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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45화 (45/200)

# 45

45화 근본 없는 논리에는 검이 약이다(2)

“물러나지 마라! 뚫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뚫어라!”

“적이 진영의 우익으로 파고들었다! 우익에 병력을 보내어 진의 두께를 보강해라!”

서녘 숲에선 뚫으려는 데니스군과 막으려는 헤라클군의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불길은 점점 번져서 숲을 뒤덮었고, 생각보다 데니스군이 선전하면서 헤라클군도 불길 속에 갇힐 위기에 처했다.

헤라클 백작은 슬슬 퇴각 명령을 내릴 준비를 하였다. 데니스군을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니 당초에 의도한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마나마스터인 데니스 백작을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더 이상 숲에 남아 있다간 헤라클군도 막대한 피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밥도 약간 모자라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것처럼, 너무 욕심을 부렸다간 본전도 되찾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아까부터 가슴 언저리에 위화감이 머무르고 있었다.

‘숲 바깥에서 야영하고 있는 왕국군도 있다고 했었지. 그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왕국군의 6할에 이르는 병력은 숲 안에서, 4할에 이르는 병력은 숲 바깥에서 야영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절반 이상의 병력이 죽음에 이르렀는데 다른 병력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지원을 올 것이면 진즉에 왔어야 한다.

한데도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지원을 오는 대신 빈 관문을 향해 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헤라클 백작은 이내 곧 고개를 저었다. 화공을 가하기로 결심했을 때, 적군이 빈 관문을 노릴 가능성을 배제하고서 화공 계획을 짰다.

왜냐하면 화공을 가하면 최소 수천 명의 왕국군이 죽는다. 수천 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빈 관문을 노릴 리가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아군에 대한 전우애를 가지고 있다면, 빈 관문을 노리는 대신 아군을 살리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한데 놀랍게도 적은 헤라클 백작이 배제했던 선택지를 택했다.

“헤라클 백작님! 큰일입니다! 제5 관문이 함락당했습니다!”

“미친놈이군. 관문 하나를 얻으려고 수천 명의 병사를 희생해? 그딴 놈이 지휘관 감투를 쓰고 있다니 왕국군도 갈 데까지 갔구나.”

“이대로 제5 관문으로 갔다간 도리어 적군에게 둘러싸이는 형태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1군, 2군, 3군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트려 산으로 보낸다. 제6 관문에서 합류하는 걸로 하자꾸나.”

“알겠… 크억!”

비상 탈출로를 활용하고자 헤라클은 병력을 세 덩이로 나누어 후퇴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지시를 받은 기사가 알겠다고 말하는 도중에 화살 한 대가 기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짙은 마나를 두른 화살은 기사의 가슴을 꿰뚫고 나서도 여전히 관통력을 유지하며 병사들의 몸을 일거에 꿰뚫었다.

활을 쓰는 마나마스터의 전유물인 마나 에로우.

마나 에로우를 두른 화살의 관통력은 두꺼운 강철에 쉬이 바람구멍을 낼 정도라고 한다.

낙엽을 장작 삼아 피어오르는 불길 속에서 데니스 백작이 터벅터벅 걸어 나오며 재차 시위에 화살을 걸쳤다.

데니스 백작은 전신에 화상 자국이 만연한 몰골로 목소리에 분을 담아 말했다.

“빌어먹을 새끼, 어디 불장난 치고 튀려 하느냐? 내 오늘 네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릇노릇 구워 주마.”

헤라클 백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검을, 상대는 활을 쓰니 접근만 하면 어떻게든 목을 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마나마스터이다.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불구덩이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헤라클 백작은 어리석지 않았다.

헤라클 백작은 데니스 백작의 도발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데니스 백작을 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듯 유유히 퇴각 명령을 내렸다.

“헤라클 백작가의 병사들이여! 1군, 2군, 3군으로 나누어 퇴각하고, 제6 관문 앞에서 합류한다! 전원 퇴각하라!”

제5 관문을 빼앗긴 것은 속이 쓰리지만 왕국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으니, 손익을 계산한다면 이득을 본 것은 헤라클군이었다.

이득에 만족하며 매캐한 연기를 연막 삼아 퇴각하려던 찰나.

자욱한 연기 사이로 푸른빛이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마나 에로우를 두른 화살이 연기를 좌우로 밀쳐 내며 헤라클 백작이 타고 있는 말에 적중했다.

“히이이잉!”

기껏해야 일반 화살에 불과한 두께이거늘, 마치 포환이라도 뚫고 지나간 양 말의 옆구리에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말이 죽으면서 위에 타고 있던 헤라클 백작이 낙마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바닥에 부딪힌 터라 헤라클 백작의 몸에 강한 충격이 엄습했다.

쿠웅!

“커헉!”

말의 등 위는 생각보다 높다. 때문에 낙마하면 염좌나 골절상을 입기 십상이다. 평범하게 낙마해도 부상을 입기 쉬운데 무거운 갑옷을 입고 떨어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충격으로 폐부에 강한 압박이 가해지며 헤라클 백작은 제대로 숨조차 못 쉬었다.

쓰러진 헤라클 백작에게 데니스 백작이 접근하여 그의 머리에 활을 겨누었다.

얼굴의 절반에 시뻘건 화상을 입은 데니스 백작은 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날 이런 꼴로 만들어? 용서하지 않겠다. 네놈도, 그놈도!”

헤라클 백작으로선 데니스 백작이 말하는 ‘그놈’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마나마스터가 왜 구름 위의 존재라 불리는지 실감하고선 체념할 따름이었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 헤라클 백작의 머리를 박살 냈다. 이어서 데니스 백작의 성난 외침이 서녘 숲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공국군 적장의 머리를 날렸다! 잔재주를 걷어 내니 바닥이 보이는구나! 이딴 놈들에게 욕보이고, 놈들이 엉덩이를 드러낸 채로 도망가는 꼴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 도망가는 놈들의 꼬리를 잡아 찢어라!”

썩어도 준치라고 마나마스터 본연의 힘만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야 마는 데니스 백작이었다. 데니스군은 데니스 백작의 무위에 힘입어 퇴각하는 헤라클군을 쫓아 괴멸시켰다.

* * *

날이 밝을 즈음, 루크는 제랄드를 시켜 성벽의 망루 위로 의자를 가져오게 했다. 그러고는 그 위에 앉아 느긋하게 서녘 숲을 바라보았다.

신선놀음이라도 하듯 여유롭기 짝이 없는 루크의 자태에 제랄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데니스 백작님이 살아 계신다면 골치 아파지겠군요.”

만약 데니스 백작이 살아서 제5 관문으로 온다면 결코 좋은 소리를 하진 않을 것이다. 한바탕 폭풍이 불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헤라클군과 공멸해 주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루크는 수통에 담긴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명색이 마나마스터이니 쉽게 죽진 않겠지.”

“만약 살아서 여기까지 온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럴 수 있다면 말이야.”

성난 마나마스터, 그것도 자신보다 작위가 높은 상대를 상대로 이토록 태연자약하게 있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루크의 태연한 모습에 제랄드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이용해 먹을 줄 알고 있긴 했다만, 이렇게까지 험악하게 부려 먹을 줄은…….’

태양이 동쪽 산봉우리 위로 고개를 내밀 때 즈음, 겨우 불길이 가신 서녘 숲 안에서 수백 명의 병사가 걸어 나와 제5 관문으로 접근해 왔다.

병사들의 선두에는 데니스 백작이 붕대를 한껏 감고서 힘겹게 말을 몰고 있었다. 처음에 루크군과 합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3,500명에 달하던 데니스군은 800명까지 줄어들었으며, 그를 따르던 기사들의 숫자 또한 대폭 줄었다.

데니스 백작은 제5 관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루크의 멱살에 손을 뻗었다.

“이 개자식!”

루크는 뻗어 오는 손을 가볍게 쳐 내며 초장부터 데니스 백작의 속을 긁었다.

“다짜고짜 욕지거리에 손찌검이라니, 아무리 힘드셔도 귀족의 품위는 지키셔야지요.”

루크가 잘못을 비는 모습을 기대한 데니스 백작이었다. 그러나 루크가 선보인 상상 이상의 뻔뻔한 태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속이 뒤집혔다.

본인도 본인의 감정이 통제가 안 되는지 데니스 백작의 입에서 악에 가까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뭐가 어쩌고 어째? 네 이놈! 서녘 숲이 묫자리란 걸 알면서도 날 거기로 밀어 넣었지? 바른대로 말해라!”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제가 밀어 넣은 게 아니라 백작님 스스로 야영지를 택하신 걸 잊었습니까?”

“화공을 당하기 좋은 지형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말하지 않은 것이냐? 어째서냐! 대답 여하에 따라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지도만 봐도 화공당하기 좋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지형이었지요.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전 백작님이 알면서도 다른 의도가 있어 일부러 숲에 들어가신 건 줄 알았습니다.”

“하면 왜 화공을 당한 걸 알면서도 지원을 오지 않았느냐! 아군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걸 알면 관문으로 오는 게 아니라 우릴 지원하러 왔어야 할 거 아니냐!”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백작님께 따로 의도가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괜히 방해가 될까 비어 있는 관문을 함락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혹시 화공을 당하기 쉬운 지형이라는 걸 모르셨습니까?”

“크윽, 네 이놈…….”

데니스 백작은 말을 하면 할수록,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비아냥거리는 말투인데도 반박할 수가 없다. 여기서 더 화를 냈다간 뻔히 알 수 있는 사실도 못 알아차린 바보 머저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이용은 이용대로 당하고, 반박은 반박대로 못하는 호구 꼴이 되는지라 속에 천불이 났다.

화를 참고 체면을 챙기느냐, 체면을 버리고 감정을 우선시하느냐.

이번만큼은 체면보다 분노가 앞섰다.

“지도만 보고 대체 화공당하기 좋은 지형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냔 말이다! 더 이상 변명하지 마라. 네놈이 일부러 지원을 안 왔다는 걸 내 모를 줄 알았더냐? 내 네놈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한 책임을 톡톡히 물을 것이니 각오하거라.”

체면까지 버리며 루크에게 책임을 묻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데니스 백작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고분고분하게 굴었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큰 오산이었다.

루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양 강하게 데니스 백작을 몰아세웠다.

“제가 어느 부분에서 비협조적이었는지요?”

“뭐? 방금 말했잖…….”

“귀한 군량미를 내주고, 지휘권까지 양도했지요. 대체 어디가 비협조적인지 알기 쉽게 말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숲으로 지원을…….”

“지원을 요청하셨습니까?”

“그럴 틈이 어디 있느냐. 눈치껏 왔었어야지!”

“명령이 없었는데, 명령을 어겼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군요. 화공을 당하면서 뇌까지 익어 버리셨나 봅니다.”

“방금 뭐라고 지껄였느냐? 모욕죄로 죽고 싶나 보구나!”

“없는 책임을 물으려는 것은 모욕이 아니라 생각하십니까?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면 조금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셔야지요. 모자란 지휘관 때문에 더 이상 왕국의 귀한 자식들이 죽는 꼴을 볼 순 없으니, 지휘권은 제가 인계하겠습니다.”

“이런 개자식을 봤나!”

데니스 백작이 분을 참지 못하고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그리고 화살을 루크의 머리에 겨누었다.

마나 에로우가 맺힌 화살이 자신을 향하고 있건만 루크는 산책이라도 나온 양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태연한 것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제랄드에게 말을 거는 여유까지 보였다.

“제랄드, 지휘관에게 의도적으로 활을 겨눈 건 어느 죄에 속하지?”

“군법에 따르면, 상관 살인미수 및 하극상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개별 조항이 적용되어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군사 재판 없이 즉결 심판이 가능합니다.”

“상관? 웃기지 마라! 누가 상관이란 말이냐! 난 지휘권을 양도한 적이… 크헉!”

서걱!

데니스 백작의 말은 신음 소리로 끝을 맺었다.

제자리에서 루크가 허리를 한껏 비트는가 싶더니, 허릿심만으로 발검하며 데니스 백작의 목을 베어 냈다.

베인 머리는 공중에 높이 뜨더니 성벽 너머로 떨어졌고, 목을 잃은 시체는 피를 뿜어내며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데니스 백작 휘하에 소속되어 있던 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제랄드를 비롯한 루크군의 간부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설마 루크가 진짜로 데니스 백작을 벨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루크는 핏방울이 뚝뚝 흐르는 검을 늘어뜨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지시를 내렸다.

“데니스 백작군의 생존자들에게 전해라. 공적 놀음을 하러 온 놈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고. 내 군대에 놀러 나온 자는 필요 없다.”

데니스 백작이 죽으면서 데니스군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더불어 지금 돌아가는 것은 탈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루크의 명령에 데니스군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데니스군의 미적지근한 공기에 질려 있던 자들은 루크의 발언에 공감하며 스스로 루크군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 외에는 자신의 지휘관을 처형한 자를 따를 순 없다며 왕국으로의 복귀를 택했다.

그리하여 편입된 병력은 500명에 달했다.

제5 관문까지 오며 잃은 숫자만큼 새로이 병력을 충당하게 된 루크군은 제6 관문 공략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더불어 이날, 루크가 데니스 백작을 죽인 것이 전쟁이 끝난 직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루크 본인만이 아는 일이었다.

‘공왕 자리를 포상으로 걸었다, 이거지. 의도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 데니스 백작을 죽였으니 그쪽이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야, 카이둔 국왕.’

* * *

같은 시각, 제6 관문에선 뒤늦게 공국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루크를 막기 위해 공국의 왕궁에서 보낸 지원군의 숫자는 약 7,000명.

지원군의 지휘관은 다름 아닌 렌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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