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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44화 (44/200)

# 44

44화 근본 없는 논리에는 검이 약이다(1)

우걱우걱! 우물우물!

데니스군에게 군량미를 나눠 주자마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식량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1 관문의 늪을 건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먹질 못한 것 같다. 들판에 자라나 있는 식용 풀과 나무껍질, 급할 때는 민가까지 습격해 가며 간신히 식량을 조달했다고 한다.

데니스 백작이 민가를 습격한 이야기를 너무 자랑스럽게 얘기하기에 루크가 눈꼬리를 치켜 올렸더니, 한다는 말이…….

“주제도 모르고 왕국에 반기를 든 미개한 족속들인데 뭐가 어때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지.”

전쟁 중에 민가를 습격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지고 있다.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을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는 것은 군인이 아니라 도적이지 않은가.

거기다 졸렬하게도 자신은 약탈을 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했다며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차라리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면 목적을 위해 뭐든지 하려는 자라고 생각했을 텐데, 어떻게든 체면부터 세우려고 하는 것에서 그의 허영심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화를 나눌수록 데니스 백작의 기량이며 성향이 낱낱이 루크의 눈에 들어왔다.

데니스 백작에 대한 분석을 마친 루크는 전쟁 현황에 대해 물었다.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기선 다른 지방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서 말이죠.”

“본국에선 중부 지방과 동부 지방 경계선에서 팽팽하게 대치 중이라네. 내가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양측 진영 마나마스터가 2명씩 사망했다고 할 정도이니 얼마나 팽팽한지 알겠지?”

“공국으로 넘어온 건 백작님뿐입니까?”

“나 말고도 4명의 마나마스터가 자기 부대를 이끌고 각자 다른 길로 이동하고 있네. 다들 헤테룬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을 테지. 그들보다 먼저 헤테룬에 가려면 내 지시를 잘 따르게. 자네도 크게 출세할 기회이니, 내 말을 전하의 말이라 생각하고 잘 따르란 말일세. 알겠나?”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누구보다 빨리 헤테룬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본인은 담담한 척하고 있다만 말하는 품새에서 조급함이 배어 나왔다.

데니스 백작과의 첫 회의를 마친 루크는 곧바로 제랄드를 시켜 정보를 모으게 시켰다. 제랄드가 부하 기사들과 함께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데니스군 병사들을 상대로 정보 수집에 나섰다. 그 결과, 데니스 백작이 조급해하는 구체적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알아보니 로메우의 목을 친 자에게 다음 공왕이 될 권리를 준다는 왕명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왜 그리 조급해하나 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다른 건 몰라도 이대로 데니스 백작님과 함께 헤테룬에 가면, 저희가 로메우의 목을 딴다 해도 모든 공적을 가로채 가겠지요.”

데니스 백작이 괜히 기를 쓰고 지휘권을 독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면 루크가 어떤 공적을 세운들, 자신의 지휘에 의한 결과이니 자기 공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게다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면 헤테룬까지 가는 동안 자기 군대를 최대한 아끼고, 루크군을 희생양으로 삼기 쉬워진다.

즉, 데니스 백작은 루크군을 제물로 삼아 모든 공적을 독차지할 생각인 것이다.

정말이지 첫 대면 때부터 지금까지 졸렬한 모습만 보여 주고 있는 데니스 백작이었다. 이렇게까지 일관성 있게 졸렬하기도 힘든데 말이다.

보고를 마친 제랄드가 슬며시 루크의 의중을 물었다.

“지휘권을 넘겨주고, 군량미도 퍼 주시고 계신데. 혹시 따로 의도한 바가 있어서 행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제랄드뿐만 아니라 러스트, 오즈도 특히나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부분만큼은 측근에게도 쉬이 알려주지 않는 루크이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글쎄, 의도라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걸?”

순도 100퍼센트의 뻔뻔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루크의 모습에 루크군 간부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며 데니스 백작의 앞날을 미리 애도했다.

* * *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데니스 백작의 재촉이 시작되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다른 마나마스터들은 열심히 헤테룬으로 나아가고 있을 테니,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가고자 루크군을 닦달했다.

“아침 식사에 뭐 이리 오래 걸리나? 그런 건 어제저녁 준비하면서 미리미리 휴대용 식량까지 만들어 뒀어야지! 이동하면서 먹으면 될 걸, 뭐 하러 시간을 낭비하냐 이 말이다.”

“이곳은 기온이 높으니 미리 만들어 뒀다간 귀한 식량 버리기 십상이지요.”

“루크 남작, 한 번만 말해 두겠는데 내 지휘하에 있을 땐 말대꾸하지 말게. 평소에 군 기강을 어떤 식으로 잡고 있길래 상급자에 대한 태도가 그따위인가? 당장 출발 준비하게!”

“그래도 병사들 밥은 먹여야지요. 굶은 병사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나 있겠습니까.”

“쳇, 괜히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군. 최대한 빨리 식사를 끝내라!”

루크는 일부러 더우니까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평소보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늘려서 푸짐하게 준비했다. 그 탓에 아침 6시에 기상했건만, 9시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거기다 진군 속도도 평소의 8할 정도의 속도로 걷게 하였다.

자잘하게 조금씩 속도를 늦춘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데니스 백작의 짜증은 점점 더 더해져 갔다.

“루크 남작! 지금 장난하나? 한시가 급하다고 말했잖은가! 빨리 병력 이끌고 따라붙게!”

“최대한 빨리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백작님과 다르게 저희 군은 제1 관문부터 제4 관문까지 싸우면서 와서 많이 지쳐 있어서 말이죠.”

“내가 말대꾸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째 하는 건지 알고는 있나?”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건데, 아직 납득이 안 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급한 것이야 자기 사정이지 루크의 사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루크의 행동에 있어 잘못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잘못이 없으니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데니스 백작이 답답해하든 말든 루크는 계속 진군 속도를 유지했다.

평소보다 느린 진군 속도는 당초의 예정을 많이 일그러뜨렸다.

아침에 작전 회의를 할 때만 하더라도 오늘 내에 제5 관문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러나 루크군이 느리게 진군한 탓에 제5 관문 근처에 도착할 즈음엔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 * *

제5 관문 근처에는 ‘서녘 숲’이라 하여 단풍나무가 많이 자라나 있는 숲이 있다. 가을이 되면 단풍잎이 물들고, 바닥에 폭신한 낙엽이 잔뜩 깔려서 온천과 더불어 프레이머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였다.

서녘 숲은 프레이머 지방의 변두리에 있어서, 라그나로스의 봉인석이 내뿜는 열기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기도 했다.

루크군과 데니스군은 더운 구역에서 벗어나 시원한 서녘 숲에서 야영을 하고자 했다. 어젯밤 내내 지열 때문에 밤잠을 설쳤는데, 드디어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야영 준비를 앞두고 루크는 데니스 백작에게 루크군은 다른 장소에서 잘 것이라고 통보했다.

“데니스 백작님, 저희 군은 숲 바깥에서 야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원한 장소를 놔두고 또 더운 장소에서 자겠단 말인가?”

“갑자기 또 온도 차를 겪으면 병사들의 몸에 무리가 갈까 싶어서 말입니다. 전투에는 지장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흥, 평소에 병사들을 어떻게 단련시켰길래 이깟 일교차에 휘청거리는 겐가? 하여간 답답해서 원.”

“데니스 백작님은 어디서 야영을 하실 겁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나더러 그 더운 장소에서 또 자란 말인가?”

짜증이 극에 달한 나머지 이전보다 훨씬 말투가 거칠어져 있었다. 말할 때마다 핀잔투성이다.

참 이런 것을 보면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는 말은 전부 거짓부렁이라는 것이 실감된다.

마나마스터씩이나 되는 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훨씬 체력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한데도 정신상태가 썩어 빠진 것을 보고 있자면 루크는 육체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루크군은 숲 바깥의 더운 장소에서, 데니스군은 숲 안쪽의 시원한 장소에서 각기 야영 준비에 들어갔다.

* * *

서녘 숲을 지나면 곧바로 제5 관문이 나온다.

제5 관문에는 헤라클 백작을 필두로 마나유저 상급 3명과 다수의 마나유저 중급으로 이루어진 정예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요새 안에 머무르고 있는 병사의 숫자만 다 합쳐도 무려 4,000명.

인근 영지에 있는 병사란 병사는 다 끌어모았기에 요새가 미어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수비만 하기 위해 끌어모은 병력이 아니다.

제5 관문의 지휘관인 헤라클 백작은 굉장히 호전적인 성격이라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왕국군을 공격할 의사가 있었다.

헤라클 백작은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로부터 적의 규모와 상황을 상세히 보고받았다.

“적군의 숫자는 대략 6,000명으로 사료됩니다.”

“6,000명? 제4 관문을 공격한 병력은 약 2,200명이라 하지 않았더냐.”

“적들도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지원군을 이끌고 온 자는 누군지 파악했느냐?”

“거기까진 알아내지 못했으나 지원군의 지휘관도 상당한 실력자 같았습니다.”

“2,200명이면 이쪽에서 먼저 치려했건만, 6,000명이면 조금 망설여지는군.”

“대신 낭보가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적군의 절반 이상이 서녘 숲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왕국군이 서녘 숲에서 야영을 한다는 말에 헤라클 백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5 관문의 지휘관으로서 서녘 숲이 얼마나 안 좋은 자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라면 더더욱 서녘 숲은 야영 장소로는 최악인 곳이었다.

헤라클 백작은 승리를 따 놓은 당상이라는 양 즐거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녘 숲에 자리를 잡았다면 2,000명 차이쯤은 문제 될 게 없지.”

“병사들을 준비시킬까요?”

“당장 준비시켜라. 오늘 거하게 불을 피워 올리자꾸나.”

* * *

그날 밤, 서녘 숲에 거센 불길이 피어올랐다.

제5 관문의 공국군이 어둠을 틈타 관문에서 빠져나와, 서녘 숲에 불을 지른 것이다. 가을이 되어 건조해진 날씨는 화공을 가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건조해진 나무와 두껍게 쌓인 낙엽은 좋은 장작이 되어 주었다.

거기에 숲 안과 바깥의 온도 차로 인하여 적당히 바람까지 불어 주니,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준 화공에 최적인 지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야영을 하던 데니스군은 난데없는 대규모 화공에 휘말려 혼란에 휩싸였다.

“당황하지 말고 활로를 찾아라!”

“데니스 백작님! 북쪽은 불길이 약합니다! 북쪽으로 가시지요!”

“북쪽이다! 꾸물거리지 말고 북쪽으로 이동해라!”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데니스 백작은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나마 불길이 약한 북쪽을 활로로 삼아 병력을 이끌었다.

하나 이는 헤라클군의 함정이었다.

일부러 북쪽으로 빠져나오게 하려고 한 곳만 불을 붙이지 않은 것이다.

활로인 줄 알고 불길 속으로 빠져나온 데니스군은 잠복하고 있던 헤라클군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금이다! 왕국군 놈들에게 이곳이 곧 지옥임을 알려 주어라!”

“와아아아!”

계산된 기습하에 데니스군은 손 한 번 못 써 보고 짚단처럼 연이어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마나마스터인 데니스 백작이 마나 에로우로 응전하여 억지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삽시간에 줄어드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면서 데니스 백작은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루크 남작! 루크 남작은 왜 안 오느냐!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안 오냔 말이다!”

* * *

서녘 숲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제랄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읊었다.

“한창 위기인 것 같은데, 도우러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프레이머 지방의 지도만 봐도 서녘 숲이 위험 지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던 차에 데니스 백작의 군대가 도착해 주었고, 초장부터 심기를 자극하는데 어찌 이용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랴.

헤라클군은 자신들이 왕국군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루크가 데니스군을 던져 주고 제5 관문을 빈집으로 만든 것이었다.

적이 데니스군을 치러 관문을 열고 나왔으니 제5 관문 안은 텅텅 비어 있을 터.

루크는 서녘 숲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5 관문을 향해 말을 몰았다.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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