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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47화 (47/200)

# 47

47화 추잡함의 끝(2)

투퍽!

“크어어억!”

콰직!

“커헉!”

녹색 근육이 선명한 균열을 자랑할 때마다 사람 머리통만 한 도끼가 공국군의 몸을 찍어 내렸다. 도끼의 두께가 어찌나 두꺼운지 웬만한 나무들은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만한 도끼로 사람을 찍으면 어떻게 될까?

콰직!

또 한 명의 공국군이 도끼에 적중하여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도끼에 맞은 부위가 마치 둔기에 맞은 것처럼 으스러져 있었다.

도끼의 주인은 다름 아닌 러스트였다.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오라가 맺힌 도끼는 공국군의 갑옷을 가르고, 놈들의 살과 뼈를 으스러뜨렸다.

러스트는 더운 콧김을 강하게 내뿜으며 주변에 널브러진 공국군의 시체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이걸로 끝이더냐?”

러스트와 함께 온 정예 오크 보병들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물음에 답했다.

“근처에 다른 적군은 없었습니다.”

“흥! 간만에 안 좋은 광경을 눈에 담았군. 안 본 눈을 사고 싶은 심정이야.”

“검은 노을 부족 녀석들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군요.”

“인간이나 오크나 지저분한 놈들이 섞여 있는 건 마찬가지구나.”

자폭 공격을 시행한 아이들의 흔적을 역추적하여 이동한 끝에 도달한 어느 깊은 산기슭.

산기슭에서 십수 명의 공국군이 아이들에게 폭발형 아티팩트가 장착된 솜옷을 입히고 있었다.

아이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죄인처럼 무거운 족쇄를 채워 두었고,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겐 매질을 가했는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는데, 7살 이상인 아이는 솜옷을 입혀 놓고 7살 이하인 아이에겐 족쇄를 채워 두었다.

아마 형제자매 중 첫째인 아이들에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동생이 죽는다고 협박한 듯하다.

수법이 오래전 오크들로부터 추방당한 검은 노을 부족, 큰 바위 부족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강자 앞에서 물러나지 않고, 약자 앞에서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는 오크의 정신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광경이었다.

러스트는 오크의 외견에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도끼로 아이들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족쇄를 끊어 주며 말했다.

“아바르, 부대에서 이탈하면서 가지고 온 식량을 아이들에게 줘라. 미미하지만 하루 이틀 정돈 먹을 수 있겠지.”

“차라리 제5 관문으로 데려가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주제넘게 굴지 마라. 우린 자선 사업가가 아니라 군인이다. 군대에 자그마한 흠집이라도 낼 법한 일은 사전에 차단해 둬야 하지. 약간의 식량을 나눠 주는 것 이상은 해 줄 수 없어.”

쉬이 상하지 말라고 댓잎에 싸서 가져온 빵조각을 아이들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면서 러스트가 아래 송곳니를 드러내며 피가 되고 살이 될 말을 해 주었다.

“오크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지. 방패는 항상 옆으로 뻗어라. 구성원 모두가 날 희생해서 곁에 있는 자를 지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안전해진다는 뜻이란다. 너희 중 한 명도 낙오되질 않길 바라마.”

한때 여덟 부족을 통합한 대족장이던 자답게 러스트는 온화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피부색과 겉모습은 달라도 삶의 자세에 있어 인간과 오크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러스트의 말이 아이들의 지친 가슴에 촉촉이 스며들어 죽은 생선 같은 눈에 약간이나마 생기가 돌아왔다.

“네.”

“어째 대답이 시원찮은걸? 어깨 펴고 제대로 배에 힘줘 봐.”

“네!”

“그래, 근성에 귀천은 없다지. 애들도 이렇게 근성을 보일 줄 알건만…….”

러스트가 말꼬리를 흐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러스트의 발 바로 뒤에 쓰러져 있던 공국군 병사가 기습적으로 몸을 약간 일으켜 검을 뻗었다. 아까 마지막으로 쓰러뜨렸던 공국군 병사다. 아무래도 완전히 숨통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나 보다.

러스트는 사전에 병사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방치해 두었다. 왜냐고? 대비란 것은 위협적인 대상을 상대할 때나 하는 것이다. 좀생이처럼 죽은 척하고 있는 반 시체의 일격 따윈 위협적인 축에도 못 든다.

“죽어라, 이 야만족 놈아!”

러스트는 왼팔을 들어 날아드는 검을 막아 냈다. 검날이 팔에 파고듦과 동시에 힘을 주자 검이 근육에 잡혀 옴짝달싹 못했다.

공국군 병사가 안간힘을 다해 검을 밀고 당기길 반복하였으나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크의 근육은 마나 없는 일반 검으로 베어 내기엔 너무나도 강인했다.

“어억! 움직여! 움직이라고!”

꼴사납게 낑낑거리는 공국군 병사를 두고, 러스트는 오른손으로 바닥에 내려놓았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선 도끼를 들며 아래 송곳니를 한껏 드러냈다.

“다음 생에나 다시 시도해 보거라. 지옥에서 돌아올 근성이 있다면 말이야.”

거대한 도끼가 아래로 떨어지며 공국군 병사의 등을 짓이겼다.

콰직!

그 후 러스트는 이쑤시개를 뽑듯 간단하게 팔에서 검을 뽑아내고선 뒤처리에 들어갔다.

“솜옷 안에 넣어 둔 마법 물품을 빼내서 챙겨 둬. 오즈 영감이라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재조정이 가능할 테지.”

* * *

제6 관문에 도착한 루크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렌디군이 아니었다.

원래 제6 관문에 상주하고 있어야 할 렌디군은 온데간데없고, 요새의 문은 찜통 속 조개껍질마냥 활짝 열려 있었다.

성문을 통과하여 요새 안으로 들어가니 렌디군이 요새를 버리고 물러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요새 안쪽 곳곳에 전염병으로 죽은 이들의 시체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산에 올라가면 돌이 쌓여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등산로에 쌓여 있는 돌단처럼, 요새 곳곳에 시체 더미가 쌓여 있었다.

시체 특유의 썩은내와 분비물로 인한 노린내가 코를 찌른다.

게다가 전염병으로 죽은 자들의 시체가 방치되어 있으니 요새 전체에 병균이 파다할 터.

도저히 야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요새를 버리고 제7 관문으로 물러난 것 같습니다. 저희도 빨리 통과하는 게 몸에 이로울 것 같군요.”

제랄드의 말에 기마대의 기사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뒤에서 오고 있는 보급 부대엔 요새 바깥으로 성벽을 우회해서 이동하라 이르겠네. 누구도 시체와 쥐 떼가 득실거리는 곳을 지나온 식량을 먹고 싶진 않을 테니 말일세.”

이번에는 비행 부대의 마법사들이 오즈의 말에 공감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모두가 요새 내부의 위생 상태에만 주목하고 있을 때 루크는 전혀 다른 시점에서 상황을 관측하고 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요새 안의 위생 상태가 아니다.

요새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던 루크가 침묵을 깨고 손가락으로 시체 더미를 가리켰다.

“비행 부대 소속 마법사 전원, 시체 더미에 파이어볼을 시전하도록.”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오즈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즉각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루크와 지내며 이유를 물을 시간에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겪어 왔다. 이미 마법사들의 몸에는 말보다 행동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습관이 각인되어 있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동시다발적으로 파이어볼이 시전되며 사람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불덩이가 포물선을 그렸다. 파이어볼은 대기 중의 산소를 흡입하여 잔뜩 몸을 부풀리고, 각각 시체 더미에 떨어졌다.

퍼엉! 퍼엉! 퍼엉!

루크가 파이어볼을 시전하라고 말한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전염병에 죽은 이를 쌓아 둔 것일 터인 시체 더미 안쪽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으아악! 불붙었어! 불! 불!”

“아아아! 타들어 간다! 뜨거워!

전염병 때문에 요새를 버린 것처럼 꾸며 놓고 시체 더미 안에 병력을 숨겨 둔 것이다.

누가 병균이 득실득실한 시체 안에 숨고 싶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루크군의 간부들은 시체 더미에 매복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아예 배제해 두었다. 이건 방심도 뭣도 아니다. 오히려 상식에 가깝다. 어떤 지휘관도 병균이 득실거리는 시체 더미 안에 병력을 숨겨 두진 않는다.

숨길 수 있는 병력의 숫자가 적어 피해를 입히기 힘들뿐더러 설사 매복 병력이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병균 때문에 바로 격리시켜야 하니, 어느 쪽이든 손해만 보는 셈이다.

제랄드는 너무나도 손쉽게 매복 작전을 파악한 루크의 눈썰미에 감탄을 자아냈다.

“어떻게 매복해 있단 걸 아셨습니까?”

“병균 때문에 떠난 놈들이 시체를 쌓아 놓고 갈 리가 없지. 왜 쌓아 뒀는지 생각하면 나올 결론은 하나뿐이잖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놈들로선 손해만 보는 작전일 텐데 말이죠. 자폭 공격도 그렇고, 이번 매복도 그렇고 한시라도 방심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게 렌디 녀석의 의도겠지.”

“깔짝거리면서 우리 군의 집중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란 말씀이십니까?”

말도 안 되지만, 놈들이라면 여기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렌디의 목적이리라.

만약 렌디의 수작에 말려들었다면 있지도 않은 매복을 경계하며 귀중한 체력을 낭비했을 것이다.

실제로 렌디의 의도는 루크군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것이었고, 그 의도는 루크에 의해 완벽히 저지되었다.

더불어 루크는 더 이상의 매복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가 꺼리는 선택지만 고르고 있다면 더 이상 매복은 없겠군.”

“우리 입장에선 적이 또 매복해 있는 게 더 꺼림칙하지 않겠습니까?”

“경계심을 올려놓고 또 매복을 한다? 그런 근본 없는 계책을 남발할 녀석이라면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 다음에 저희가 꺼림칙할 만한 작전이라면 역시 제7 관문에 꽁꽁 숨어서 버티기에 들어가는 거겠지요.”

“과연 그럴까? 너라면 날 상대할 때 뭐가 가장 성가실 것 같아?”

“무력… 아니, 지략이겠지요.”

“전면전이면 계책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지. 순수하게 힘 싸움이 될 테니.”

계책을 부릴 것을 염려한다면 계책을 부릴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된다.

고로 제7 관문에 도달하기 전에 전면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렌디군은 8,000명, 루크군은 3,000명.

2배 이상이나 되는 병력으로 수비만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렌디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루크가 전면전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루크군에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루크의 머릿속에는 벌써 전면전을 유리하게 가져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즈 학장, 비행 부대를 데리고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비행 부대 전원, 마나를 든든히 채워 뒀으니 뭐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지금 당장 프레이머 지방으로 돌아가서 물건 하나만 가져와 주십시오.”

프레이머 지방에 렌디를 엿 먹일 물건이 있다.

절대 그냥 죽이진 않을 것이다.

오래전, 렌디에게 배후를 찔렸을 때의 감각은 비 오는 날이면 아픈 흉터처럼 여전히 등 뒤에 남아 있다. 기왕 갚을 것, 그간 쌓인 이자까지 쳐서 철저하게 갚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렌디가 지원군의 지휘관으로 배치된 것에 감사한다. 주요리인 로메우를 조우하기 전에 아주 좋은 전채가 되어 줄 테니까.

* * *

한편 자폭 작전과 시체 매복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은 금세 제7 관문까지 전해졌다.

“고아들을 관리하던 병사들은 전멸, 시체 매복은 튀어나오기도 전에 파이어볼에 맞아 전멸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실패하다니, 이거 좀 위험한 것 아닙니까?”

희생을 감수한 작전이었기에 부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에 렌디는 낭보라도 들은 것처럼 즐거이 웃어 댔다.

“크크크, 이 정도 작전은 작전도 아니란 거군.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야 베는 보람이 있지.”

“렌디… 경?”

실성한 양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렌디의 모습에 부관들은 소름이 끼쳐 반걸음씩 물러났다. 항상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던 사람이었던지라 의외의 일면이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본래 렌디의 성격이 무뚝뚝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흥미 없는 일들뿐인지라 뭘 하든 감흥이 없었을 뿐.

주변에서 소름이 끼치든 말든 렌디는 계속 미친 자처럼 웃어젖히며 군침을 흘렸다.

“내 특별히 너희에게 특등석을 내주마.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짓는 표정을 감상하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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