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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57화 (5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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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까마득한 역량(3)

“먼저 마나 회로 끄트머리에 마나를 집중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나 회로의 안쪽 벽을 밀어내듯이 마나를 움직이셔야 합니다. 백작님은 마나 회로가 한자리에 정착한 지 오래되어서, 아마 옮기실 때 통증이 발생할 겁니다. 못 버티겠다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마나유저든, 마법사든 어릴 때부터 경지를 개척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나이를 먹으면 마나 회로에 노폐물이 쌓이고, 마나 회로가 정착하여 움직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루크의 경우 마나 호흡을 틈틈이 하여 노폐물은 쌓여 있지 않다. 다만 마나 회로가 현재의 위치에 정착한 지 오래되어 움직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오즈의 말에 따라 마나를 마나 회로의 끄트머리로 보내어 벽을 밀어내듯 움직였다. 처음에는 고통이고 나발이고 마나가 회로 끝에서 맴돌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마나 호흡을 반복하며 마나를 운용하였으나 마나 회로는 꿈쩍할 생각이 없었다.

안간힘을 쓰는데도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니 갑갑할 따름이었다. 마치 가위에 눌려 몸이 1밀리미터조차 움직이지 않을 때의 기분과 매우 흡사했다.

루크는 마나 운용을 멈추고 한숨을 돌릴 시간을 가졌다.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군.”

책상에서 각종 말린 약초와 버섯을 절구에 넣고 으깨던 오즈가 몸을 돌렸다.

“나이 스물이 넘어서 마나 회로를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숙달된 마법사도 서클 하나를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편이니,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장 주변에 작은 원을 만드는 데도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숙달된 마법사조차 그런데 처음 시도해 보는 루크는 오죽하랴.

서클을 만드는 데 1년, 주문을 익히며 서클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한참 걸려 그동안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서클 생성, 주문 습득, 서클 활성화.

이 세 가지를 병행하며 경지를 익히는 게 마법사의 성장 과정이었다.

수련하는 과정 자체는 마나유저와 썩 다를 것도 없다. 마나유저도 검술 수련, 마나 호흡을 병행하면서 경지를 끌어올리니까.

방법이 다를 뿐이지, 여러 가지를 병행하며 단련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루크는 상체 전체에 서클을 가득 채워야 하니 최소한 6, 7개의 원을 만들어야 할 터. 아니, 정확히는 서클을 만든 뒤에 활성화까지 시켜야 하니 최소 10년에서 20년은 걸릴 것이다.

루크는 그때까지 기다릴 만큼 느긋하지 않았다.

“10년 이상 수련만 할 순 없는 노릇이고, 제가 보기에 오즈 학장께서 따로 준비한 게 있는 걸로 보입니다만.”

“허허허, 개인적으로 백작님의 그 눈치 빠르신 점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마침 준비가 끝났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즈는 가루를 낸 약초와 버섯을 거름망에 올려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었다. 태운 콩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내리는 커피처럼 시커먼 액체가 컵 안을 가득 채웠다.

오즈는 공을 들여 우린 물을 루크에게 내밀며 말했다.

“각종 마나 영약과 약초를 배합하여 만든 특제 비약입니다. 마시면 마나 회로에 조금이나마 유연성이 더해질 겁니다. 마신 후에 다시 마나를 운용해 보시죠.”

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자 세상의 모든 쓴 것을 다 합친 듯한 맛이 엄습했다.

마치 묵은 파를 갈아서 그 위에 겨자를 잔뜩 뿌린 다음, 한꺼번에 입에 쑤셔 넣은 느낌이다. 쓴맛과 알싸함 때문에 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호들갑 떠는 성격은 아닌지라 얼굴에 힘을 잔뜩 주어 간신히 무표정을 만들었다.

“다음엔 꿀이라도 섞는 게 어떻겠습니까?”

“배합이 어긋나면 효과가 감소해서 말이죠. 몸에 좋은 건 입에 쓰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맛없더라도 참아 주십시오.”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혹시 일부러 쓰게 만든 건 아니겠지요?”

“허허허! 무서운 소리 마십시오. 백작님께 먹을 걸로 장난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전 간이 작아서 엄두도 못 냅니다.”

“그런 것치곤 아쉬워하는 것 같습니다만?”

“내심 백작님의 오만상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긴 했지요. 허허허, 이 별 볼일 없는 늙은이가 난처해 할 말은 이쯤 해두시고 다시 마나를 운용해 보십시오. 요령은 아까같이 하시면 됩니다.”

오즈가 권하는 대로 루크는 다시 한 번 마나를 운용해 보았다.

마나를 마나 회로의 끄트머리로 보내어, 회로를 밀어내듯이 움직였다. 약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아까까진 움직이지 않던 마나 회로가 서서히 위치를 옮겨 가기 시작했다.

마나 회로의 움직임은 굉장한 고통을 유발했다. 흡사 가지런히 박혀 있는 생니를 뽑아내는 듯한 감각이다.

그것이 몸 안의 여린 속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상상해 봐라.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인 셈이다.

고통의 강도가 높은 나머지 루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윽.”

참는 것에는 익숙하다. 들끓는 복수심을 안고도 몇 년이나 참아 가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았으니까.

마나 회로의 끄트머리가 움직이자 이어진 부분도 뒤따라 움직였다. 여기서부턴 고통을 참는 것과 동시에 섬세한 조절이 요구되었다.

엉킨 실타래를 풀 때 힘으로 마구 잡아당기면 오히려 꽉 묶인다. 마나 회로도 마찬가지다. 회로끼리 엉키지 않도록 섬세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루크에 한해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결국 지혜의 고리를 풀듯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가면 될 일이다.

어디의 마나 회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일일이 파악하여 꼬이지 않는 길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회로 움직이는 속도를 늦춰야겠어.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길부터 찾고 그 뒤에 움직이는 게 나아.’

루크의 마나 운용 능력은 타인과는 궤를 달리했다. 통상적인 속도보다 몇 배는 더 빠르니 말 다 했다.

가지고 있는 마나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덕에 마나 회로를 운반하는 힘 또한 남들의 몇 배에 달하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밀어젖힐 때도 힘이 센 자가 더 빨리 움직이지 않던가.

게다가 오즈가 만든 특제 비약까지 먹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서클을 만드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또한 남들은 서클을 생성할 때 지루하고 힘들다 말하기 일쑤인데, 이상하게도 루크는 작업 속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수련은 실시간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위 중 하나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이 향상되어 가는 과정을 실감하는 것만큼 크나큰 쾌락이 있을까.

고통은 즐거움이 되고, 고됨은 보람을 부르니.

마나를 거듭 운용하는 동안 루크의 집중력은 더더욱 높아져 갔다.

한편 같은 연구실 안에 있던 오즈는 막간을 이용하여 개인 업무를 보았다. 이제 곧 개강이기 때문에 학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한데 시간이 흘러도 루크가 마나 운용을 풀질 않는다.

1시간, 2시간, 3시간…….

처음에는 1시간 만에 휴식을 취했는데, 두 번째부턴 몇 시간째 계속 마나를 운용하고 있다.

분명 시작할 땐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마당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루크가 수련 중인데 그 앞에서 냄새 풍기며 식사할 수 없어 간식용으로 가져다 놓은 땅콩을 한 알씩 입에 넣으며 오매불망 루크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가만히 루크를 지켜보고 있자니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그 끈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벌써 8시간째야. 보통 사람 같으면 1, 2시간만 집중해도 피곤할 텐데, 8시간을 집중하고도 흐트러짐이 없어. 이 높은 집중력이 판 짜는 능력의 기초가 되는 건가.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더니, 뒤에서 이만큼 노력하는 걸 보니 납득이 가는군.’

그래도 시간이 시간인 만큼 조만간 일어나겠지 싶어서 계속 기다려 보았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책장 앞에 서 있던 중 별안간 마나를 운용하던 루크로부터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니 먼저 돌아가십시오.”

말소리를 듣는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운용하는 와중에 말을 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마나 폭주로 이어져 크게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마나 운용이라는 행위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말은커녕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집중하느라 눈까지 감고 있잖은가.

한데도 마치 기다리다 지친 오즈에게 정확한 시점에 먼저 귀가하라는 말을 꺼내었다.

오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보았다.

“백작님도 이쯤 하시고 돌아가시지요. 식사 거르시면 몸 상합니다.”

“이제 막 탄력이 붙었으니 조금만 더 하다 가겠습니다.”

뭐? 이제 막 탄력이 붙어? 벌써 8시간이나 운용했는데?

마나를 운용하는 사람한테 계속 말을 걸기도 애매하고, 루크도 돌아가라고 하니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자리를 비워 주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오즈는 기가 찬 나머지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 나선 혹시나 방해될까 싶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먼저 퇴근길에 올랐다.

* * *

이튿날, 연구동에 도착한 오즈는 연구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한데 연구실 앞에 제랄드가 다크 서클이 진하게 늘어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군부대에서 생활하는 제랄드가 이른 아침부터 연구동에 있는 게 의아했다.

“오즈 학장님, 안녕하십니까.”

“자네가 아침부터 여긴 웬일인가?”

“말도 마십시오. 간밤에 백작님이 돌아오지 않으셔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뭐? 백작님이 저택에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네.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백작님을 찾느라 병사들까지 동원했지 뭡니까.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여기 계신 걸 찾았지요. 계속 탄력이 붙었다고 하시면서 움직이질 않으시길래 혹시 몰라서 계속 보초를 섰습니다.”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기껏해야 자정 전에는 돌아가시겠거니 했는데, 밤을 새울 줄이야.

밤새도록 집중력을 유지했단 말인가!

이쯤 되니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오즈는 경첩 소리라도 날까 싶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연구실 안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서 막 루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막 마나 운용을 마치고 일어난 참인가 보다.

“저… 백작님? 몸 축나실까 봐 겁납니다. 부탁이니 잠깐 휴식하는 거라고 말하진 마십시오.”

지금까지 보여 준 루크의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다시 마나를 운용하면 걱정돼서 어디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다행히도 마나를 더 운용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더 기가 차는 말을 내뱉는 루크였다.

“서클 하나 완성했습니다. 업무 보러 저택에 다녀올 테니, 이따가 저녁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죠.”

이해 범주를 까마득히 넘어선 루크의 역량에 오즈는 이제 놀라는 것도 지친 나머지 현기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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