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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7화 (3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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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제1 관문(1)

달은 가늘고, 뱃사람들의 길잡이라 불리는 별들은 구름에 가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어두운 밤바다 속에서 의지할 것은 나침반밖에 없으나, 항로를 잡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피아냐 백작의 함대가 활활 타오르며 등대 역할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수평선 부근에서 어렴풋이 전해져 오는 빛만 봐도, 얼마나 먼 거리를 비행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행한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왕복에 걸린 시간을 빼면 전투에 소요한 시간은 얼마 안 된다는 소리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잠이 안 오십니까?”

루크가 갑판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차에 오즈가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비행을 하느라 몸이 식었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물방울무늬의 담요를 덮어쓰고 있었다.

오즈가 루크에게 생강차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루크는 생강차를 한 번 홀짝이며 오즈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언제 봐도 인자한 얼굴이다. 인상만 놓고 보면 동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구멍가게의 할아버지 같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로브 주머니에서 사탕이라도 꺼내 줄 것 같은 인상이다.

“다른 비행 부대 대원들은 자고 있습니까?”

“네, 다들 세상모르고 자더군요. 실전은 처음인 데다, 마나 회로가 텅텅 빌 때까지 마법을 써 댔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현재 비행 부대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보통 쓸 만한 비행 부대 하나를 만드는 데 3년이 걸린다고 한다.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 낸 비행 부대가 수년 동안 훈련한 비행 부대만큼의 숙련도를 갖추고 있을 리 없다.

유일하게 다른 비행 부대보다 앞서는 것은 탈 것의 성능뿐이다. 그러니 기동력을 이용하여 단기전으로 재빠르게 승부를 결정짓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습 타이밍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왕궁과의 연락까지도 끊은 채로 진군을 한 것이고 말이다.

사실상 루크의 과감한 결단이 오늘의 기습으로 이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강차를 홀짝이다 보니, 루크의 몸에 열이 돌았다.

루크는 바람결에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어찌 아셨습니까?”

“얼굴에 그리 쓰여 있어서 말이죠.”

“허허허, 이거 참, 앞으로 남작님 앞에선 가면이라도 쓰고 다녀야겠습니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기보단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할까요. 아까 피아냐 백작과 전투를 벌일 때 굉장히 넓은 범위까지 마나 블레이드를 펼치신 것 같습니다만…….”

마나마스터가 된 이후부터, 루크는 검을 휘두르는 숫자를 줄이고 대신 명상하는 시간을 대폭 늘렸다.

최근 들어 전력으로 마나를 써 본 적이 없어서 루크 본인조차 최대 위력을 가늠하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저 두 번째 인생에서 마나마스터가 되었을 때의 최대 위력에서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나 회로에서 마나가 부드럽게 뽑혀 나오며 마나 블레이드의 범위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루크 본인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원인을 생각해 보느라 갑판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했는데 마나 블레이드가 생각보다 쭉 뻗더군요.”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신에 마나 회로가 어느 정도 깔려 있습니까?”

“정말로 실례되는 질문을 하시군요. 깔려 있을 만큼 깔려 있습니다.”

마나 회로의 길이를 묻는 것은 가진 밑천을 다 내놓으라는 것만큼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즈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론상으로 마나 블레이드는 마나 입자가 회전 톱처럼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예리함을 갖추는 기술이지요. 길이가 늘면 늘수록 회전에 필요한 거리가 많아지니 그만큼 예리함이 떨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남작님께서 갑판 전체에 마나 블레이드를 뻗어도 예리함이 그대로 살아 있더군요. 최소 몸 전체에 마나 회로가 깔려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인자한 얼굴에 푸근한 미소를 띠며 은근슬쩍 자신의 추리를 들이미는 오즈였다.

거기까지 예측하고 있다면 9할쯤 확신한 채로 말을 건 셈이다.

오즈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정도로 입이 가벼운 사람도 아니고, 이미 알고 왔는데 계속 부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빠진다.

루크는 난간에 허리를 기대며, 피식 웃었다.“겉보기와 다르게 음흉한 구석이 있으십니다? 확신하고 계시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는 겁니까?”

“추측과 확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니까요. 남작님 성격상 마나마스터에서 만족하실 린 없으실 테고, 그랜드마스터의 경지를 노리고 계십니까?”

“되고 싶다고 되는 경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요.”

“남작님, 이번 전쟁이 끝나면 마법을 배워 보시지 않겠습니까?”

“마법?”

“최근 서클 이론을 처음부터 재정립하고 있는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죠. 잘하면 그랜드 마스터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절 연구 대상으로 쓰시겠다?”

“대신 성공하면 보수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뒤따르죠.”

최근 들어 저평가를 받고 있긴 해도, 명색이 마탑의 수장이다. 오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선 상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루크군의 일각을 맡고 있는 러스트와는 정반대의 유형이랄까.

러스트가 우직하게 돌격하는 유형이라면, 오즈는 한 걸음 물러나서 넓게 보는 유형이다.

루크는 오즈가 의외로 능구렁이라는 사실을 매우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전쟁이 끝나고 한가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죠.”

“남작님께 성적을 매길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살살 해 주시길. 그나저나 그 담요는 뭡니까? 의외로 소녀 취향이시군요.”

“허허허, 안사람이 몸조심하라면서 어찌나 극성이던지, 이것저것 억지로 챙겨 줘서 말이지요.”

“그 나이가 되도록 금실이 좋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죠.”

“허허허, 안사람은 이제 40대라 젊은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전부 화려한 무늬라 곤란할 따름입니다.”

이건 제아무리 루크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40대?

오즈가 60대로 알고 있는데 안사람이 40대란다.

루크는 난간 너머로 찻잔을 떨어뜨린 것도 모른 채 다시금 되물었다.

“오즈 학장은 60대 아닙니까?”

“네, 제가 마흔 때 그 사람이 스물이었죠.”

20살 연하랑 결혼?

그렇게 안 생겼는데 정말 챙길 것은 다 챙겼군.

아까와는 다른 의미에서 정말로 오즈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 *

피아냐 백작의 함대를 격파한 루크군은 병력의 손실 없이 무사히 아레나 공국의 후방에 상륙했다.

그 소식은 아레나 공국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패를 자랑하던 피아냐 백작의 함대가 하루 만에 전소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첫 패배, 그리고 남쪽 바닷길이 열렸다는 사실 때문에 공국군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아레나 공국 이상으로 놀란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겐크 왕궁의 사람들이었다.

드래프트 영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어째서 공국의 남해안에 있단 말인가!

왕궁 안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귀족들은 첫 승전에 기뻐하기보단 루크의 기만행위에 분노했다.

“이번 대기명령은 왕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멋대로 출전하다뇨! 이건 명백한 기만행위입니다!”“전하! 피아냐 백작의 함대를 격파한 것은 칭찬할 만한 성과이나 왕명을 어긴 것을 그냥 넘어가선 안 됩니다! 이를 허용하면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나아가 왕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려해 주십시오!”

“당장 루크 남작에게 회군 명령을! 그리고 남쪽 해안 길이 열렸으니 대기 중인 마나마스터들과 병력의 일부를 배에 태워 공국으로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귀족들이 루크의 회군을 외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회군을 외치는 귀족들은 전부 블린트 왕자를 따르는 자들이다. 제1 계승권자였던 나탈리 왕녀가 유배를 당하면서, 그녀를 따르던 세력은 졸지에 붕 뜨게 되었다.

거기서 엘리나는 일부러 줄을 잃은 자들을 가만히 놔두었다.

생각해 보라.

나탈리를 따르던 자들 중에 제대로 된 귀족이 몇이나 되겠는가?

연못을 꾸미자고 거머리를 잔뜩 옮겨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나탈리를 따르던 자들은 제2 계승권자인 블린트 왕자 쪽에 들러붙었다. 그로 인해 압도적인 인원수를 갖춘 블린트 파가 형성되었고, 내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한 목소리를 얻게 되었다.

블린트 파로선 루크가 공적을 세우는 것이 탐탁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루크는 엘리나 파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적은 목소리를 압도한다. 그러니 루크가 공적을 세울수록 엘리나의 영향력이 커질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실제로 엘리나는 루크에게 대차게 차였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엘리나를 두 번 죽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린트를 포함한 모두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녀는 남들보다 갑절 이상으로 집착이 강하다.

루크와의 협력 관계는 아직 유지되고 있으니 계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 이상도 노려볼 수 있을 터.

엘리나의 이상은 이전보다 올라가 있었다. 이제 그녀가 바라는 것은 겐크 왕국의 개혁 정도가 아니라 돌풍이다. 그것도 일개 왕국의 수준이 아닌, 대륙 전체를 뒤바꿀 큰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게 되었다. 그를 위해선 이딴 잔챙이들 따위가 루크를 방해하게 놔둬선 안 된다.

때문에 엘리나는 원래 루크가 뒤집어써야 할 기만죄를 본인이 뒤집어쓰기로 작정했다.

“다들 그만 좀 재잘거려 줬으면 좋겠네요. 언제부터 왕궁이 시장통으로 전락한 거죠?”

엘리나의 독설에 대강당 내부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조용해졌다. 더불어 그녀에게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사방이 온통 적들밖에 없다.

하지만 거머리가 무섭다고 농사를 포기하랴.

모든 것은 개혁을 위해서이다. 열매를 맺고 수확할 때까지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번 작전에 대해선 제게 미리 연락이 왔어요. 기습 작전이니, 성공한 뒤에 보고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거짓말이다. 언질 같은 것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왕족인 자신이 미리 언급을 받았다고 하면, 기만행위에 대한 책임은 루크에서 엘리나에게로 옮겨 간다.

블린트 파 귀족들은 오히려 바라던 바라는 양 엘리나를 헐뜯으려 했다.

“왕녀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왕국에 위기가 닥쳤는데 일개 귀족의 기만행위를 묵인하신 겁니까? 사전에 알고 계셨는데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거라면 왕녀님께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어요. 왕궁에 공국의 첩자가 없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왕궁 의회의 충성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얼마 전에 쉐도우 나이트 사건이 있었다는 걸 잊었나 보죠? 더 이상 왕궁 의회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못 들어 주겠네요.”

“그런…….”

“아바마마, 루크 남작의 작전이 성공했으니 저희도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네요.”

단상 위에서 잠자코 설전을 지켜보기만 하던 국왕이 입을 열었다.

“이번 루크 남작의 공적을 인정하겠다. 그리고 지금 당장 왕국 남동부에 있는 마나마스터들에게 공문을 보내도록.”

“공문의 내용은 어찌 작성하오리까?”

“각자 별동대를 구성하여 해상 루트를 통해 공국 본토에 상륙하라고 하거라.”

엘리나의 한 수가 먹혀들었는지 기습 작전이 정식 작전으로 인정되었다. 이걸로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역전의 발판을 만든 루크의 공이 가장 크게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국왕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별안간 겐크 왕국의 국왕 카이둔이 쉬이 흘려들을 수 없는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그리고 별동대로 원정을 가게 될 마나마스터들에게 이 말도 전해라. 별동대 중 먼저 로메우의 목을 친 자에게 다음 공왕이 될 권리를 부여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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