 줄 알고 미리 옮겨 둬? 남의 영지에 병사 수천 명을 주둔시켜 두면 현지 영주가 퍽이나 좋아하겠군.”

“그란데 백작령이라면 시설도 충분하고, 평소 친분도 있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서라. 그 아저씨라면 신세 지는 대신 장부에 달아 둔 빚, 다 갚은 걸로 치자고 할 게 뻔해. 불필요한 데 쓰려고 지워 둔 빚이 아냐.”

“후우, 역시 소집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는 것밖에 없는 거군요.”

“과연 그럴까? 왕가에서 대기하라고 했다고 꼭 대기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루크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를 본 제랄드가 불안에 잠겼다. 루크의 입꼬리가 올라갈 때마다 항상 황당무계한 작전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저리 사악하게 웃으시는 걸까?

제랄드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움직이시려는 건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지금 건조를 마친 함선이 몇 척이나 되지?”

“대형선 3척, 중형선 5척, 소형선 20척이 있습니다. 혹시 군함 숫자를 물으시는 건 설마…….”

“바다를 통해서 아레나 공국의 최후방으로 들어가겠어. 전군 소집해서 서쪽 해안에 집결시켜.”

“기,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왕궁으로부터 출전 허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출전하게 되면 기만죄가 적용될지도 모릅니다.”

“적용하라고 해.”

“남작님.”

“걱정할 것 없어. 요는 왕궁에서 납득할 만한 공적을 세우느냐 마느냐니까. 우리가 움직여서 전황이 바뀌었는데 그걸 기어코 기만죄를 적용해서 벌을 준다? 국왕 전하가 스스로가 짠돌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공적만 세우면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해.”

겐크 국왕도 보통은 넘는 사내다. 지금은 공국군에게 당하고만 있긴 해도 반드시 타개책을 찾아내 반격에 나설 것이다.

그 전에 공국의 배후로 돌아 들어가서 로메우의 목을 따겠다.

그 권리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말이 좋아 배후를 치는 것이지, 성공할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남작님, 만약에 한 번이라도 발이 묶이면 적진 한복판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보급과 지원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고려해 주시고, 다시 결정해 주십시오.”

“이봐, 제랄드. 평화에 찌들어 영혼에 지방이라도 붙었나 보지? 고립무원에서의 전투와 현지 조달 보급은 한번 경험해 봤을 텐데?”

“그때완 걸려 있는 목숨의 수가 다릅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딱 한 마디만 더하도록 하지. 내가 선두에 서는데도 질 것 같나?”

루크의 확고한 의지에 제랄드는 코로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허리를 살짝 숙여서 예를 갖췄다.

“그리 물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대답할지 알고 계시잖습니까.”

“난 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비범한 주군을 둔 기사는 고달픈 법이지요. 치안을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놓고, 전 병력을 서쪽 해안에 집결시키겠습니다.”

그리하여 왕궁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루크는 독자적으로 로메우의 숨통을 끊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였다.

* * *

며칠 후, 서쪽 해안에 일반 기마대, 일반 보병, 오크 기마대, 오크 보병, 비행 부대가 집결했다.

징병 대상자를 한 명도 소집하지 않은 순수 상비군만으로 원정대를 구축했다.

그 숫자는 무려 3,000명.

겐크 왕국 전체 상비군 숫자가 6만 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일개 남작령이 5퍼센트에 달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출발하기에 앞서 루크는 3,000의 병사를 세워 놓고 전의를 북돋았다.

“황금을 양손에 가득 쥐고 싶은가!”

“쥐고 싶습니다!”

“사내로서 이름을 드높이고 싶은가!”

“드높이고 싶습니다!”

“난 너희에게 승리를 안겨 주겠다. 대신 너희는 나를 위한 악귀가 되어라!”

“모든 적의에 불의를!”

3,000명의 의기 넘치는 호걸이 토해 내는 함성이 해안 가득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기백에 놀란 바위게가 화들짝 놀라 바위 구멍 속에 숨었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투기에 질린 갈매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가 없는 원정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에선 두려움을 한 점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들보다 더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사내가 있다. 그가 선두를 자처하며 승리를 보장하겠노라 외치고 있는데, 이럴 때 의협심을 터뜨리지 않으면 언제 터뜨리겠는가!

루크는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병사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출전 명령을 내렸다.

“돛을 펼쳐라! 비겁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구나!”

* * *

루크 휘하의 병사들, 루크 군을 실은 함선은 서풍을 타고 아레나 공국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 루크 군이 공국에 도착한 후에야 왕궁에서 루크 군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편이 딱 좋다. 왕궁 안에 첩자가 없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단, 공국의 해안 도시에 상륙하기 전에 최소 한 번 이상은 해상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해상전을 대비하여 대형 함선의 선실 안에선 한창 지도를 사이에 두고 작전 회의가 펼쳐지고 있었다.

제랄드는 공국의 남쪽 해상 중 한 곳에 장기짝을 놓아두며 입을 열었다.

“목적지인 소크리노에 상륙하기 전에 적의 해군과 한 번은 조우하게 될 겁니다. 이 해상전을 속전속결로 끝내지 않으면 해변에 적의 방어선이 구축되겠지요. 해상전에 걸리는 시간에 따라 땅 한 번 못 밟아 보고 퇴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국 남서쪽 해역을 지키고 있는 자라면 피아냐 백작이겠군.”

피아냐 백작이라면 국왕 시절 몇 번 얼굴을 마주해 봤기에 잘 알고 있다.

공국의 마나마스터이자 해상의 여우라 불리는 자이다. 해상전에서 무패를 자랑하는 데다 공국 남쪽 해안의 환경을 제 집의 안마당처럼 줄줄이 꿰고 있다. 게다가 주무기는 메이스인데, 한번 내리치면 소형선쯤은 단번에 두 동강을 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로 아군의 배에 올라타게 해선 안 된다.

루크는 어깨에 앉아 있는 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전을 제시했다.

“공국 남쪽 바다에서 피아냐 백작을 상대로 해상전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이지. 그러니 비행 부대가 먼저 출격해서 함선을 요격하자고.”

일주일 후, 루크 군의 함선이 아레나 공국의 영해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루크 군의 함선 갑판에서 1마리의 창천 앵무와 10마리의 삼색 제비가 날아올랐다.

총 11마리의 새는 순풍에 날개를 얹으며 높은 하늘을 질주했고, 비행을 개시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항해 중인 적의 함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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