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55화 (55/200)

# 55

55화 까마득한 역량(1)

그란데 백작의 저택에서 난데없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프랑크 마탑에 입학하라뇨! 데레피온 마탑은 어쩌고요?”

그란데 백작가는 데레피온 마탑과 제휴 관계이다. 때문에 백작령에 있는 아카데미 졸업자 중 진학을 희망하는 자는 데레피온 마탑으로 가도록 협정이 맺어져 있다.

하지만 데레피온 마탑 대신 드래프트 영지에서 신설한 프랑크 마탑에 입학하라고 하니 이리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란데 백작은 딸의 노도와 같은 성화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설득에 나섰다.

“레이아, 들어 보렴. 데레피온 마탑은 이번 전쟁에 마법사들이 많이 차출됐고, 교수진들이 대거 전사했단다. 제휴 관계를 끊자고 한 것도 저쪽이고 말이다. 프랑크 마탑은 가깝기도 하고 수준도 평균 이상이니 거기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지만 거긴 그 사람이 있잖아요.”

“어허, 이젠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느냐. 이번 전쟁의 결과를 보거라. 쟁쟁한 경쟁 상대들을 제치고 혁혁한 공을 세웠단 얘기는 너도 들었을 테지. 아마 이젠 너 정도론 성에 차지도 않을 텐데 혼자 왜 그리 성화더냐.”

“아휴,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그래요. 아버지 말씀대로 루크 백작님이 달라지셨다고 치죠. 하지만 그게 프랑크 마탑에 입학해야 할 이유가 되진 않잖아요. 저한테 오라 하는 마탑 많아요. 굳이 데레피온 마탑이 아니더라도 장학금 주고 데려가려는 곳이 많은데 꼭 프랑크 마탑에 가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란데 백작의 딸인 레이아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천재로 불리고 있다.

10살에 3서클의 경지에 올랐으며 15살에 독자적인 마법을 만들어 내는 기염을 토해 낸 천재 중의 천재였다.

스물을 넘긴 지금에 이르러선 벌써 5서클 경지에 이르렀고, 6서클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 불리는 8서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꿈이기에, 최대한 수준 높은 마법 학부가 있는 마탑에 입학하고 싶었다.

프랑크 마탑도 나쁘진 않다만, 마법 학부의 수준은 그저 그런지라 그녀의 눈에 차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남서부 지방의 호랑이 백작이라 불리는 그란데 백작도 딸 앞에선 한 사람의 아버지에 불과했다.

그는 어떻게든 드래프트 영지로 레이아를 보내고 싶어 최강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최강의 카드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시무룩함이었다.

“후우, 마음대로 하거라. 조금이라도 자주 보고 싶어서 가까운 곳에 갔으면 하는 건데 그 마음을 몰라주니 섭섭하구나. 그래도 어쩌겠느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짐 싸고 있거라. 난 오랜만에 네 엄마 성묘나 다녀오련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등은 쓸쓸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레이아가 평소엔 고집이 세긴 해도 속내는 순하고 착한지라, 그런 아버지의 등을 마냥 외면할 순 없었다.

필살기인 시무룩함에 성묘까지 곁들이자 레이아가 도저히 고집을 부리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 그러신다. 불리해질 때만 시무룩해하지 마요.”

“그런 게 아니란다. 그러니 가고 싶은 마탑으로 가거라.”

“아버지가 그런 표정 짓고 계시는데 매정하게 등 돌릴 순 없잖아요. 하아, 내가 정말 못살아. 알겠어요. 프랑크 마탑에 입학할게요. 그러면 되죠?”

“괜찮겠느냐?”

“할 수 없죠. 아버지 한숨 쉬는 모습 보고 떠난 후에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요? 그러니 제가 한발 물러나야죠.”

“고맙다, 레이아. 어휴,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쁜지 모르겠구나.”

“아, 진짜! 징그럽게 왜 이래요! 저리 가요!”

그란데 백작의 예상대로 루크는 순풍을 탄 배처럼 일사천리로 위를 향해 가고 있다.

몇 년 만에 자신과 동일 선상으로 올라섰으니, 조만간 아예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전에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둬야 한다.

본인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루크를 겪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란데 백작도 그랬으니까.

레이아라면 천재 마법사에 엘리나에게도 뒤지지 않는 미모를 자랑하니 절대 꿀리지 않을 터.

절대 자신의 딸이라서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다.

진짜로 말이다.

* * *

“루크 남작님이 돌아오셨다!”

“남작님이라니 무슨 결례를! 이젠 백작님이라 불러야지!”

“백작님 만세! 백작님 만세!”

드래프트 영지에서도 환영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영주가 이름을 떨친 것도 모자라 백작으로 승격하기까지 했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으랴.

골디브의 환영 인파보다 숫자가 더 적음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드래프트 영지가 훨씬 뜨거웠다.

오랜 원정을 마치고 저택에 복귀하자, 이번에는 드골이 집무관들과 함께 루크를 성대하게 맞이해 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작님.”

“백작.”

“아, 네! 백작님! 전쟁 내내 소식이 여기까지 들려왔습니다. 승전보를 들을 때마다 모두 제 일처럼 기뻐했지요.”

“예정된 일을 처리한 게 전부야.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

“하하하, 역시 남작님이십니다. 이름을 떨치고도 그리 담담히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다.”

“백작, 백작.”

“아차! 수십 년을 불러 왔더니 좀처럼 새 호칭이 입에 안 붙는군요.”

“거울 보면서 연습이라도 해. 그리고 마차 안에 보면 서류 뭉치가 있을 거야. 이번에 받은 황금을 공적에 따라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배부할 거니까 집무실에 옮겨 둬.”

“오자마자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목욕물과 식사를 준비해 두었으니 오늘… 아니, 며칠 정돈 푹 쉬시지요.”

“쉰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잖아? 잔말 말고 서류 들고 올라와.”

“남작님! 제발 쉬십시오!”

“백작이라고 부르라니까.”

* * *

복귀한 이후에도 루크는 쉬지 않고 포상 분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살아서 돌아온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적절한 금액의 황금과 비단을 지급했고, 전사자들은 유공자로 처리하여 3대가 막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적절하게 조치를 취했다.

보상을 분배하던 중 낭보가 하나 날아들었으니.

마탑이 완공되어 다가오는 여름부터 당장 수업을 실시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전에 학생 모집을 미리 해 두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영지 내외에서 많은 학생이 입학 원서를 넣었다고 한다.

이미 기숙사에 입주하여 단기 강습을 듣는 자도 있고, 마탑 바깥에서 따로 숙소를 구하여 통학을 준비하는 자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외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마탑 주변의 상권이 활성화되었다.

루크는 날을 잡아 완공된 마탑을 둘러보고자 직접 방문하였다. 오즈를 비롯한 마탑 운영 위원회가 루크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허허허, 남작님이라 부르려다 백작님이라 부르려니 어색하군요.”

“시설은 좀 어떠합니까?”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최고입니다. 시설만 따지면 왕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겠지요. 이걸로 이제 저도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로선 학장께서 비행 부대 대장 자리를 좀 더 맡아 줬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허허허! 늙은 몸 이끌고 언제까지고 분에 넘치는 자리를 꿰차고 있을 수야 있겠습니까? 할 만큼 했으니 박수 칠 때 떠나는 것도 세상 사는 요령 아니겠습니까.”

“후계자를 키워 준다던 약속은 잊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이번 기수에 대단한 학생 한 명이 입학을 신청했더군요. 천재 마법사라 불리는, 여러 마탑에서 탐내던 아이인데 저희 마법 학부에 원서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유망주가 꽤 많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루크는 엘리나와의 소문으로 유명해졌지만, 남부럽지 않은 공을 세우며 군사적으로 뛰어난 영주임을 입증했다.

특히 프랑크 마탑을 졸업한 마법사는 삼색제비 부대에 입단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핀 라이더나 와이번 라이더와는 궤를 달리하는 비행 부대인 만큼 입단하기만 해도 이름을 떨칠 기회가 보장된다.

마법사 유망주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모여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루크는 마탑 부지를 거닐며 앞으로 자신이 거치게 될 교육 과정을 물었다.

“전 어떻게 수업을 받으면 됩니까? 다른 학생들처럼 수강 신청을 하면 되는 겁니까?”

“그랬다간 일반 학생들이 부담되지 않겠습니까. 낮에는 업무를 보시고, 저녁에 제 연구실로 오셔서 제게 개인 강습을 받으시지요. 백작님도 바쁘신 몸이니 그게 나을 겁니다.”

“마탑에 지원하기로 했던 마나 영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부할 생각인지 듣고 싶군요. 약초꾼들을 시켜서 캐온 물건이 상당수 쌓여 있는 걸로 아는데 말입니다.”

“우선 기존 비행 부대 마법사들에게 배부해서 경지를 끌어올리고, 앞으로 비행 부대에 입대하고 싶은 희망자만 입대 희망자 전형으로 분류하여 마나 영약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나중에 구체적인 계획서를 작성해서 저택으로 보내 주십시오. 검토하고 승인을 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오신 김에 맛보기로 제 연구실에서 기초를 수련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몸 내부에 서클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 지금부터 기초를 수련해 두시면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시간은 돈이라 했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기초를 익혀 두면 수련 기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요즘은 개인 수련 시간 때 명상만 하고 있으니 비는 시간을 이용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연구실로 안내해 주십시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들어와 있는 이 건물이 연구동입니다. 제 연구실은 맨 위층에 있지요. 먼저 올라가 계십시오. 전 창고에 들러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겠습니다.”

루크는 오즈 일행과 떨어져서 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정식으로 개방하기 전이라 그런지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층마다 마련되어 있는 연구실도 배정 전이라서 달려 있는 명패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때 복도를 거닐고 있는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좀처럼 사람들이 고르지 않는 남색의 로브를 걸친, 반짝이는 은발과 백설처럼 뽀얀 피부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여인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아이참, 아까 거기서 기다릴걸. 괜히 길만 잃었네. 사람이 없으니 길을 물을 수가 있어야지.”

루크는 여인의 인상이 왠지 낯설지 않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떠올렸다.

“혹시 예전에 그란데 백작령에서 만나지 않았었나?”

예전에 청문회 때문에 골디브로 올라갈 때 잠깐 마차에 태워 준 여자였다. 워낙에 인상적인 외모인지라 그때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여인도 루크를 알아보았는지 반가워하는 기색을 띠었다.

“아! 그때 마차 태워 주신 분 맞죠? 여긴 웬일이세요? 혹시 그쪽도 여기 입학하시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