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60화 (60/200)

# 60

60화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1)

같은 마법이더라도 서클이 높은 마법사가 시전하는 것이 더 강력한 것처럼 방금 날아든 아이스 스피어 또한 4서클 마법사의 마법이라 보기에는 기존보다 더 강한 위력을 선보였다.

즉, 마법을 시전한 자가 최소 5서클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막 약관을 넘긴 것으로 보이는 여인이 5서클의 경지일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전에 오즈가 천재 마법사 한 명이 입학 원서를 냈다고 한 적이 있다.

‘천재 마법사라 불리는, 여러 마탑에서 탐내는 아이인데, 저희 마법 학부에 원서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때 아무래도 이 은발의 여인을 두고 꺼낸 말인 듯하다.

분명 이름이… 그냥 두 번가량 스쳐 지나간 게 전부인지라 딱히 묻질 않았다.

오즈가 차기 비행 부대 대장으로 점찍은 자이니 보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루크는 꺼내 들었던 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덕분에 무사해.”

“후후, 그거 다행이네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길래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까 괴물 하나가 떨어지고 있더라고요. 위험하겠다 싶어서 얼른 마법을 쐈죠. 그나저나…….”

여인은 박살 난 마물의 잔해를 유심히 살피더니 금세 정체를 알아냈다.

“상반신은 곤충, 하반신은 촉수라… 몬스터는 아닌 것 같고, 마물 쪽에 가깝겠네요.”

천재 마법사라 불릴 정도이니 마법 외에도 다방면으로 지식을 갖추고 있을 터. 그래도 저 나이에 실전 경험도 거의 없을 텐데 마물의 사체를 보고도 냉정하게 분석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상적인 게 어디 분석 능력뿐이랴.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았고, 마물이 보이자마자 주문을 영창하지 않았는가.

그 짧은 순간에 지체 없이 마법을 사용한 판단력이 돋보였다.

미래의 비행 부대 대장에 대해 분석하고 있던 차에 여인이 루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마치 격려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놀라셨나 보네요. 괜찮아요. 완전히 숨통을 끊었으니까요. 그나저나 부지 안에 갑자기 마물이라니, 별일이네요. 오래전에 멸종된 줄 알았는데 말이죠. 연구용으로 들여온 실험체가 탈출한 거려나.”

루크가 그녀에게 말해 준 것은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그녀는 루크를 마법 입문자라 여겨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격려해 준 것이었다.

루크의 정체를 모르니 발생한 귀여운 실수였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일어날 뻔한 것을 미연에 저지했는데 어찌 그냥 돌려보내랴. 가만히 놔뒀어도 루크가 베면 그만이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마물을 처리한 것은 이 여인이다.

루크는 그까짓 것은 나도 할 수 있었다는 둥 핑계를 댈 정도로 속이 좁지 않다.

확실한 성과에는 확실한 포상을, 확실한 불의에는 확실한 적의를.

그 부분은 언제나 일관하고 있다.

루크는 이번 일에 대한 뒤처리와 그녀에게 내릴 포상을 논하기 위해 함께 자리를 옮기고자 했다.

“괜한 의혹을 낳기보다는 설명하는 편이 나을 테지. 일단 자리를 옮기지 않겠어?”

“죄송해요. 제대로 못 들었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래요?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여인은 갑자기 정신을 잃더니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휘청거렸다.

루크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의 몸을 부축하였기에 땅바닥에 쓰러지는 상황만은 면했다.

갑자기 왜 기절을?

그녀가 기절한 이유를 알아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슬며시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그리고 마물의 사체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

마물이 지닌 특수 능력은 의태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죽으면서 독 연기를 뿜는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루크의 경우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기에 거의 마시지 않았으나 여인은 마물의 사체를 넘으며 대량으로 흡입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점액을 따라온 오즈와 마법사들이 라이트 마법으로 현장을 밝히며 재빨리 뛰어왔다.

“백작님! 마물을 발견하셨습니까?”

“발견 정도가 아니라 벌써 마무리됐습니다.”

“빠르기도 하시군요. 피해 없이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이번 일은 온전히 제 실수이니…….”

“그 부분은 됐으니까, 이 아이부터 얼른 의무실로 데려가 주십시오. 마물의 사체에서 나온 독 연기를 마신 것 같습니다.”

“이 아이는 레이아? 어쩌다 이 아이가 연기를…….”

“오즈 학장, 독 연기를 마셨다고 말했을 텐데요?”

독의 종류에 따라 초를 다투는 사태가 될지도 모른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청춘이 저물지도 모르는 마당에 놀라고 있을 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루크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에 오즈는 무의식중에 각을 잡으며 명령을 받들었다.

“헛!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초보적인 실수를 범할 뻔했군요. 당장 플라이 마법으로 다녀오겠습니다.”

루크는 레이아라 불린 여인을 오즈에게 넘겼다. 오즈가 플라이 마법으로 빠르게 날아올라 레이아를 의무실로 데려갔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마물의 시신을 남김없이 회수하였다.

잠시 후 의무실에 다녀온 오즈가 경과를 알렸다.

“맹독까진 아니고 환각 계통의 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독할 것도 없이 잠깐 쉬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군요. 저희 쪽 관리 부주의로 마물을 놓쳤으니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놈이 죽은 척을 잘한 거지, 우리가 못 알아본 게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해결된 일보단 앞으로의 일을 생각합시다. 즉각 마물이 등장한 사실을 영지 전역에 알리고, 영지민들에게 주의 사항과 행동 강령을 알려 주는 게 좋겠지요.”

“아무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괜히 혼란만 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죽은 마물은 바다 건너에서 우연히 흘러들어 온 것이니 다른 개체는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더 추이를 살펴본 후에 결정하시지요.”

오즈의 의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연히 흘러들어 온 마물의 시신 때문에 주의를 권고한다면 영지민들 입장에선 마치 영지에 마물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람으로 둔갑하여 활동하는 괴물인 만큼 엄한 사람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즈는 괜한 사람을 잡을 수도 있으니 섣불리 공표하지 말자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루크의 생각은 달랐다.

“가능성이 적은 것과 가능성이 0인 것은 상이한 것이지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미리 대비하는 게 상책입니다. 안일하게 관망하고 있어 봤자 눈 가리고 아웅밖에 더 됩니까?”

안일한 수읽기 따윈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생을 얻으면서 항상 지켜왔던 루크 자신만의 원칙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루크의 단호함에 오즈는 바로 의견을 굽혔다. 변수를 허락하지 않는 루크의 수읽기와 판단력이 지금의 드래프트 영지를 만든 것이다.

그 부분은 오즈도 같이 전쟁을 겪으며 격하게 실감한 바이기에 금방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백작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전력으로 받들겠습니다. 마탑에선 창고에 있던 기존 장비 말고도 따로 유용한 마법 물품을 만들어서 저택으로 전달하겠습니다.”

“마물 감지는 무조건 장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까?”

“마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장비 없이도 탐색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나유저보다도 더 보기 힘든 재능이라서 저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조금 전 레이아가 했던 말이 루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길래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까, 괴물 하나가 떨어지고 있더라고요.’

루크가 말없이 있는 걸 이상히 여긴 오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레이아 그 아이에겐 이후에 포상을 내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 * *

“으음, 으으.”

옅은 신음 소리를 내던 레이아는 몸을 뒤척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눈송이가 내려앉을 듯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눈꺼풀이 젖혀 올라갔다.

레이아는 주변 사물을 통해 눈을 뜬 곳이 마탑 내에 있는 의무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대와 새하얀 이불보, 자물쇠가 걸려 있는 약품 선반, 각종 의학 서적, 그리고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종 파냐까지.

레이아가 일어난 기척을 느꼈는지 덩달아 파냐도 눈을 떴다.

파냐는 레이아의 손을 양손으로 꼬옥 잡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아프신 곳은 없고요? 이래서 제가 항상 혼자 다니시지 말라고 한 거라고요.”

파냐는 밤늦게까지 마법에 정진하는 아가씨를 챙기느라 잠깐 간식을 사러 떠난 참이었다. 그사이 레이아 혼자 숨을 돌릴 겸 산책을 나갔다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솔직히 누가 마탑 내에서 10분 정도 산책하는 동안 봉변을 당할 것이리라 생각하겠는가.

봉변을 당했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마물 자체는 일격에 처리했으니까. 그 뒤에 영문 모를 일로 기절한 것이니 실수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파냐가 느낄 부담감과 책임감은 어마어마할 터.

그녀의 심정을 알기에 레이아는 파냐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미안, 마법을 과신했나 봐. 앞으로는 최대한 자제할게.”

“아픈 곳은 없으세요? 있으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머리가 좀 띵한 것 빼면 없어. 그런데 난 뭐에 당한 거야? 마물을 처리한 다음에 갑자기 쓰러졌던 것 같은데…….”

“오즈 학장님 말씀에 따르면, 평범한 환각 계통의 독이라고 하시네요. 기절시키는 것 외의 다른 효과는 없다고 하시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 내일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누구요?”

“저번에 만났다던 친절한 사람도 같이 있었어.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알기론 오즈 학장님이 아가씨를 여기로 데려오셨다고 들었어요. 설마 그 사람이랑 또 마주치셨나요?”

“응, 마물이랑 싸우려 하길래 위험하다 싶어서 냅다 아이스 스피어를 날려 줬지. 대단하더라. 이제 막 마법에 입문한 사람인데 마물을 상대로 한 발자국도 안 물러나더라고.”

이제 막 마법에 입문했다면 익힌 마법이라곤 라이트 마법밖에 없었을 거다. 보잘것없는 실력이라 할지라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선 모습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허리춤에 검이 있긴 했는데 설마 검으로 쓰러뜨리려 했던 걸까?

어쩌면 마검사 학과의 지원자였을지도 모른다.

마법은 입문 단계이나 검술 실력은 빼어났을 수도 있다. 마물을 벨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뭐 아무렴 어떠하랴. 모두 무사하면 됐지.

파냐는 ‘그 사람’ 얘기가 나오자마자 레이아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놓치지 않고 짚었다.

“아가씨, 그분이 마음에 드신 건 아니죠?”

“당연히 마음에 들지. 나랑 맞는 구석이 많은 것 같아.”

“아뇨, 친구로서 말고 이성으로서요.”

“얘도 참~ 그런 거 아냐. 나 그런 데 관심 없는 거 알잖아.”

“드래프트 영지에 오신 이후로 계속 얼굴이 어두우셨는데 그분 얘기만 나오면 밝아지셔서 물어본 거예요.”

“아이참, 아니라니까.”

* * *

다음 날, 레이아는 오즈로부터 호출을 받아 학장실로 불려 갔다.

레이라는 호출한 이유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어제 죽인 마물과 관련된 질문을 하려고 부른 것일 거다.

예상대로 학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마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레이아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추천으로 입학한 학생에게 배정하는 개인 연구실에서 서클을 생성하다가 쉴 겸 산책을 했고, 산책 중에 마물을 발견하여 마법으로 죽인 것을 낱낱이 설명하였다.

레이아가 모든 설명을 마치자 오즈가 흡족해하며 수고의 말을 건넸다.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군. 덕분에 사상자 없이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네.”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했을 뿐인데요, 뭘. 근데 그 마물은 어쩌다가 탈출한 건가요?”

“바다에서 떠내려온 것의 사인을 분석해 보려고 여기 데려왔는데 의태 능력을 가지고 있던 거였네. 우연히 한 마리가 떠밀려 온 것이니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거 다행이네요. 아 참, 혹시 저랑 같이 계셨던 분은 무사한지 알 수 있을까요?”

“같이 있었던 사람? 아, 무사하고말고. 일이 마무리되자마자 돌아갔으니 걱정 말게.”

“휴우, 다행이다. 계속 신경 쓰였어요.”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묻겠네. 혹시 자네,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있나?”

“월요일요? 네, 별일 없으면 빌 것 같긴 한데,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건 아니고 설립 기념행사에 참가해 줬으면 해서 말일세. 백작님이 자네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그 자리를 빌려 감사패와 포상을 내리신다더군. 인사도 드릴 겸 참가하게나.”

마물을 처리했으니 보상이 따라오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보상을 주는 사람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레이아에게 걸림돌로 다가왔다.

다른 이들은 모두 바뀌었다고 해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아… 백작님이라면 루크 백작님인 거죠?”

“맞네. 무슨 문제라도?”

“후우,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사패와 포상만 받고 바로 돌아가도 되나요?”

“허허허, 볼일은 그것뿐이니 그 뒤엔 편한 대로 하게나. 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백작님께 연락이 왔군. 이젠 돌아가도 좋네. 혹시라도 뒤늦게 독의 영향이 있다 싶으면 언제든지 의무실로 가게나.”

마법 수정구가 반짝이면서 루크에게 연락이 왔음을 알렸다.

레이아로서는 가급적이면 그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몸을 돌렸다.

‘감사패와 포상… 별로 필요 없는데…….’

마탑과 숙소만 오가면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의도치 않게 루크와 마주칠 기회가 생겨 버렸다.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직 어색한데 말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건만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여 버렸다.

‘하아, 갑자기 또 그 사람이 보고 싶어지네. 그 사람이라면 답답한 내 심정을 이해해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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