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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53화 (53/200)

# 53

53화 작위 상승(3)

이튿날, 루크가 있는 별궁의 객실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똑똑똑.

아침부터 누군가 싶어 문을 열어 보니 곱게 차려 있은 엘리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밤을 새웠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연회장에서 왜 안 보이나 했더니 뭔가를 하느라 방에 틀어박혀 있었나 보다.

루크는 문을 활짝 열어 들어오기 쉽도록 길을 내주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엘리나가 방 안에 들어오면서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었다.

“후후후, 오늘 공적 평가 때 오라버니 측에서 들고 나올 패를 검토해 놓았어요. 루크 남작은 먼 길 오느라 제대로 준비를 못했을 테니 제가 대신 준비해 놨죠.”

그러면서 가지고 온 서류 뭉치를 자랑스럽게 내놓는 엘리나였다.

왜 밤을 새웠나 했더니, 루크를 위해서 갖은 준비를 한 것이었다.

루크는 서류 뭉치를 전달받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왕녀님,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루크가 엘리나를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사자들끼린 그저 협력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협력 관계는 어디까지나 상호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관계를 말한다.

이번에 루크가 공왕이 된다고 해서 엘리나를 밀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즉, 엘리나는 이익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에 시간과 기력을 쏟아 부는 셈이다.

엘리나는 루크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전달했다.

“해 주고 싶어서 해 주는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마요.”

“빚을 남겨 두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죠.”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저번에 제가 했던 말 기억나세요?”

“진심이라고 말씀하신 부분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왕녀님이라 거절한 게 아니라 아직 아무도 옆에 들일 생각이 없어서 거절한 겁니다.”

“알아요. 그냥 나중에 그럴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절 떠올리게 만들고 싶어서 말이죠. 요령이 없어서 미안해요.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라 나탈리 언니처럼 요령 있게 하질 못하겠네요.”

“나탈리 왕녀님은 요령이 있는 게 아니라 헤픈 것이었지요. 그 사람처럼 행동할 바엔 지금 모습이 좋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말로는 마음에 든다고 말해도 100퍼센트 순수한 호의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야망인 겐크 왕국 개혁에 필요한 남자라서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예의상 적당한 말을 건넨 것이다.

“…….”

루크는 엘리나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이 없기에, 막간을 이용하여 그녀가 건넨 서류 뭉치를 확인해 보았다. 어찌나 꼼꼼하게 정리했는지 온갖 정보와 대응책이 적혀 있었다. 블린트 개인의 최근 동향부터, 블린트 파 소속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까지.

정보량이 많은데도 술술 읽히도록 깔끔하게 정리까지 해 두었다. 왜 밤을 새워야만 했는지 납득이 되는 서류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보고 있자니, 책상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엘리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생한 것은 알겠으나 안타깝게도 이번 공적 평가에선 쓸 일이 없는 정보뿐이었다.

루크는 엘리나가 상심하지 않는 선에서 정중히 서류를 돌려주었다.

“저도 따로 준비한 게 있어서 이건 쓸 일이 없을 것 같군요. 고생하셨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의외로 엘리나는 상심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그런가요? 준비해 놨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준비한 것보다 루크 남작이 준비한 게 더 확실하겠죠. 이른 아침에 시간 빼앗아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혹시나 다음에 또 뭔가 준비할 땐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서로 수고를 덜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주의할게요. 저도 슬슬 내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네요. 내궁에서 봬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방을 떠나는 엘리나였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에 왜 웃었는지 루크는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미지와는 다른, 의외의 엉뚱한 면모에 루크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복도로 나온 엘리나는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돌리며 복도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서류를 품에 꼬옥 끌어안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꺄으~”

‘나탈리 왕녀님은 요령이 있는 게 아니라 헤픈 것이었지요. 그 사람처럼 행동할 바엔 지금 모습이 좋습니다.’

‘그 사람처럼 행동할 바엔 지금 모습이 좋습니다.’

‘지금 모습이 좋습니다.’

그녀의 뇌 내에선 루크의 말 중 자기가 듣기 좋은 부분만 자체적으로 편집되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설레는 모습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 그 자체였다.

스물이 넘은 나이를 감안하면 주책맞다고 할 수 있겠으나 설렘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시기와 조건만 맞으면 칠순이 넘어서도 가슴이 뛴다지 않는가.

처음에만 하더라도 대륙 개혁이란 이름의 야망을 이뤄 줄 사람이라 여겨 반드시 붙잡고자 하였다.

그런데 전쟁 내내 매일같이 그의 소식을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죽으면 모든 계획이 무산되니 죽지 않길 바라며 기도를 하고, 의도치 않게 계속 의식하다 보니 어느새 진짜로 감정이 생겨 버린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놀랍긴 한데 이상하게도 이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관계가 발전하는 것을 상상하니 고된 일도 즐겁고, 책을 읽다가 짝사랑 문구가 나오면 왠지 자기 얘기 같았다.

이제는 야심을 위해서 그를 챙기려는 건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챙기는 건지 본인도 의심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렴 어떠랴.

좋은 게 좋은 것이지.

한창 혼자 좋아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저… 왕녀님? 괜찮으세요?”

언제 다가왔는지 궁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엘리나는 괜히 무안해져서 본래의 지적인 인상으로 되돌아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에 있는 루크 남작에게 아침 식사나 가져다주도록 하세요.”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대충 아무런 말이나 던져 놓고 바쁘게 자리를 뜨는 엘리나였다.

* * *

같은 날 오전, 내궁의 대강당에 수많은 귀족과 기사가 모였다.

기존에 왕궁에 있던 상원, 하원 의원들부터 전쟁에 참가한 귀족과 기사들까지. 모두가 이번 전쟁에 대한 공적 평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카이둔 국왕이 입장하여 왕좌에 앉았고, 상원 의회장이 단상 아래에서 왕명이 담긴 두루마리를 펼쳐 내용을 읊었다.

“로메우란 작자가 지금까지 보살펴 주신 국왕 전하의 은혜를 모르고 쉐도우 나이트란 공작원들을 투입하여 왕국을 위협한 것도 모자라 명령에 불복종하고 난을 일으켰으니. 이를 제압하기 위해 영지의 자산과 병사를 전쟁에 아낌없이 투입한 귀족 및 기사에게 합당한 공로를 내리노라. 공로에 대한 부분은 말석부터 논하느니 가장 먼저 셰이프 남작은…….”

공적이 낮은 자부터 발표를 시작하여 차례차례 전쟁에서 세운 공적에 합당한 포상을 받았다.

공적이 낮은 자들은 대부분 황금과 비단, 말 등을 받았다. 점차 세운 공적이 높아질수록 마나 영약이나 귀한 보물 등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물품이 추가되었다.

간간이 전쟁 중에 죽은 자들도 언급되며 본인 대신 그 가문에 포상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번 전쟁에서 왕국이 소유하고 있던 마나마스터 중 상당수가 사망했는데, 원래는 루크까지 포함하여 11명이었던 것이 6명으로 줄어들었다.

사람의 숫자가 워낙에 많아서 근 1시간 내내 읊었는데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공적 평가를 시작한 지 2시간째가 되어서야 2등 상 대상자의 차례가 되었다.

“바스커 백작. 해당 인물은 공국의 마나마스터 두 명을 베고 헤테룬 수비대를 압박하여 루크 남작의 별동대가 왕궁에 진입하기 쉽도록 시선을 분산시켜 전쟁을 끝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바스커 백작에겐 후작으로의 작위 상승, 40억 루소어치의 황금과 비단, 명마 30필, 마나 영약 20년 치, 보물 1점을 하사하겠다.”

기나긴 공적 평가도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곳 대강당 안에서 최고의 공적을 세운 자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자 공적을 평가하기 전부터 호의적인 사람이든 적대적인 사람이든 부정할 수 없는 공적을 세운 이였다.

이윽고 1등상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마지막은 루크 남작! 해당 인물은 이번 전쟁의 첫 승리를 쌓은 자이자 남쪽 해상을 뚫고, 나아가 로메우의 목까지 베어 냄으로써 실질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공을 세웠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루크 남작에겐 80억 루소어치의 황금과 비단, 명마 100필, 마나 영약 50년 치, 보물 3점, 그리고 아레나 공국의 공왕이 될 권리를 하사하겠다!”

짝짝짝짝짝.

최고의 공적을 세운 자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제 단상 위로 올라가서 포상 내용과 1년에 걸쳐 해당 포상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두루마리를 전해 받기만 하면 된다.

한데 박수 소리가 멎고 루크가 단상에 올라가려던 찰나, 예정되어 있던 블린트의 이의 제기가 날아들었다.

“전하, 전 루크 남작에게 주어질 포상이 적합한지 의심스럽습니다. 듣자 하니 헤테룬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데니스 백작을 베었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다른 부대라지만 작위가 높은 대상을 베며 관례를 무시한 자가 과연 공왕 자리에 적합할까요?”

카이둔 국왕은 단상에 오르려던 루크에게 정지하라 손짓하며 이의 제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군. 루크 남작, 방금 블린트 왕자의 이의 제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라던 그대로의 이의 제기가 들어왔다.

아마 블린트는 물론이고 카이둔 국왕까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이의를 제기하기 위하여 루크가 일부러 데니스 백작을 베어 냈다는 것을.

루크는 기다렸다는 양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밑밥을 깔았다.

“군법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데니스 백작은 잘못된 판단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한꺼번에 잃었고, 병력이 적어 지휘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쓰며 저를 죽이려 했지요. 절차에 따라 적합한 처분을 내린 것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아무리 군법이 중하다 해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일세. 남작의 공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겐 저마다 적재적소가 있음을 알아줬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제 공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그럼 공왕이 될 권리를 포기하도록 하지요.”

“남작령을 다스리는 것과 공국을 다스리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음? 방금 뭐라고 했나?”

“원래 받기로 되어 있던 공왕이 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루크의 폭탄 발언에 장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무려 공왕의 자리다. 속국의 왕이라곤 해도 왕의 자리가 어디 쉽게 얻어지던가.

그런데 그 권리를 포기하겠다?

루크가 좀 더 강하게 반박하리라 생각하고 많은 준비를 한 블린트는 그대로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루크는 데니스 백작과 조우했을 때부터 판을 짜 왔다. 판을 짠 기간이 다른 만큼, 그림의 완성도가 다른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지 블린트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저, 정말 공왕 자리를 포기할 생각인가?”

물론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만큼 고생했는데 챙길 것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저 역시 지금의 제 역량으로 공국을 맡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받아야 할 포상을 없던 걸로 할 순 없으니, 동급의 권리를 부여받는 걸로 대체하면 어떻겠습니까?”

“동급의 권리라면?”

루크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카이둔 국왕을 바라보았다.

“당장은 작위 상승만 하고, 훗날 주인 없는 땅이 생기면 그 땅을 다스릴 권리를 주십시오.”

즉, 당장은 공왕의 자리를 맡기 힘드니 훗날 아레나 공국의 공왕 자리가 비거나 또 다른 빈 땅 생기면 그곳의 주인이 될 우선권을 가지겠다는 뜻이었다.

카이둔 국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곧 루크의 방안을 채택했다.

“주기로 한 포상을 철회해서야 왕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좋다, 허락하마. 당장은 루크 남작의 작위를 백작으로 승격하고, 훗날 빈 땅이 생기면 그 땅을 지배할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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