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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8화 (38/200)

# 38

38화 제1 관문(2)

해상전에서 승리를 거둔 루크군은 당초의 목적지였던 소크리노에 상륙했다.

소크리노는 피아냐 백작이 다스리던 도시였다. 피아냐 백작이 죽으면서 지휘관의 부재로 인해, 제대로 된 수비벽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루크군에게 압도당했다.

소크리노를 점령한 루크군은 피아냐 백작가의 저택에 진지를 구축하여 하룻밤을 보냈다.

상륙한 당일 밤에 저택 안에선 루크, 제랄드, 러스트, 오즈가 모여 작전 회의를 펼쳤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곧바로 공국의 수도 헤테룬이 나오지. 우린 이곳을 이용해서 로메우의 목을 친다.”

루크가 지도에 지휘봉으로 선을 그으며 진군 방향을 정했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보름 안에 공국의 수도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 짧은 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도로 이어지는 길에 방어선이 없을 리 없었다.

제랄드는 진군로의 중간중간 성 모양의 모형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전에 상인으로 위장시켜 투입한 정보원들 말에 의하면 이 길에는 7개의 관문이 있다고 합니다.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 헤테룬에 다다를 수 있지요.”

제랄드가 말한 ‘이전에 투입시킨 상인들’이란 다름 아닌 다섯 귀족에게 역모죄를 씌우기 위해 곡식과 무기를 팔러 보냈던 상인들을 말한다. 루크는 그들에게 이 외에도 아레나 공국의 수비 체제를 확인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루크군이 거쳐 가야 할 길에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7개의 관문이 있다고 한다.

관문 외의 루트로 가려면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해서 힘든 데다, 한참을 우회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관문을 돌파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제랄드의 말은 이어졌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지방에서 공국의 지원군이 오고 있을 겁니다. 저희로선 공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일곱 관문을 모두 돌파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겠지요.”

러스트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성 모양의 모형을 하나하나 툭툭 넘어트리며 말했다.

“어려울 것도 없구먼. 힘으로 다 깨부수면서 지나가자고.”

“그게 말처럼 쉬우면 작전 회의를 왜 하겠습니까? 각 관문은 자연환경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라서, 섣불리 공격을 했다간 피해만 입기 십상입니다.”

“절벽이든 강이든 얼마든지 끼고 있으라고 하게. 우린 언제나 선봉에 설 준비가 되어 있네.”

“러스트 족장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릴 테니 잘 들어 주십시오. 이번 원정에선 최대한 빨리, 그리고 최대한 병력 손실 없이 헤테룬에 도달하는 게 관건입니다. 7개의 관문에서 힘을 다 빼면 이후에 테헤란 결전 때 힘들어집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오크 보병을 선두에 세우면 최대한 빠르고, 병력 손실 없이 돌파할 수 있다고 말하잖나. 오크들이 얼마나 터프하고, 강한지 모르진 않을 텐데?”

“알죠. 당연히 아는데… 아무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도돌이표를 찍은 것처럼 제랄드와 러스트 사이에서 같은 대화가 반복되고 있었다.

러스트는 자기네들한테 선봉을 맡기면 최대한의 속도로,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여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제랄드는 좀 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었다.

보다 못한 루크가 중재에 나섰다.

“둘 다 그쯤 해 둬.”

더불어 루크의 어깨에 앉아 있던 파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다물! 다물!”

그쯤 해 두라는 말을 초월 번역하여, ‘입을 다물어.’라는 말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 파이였다.

파이의 목청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목소리와 루크의 매서운 눈매를 마주한 두 사람은 일제히 기세를 죽이며 고개를 숙였다.

“아,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크흠, 훈련만 몇 년째 되풀이하다 보니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죠. 모처럼 싸울 기회가 와서 흥분해 버렸군요.”

단숨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한 루크는 제1 관문의 모형을 도로 세웠다.

“제랄드, 제1 관문에 대한 정보는 알아 뒀겠지?”

“아, 네! 제1 관문의 병력 자체는 그리 대단치 않습니다. 마나유저 상급의 기사가 지휘관을 맡고 있고, 병력의 숫자도 700명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대단치 않은 수준이군.”

“다만 제1 관문 주변의 자연환경이 문제입니다. 제1 관문으로 가려면 무조건 넓은 늪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무게가 무거우면 금세 몸이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가?”

“말씀대로입니다. 갑옷과 투구는 당연히 벗어야 하고, 지참할 수 있는 무기도 한두 개로 제한되지요.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늪을 통과해서 성벽 위에 있는 적들과 싸워야 하니, 만만하게 봐선 안 됩니다.”

진흙투성이의 늪으로 보호 받고 있는 요새.

그것이 제1 관문이었다.

점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이나 그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루크군은 앞으로 7개의 관문, 그리고 테헤란까지 점령해야 했다. 제1 관문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루크는 가장 먼저 비행 부대의 현황부터 체크하고자 하였다.

“오즈 학장, 지금 비행 부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마나 회복 중입니다. 아마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일주일은 걸리겠지요.”

비행 부대는 화력, 기동력이 모두 뛰어난 대신, 한 번 전투를 치른 후에 재정비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나유저든 마법사든, 경지에 따라 마나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달라진다. 2, 3서클 마법사가 텅 빈 마나 회로를 회복하려면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비행 부대는 정찰하는 정도로밖에 활용하지 못한다.

결국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최소한의 피해로 제1 관문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제랄드, 러스트, 오즈는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보았으나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끄응, 경갑을 입는다 하더라도 갑옷 사이에 진흙이 끼어서 결국 전투에 방해가 되는 건 똑같을 거고…….”

“무게가 문제라면 우리 오크들은 더더욱 장비를 줄여야겠군. 늪 말고 다른 길은 없나?”

“있긴 한데 며칠이나 돌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게다가 워낙에 험해서 힘든 걸로 치면 늪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현재로선 뾰족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남작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세 사람이 고민하는 것을 찬찬히 감상하고 있던 루크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 자리에서 루크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자는 없었다.

이미 묘안을 떠올린 것이리라. 그러고선 간부들이 끙끙거리는 것을 유유히 감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제랄드는 루크의 다른 부분은 다 존경하지만, 저 부분은 좀 고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저리 사람 놀리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원.

제랄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금 루크의 의견을 물었다.

“하아, 이미 해답을 찾으신 것 같군요. 미숙한 저희에게도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전 회의는 여기까지 하려는 모양인지 루크가 지도를 반으로 접으며 지시를 내렸다.

“짚으로 만든 자루를 최대한 많이 구해 와. 그리고 끈도 최대한 많이 구해 오고.”

* * *

다음 날 아침, 루크는 일반 보병과 오크 보병들만 이끌고 제1 관문을 향해 출발했다.

소크리노 북쪽으로 빠져나오니 너른 늪이 루크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소크리노 북쪽에 있는 늪은 칼로아 늪이라고 한다. 고대 룬어로 악어 둥지란 뜻이다. 늪의 너비는 어지간한 남작령보다 넓으며,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서 다양한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다. 자연환경 및 생물학적으로 무척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고, 한때 악어 밀렵꾼들이 극성을 부리던 곳이기도 하다.

악어가죽이 한창 유행을 탈 무렵에 하도 밀렵을 많이 하여, 지금은 악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물이 참방거리는 늪 속에 발을 딛자, 금세 물밑에 깔린 수렁에 발이 움푹 빠졌다. 진흙과 각종 수초의 잔해, 죽은 동물의 잔해 등이 섞여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수렁 속에 가라앉아 있던 가스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루크는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며 러스트를 불렀다.

“러스트, 빨리 가라앉는 사람들을 파악해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몸이 무거워서 이동에 장애가 있는 자는 무리하지 말고 돌아가라! 오기 부리다가 가라앉으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걸 생각해라!”

장비를 거의 챙기지 않았는데도 가라앉는 자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현재 소크라노에서 제랄드, 오즈가 기마병들과 함께 신발 밑에 덧씌우는 설피를 제작하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 후발대로 넘어오면 된다.

2,700명에 달하는 보병 중 700명이 발길을 돌려 소크라노로 되돌아갔다.

체중이 80킬로그램인 루크조차도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진흙 속에 잠기는데, 100킬로그램을 가뿐히 넘기는 오크들은 오죽하겠는가.

과연 늪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라 불릴 만하다.

제1 관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병사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러스트는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여 루크 옆에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루크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파이를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남작님, 남작님은 파이를 타고 가시지요.”

“나만 편한 길로 가면 병사들이 퍽이나 좋아하겠군.”

“우리 군에 남작님의 고생을 모르는 자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열정이 과해 쓰러지시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 정도가 딱 좋아.”

“어찌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세력의 우두머리라는 건 일종의 보여 주기 사업이야. 우두머리는 아랫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될 의무가 있지. 지금 영지 내에서 나를 어떻게 보고 있지?”

“뭐, 굳이 따지자면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고, 어떤 상황이 닥쳐도 끄떡없는 분으로 통하고 있지요.”

“그래. 난 위에 서 있는 자로서 그 이미지를 일관할 의무가 있어. 그래서 진흙 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는 거고. 한때 오크들을 통합시켰던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테지.”

러스트가 새삼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력한 무력으로 공포 정치를 한다거나, 아랫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거나,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거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존경심을 갖게 하여 따르게 하는 방법이다.

능력과 인품, 아랫사람들의 성향 등 내외적으로 많은 것이 갖춰져야 가능한 방법이자, 가장 이상적인 지배 방법이기도 했다.

러스트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루크가 대단할 따름이었다.

“남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전 따를 뿐입니다.”

루크가 선두에 서고, 병사 수천 명이 그의 등을 바라보며 뒤따랐다.

* * *

늪 속에서 휴식도 없이 장장 6시간을 걸은 후에야 습기가 없는 평지에 이르렀다.

깎아지른 듯 높은 절벽 사이로 협곡이 뻗어 있었으며 협곡 사이에 높은 성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협곡 사이에 자리 잡은 성벽이 바로 헤테룬으로 향하는 제1 관문이었다.

푸석푸석한 흙이 깔린 지대에 도착하자마자 루크가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다들 가져온 자루에 흙과 자갈을 채워 넣어라.”

루크의 지시하에 모든 보병이 주머니 속에서 곡식을 담을 때나 쓰는 자루를 꺼내었다. 꼬깃꼬깃 접은 빈 자루의 무게는 많이 쳐줘도 몇 그램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흙과 자갈을 채워 넣는다면?

무게는 무거워도 절대로 화살에 뚫리지 않는 방패가 생겨나는 격이다.

자루 뒤쪽에 끈을 고리 모양으로 꿰매어 간이 손잡이까지 만들어 두었으니, 성벽에 다가갈 때까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임시 방패를 만들 수 있다.

러스트는 이제야 루크가 빈 자루와 끈을 챙기라고 한 의도를 깨닫고는 감탄을 자아냈다.

“이러면 방패로 쓸 수 있겠군요!”

루크는 옥수수를 꺼내 와이에게 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진격해서 적 궁수대의 시선을 끌어 둬. 적당한 때…….”

“마싯쪙! 마싯쪙!”

“파이, 내가 말하고 있을 땐 어떻게 하라 그랬지?”

“다물! 다물!”

“먼저 진격해서 적 궁수대의 시선을 끌어 둬. 적당한 때에 내가 요새 안으로 난입하겠어.”

날이 갈수록 단순히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듯 말을 내뱉는 파이였다. 눈을 껌뻑이며 재차 옥수수를 먹는 파이를 두고, 러스트는 과연 둘이 있을 때 어떻게 교육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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