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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43화 (43/200)

# 43

43화 불쌍하기도 하지

제2 관문을 뚫은 이후에도 루크군은 승승장구를 이어 나갔다.

제3 관문은 넓은 강을 해자 삼아 세워진 요새였는데, 마치 예전에 플램 강을 끼고 살던 제비 부리 오크 부족을 상대할 때를 떠오르게 하는 지형이었다. 그때와 지형이 비슷하기 때문에 뚫는 방법도 비슷했다. 강의 상류에서 가짜 부표를 마구 흘려보내어 그 틈에 섞여 이동하는 방식으로 제3 관문을 함락했다.

제4 관문 공략은 생각보다 애먹었다. 제4 관문은 산을 끼고 있는 요새였는데 관문을 지키고 있는 자는 6서클 마법사였다. 공국에 있는 명문 마탑 출신의 마법사인데, 군용 마나석을 이용하여 계속 마나를 보충해서 마법을 난사해 대는 탓에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6서클 마법사는 마나유저로 친다면, 마나유저 상급에서 마나마스터 사이라고 보면 된다. 이건 어디까지 예시일 뿐이고, 마나유저와 마법사는 전투 방식이 아예 달라서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육류와 생선을 비교하는 격이다. 고급 쇠고기와 고급 참치를 한자리에 놓고 어느 쪽이 더 좋은 식재료인지 판단할 순 없지 않은가.

마나유저는 마나유저로, 마법사는 마법사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다.

때문에 오즈가 제4 관문의 마법사를 도맡았다. 두 마법사가 서로 자웅을 겨루는 사이에 루크가 전군을 이끌고 성문을 돌파하여 함락에 성공했다.

* * *

제4 관문 함락을 마친 루크는 군대를 이끌고 제5 관문으로 이동했다.

네 개의 관문을 거치는 동안 희생한 병사의 숫자는 대략 500명.

처음 데리고 온 병력의 6분의 1이 줄어들었다.

여태까지 돌파한 관문의 공략 난이도를 감안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숫자이기도 했다. 지금껏 상대해 온 적군의 숫자를 다 합치면 6,000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 높은 성벽과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대략 500명의 전사자는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은 것은 아니었다.

“남작님, 기사 제랄드 전선에 복귀하겠습니다.”

잠입 임무에서 중상을 입어 제2 관문에 놔두고 온 제랄드가 이제야 복귀했다.

제랄드의 경우, 얼굴이며 몸의 곳곳에 흉터가 남은 탓인지 이전보다 한층 남자다워졌다.

루크는 약 보름 만에 복귀한 제랄드에게 복귀 기념으로 첫 농담을 날렸다.

“전선에서 보내는 휴가는 각별하지?”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달려온 겁니다. 너무 얼굴 부끄럽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이쿠, 이거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군. 대단한 부하한테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

“네? 아!”

이전에 제2 관문에 잠입할 때, 제랄드는 포로들의 뒷담화에 맞장구치느라 자화자찬에 가까운 말을 했었다.

‘딱 봐도 밑에 있는 사람 고생시키는 인상이더구먼.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다른 사람들, 특히 루크에게는 말하지 말라며 부하 기사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는데, 기어코 말한 모양이다.

제랄드는 흑역사를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끄응,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잠시 후, 제랄드의 복귀를 알아차린 러스트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입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를 한껏 드러내며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어이, 대단한 부하 나리, 전선에 복귀했구먼.”

“아니, 대체 그것들은 얼마나 말하고 다녔길래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는 겁니까?”

“그거? 남작님이 기사들한테 잠입 임무 동안 있던 일을 빠짐없이 보고하라 했더니 전부 다 말하던데?”

“하아, 명색이 보고인데 검열 좀 하고 말할 것이지.”

“어허! 남작님이 빠짐없이 보고하라 했는데 검열은 무슨!”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튼 아랫사람 고생시키는 사람한테서 보름 동안 떠나 있으니 기분은 어떤가? 아, 남작님, 전 남작님이 시키시는 일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 좀 놀리십시오.”

“네네, 대단한 제랄드 경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들어야지요.”

“하아, 이러다 제명에 못 살지.”

사내들끼리 아웅다웅하다 보면 꼭 무리에 한 명씩은 놀림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군대에선 작은 계기로 대상이 굳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번 잠입 임무에서 제랄드가 거하게 한 건 해 준 덕에,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뭐, 긍정적으로 보자면 사무적인 태도를 일관하던 간부들끼리 친밀도가 높아진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었다.

루크와 러스트가 1절까지만 하고 끝내 주면서, 제랄드는 간신히 갈굼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랄드는 복귀하자마자 진이 빠져 비틀거렸다.

“앞으로 다사다난하겠구먼.”

그리고 2절의 시작은 뒤늦게 제랄드의 복귀를 알아차린 오즈가 끊었다.

“허허허, 이게 누구신가. 자기 자신에게 대단하다는 단어를 이식하신 제랄드 경 아니던가.”

2절 시작과 함께 제랄드는 ‘이거 평생 가겠구나.’ 하는 예감과 함께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였다.

* * *

제5 관문으로 이동하는 내내 루크는 한 가지 위화감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 위화감은 다름 아닌 공국의 지원군이 너무 늦는다는 점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20일쯤 걸렸지. 지금쯤이면 적진에 지원군 한둘쯤은 도착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야.’

마나마스터인 루크가 공국의 본토에 상륙했다는 것은 로메우 측도 입수했을 터.

공국 수도인 헤테룬과의 거리를 계산해 보면, 이미 제4 관문을 공략할 때 적의 지원군이 도착했어야 정상이다.

노림수가 있어 일부러 안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보낼 수가 없어서 못 보내는 것이 아닐까.

공국의 왕궁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 이유라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겐크 왕국 원정대가 밀리고 있어서 다른 곳에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다.

2. 루크 말고도 겐크 왕국의 마나마스터들이 추가로 건너와서 그쪽에 먼저 지원군을 보냈다.

둘 중 하나를 꼽자면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

루크가 아는 로메우는 왕위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런 자가 당장 자기 자리를 위협하러 오는 군대를 무시하고, 다른 나라의 땅에서 싸우고 있는 원정군부터 챙긴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

한데도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 건 루크군보다 훨씬 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군대가 있기 때문일 터.

아무래도 겐크 왕국의 다른 마나마스터들이 다른 길을 통해 헤테룬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모양이다.

‘겐크 국왕도 큰 결심을 했군. 마나마스터의 절반을 수비에 쓸 바엔 공격으로 돌리겠단 심산인가. 겐크 왕궁이 먼저 함락당하느냐, 아레나 왕궁이 먼저 함락당하느냐의 도박수를 둔 셈이군.’

왕으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다.

아마 루크라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기껏 뚫어 놓은 해상 길을 그냥 버리기는 아깝지 않은가.

게다가 수비에 치중하면 아무래도 전쟁이 장기화되기 십상이다. 추수철이 다가오는데 계속 전쟁이나 하고 앉아 있다간,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국력이 쇠약해지고 만다.

겐크 국왕이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야심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국과의 전쟁 따위로 국력을 많이 소모하고 싶어 하진 않을 것이다.

드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이동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슬슬 더워지는 걸 보니 프레이머 지방에 들어섰나 보군.”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온천 요양지로군요.”

“병사들에게 미리 수통을 가득 채워 두라고 해 둬.”

“안 그래도 아까 휴식 시간에 지시해 뒀습니다.”

제5 관문은 프레이머 지방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프레이머 지방은 오래전 고대인들이 고대에 4대 정령왕 중 하나인 불의 라그나로스를 봉인한 땅이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땅속에 라그나로스의 봉인석이 있는데, 그 힘이 어찌나 강대한지 봉인된 후에도 강한 열기를 내뿜고 있다고 한다.

봉인석에서 나온 열기가 지하수를 데우고, 그 지하수가 표면으로 흘러나와 천연 온천을 이루고 있기에 요양지로도 유명한 지방이다.

더운 와중에도 목숨 줄과 다름없는 갑옷과 투구를 벗을 수 없어서, 병사들 모두가 금세 땀에 절었다. 게다가 계속 가을 특유의 쌀쌀한 날씨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은 탓에, 여기저기서 비염 및 몸살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에취! 에취!”

한 사람이 기침을 하면 괜히 자신도 목이 찝찝해져서 기침을 하는 것처럼, 어디선가 시작된 기침이 사방팔방으로 전염되며, 때아닌 기침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루크는 병사들의 상태를 파악하고선 빠르게 예정을 수정했다.

“이대로 싸웠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군.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한다. 아무래도 하루 정도 적응 기간을 가지는 게 좋겠어.”

보통 군대에선 몸이 아프면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하는데 그럴 상황이 있고, 아닌 상황이 있다.

상태 안 좋은 병사들을 억지로 전장에 들이미는 것이 과연 현명한 지휘자일까?

한 명, 한 명이 드래프트 영지의 번영을 일구어 낸 영지민들의 자식들인데 어찌 소홀히 다루랴.

원래 오늘 내로 제5 관문 앞에 진지 공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병사들의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예정을 변경하였다.

지시를 내려받은 제랄드, 러스트는 부관들에게 예정이 변경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예정 변경이다! 즉각 진군을 멈추고 야영 준비에 들어가라!”

한창 야영을 준비하던 중.

별안간 후방 쪽에서 수천 명쯤 되는 병력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적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깃발에 겐크 왕국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선, 뒤늦게 파견된 왕국군으로 추정되었다.

병력의 선두에는 활을 등에 맨 갈색 머리의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는 루크군의 진영까지 와선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아트락스 영지에서 온 데니스 백작일세. 자네 얘기는 많이 들었네, 루크 남작. 여기서부턴 내가 군을 이끌도록 하지.”

데니스 백작이라면 활을 주 무기로 쓰는 마나마스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꼬장꼬장한 눈매와 갑옷 사이로 얼핏 보이는 금목걸이, 오시하듯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허영심과 오만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조우하자마자 다짜고짜 자기가 두 군대의 지휘권을 모두 가지겠다고 한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표면상 데니스 백작의 작위가 더 높은 것은 맞다. 그렇다한들 임의로 다른 부대의 지휘권을 강탈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휘권에 대한 루크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는 것인지, 계속 일방통보를 남발했다.

“그리고 군량미 좀 쓰겠네. 우리 보급품은 제1 관문의 늪 때문에 옮길 수야 있어야지. 어차피 자네도 각 관문에서 훔쳐 온 군량미일 테니 괜찮겠지?”

루크군이 피와 땀을 흘려 가며 보충한 군량미를 훔친 군량미라고 비하하고 있었다.

지휘권을 강탈하려는 것도 그렇고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하려고 작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연속된 일방적인 통보 속에서 루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곧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그러시지요. 제랄드, 군량미를 나눠 드려라.”

루크군의 간부, 즉 제랄드와 러스트, 오즈는 내심 엄청 불안해했다.

평소의 루크라면 벌써 대차게 독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루크의 성격상 설사 상대가 국왕이라 할지라도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도 순순히 군량미를 내준다는 것은 그만큼 이용해 먹겠다는 뜻일 터.

대답하기 전에 특유의 버릇인 씨익 웃는 모습을 보인 게 그 증거였다.

루크군의 간부들은 한껏 어깨에 힘주고 있는 데니스 백작을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분 저러다 큰일 날 텐데… 하아, 불쌍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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