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59화 데메그리 교의 잔재(2)
대륙에 있는 모든 인간의 왕국은 아슈타르 교를 국교로 선정하고 있다. 번영과 평화라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데메그리 교는 본능과 욕구를 신조로 삼아 마족을 섬기는 종교다. 살아 있는 것의 살점과 피를 제물로 제를 올리고, 금기로 지정된 흑마법을 익히는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왕국이 즉각 제재에 들어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소탕되어 사라진 줄 알고 있다. 한데 그들의 잔재인 마물이 영지 내에서 발견되었다.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었다.
루크는 즉각 마물의 시신을 마탑으로 옮겨 오즈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라고 시켰다. 그러고는 저택으로 돌아와 제랄드로부터 사건의 경과를 보고받았다.
“발견된 마물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봐.”
“첫 목격자는 바다 모래 부족의 오크 어부였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데 마물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왔다고 하더군요. 발견 당시 이미 숨은 끊어져 있었고, 저희가 물에서 건져 낸 참에 백작님이 도착하신 겁니다.”
“바다에서 밀려왔다면 하구 근처에서 인간을 행세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일 수도 있겠군. 마물에게 습격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은 없었나?”
“아직까진 없었습니다.”
“오래전에 각국이 데메그리 교를 박멸하면서 마물의 씨도 마른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바퀴벌레도 박멸한 것 같은데도 어디선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는지요.”
“바퀴벌레는 한 마리 발견하면 여러 마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했지. 영지 내에 다른 마물이 인간을 행세하면서 숨어 있을 수도 있어. 신고를 받고 움직이면 늦으니 마물을 감별해 낼 방법을 알아봐.”
“알겠습니다.”
마물을 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마물이 나타났는지 원인을 규명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우연히 흘러든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투입한 것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감별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박멸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문제가 커진다. 뒷배가 존재한다면 지속적으로 마물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으니 뒷배를 잡아야 한다.
데메그리 교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데메그리 교와 연관된 모종의 세력이 존재할 것이다.
제랄드에게 수사를 지시하려던 찰나, 소형 쿠션에 올려 두었던 마법 수정구가 깜빡거리며 빛을 발하였다.
오즈가 마물의 시신을 분석한 결과를 보고하려나 보다.
개인 강습을 위해 전해 받은 수정구를 이런 식으로 먼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법 수정구에 손을 올려 마나를 부여하자 수정구 내부에 오즈의 얼굴이 송출되었다.
[가져오신 마물의 시신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수정구를 통해서 말씀드리기보다는 직접 오셔서 눈으로 확인하시는 게 나을 것 같으니, 번거로우시더라도 다시 마탑에 방문해 주십시오.]
* * *
오즈의 요청에 따라 루크는 오늘 두 번째로 마탑에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과 다르게 이번에는 마차의 속도를 한껏 올려 급하게 연구동으로 갔다.
계단을 두 개씩 밟으며 성큼성큼 올라 연구실에 들어가자 오즈가 심각한 얼굴로 루크를 맞이해 주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백작님. 수정구로는 상세히 전해 드릴 사항이 아니라 직접 오셨으면 했습니다.”
“상관없으니 보고부터 해 주십시오.”
오즈는 실험대 위에 올려 둔 나무 상자의 뚜껑을 젖히며 내용물을 하나씩 꺼냈다. 상자에서 작은 가방과 화폐, 찢어진 옷가지 등이 나왔다.
“일단 이건 마물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입니다. 가방 안에는 평범한 여행자 물품만 있더군요. 아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방랑 마물이었을 겁니다.”
“그걸론 누군가가 일부러 마물을 영지에 투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만한 증거론 부족합니다. 좀 더 상세한 분석 결과는 없습니까?”
“염려하시는 부분은 알고 있지만, 일부러 투입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 이 화폐를 보십시오. 소금기 때문에 다소 부식되긴 했어도 문양의 패턴을 보면 하니온 왕국의 화폐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다 건너 섬나라인 하니온 왕국에서 활동하다가 죽은 시신이 여기까지 흘러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래프트 영지 서쪽 해협을 건너면 겐크 왕국만 한 크기의 섬나라가 나타난다. 섬나라에선 최근까지 프라임 왕국과 하니온 왕국이 전쟁을 벌였다.
예전에 오크 평야를 평정하고 대량의 식량을 생산하게 되면서 막대한 양의 곡식을 프라임 왕국에 수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프라임 왕국의 난민을 대거 실어 와서 정착시킨 이력이 있다.
끝내 프라임 왕국은 하니온 왕국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지금은 해협 건너의 섬나라 전체가 하니온 왕국의 땅이 되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 영지에 마물을 투입한 건 아닌 듯하니 뒷배 걱정은 한시름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이미 제랄드에게 마물을 감별할 방법을 찾으라고 해 뒀으니 오즈 학장께서도 협조해 주십시오.”
“아마 창고를 뒤져 보면 예전에 데메그리 교 소탕 때 토벌군에게 제공했던 마법 물품이 남아 있을 겁니다. 조금만 손보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 그걸 배부하겠습니다.”
의도하고 투입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우연히 떠밀려 온 것이라면 더 이상 영지 내에 잠입해 있는 마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진하게 남긴 한다.
아직 하니온 왕국에 데메그리 교의 잔당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소탕되지 않은 마물들이 숨어 있다가 이제야 발각되어 죽은 걸까?
오즈는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휘말려 진이 다 빠졌는지 한숨을 돌리고자 의자에 앉았다.
“휴우, 갑자기 마물이 발견되었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시신을 살펴보니 살아 있었다면 제법 위협적이었을 것 같더군요.”
“얼마나 강한 마물이었던 것 같습니까?”
“보통 마물들은 뿔의 개수에 따라 강함의 정도를 알 수 있지요. 이번에 발견된 마물은 뿔이 3개였으니 3성급 마물입니다.”
마물의 등급에는 1성급부터 5성급까지 있다. 뿔이 많은 5성급 마물이 가장 강하다.
이번에 발견된 3성급 마물은 마나유저로 따지면 마나유저 중급, 마법사로 따지면 4, 5서클에 준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
5성급 데메그리 교에서도 만들 능력이 없어서 역사상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데, 이론상으로는 마나마스터를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마물의 모습은 인간처럼 저마다 다르며 개체마다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 또한 제각각이라고 한다.
급한 불을 끄고 어느 정도 해명이 되었다 싶었는데 의외의 사고가 발생했다.
연구동에 있던 마법사 한 명이 급하게 오즈의 연구실로 뛰어 들어오며 위급 상황임을 알렸다.
“허억, 허억, 허억, 크, 큰일 났습니다, 학장님! 마물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마물의 시신이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저도 그게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큭, 분명 심정지가 된 걸 확인했는데… 설마 의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마물의 특수 능력 가운데 죽은 척하는 의태 능력도 있었다. 하니온 왕국에서 토벌당할 때 일부러 죽은 척하여 바다에 던져진 것이다.
더불어 바다를 떠다니는 동안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의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활동하기 좋은 장소에 도달하자마자 푼 것이 틀림없다.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면 무척 허기져 있을 터.
놈들은 오로지 인간의 내장으로만 기력을 채울 수 있으니 필시 인간을 사냥하러 나설 것이다.
마물도 수색해야겠지만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먼저였다.
“현재 부지 내에 사람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저녁때라 학생들은 거의 귀가했을 겁니다. 아마 도서관의 학생들과 연구실의 교수진, 그리고 부지에 배치된 경비병이 전부겠지요.”
“학생들과 전투 능력이 없는 교수들은 대피시키십시오. 그리고 저택에 연락을 넣어 제랄드에게 병사들과 함께 파이를 타고 날아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전 당장 마물 수색에 나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택과 비행 부대에 연락을 넣고 저도 수색에 참가하겠습니다.”
혹시 몰라 검을 챙겨 오길 잘했다.
루크는 검을 빼 들며 단박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니 마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점액이 연구동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물은 연구동 지하에 있었으니 연구동부터 사냥감을 찾아야 정상이다. 한데 놈은 곧장 연구동 바깥으로 나갔다. 이는 곧 인간을 발견하고선 그를 쫓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저지해야 한다.
연구동 바깥으로 나가니 점액이 마탑 부지 내에 조성한 대나무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흔적을 따라 대나무 숲으로 뛰어갔는데, 들어서자마자 놈이 남긴 점액의 흔적이 끊겼다.
‘흔적이 끊겼어. 하체가 촉수로 이루어진 놈이 점액을 흘리지 않고 이동할 방법이라면…….’
대나무에 촉수를 휘감아 위로 올라간 것이 틀림없다.
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위를 올려다본 순간, 상반신엔 흑색 외갑, 하반신엔 촉수 8개가 달린 마물이 루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연구동 바깥을 지나가던 인간을 쫓다가 루크의 추격을 눈치채고 사냥감을 변경한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저쪽에서 베어 달라고 다가와 주는 것이니까.
검을 허리 옆으로 당기며 발검 자세를 취했다.
놈이 사정거리에 들어옴과 동시에 마나를 부여하며 단칼에 두 동강을 낼 것이다.
떨어지는 마물을 베어 내려던 찰나, 별안간 대나무 너머에서 날카로운 주문 영창이 카랑카랑 울려 퍼졌다.
“아이스 스피어!”
누군가가 4서클 마법의 일종인 아이스 스피어를 시전한 것이다.
주문 영창과 함께 대나무 너머에서 발리스타의 투창에 비견될 굵직한 얼음 송곳이 날아들었다. 얼음 송곳은 대나무 사이를 빠져나오며 마물의 머리를 깔끔하게 관통했다.
퍼석! 쩌저적!
4서클 마법이긴 해도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가 쓴 것인지 품고 있는 냉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스 스피어는 마물의 머리를 관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냉기를 발하며 마물의 전신을 얼렸다.
절명한 것이 확실했기에 검을 휘두를 것도 없었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자 루크가 서 있던 자리에 얼어붙은 마물이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콰드드득!
마물이 죽었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대나무 사이로 한 여인이 걸어왔다.
여인은 달빛이 내리쬐어 새하얗게 반짝이는 은발을 휘날리며 입가에 순수한 미소를 그렸다.
“이제야 제대로 감사를 표하게 됐네요. 다치신 곳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