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데메그리 교의 잔재(1)
개강 시즌이 되면서 마탑 안이 활기찼다.
드래프트 영지 내에 있는 아카데미 졸업자부터 시작하여 외부 영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까지, 그 숫자가 무려 1,000명에 이른다.
모두가 마법사인 건 아니다. 프랑크 마탑은 마법 학부, 인문 학부, 의예과, 교육과, 연금술과, 경영과를 운영하고 있다.
학부가 2개, 학과가 5개이며 분야마다 진로가 다르다. 지금은 1,000명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학생이 입학 및 편입될 것이다.
드래프트 영지에서 해마다 많은 지원금을 내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학비가 싼 편이기도 하고, 여전히 드래프트 영지는 고급 인력이 부족한지라 취직률이 높은 것은 물론, 취직 후의 대우 또한 좋은 편이다.
더불어 마탑은 학문의 장이면서도 청춘을 꽃피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편인데, 그중에서 20대의 비율이 8할을 차지한다. 한창 혈기가 들끓는 나이의 젊은이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지내게 된 참이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난 젊은 피가 공부만 하길 허락하겠는가.
귀족은 귀족가 출신끼리.
“이번 주말에 플램 강에서 축제한다는데, 갈래? 마차는 내가 준비해 둘게.”
“오늘 공강이란다. 내기 승마나 하러 가자고.”
“죄송해요, 저 만나는 사람 있어요.”
평민은 평민 출신끼리.
“학습실 자리 잡아 놨어? 과제 내주신 거 확인해 보니까 지금부터 해야겠던데.”
“저녁에 주점에서 한잔할 사람? 마탑 후문에 무제한 감자튀김집 있더라. 거기 가서 맥주나 한 잔 꺾자.”
“편지 보내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저 지금은 학업에만 전념하고 싶어서요.”
놀러 가자는 사람, 공부하자는 사람, 술 마시자는 사람, 그 와중에 차여서 1패를 적립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 말고도 마탑에 활기를 더해 주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차였다.
귀족 출신들은 기숙사가 아닌 따로 임대받은 집에서 마차를 타고 통학한다. 그 때문에 마탑 정문을 지나면 나오는 상징탑 교차로 주변에는 항상 많은 마차가 오가고 있었다.
오늘도 많은 학생이 마차를 타고 통학 혹은 귀가를 하고 있는 가운데, 검은색 마차 한 대가 마탑에 들어섰다.
겉보기엔 수수하나 이너프 산맥을 편히 건너기 위해 개조된 특수 마차.
마차 안에 타 있는 건 역시나 루크였다.
마차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일반 학생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연구동 앞에서 멈춰 섰다.
평소엔 주 1회, 많을 땐 주 3회가량 연구동에 들러 오즈에게 마법 개인 강습을 받고 있다.
“오셨습니까, 백작님? 일주일 만이던가요?”
“저번에 목요일에 왔으니까 딱 일주일 만이지요. 저번에 알려 준 기본 주문 영창을 익혀 봤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상한 점 있으면 바로 말해 주십시오.”
“역시나 빠르시군요. 어디 한번 봅시다.”
루크는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펼치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공식에 따라 허공에 마나를 배열하며 주문을 영창했다.
“라이트!”
힘찬 영창과 함께 손바닥 위에 빛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1서클 마법의 하나이자 마법사가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라이트 마법’이었다.
빛의 구체를 만들어 어두운 곳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부여하는 마나의 양에 비례하여 조명의 세기가 강해진다.
마나를 배열하는 공식이 무척 간단해서 서클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기본이라 불리는 마법이기도 했다.
루크가 생성한 빛의 구체는 1서클 마법사가 시전한 것치곤 너무 밝았다. 마치 거울로 태양 빛을 반사하여 사람 얼굴에 비춘 양 눈이 아릴 정도이니 말이다.
오즈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됐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마법을 해제하십시오.”
“적당히 부여한 건데 눈 부셨습니까?”
“후우, 적당히라고 말씀하시기엔 너무 많이 부여하셨습니다.”
“전문가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제대로 쓴 것 같습니까?”
“일단 마나 배열에는 익숙해지신 모양이군요.”
“업무 끝나면 항상 연습했으니 말이죠.”
“안 그래도 드골이 어제 한잔하면서 말해 주더군요. 밤마다 수련실에서 불빛이 번쩍여서 모두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음, 미리 말해 줬으면 막을 설치했을 텐데.”
“열심히 하시는데 의욕을 깎을까 봐 나름대로 배려한 것이겠지요. 다음 단계로 이 공식들을 완벽하게 외워 오십시오.”
“다른 주문을 익힐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까?”
“라이트 마법은 어디까지나 마나를 배열하는 감각을 익히기 위한 연습용 주문입니다. 그래서 공식도 일반 수학 수준이지요. 여기 공식 책자를 드리겠습니다. 책에 수록된 공식은 하위부터 상위 서클까지 꾸준히 사용되는 공식들이니 완벽하게 외워 주십시오.”
“제법 두껍군요.”
“참고로 마법 학부에서도 무조건 100점을 받아야 다른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백작님도 예외는 아니니 따로 쪽지 시험을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책의 두께가 제법 두꺼운 것에서 공식의 분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표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해 보니 글자가 오와 열을 맞추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개중에는 공식을 나타내는 각종 기호가 나열되어 있어 공부가 싫은 사람에겐 좋은 수면제가 될 것 같은 책이었다.
그러나 루크에겐 모처럼 생긴 취미를 더 심도 있게 즐기게 해 줄 안내 책자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 분량이면 4일? 5일? 아마 일주일도 채 안 걸릴 것 같습니다만.”
“아뇨, 아뇨, 아뇨, 느긋하게 천천히 외우십시오. 외웠다고 덮지 말고, 의식하지 않아도 머리에서 바로바로 튀어나와야 하니 시간을 들여서 진득하게 외우는 게 좋습니다.”
“드골이 또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러십니까?”
“드골 때문이 아니라 제가 부담스러워서 그럽니다. 너무 빨리 밑천을 털어 가시면 평생 마법에 매진해 온 세월이 허무해질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럼 3일 만에 외워 드리죠.”
“허허허! 농담입니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백작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취월장하시는데 기쁘지 않을 영지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밑천이 금방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긴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책자만 받아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예정보다 빨리 개인 강습이 끝났기에 막간을 이용하여 마탑의 현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나오면서 살펴보니 귀족과 평민들이 따로 다니더군요. 귀족과 평민 사이에 갈등은 없었습니까?”
“없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출신이 다르니 생각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다른 곳처럼 뒷돈 받고 누굴 봐준다거나 그러진 않으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확실히 아카데미랑 다르게 자유로운 분위기라 그런지 대부분 활기차게 지내더군요.”
“그것도 있지만 다음 주에 설립 기념 축제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남녀 커플로 참가하고 싶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한몫하고 있지요. 행사 때, 백작님께서도 연설을 하기로 하셨다지요?”
다음 주에 그간 미뤄 두었던 설립 기념 축제가 벌어진다.
마탑 내부의 행사는 대개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참가하는 편이다. 혼자서 참가해도 상관없긴 하나 오래전부터 어느 마탑이든 남녀 커플로 참가하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를 잡아서 혼자 참가하면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남들이 파티장에서 왈츠를 출 때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훌쩍거리는 꼴을 면하기 위해서 모두 필사적으로 파트너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스케줄이 있다고 듣긴 했었습니다. 그게 다음 주였습니까?”
“네, 기왕이면 백작님도 페어로 참가하시지 그러십니까.”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럴 상대도 없습니다.”
“허허허, 그거 아쉽군요. 아무튼 그 책자랑 같이 연락용 마법 수정구도 챙겨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질문 하나 하려고 백작님께서 여기 오시는 것도, 제가 저택으로 가는 것도 비효율적이겠지요. 공식 외우시다가 모르는 부분이 생기시면 마법 수정구로 연락 주십시오. 상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 * *
루크는 마법 공식이 적힌 책자와 연락용 마법 수정구를 챙겨 마차에 올라탔다.
책자와 수정구를 좌석 밑의 수납장에 고이 넣어 두고 여느 때처럼 창틀에 팔을 기대어 턱을 괴었다.
마차는 마탑을 빠져나와 플램 강가를 달려서 저택으로 향했다.
강 건너편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플램 강은 어업, 관광업 등등 여러 용도로 영지민들에게 자연의 혜택을 선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구의 삼각주 개발까지 진행되고 있어서 선박 산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었다.
노를 젓는 사공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뱃노래를 읊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방망이질이 추임새를 넣으며 멱을 감으러 나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강가에 운치를 더한다.
한창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하구 쪽에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 사이에는 제랄드가 서 있었다.
군부대에 있어야 할 제랄드가 병사를 끌고 출동한 것에서 사건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마차 세워.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루크는 둑을 타고 내려갔다.
강둑 아래에서 루크를 발견했는지 제랄드를 비롯한 모든 병사가 각을 다잡으며 예를 갖췄다.
“안녕하십니까, 백작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안 그래도 백작님께 보고 드리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이걸 봐 주십시오.”
제랄드가 옆으로 물러나며 강가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 한 구를 보여 주었다.
시신의 모습이 꽤나 독특했다. 적어도 인간의 시신은 아니었다.
전신이 곤충처럼 단단한 흑색 외갑으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에는 다수의 기다란 뿔이 돋아나 있었으며, 하체에는 문어처럼 8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다.
게다가 입안에는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무수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두 팔은 바스타드 소드처럼 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생물체의 모습에 루크가 의문을 표했다.
“처음 보는 생물체군. 정체는 알아냈나?”
제랄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괴물의 정체를 읊었다.
“이런 생김새의 몬스터는 없는 걸로 압니다. 감히 추측하건대, 마물의 일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단 두 부류만이 괴물로 분류되고 있다.
하나는 태어난 본연의 모습 그대로 호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몬스터란 족속이다. 그리핀이나 와이번, 오우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하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사람의 내장을 탐하는 교활한 족속이다. 오래전 데메그리 교란 마족을 섬기는 이교도들이 흑마법을 통해 탄생시킨 인위적인 괴물, 그것이 바로 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