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56화 (56/200)

# 56

56화 까마득한 역량(2)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잠시 마차에 태웠던 사람과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쪽도’라고 칭한 시점에서 그녀 또한 입학할 예정인 마법사임을 알 수 있었다.

루크는 그녀와 악수를 나누며 말을 꺼냈다.

“입학이라기보다는 아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마법을 배우기로 해서 말이야. 그 후로 부모님이랑은 어때?”

“부모님요? 아~ 그때 아버지랑 싸웠다고 했죠. 금방 화해했어요. 자주 싸우지만 또 금방 풀거든요.”

“그거 다행이군. 계실 때 효도하는 게 좋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때가 오면 후회만 남으니까.”

씁쓸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금세 무슨 의미인지 눈치채곤 유감을 표했다.

“유의할게요.”

“아, 이거 괜한 말로 신경 쓰게 했나 보군. 미안하게 됐어.”

“아뇨,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요, 뭘. 오히려 제 일 때문에 유감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근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입학식은 다다음 주로 알고 있는데.”

“뒤늦게 추천으로 입학하게 된 거라서 기숙사를 신청 못 했거든요. 방 잡으러 온 김에 견학이나 해 볼까 해서 들어왔는데 길을 잃어서요.”

“정문으로 나가려면 저기 있는 심벌을 보고 걸으면 돼. 심벌까지만 가면 정문이 보일 거야.”

“감사합니다. 저번에 마차에 태워 주신 것도 그렇고, 한 번은 보답해야 할 것 같은데…….”

“신경 쓸 거 없어.”

“아까 마법을 배우기로 하셨다고 그랬죠? 혹시 이제 입문하시는 건가요?”

“맞아, 기초부터 배우기로 했지.”

“혹시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이번에 구한 숙소 주소를 적어 드릴게요.”

여인은 로브 안에서 수첩과 연필을 주섬주섬 꺼냈다. 수첩의 끄트머리가 닳은 것과 각종 메모와 일정 등이 빼곡하게 적힌 것에서 그녀가 꼼꼼한 성격임을 엿볼 수 있었다.

부욱!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찢어 내미는데, 얼굴에 사심이라곤 일절 섞여 있지 않았다.

순수하게 감사의 표시로 마법을 가르쳐 주고자 주소를 알려 준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서 티 한 점 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 나왔다.

프랑크 마탑 최고의 마법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데 일개 학생의 의견을 물을 일이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내미는 종이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찾아갈 마음은 없으나 안 받는 것도 손부끄러운 일이고 하니 예의상 받아 두었다.

“가르쳐 주겠다고 할 정도면 마법에 꽤 자신이 있나 본데?”

“후후, 자신이 없으면 추천으로 입학하지 못했겠죠?”

“그것도 그렇군.”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열심히 하세요.”

여인은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여인과 교차하듯 오즈가 텔레키네시스로 큼직한 나무 상자 하나를 운반하며 2층으로 올라왔다.

오즈는 한참 전에 올라갔어야 할 루크가 아직도 2층에 있는 걸 보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안 올라가셨습니까?”

“아는 얼굴을 마주쳐서 말입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느라 서 있었습니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주소까지 받았는데 이름을 모르는군요. 뭐, 상관없겠지요.”

“응? 얼굴이랑 주소까지 아는데 이름을 모르면 어떤 사이인 겁니까?”

“글쎄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죠. 자, 올라갑시다.”

먼저 성큼성큼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루크를 뒤따라가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즈였다.

* * *

은발의 여인 레이아는 연구동에서 나와 저 멀리 솟아 있는 마탑의 상징인 탑을 향해 걸었다.

상징 탑의 주변을 따라 도로가 교차로 형태로 닦여 있었다. 레이아가 길을 건너자 급사 차림의 한 여성이 그녀를 보고 냉큼 달려왔다.

“아가씨! 휴우, 다행이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요?”

“미안, 파냐. 기다리기 지루해서 좀 걸었는데 길을 잃을 줄은 몰랐어.”

“배고프다 하셔서 먹을 거 사 왔더니 안 계셔서 엄청 당황했어요. 납치라도 당하신 줄 알고 경비병 부르려 했다니까요.”

“하여간 파냐는 일일이 호들갑이라니까. 내가 어디 가서 납치당할 사람으로 보여?”

“지금이야 훌륭한 마법사시지만 예전에는 아가씨를 노리는 무뢰한이 어디 한둘이었어요? 어린 시절도 그 정도였는데 지금도 덜하진 않죠. 제발 좀 자기 외견이 어떤지 자각해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진정해. 그러다 숨넘어갈라.”

“아무튼 조심해 주세요. 아가씨께 무슨 일이 생기면 백작님을 볼 낯이 없어져요.”

보기 드문 은발과 타고난 우윳빛 피부, 간간이 내비치는 백치미까지.

의도치 않게 남심을 자극하는 외견과 행동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갖은 곤혹에 시달렸던 그녀이다.

그란데 백작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감히 유괴나 감금 같은 짓을 시도하는 자는 없었지만 과격하게 구애하는 자는 많았다.

그중 최고봉은 두말할 것도 없이 드래프트 영지의 영주였다.

레이아는 당시 루크에게 당한 악질적인 각종 구애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무뢰한이라고 하니까 여기 영주가 떠오르네. 아버지도 참 무심하시지. 나한텐 트라우마인데 알아주시질 않는다니까.”

“여기 와 보니까 영지민들 모두 존경하던데요, 뭘. 그리고 이젠 유명해지셔서 보는 눈이 있으니 예전처럼 행동하진 않으실 거예요.”

“아버지 말씀처럼 이젠 나 같은 건 눈에 안 차면 좋겠는데 말이야. 솔직히 마탑 시설은 꽤 마음에 들었거든. 크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어.”

“괜찮겠죠. 무슨 일 있으면 제가 지켜 드릴 테니, 염려 마세요.”

파냐는 급사 차림을 하고 있지만, 레이아의 개인 시종 겸 호위 기사였다. 마나유저 상급의 경지이기에 실력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파냐가 가슴을 탕탕, 치며 지켜 주겠노라고 장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정문을 통해 빠져나가려던 찰나, 레이아가 문득 아까 만난 사내를 떠올리며 밝은 미소를 띠었다.

“아 참, 마탑 부지 안에서 그 사람 만났어.”

“그 사람?”

“그, 왜 예전에 나 마차 태워 준 사람 있다고 말했잖아.”

“아~ 친절하다고 극찬하시던 그분 말인가요?”

“응, 그 사람도 여기서 마법을 배운다더라고. 세상 참 좁지? 이런 걸 보면 운명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아가씨? 그건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응? 그냥 운명인 사람은 약속 없이도 만나게 되는구나 싶어서 한 말인데, 그게 왜?”

발언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 채로 백치미를 한껏 발하고 있다.

파냐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가씨는 좀 더 단어를 골라서 얘기하는 법을 배우셔야겠어요.”

“에이, 괜찮아, 괜찮아.”

“하아, 그란데 백작님이 멀리 보내지 않으려고 하시는 이유를 알겠네요.”

* * *

오즈의 연구실은 굉장히 깔끔했다. 모든 도구가 용도에 따라 착착 분류되어 있었으며, 책장의 책들은 일일이 덮개를 씌워서 흠이 생기지 않도록 착실히 보관하고 있었다.

결벽증이 의심되는 깔끔한 환경 속에서 루크는 연구실 중앙의 소파에 앉았다.

“의외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성격이신가 보군요.”

“제가 아니라 집사람이 찾아와서 정리해 줬습니다.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죠.”

“아주 그냥 깨가 쏟아집니다.”

“허허허, 백작님도 슬슬 생각해 보시지요. 결혼하면 좋습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동반될 때의 이야기지만요.”

“잡담은 이쯤하고, 마법 수련을 시작해 보죠. 그랜드마스터로 향하는 길을 연구하고 계셨다고 하니 그 부분부터 들어 볼까요.”

“그 전에 백작님께서 마법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압니다. 몸 안의 마나 회로를 꼬아서 서클을 만든 다음, 공식에 따라 마나를 배열하는 기술이잖습니까.”

“음, 딱 일반 상식만 알고 계시는군요. 아예 처음부터 말씀드리는 게 이해하시기 편할 겁니다.”

오즈는 연구실 한편에 있던 녹색 칠판을 끌고 와 루크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고는 석고로 만든 분필로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따박따박따박!

분필로 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면서 오즈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백작님도 아시다시피 마나유저는 몸에 깔려 있는 마나 회로를 기존 형태 그대로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회로가 상체 왼쪽에 쏠려 있으면 왼쪽의 마나를 회전시키고, 오른쪽에 쏠려 있으면 오른쪽의 마나를 회전시키죠. 하지만 마법사는 다릅니다.”

마법사는 몸 안의 마나 회로를 인위적으로 움직여서 심장 주변에 두른다. 이때 마나 회로의 형태를 동그라미로 만들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서클’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마나 회로의 길이가 길수록 원의 개수가 많아지고,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이 늘어날 때마다 원이 하나씩 활성화된다.

원형 마나 회로가 1개 활성화되면 1서클, 2개 활성화되면 2서클, 3개 활성화되면 3서클 순으로 경지가 오르는 것이다.

첫 번째 원보단 두 번째 원이, 두 번째 원보단 세 번째 원이 더 크기 때문에 경지가 오를수록 더 많은 마나가 요구된다. 그래서 시간 역시 오래 걸린다.

오즈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보통 마검사들은 마나 회로 일부만 움직여서 심장 주변에 서클을 두르지요. 그래서 원래는 마나유저 상급이 될 것을 마나유저 중급까지만 오르는 대신 3서클 마법을 얻게 되는 겁니다.”

“잠깐, 만약 제가 마법을 배우게 되면 지금 가진 마나 회로를 마법 분야로 할당해야 한다는 건데, 기존의 마나유저 경지를 감소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그렇단 얘기지요. 백작님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마나 회로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으십니다.”

“대충 구조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마법사의 구조가 어떻게 그랜드마스터의 경지로 이어지는 겁니까?”

“자,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보통은 심장 주변에만 서클을 만들지요. 하지만 이 서클을 아예 상체 전체에 두르듯이 원을 만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서클의 크기가 커지겠지요.”

“아뇨, 아뇨. 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상체 전체에 서클을 두르면 몸에 마나 회로가 펼쳐져 있는 마나유저의 특성과 마나 회로를 원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마법사의 특성이 동시에 충족되지요. 원래는 별개일 수밖에 없는 특성이 하나로 합쳐져 또 다른 법칙을 낳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날 법칙이 그랜드마스터의 경지란 말씀이십니까?”

“네,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다만 이 방법을 실제로 입증하려면 마나 회로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백작님 외의 다른 사람은 시도조차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실험해 본 적이 없으니 부작용도 알 수 없겠군요.”

“부작용은 있을지 없을지 모릅니다.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성공하면 새로운 법칙이 생기는 것만은 확실하게 자신할 수 있습니다. 백작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위험을 무서워해서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는 게 많다면 높은 위험 따위가 무슨 대수랴.

여태까지 위험한 거 따져 가면서 일을 시도했나?

루크는 신발을 벗고 소파에 책상다리로 편히 앉았다.

“성공하면 무조건 그랜드마스터가 보장된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죠. 자, 시작해 봅시다. 마나 회로 움직이는 법부터 알려 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