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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42화 (42/200)

# 42

42화 언제나 맹점을 찌른다(3)

제랄드와 그의 부하들은 제2 관문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른 분대에 소속되었다.

제랄드는 내벽 안쪽의 지원 부대에 배치되었고, 제랄드의 부하들은 외벽의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다.

관문 앞에서 루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땐 다소 의아했다. 무슨 이유로 공격하지 않고 계속 대기만 하시는 걸까?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루크이니 따로 뜻이 있는 거겠거니 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잠입 사흘째 되는 날 밤.

장작이 떨어져 요새 안을 밝힐 횃불조차 피우지 못할 때쯤 되어서야 루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랬군! 일부러 장작을 많이 소모하게 만들어서 내가 움직이기 쉽게 만들어 주시려던 거였어!’

다른 부분도 아닌 장작을 노리고 판을 짤 줄이야.

다들 군량미니, 마나마스터를 어떻게 막느니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루크는 남들과 다른 시점에서 상황을 관측하고 있었다.

제랄드는 남몰래 막사에서 빠져나오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만큼씩이나 어두우면 성문에 다가가기도 쉬워지지.’

횃불 하나 없이 새까만 요새 안에서 제랄드는 태연하게 창을 쥐고 내벽 안을 거닐었다. 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암순응을 했다 치더라도, 가까이 근접해야 겨우 사람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둠은 짙다.

이럴 땐 오히려 조심해서 움직이는 것이 악수로 작용한다.

어차피 얼굴은 구분 따윈 안 되니 당당하게 걸으면, 불침번이 화장실이라도 다녀왔겠거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태연하게 움직이되 발소리는 최대한 조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내벽의 성문에 다다랐다. 공국군의 병사들은 주로 성벽 위에 포진되어 있었다. 아직 외벽이 뚫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벽에선 아직 야간 경계를 많이 세우지 않는 편이었다.

워낙에 어두운 탓에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은 성문에 있는 제랄드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제랄드는 제2 관문에서 지급받은 창을 바닥에 놓고, 개인 장검을 뽑아 들었다.

성문의 잠금장치는 문에 기다란 목재를 걸쳐 잠그는 구조였다. 목재를 걸치는 걸개 부위만 잘라 내면 잠금장치는 무용지물이 된다.

제랄드는 검에 마나 오라를 부여하여 문 뒤쪽에 ‘ㄴ’ 자 모양으로 박혀 있는 두 개의 잠금 걸개를 잘라 냈다. 혹시 몰라 경첩 부분에도 칼집을 넣어, 언제든지 부수기 쉽게 해 두었다.

서걱! 서걱!

작업을 마친 제랄드는 내벽의 성문을 살짝 열어 외벽의 진지로 들어갔다.

이제 부하 기사들과 합류하여 외벽의 잠금장치를 부수고 바깥으로 나가면 임무 완료이다.

그런데 별안간 요새 안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

휘이잉!

초가을의 서늘한 밤바람은 살짝 열려 있던 내벽의 성문을 밀어젖혔다. 아주 약간, 고작 몇 센티에 불과한 움직임이었으나 내벽 성문의 낡은 경첩은 작은 움직임에도 요란한 교성을 질렀다.

끼이이이익!

여기서 제랄드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정말로 제랄드가 모든 변수를 덮어 두고자 했다면, 베어 낸 걸개를 성문 아래쪽 틈에 끼워 두어 경첩 소리까지 대비했을 것이다.

내벽을 빠져나오면서 발생한 작은 안심, 그 마음이 방심을 불러 일으켰고 작은 변수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깟 바람까지 모두 예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강풍은 어디까지는 형태에 불과할 뿐, 대비해야 할 것은 위험이란 놈이다.

제랄드의 지금 행동은 명백히 위험을 염두에 두지 않은 느슨함 그 자체였다.

느슨함은 곧 발각으로 이어졌다.

경첩 소리를 들은 내벽 성벽 위의 병사들이 성문의 상태를 살피러 내려왔다.

“성문 열리는 소리가 들었다! 누가 출입을 허가했느냐!”

“성문이 열려 있어! 당장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거라!”

이대로라면 발각되고 말 터!

외벽 안쪽에 있는 기사 및 병사도 첩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막사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래선 외벽의 성문에 다가갈 수 없다.

앞에는 외벽의 병력이 겹겹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고, 뒤에선 내벽의 병력이 서성이고 있다.

어둠을 틈타 인파에 섞여 들여 다음 기회를 도모할까?

안 된다. 이번 사건으로 성문 경비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목적을 달성하지도 않았는데 한 번 뽑은 칼을 도로 되돌리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루크 남작님이 직접 자신에게 부여한 잠입 임무이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설사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성공시키고 만다!

제랄드는 어설프게 외벽으로 달리느니, 확실한 길을 택하겠다.

일부러 검에 마나 오라를 부여하며 높이 치켜들었다.

“나 드래프트 영지의 기사 제랄드! 네놈들을 섬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노라! 먼저 황천행 표를 발급받고 싶은 놈부터 덤비거라!”

그리 말하며 외벽 구석을 향해 뛰었다.

외벽에는 부하 기사들이 잠복해 있다. 외벽 구석으로 적군을 끌고 들어가면 그만큼 부하들이 외벽의 성문을 부수기 쉬워진다.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외벽의 적군들이 분개하며 우르르 몰려왔다.

“겁도 없이 혼자 잠입하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뭣들 하느냐! 저 건방진 놈의 목을 쳐라! 놈의 목을 친 자에게 금일봉을 내리겠다!”

“와아아아!”

금일봉이라는 동기 부여까지 더해져 너도나도 눈이 뒤집혀선 제랄드에게 덤벼들었다.

제랄드는 무수히 뻗어 오는 날붙이 속에서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무수히 많은 공격은 그만큼 자신의 존재가 위협적이라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생사의 경계선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가치가 생생하게 실감되었다.

한 명이라도 더 베어 낸다.

아군을 위해서. 그리고 주군을 위해서!

서걱! 서걱! 서걱!

마나유저 중급 수준의 마나 오라가 일렁이며 날아드는 창을 베어 냈다. 마나 없는 일반 장창 정도라면 제랄드도 쉬이 베어 낼 수 있다.

날이 없는 창을 쥔 병사들이 얼 타는 동안 제랄드의 후속 공격이 이어졌다.

검을 횡으로 그으면 적의 몸에 가로 방향의 혈선이 생겨났으며, 검을 아래로 그으면 적의 몸에 세로 방향의 혈선이 생겨났다.

적의 숫자는 많고, 의지할 것은 자신의 검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무의미했다. 오크 평야에서 치러 온 수많은 난전은 제랄드에게 직감을 선물했고, 극한의 상황에 몰린 지금에 이르러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창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피하면 늦는다. 휘두르기 전에 베어 내는 것이 최선의 공격이자, 최상의 방어이다.

제랄드에겐 루크 같은 강대한 무력도, 러스트 같은 터프한 육체도, 오즈 같은 막강한 화력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눈치뿐.

내가 강하지 않다면 상대를 약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네 마나 회로는 얼마 안 돼. 마나유저 상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래도 강자들을 상대하고 싶다면 요령을 하나 알려 줄 테니, 잘 써먹어 봐.’

이전에 루크가 기사 양성소에 들러 검술 특강을 해 줄 때, 제랄드도 한 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에 와서 뇌리에 스쳐 가는 것이 마냥 우연은 아닐 것이다.

루크가 알려 준 요령은 검술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에 속하는 ‘호흡을 파악하는’ 기술이었다.

누구든 공격하기 직전에는 호흡이 약해진다. 운동을 할 때 숨을 들이마셨다가 힘을 줄 때만 잠깐 호흡을 멈추는 것처럼, 힘을 주기 직전에 호흡을 들이마실 때는 누구든 몸에 힘을 빼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흡을 들이마시는 시간은 매우 짧다.

정신없이 싸우면서 수많은 적의 호흡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면서, 제랄드의 집중력은 명검에 비할 정도로 예리해졌고, 감각이 예리해지며 다수의 호흡을 감지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섰다.

서걱! 서걱!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틈을 노려, 힘을 들이지 않고 적을 베어 내길 반복하다 보니 제랄드에게 점점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 것이, 의도치 않게 제랄드를 극한까지 단련시키는 실전 수련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상처가 느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틈을 이용한 빈틈 찌르기를 활용해도,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격한 몸놀림에 출혈이 더해지며 급속도로 체력이 소진되었다.

출혈로 인해 몸이 차가워지면서, 점점 제랄드의 눈앞이 흐려졌다.

이젠 검을 휘두르는 건지, 검에 휘둘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무아지경 속에서 적을 베어 넘길 따름이다.

설상가상으로 제2 관문의 유일한 마나유저 상급인 마이어 남작까지 제랄드를 베러 왔다.

“밥만 축내는 버러지들 같으니! 내 친히 금일봉까지 걸었건만, 그깟 놈 하나 죽이지 못하느냐!”

가감 없이 고약한 인성을 드러내며 병사들을 옆으로 밀치는 마이어 남작이었다.

그의 검에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마나 오라가 맺혔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마나유저 중급인 제랄드가 마나유저 상급인 마이어 남작을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노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손에 넣은 호흡을 감지 능력 정도일까.

“포로에 첩자를 심어 두었나 보구나. 마나마스터씩이나 되면서 쪼잔하게 술책이나 부리다니 어지간히도 겁이 많은 녀석이군.”

제랄드는 마이어 남작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마이어 남작의 검에 맺힌 마나 오라를 보고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제랄드의 후퇴에 마이어 남작의 콧대가 높아졌다.

“수장만 겁이 많은 줄 알았더니 아랫것도 겁쟁이였군. 네놈의 머리를 창끝에 꽂아 루크란 작자에게 보여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나.”

마이어 남작은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 왔다.

하지만 과연 제랄드가 겁을 먹고 물러난 것일까?

루크가 모욕당하는 것을 누구보다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걸음을 물린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를 대신하여 마이어 남작을 베어 넘길 자가 도착했기에 물러난 것에 불과했다.

마이어 남작의 등 뒤에서 푸른빛이 일렁임과 동시에 굵직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전에 네놈 몸뚱이가 두 짝으로 나뉘는 게 먼저 아닐까?”

마이어 남작이 등 뒤로 다가온 이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푸른 일격이 그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오라가 맺힌 도끼가 마이어 남작의 머리를 쪼개는 것도 모자라서, 중앙 일선을 따라 육체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쩌억!

마이어 남작의 몸이 반으로 벌어지며 각기 좌우로 쓰러졌다. 그와 함께 마이어 남작의 등 뒤에 서 있던 사내의 전신이 드러났다.

마이어 남작을 쪼갠 자는 다름 아닌 러스트였다.

의도대로 부하 기사들이 외벽의 성문을 부수었고, 그를 이용해 러스트의 오크 보병 부대가 난입하여 제2 관문의 공국군을 찍어 내리고 있었다.

러스트는 도낏자루를 어깨에 걸치며 익살스레 농담을 던졌다.

“조금 야윈 것 같은데? 공국군 밥은 맛이 없었나 봐?”

제랄드는 이제야 한시름 놓으며 피식 웃었다.

“취사병 솜씨가 형편없더군요.”

“남작님이 이쯤 되면 문이 열릴 테니 몸을 검게 칠하고 성벽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더군. 정말로 문이 열리길래 그냥 들어왔지.”

“남작님께서? 따로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어찌 아셨답니까?”

“나도 모르지. 남작님이 다 꿰뚫고 있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허…….”

요 사흘간 외벽 위에 있는 공국군들은 멀리 떨어진 루크를 주시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탓에 어둠을 틈타 크게 우회하여 다가오는 오크 보병들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먼 곳을 보면 발밑이 안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제랄드 때문에 요새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도 오크 보병의 무혈입성에 한몫했다.

제2 관문이 갖추고 있던 수많은 궁병들도, 그토록 애써 가며 끓인 기름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하여 설치한 대형 작살 발사대들도 적의 침입을 허락한 순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그토록 주의를 기울였건만 수많은 방어 장비들을 써 보지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오크 보병들의 난입을 계기로 루크까지 제2 관문에 무혈입성하며 삽시간에 요새를 점령했다.

절벽의 혜택을 받아 10배의 병력수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제2 관문을 점령한 루크군의 사망자는 놀랍게도 0명이었다.

점령을 마치고 피투성이가 된 제랄드 앞에 루크가 말을 타고 다가와선 일출을 등지며 씨익 웃었다.

“사서 고생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미숙하니까요.”

“명색이 내 기사인데 미숙해선 곤란하지. 시정해 둬.”

작은 방심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루크가 정확한 타이밍에 오크 보병을 투입시켰기에 성공한 것이지, 자칫 잘못하면 사흘간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는 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랄드에 대한 루크의 신뢰는 여전했다. 실수를 문책하는 대신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하는 것에 그쳤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짚어 대던 마이어 남작의 태도를 본 직후인지라, 루크가 얼마나 좋은 상관인지 새삼 피부에 와닿았다.

제랄드는 뇌내 속에서 루크를 더더욱 미화시키며 대차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음엔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소크리노에 겐크 왕국의 대형 함선 수 척이 도착했다.

지휘선의 갑판 위에선 깔끔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선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중년 사내는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하여 정박해 있는 함선들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보면 볼수록 도가 지나치군. 그런 놈에게 공왕 자리를 빼앗길 순 없지.”

중년 사내의 이름은 데니스.

겐크 왕국의 마나마스터 중 한 명이자, 이번 전쟁을 기회 삼아 공왕의 자리를 탐내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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