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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50화 (50/200)

# 50

50화 시간이 움직이다(2)

얼마쯤 걸었을까.

비밀 통로 안을 가득 채운 200명의 발소리가 불규칙하게 또각또각 메아리치고, 가지고 온 횃불은 점점 열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성 바깥에 있는 왕릉에서 성안의 중심부에 있는 왕궁까지 이어진 길이니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을 걷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루크는 비밀 통로의 끝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들고 있던 횃불을 제랄드에게 건넸다.

“들고 있어 봐.”

그러고선 팔을 위로 뻗어 천장을 더듬었다. 매끈한 타일을 이어 붙여 만든 천장을 여기저기 더듬자 손 하나가 들어갈 법한 구멍이 만져졌다.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 타일을 옆으로 밀어내자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가 드러났다.

루크가 먼저 나가려고 하는데, 제랄드가 자신이 먼저 나가겠다고 청했다.

“위험하니 제가 먼저 나가겠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호랑이굴 한복판인데, 만에 하나 칼침을 맞는다면 미숙한 제가 맞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루크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제랄드를 내려다보며 핀잔을 날렸다.

“말이 씨가 된다는데, 큰일 앞두고 꼭 부정 타는 소리를 해야겠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만 앞서 쓸데없는 소리를…….”

루크는 출구 바깥에 손을 걸쳤다. 땅을 박차며 바깥으로 뛰어오르니 왕궁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년 만에 들른 아레나 왕궁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오랜 역사를 지닌 궁전들이 있던 자리에는 지붕과 기둥에 금박을 덧씌운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으며, 곳곳에 로메우의 모습을 본뜬 황금상이 세워져 있었다. 왕궁 가득 여인의 분 냄새와 고급술의 잔향이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연회장 쪽에서 음악과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띠리리리~ 띠리~ 딴딴!

“하하하! 제를 올렸으니 신께서 우릴 굽어살펴 주실 겁니다!”

“공왕 전하께서 곧 이 나라이시니, 전하의 즐거움이 곧 나라의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마치 연회를 벌이고 있는 듯 음주 가무를 벌일 때나 들릴 법한 소리가 왕궁 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상식에도 정도란 게 있는 법이다.

당장 헤테룬 성 밖에서 수많은 이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윗사람이란 작자들은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앉아 있다.

루크를 따라 비밀 통로의 출구에서 나온 제랄드와 러스트 역시 연회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학을 뗐다.

“남작님, 저희가 비밀 통로를 통해 아예 다른 세상에 온 모양입니다. 세상 어느 누가 전쟁 중에 연회를 벌인단 말입니까?”

“허, 오크들도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놈이 많긴 해도 이렇게까지 미친놈은 없는데 말이지.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세상 미치광이들이 여기 다 모였나 보군.”

루크는 연회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연회장에 가까워질수록 음악과 취한 자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으며, 창문을 통해 연회장 안쪽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연회장 안쪽에 각종 무기와 병기를 늘어놓고,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이 연회장 중앙에서 향을 피워 제를 올리고 있었다.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던 것이다. 전형적인 패전국 말기의 모습이었다. 전황은 악화되어 가고, 상황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안 되니 현실을 도피하는 격으로 신에게 기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완전히 망가진 로메우와 그의 신하들을 보고 있자니 루크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러려고 내 나라를 빼앗았느냐.

고작 이따위로 말아먹으려고 나를 찔렀느냐.

카인 시절, 왕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의복이며 식사, 권위를 높일 각종 행사까지,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며 아끼고 또 아껴서 모은 국고이다. 한낱 반역자의 전쟁놀이에, 음주 가무 따위에 허비하라고 쓴 물을 삼켜 가며 참은 것이 아니다.

원래 내 것이어야 할 자리다.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권위이며,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나라이다.

능력도 없이, 자리만 탐하는 놈에게 망가질 나라가 아니었단 말이다!

연회장에 다 와 갈 즈음에서야 왕궁 안을 지키던 기사들이 루크 일행을 발견했다.

왕궁의 기사들은 검을 뽑으며 루크를 저지하러 나섰다.

“뭐 하는 놈들이냐! 여기가 어딘 줄 알…….”

주인이 기름진 것만 먹으면 기르는 개까지 살이 찐다 하였던가.

아래에 있는 기사들마저도 품격은 온데간데없고 권위에 찌든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데 그쳤다.

감히 말을 잇기에는 루크의 표정이 너무나도 살벌했다.

현재 루크는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살갗이 베일 듯 냉랭하면서도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루크는 주춤거리는 기사들을 상대로 가차 없이 발검했다.

서걱! 서걱!

마나 블레이드의 기세가 평소보다 한층 거친 나머지 그 여파가 등 뒤의 제랄드와 러스트에게까지 닿을 정도였다.

“헉!”

“어이쿠.”

둘은 하마터면 마나 블레이드의 영향권에 휘말릴 뻔했으나 경악성 외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등 뒤만 봐도 루크가 얼마나 살기등등한지 전해져 온다.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열겠는가.

인간이 자연재해에 적응해야 하는 거지, 자연재해가 인간에게 적응해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루크는 가히 자연재해에 필적할 만큼 위험하다고 했다.

평소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던 루크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기 때문에 눈치껏 거리를 두고 주의하며 숨소리마저 죽였다.

아군마저도 눈치를 볼 만큼 살기를 내뿜던 와중 루크의 입이 열렸다.

“둘 다 병력을 이끌고 궁 안의 모든 기사와 병사를 베도록.”

왕궁 안에 있던 대부분의 고급 인력은 전선에 배치되었다.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인데 마나마스터를 왕궁에 썩혀 두겠는가. 로메우가 아무리 미쳐 가고 있다 해도 제명을 재촉할 짓을 할 린 없다.

고로 지금 데려온 제랄드와 러스트, 그리고 200명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왕궁을 장악할 수 있다.

제랄드와 러스트는 평소보다 더 깍듯이 반응하며 부랴부랴 명령을 받들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묵사발을 내 놓겠습니다. 편히 일 보십시오.”

“뼈도 추리지 못하게 박살 내 놓을 테니,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병력을 산개시킨 루크는 검을 늘어뜨리며 연회장 입구로 다가갔다. 소란을 감지한 기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검을 뽑아 들었으나 루크의 검에 맺힌 마나 블레이드를 보고 꼬리를 내리기 일쑤였다. 그 모습이 마치 집을 지키는 개가 손님의 방문에 마구 짖다가 들어온 것이 호랑이인 것을 보고 꼬리를 내리는 꼴 같았다.

기사들 중에서 몇몇 아는 얼굴이 보인다.

아무렴 어떠랴.

국왕을 등지고 배신한 것은 똑같거늘.

서걱! 서걱! 서걱!

루크가 가차 없이 기사들을 베어 내며 연회장 문을 밀치고 들어간 순간.

연회장 안에 파다한 술 냄새와 분 냄새,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근본 없는 궁중 음악까지. 세상에 불쾌한 요소란 요소는 다 모아 놓은 듯한 오물 집합소가 따로 없었다.

연회장 안의 귀족들은 아직 왕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는지 술독에 빠져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어느 귀족 한 명이 거나하게 취하여 루크에게 삿대질하였다.

“이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검을 빼 들고 들어오는 게냐! 당장 경을 치기 전에 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라!”

술에 취해 눈앞이 흐리고 분 냄새에 코가 막혀 검에 맺힌 혈향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개돼지만도 못한 것에게 말을 해서 뭐하리.

마나 블레이드 한 가닥이 오로라의 끝자락처럼 조용히 나풀거리며 귀족의 목을 그었다.

귀족의 목에 붉은 혈선이 생기면서 이내 목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음악이 끊기며 찬물이라도 끼얹은 양 장내가 조용해졌다.

이제야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 분위기가 된 것 같다.

루크는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핏방울 맺힌 검을 옆으로 뻗었다.

“묵혀 둔 반역죄를 물으러 왔다.”

루크가 오른쪽으로 검을 휘두르니 마나 블레이드가 성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귀족들의 몸을 분쇄했다. 저 피둥피둥 오른 살을 봐라. 저 모든 살집이 내가 모은 국고를 바닥내며 찌운 살이다.

왼쪽으로 검을 휘두르니 창문으로 도망치려던 귀족들이 다리가 잘려 바닥을 기었다. 저 꼴사나운 품행들을 봐라. 저리 꼴사납게 굴고자 나를 왕위에서 끌어내렸던가.

이어서 상징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루크가 연회장 앞쪽의 왕좌가 놓인 단상에 다가갈 때마다 양옆의 귀족들이 고꾸라졌고, 이윽고 루크의 걸음이 멈췄을 때 눈앞에 있는 자는 왕좌에 앉은 로메우밖에 없었다.

로메우는 루크의 등 뒤로 쓰러진 도미노처럼 방치되어 있는 귀족들의 시체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권태에 잠긴 듯 반쯤 감은 눈을 끔뻑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무엄한 자로고. 왕 앞에서 살육이라니, 예의를 어디에 두고 왔길래 그리 발칙하게 구는 것이냐. 겐크 국왕도 한 수 접는 개망나니 변두리 귀족이 있다더니, 딱 그놈의 인상과 비슷하군. 네놈이 루크 남작이렷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왕 노릇이 하고 싶나 보지?”

“이 지경? 이 지경이 대체 어떤 지경을 말하는 것이냐? 난 아직 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네놈이 여기 온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말해 보거라. 누가 널 여기로 들여보냈느냐? 갈 땐 가더라도 어떤 놈이 날 배신했는지 알고 가자꾸나.”

곧 죽어도 로메우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있지도 않은 배신자까지 만들어 내며 변명거리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배신으로 흥한 자다운 변명거리였다.

루크는 단상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밟으며 로메우에게 충격을 줄 법한 발언을 내뱉었다.

“자기 집에 들어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네놈은 남의 집에 눌러앉은 거라 비밀 통로 따윈 알지도 못하겠지만 말이야.”

마치 오래전부터 아레나 왕궁에서 살던 사람 같은 어감에 로메우가 표정을 달리했다. 줄곧 반쯤 감겨 있던 눈꺼풀이 완전히 올라가며 그의 놀란 심정을 대변했다.

“자기 집? 어이가 없군. 여기가 어째서 네놈의 집이더냐! 타국의 일개 귀족 따위가 한 나라의 왕궁을 자기 집으로 치부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똑같은 말을 돌려주지, 로메우 공작. 일개 귀족 나부랭이가 일국의 왕에게 거짓 자결을 권하는 건 무례할까, 그렇지 않을까? 그 대답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로메우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러고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네놈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냐?”

“왕 노릇 하더니 감까지 없어졌나 보군. 렌디 녀석은 금방 알아차리던데 말이지. 직접 찌른 놈과 그렇지 않은 놈의 차이인가?”

누가 카인을 찔렀는지까지 알고 있다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죽었어야 할 자가 다른 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누가 쉬이 믿으랴.

빼도 박도 못할 발언이 튀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로메우는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현 상황을 부정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놈은 죽었다고.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어디서 그 얘길 듣고선 그놈 행세를 하냔 말이다!”

“그 표정, 제법 좋은걸? 내가 네 배신 사실을 들었을 때 딱 그 모양새로 부정했었지.”

“죽은 놈이 어째서…….”

“믿으라고 한 얘기가 아냐. 네놈이 꼴사납게 죽어 가길 바라서 꺼낸 말이니까.”

“그래, 그 말투. 그 말투를 들으니 떠오르는구나. 카인 놈도 그따위로 말했지. 독한 놈! 고작 복수 한번 하려고 지옥에서 다시 기어올라 왔느냐!”

“지옥은 네놈들에게 이용당하던 그때가 지옥이었지. 이젠 네놈이 지옥을 맛볼 차례야.”

검을 드는 모양새가 마치 단두대의 날이 위로 상승하는 듯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기껏해야 포로로 잡아 재판대에 올리겠거니 싶었는데,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일 기세였다.

로메우는 결코 위협이 아님을 직감했다. 루크가 정말로 카인이라면, 설사 겐크 왕국에서 자신을 포로로 잡아 오라는 왕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죽일 것이다. 검의 그림자가 죽음의 그늘처럼 서늘한 가운데 로메우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안을 내밀었다.

“어차피 모든 걸 잃은 마당에 꼭 목숨까지 빼앗아야겠느냐? 너 정도의 야심가라면 일개 남작의 삶에는 만족하지 않을 테지. 거래를 하자꾸나. 내가 공왕이 되면서 최후의 보루로 숨겨 둔 재산이 있다. 그걸 주마. 그러니 여기선 못 본 척하고 놓아주지 않겠느냐?”

다급한 제안과 함께 루크의 동작이 멎었다.

“재산을 숨긴 위치는?”

제안이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판단한 로메우는 내심 루크의 물렁함을 비웃었다.

‘세상에 권력 싫어하는 사람 없고,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지. 결국 아무리 잘난 척해도 너도 똑같구나. 살아만 있다면 얼마든지 반전의 기회는 있는 법이지. 네가 변두리 남작의 몸으로 다시 기회를 얻은 것처럼 말이야.’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속마음을 숨긴 로메우가 말했다.

“궁 안에 있으니 직접 안내하마. 거기 가면 넌 막대한 자금을 얻는 거고, 난 창고에 놓아둔 텔레포트 스크롤로 바로 빠져나가면 되니, 서로 의심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거래를 마칠 수 있지.”

“그럼 긴말이 필요 없겠군, 안내해.”

로메우가 두 손을 든 자세로 몸을 돌리며 창고로 안내하고자 움직였다. 혹시 몰라 국고에 있던 대량의 자금을 빼돌린 것이 회심의 한 수가 되었다.

게다가 비자금을 감춰 둔 곳은 한 곳만이 아니었다.

‘세 군데에 자금을 나눠 놨으니, 그중 하나쯤 내준다고 해도 후일을 도모하는 데엔 별 지장이 없지. 두고 보거라. 이번에는 네놈의 존재를 몰라 실패했지만, 카인 네놈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다음에는…….’

푸욱!

“쿨럭!”

후일을 도모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와중 로메우는 울컥 각혈을 했다. 등을 통해 시작된 통증이 빠르게 가슴 쪽으로 전해져 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등을 관통한 검날이 가슴 앞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흡사 오래전에 루크가 렌디에게 찔렸던 그 모양새로 말이다.

설마 그때의 절망을 재현하기 위해서 거래를 받아들이는 척한 건가?

지독한 놈! 아무리 복수를 한다지만, 이렇게까지…….

로메우는 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핏물이 고여 있는 입을 달싹였다.

“네, 네놈… 일부러…….”

그에 루크가 등 뒤에서 박아 넣은 검을 빼며 말했다.

“그딴 잔돈, 저승 갈 때나 가지고 가시지.”

철퍽!

로메우의 몸이 무너지기도 전에 또 한 차례 루크의 검이 가로선을 그었다.

횡으로 그어진 검은 로메우의 목을 베었고, 놈의 몸이 쓰러지기도 전에 머리가 먼저 땅에 닿으며 공왕의 왕관이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 * *

“공왕의 목은 떨어졌다! 싸울 명분은 사라졌으니, 모두 무기를 놓고 성문을 개방해라!”

왕궁의 성벽 위에서 루크가 로메우의 머리를 치켜듦과 동시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제야 먼 옛날에 두고 온 카인의 잔영이 사라진 기분이다.

그때 그 시절, 렌디에게 찔렸을 때부터 동결되어 있던 시간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해동되었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 루크란 이름이 붙은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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