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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65화 (65/200)

# 65

65화 왕국의 숨통을 죌 황금 열쇠(1)

저택으로 돌아간 루크는 며칠 동안 하니온 왕국행의 계획을 짰다.

우선 현재 하니온 왕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았다. 그러고는 지도를 보고 적합한 이동 경로를 선정하였으며 필요한 경비와 그동안 발생할 변수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다.

혼자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야 드골과 제랄드에게 하니온 왕국행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주군이 여행을 제한한 국가에 다녀온다는 데 좋아할 부하가 어디 있겠는가.

예상대로 투쟁을 방불케 하는 격한 반발이 뒤따랐다.

“안 됩니다! 마물이 득실거리는 곳에 가시겠다뇨! 지금도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계신데 일부러 고생하시면서 단축할 것까진 없잖습니까.”

“저도 제랄드 경과 같은 의견입니다. 시간이 금이라면 목숨은 다이아몬드쯤 되겠죠. 전장에서 돌아오신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백작님께서도 스스로가 이 영지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계실 거라 믿겠습니다.”

걱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걸 안다 할지라도 루크에게 뜻을 꺾을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금이고, 목숨은 다이아몬드이다?

그러니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은 넓고, 인간의 생애는 짧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수명을 갈아 넣어서라도 이뤄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꿈이란 게 쉽게 이룰 수 있는 거였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꿈을 이뤘을 거다. 아침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이룬 꿈에 무슨 성취감이며 만족감이 존재하겠는가.

측근들의 반대 속에서도 루크의 뜻은 굳건했다.

“요즘 좀 풀어줬더니 둘 다 기가 풀렸군. 내가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보지?”

“끄응, 명령이라고 말씀하신다면야……. 그래도 혼자서 가시는 것만큼은 절대 안 됩니다. 제가 곁에서 보좌하겠습니다. 동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럴 거 없어. 보좌역을 맡을 동행은 이미 정해 놨으니까.”

“누굴 데려가실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똑똑똑.

대화 도중에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가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것이다.

루크는 제랄드와 드골에게 하니온 행을 알리기 전에 보좌역을 미리 저택으로 호출한 상태였다.

“백작님, 레이아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

출입을 허가하자마자 문이 열리면서 후줄근한 남색 로브를 입고 있는 레이아가 들어왔다.

언제 봐도 수수한 차림이다. 귀족 영애쯤 되면 치장에 신경 쓰기 마련일 텐데 그 흔한 장신구 하나 걸치지 않고 있다. 한데도 청초한 분위기가 배어 나오는 것에서 그녀의 본바탕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었다.

레이아는 조신한 걸음으로 집무실에 들어오며 고개를 꾸벅였다.

“그간 평안하셨나요, 루크 백작님?”

“썩 좋은 편은 아냐. 명색이 내 기사단장이란 사람과 집사란 사람이 자꾸만 이의를 제기해서 말이지. 만난 김에 인사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제랄드 경, 드골 씨.”

제랄드와 드골은 예전에 루크가 망나니인 시절 어린 레이아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외견상의 변화가 거의 없는 두 사람이기 때문에 레이아도 금세 그들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꺼냈다.

두 사내는 갑자기 레이아가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보좌역이라는 게 레이아 양이었습니까?”

“5서클 마법사에 3성급 이상의 마물을 감지하는 재능까지 타고났지. 이래도 위험하다고 할 건가?”

“아뇨, 뭐… 혼자면 모를까 두 분이 함께 가신다면야 당해 낼 자가 몇이나 있을까 싶지만…….”

“싶지만?”

“아닙니다. 처음부터 레이아 양과 함께 가시는 거라고 말씀해 주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저도 바로 납득했을 텐데 말이죠.”

오해 하나는 둘째가라 할 정도로 잘하는 제랄드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지 빤히 보인다.

가만히 놔두자. 꿈 정도는 꾸게 해 줘도 괜찮지 않은가.

드골도 제랄드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레이아의 동행을 기쁘게 여겼다.

“두 분이 화해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레이아 양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따로 호위를 붙일 것도 없지요. 백작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뇨, 아뇨. 백작님에 비하면 전 햇병아리에 불과한걸요. 오히려 제 쪽에서 발목이나 붙잡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허허허, 천재 마법사이신 데다 겸손하시기까지 하군요. 백작님을 위해서 이렇게 협조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거라면 괜찮아요. 저도 요즘 벽에 부딪혀서 벽을 부술 계기가 필요했거든요.”

이번 여행은 레이아에게 경지를 끌어 올리기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천재라 불리는 마법사답게 그녀는 모든 속성의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라그나로스 봉인석이 만들어 내는 환경은 그녀에게도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기에 동행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천재라 불리는 것도 안전한 곳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지, 실전 경험은 한참 모자라다. 실전 경험 없이 어찌 바로 비행 부대 대장을 맡으랴. 이왕 실전 경험을 쌓을 거면 마나마스터와 동행하는 것이 이상적일 터.

루크와 마찬가지로 레이아 또한 이번 여행을 수련의 무대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측근들도 납득한 모양이니 더 이상 걸리적거릴 요소는 없었다.

루크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행해야 할 행동 강령을 일일이 지시했다.

“세간에는 수련차 이너프 산맥으로 들어간 걸로 해 둬.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사용하고 있는 무역선을 통해서 하니온 왕국의 상단에 서신을 넣어 두도록 해. 언제나처럼 행정 업무는 드골이 권한 대행을 맡고, 제랄드는 전쟁 때 줄어든 상비군의 숫자를 보충해 둬.”

“알겠습니다.”

“출발은 나와 레이아, 그리고 파이가 함께할 거야.”

파이는 지금까지의 대화를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루크의 어깨 위에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갈 거야! 갈 거야!”

“여차할 때 파이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실 수 있으니 현명한 선택이신 것 같습니다. 한데 보안과는 거리가 먼 아이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거라면 사전에 교육해 뒀어.”

“입에 자물쇠! 안 그러면 꼬리털!”

“출발은 언제 하실 겁니까?”

“보름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기에 상선의 승객으로 바다를 건널 거야. 다른 사람에겐 발설하지 마. 괜히 편의 봐준다고 선원들에게 언질 넣으면 시작부터 일 꼬이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 * *

정확히 보름 뒤, 루크와 레이아는 로브를 뒤집어쓴 여행자 차림으로 대형 상선에 올랐다.

레이아는 평소처럼 후줄근한 남색 로브 차림이었고, 루크도 거기에 맞춰 남색 로브를 새로 구해다가 걸치고 있었다.

레이아는 후드 앞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추며 루크의 차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백작님까지 저랑 같은 차림을 하실 필욘 없었는데…….”

“세트로 후줄근한 차림이면 여행자 신분에 신빙성이 더해지니까 나쁠 건 없지. 아마 하니온 왕국에 도착하면 알아볼 사람이 없을 거야. 그때까지만 후드를 쓰고 다니자고. 그리고 지금은 백작님이 아니라 루크야.”

“백작님 이름을 막 부르려니 입이 안 떨어지네요. 차라리 가명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해협을 건너면 아무도 몰라. 헷갈리기만 할 텐데, 뭘. 아니면 오빠라 부르는 쪽이 편한가?”

“아뇨, 그게 더 어색할 것 같아요. 이번 여정 동안에만 루크 씨라 부를게요.”

대화 도중에 루크의 로브 안쪽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희미하게 소리를 내었다.

“안 보여. 안 보여.”

혹여나 파이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까 하여 바다를 건너는 동안에는 로브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용히 있으라고 교육시켰는데도 천성이 활발한 녀석이라 남아도는 힘이 주체가 안 되나 보다.

조용히 시킬 겸 루크는 파이가 있는 곳의 로브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파이, 안주머니에 있는 동안엔 어떻게 하라고 했지?”

“입에 자물쇠. 안 그러면 꼬리털.”

“이번 걸로 경고 한 번이야.”

“…….”

주인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냉큼 입을 다무는 파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이아가 긴장이 풀린 듯 웃음을 터뜨렸다.

“풋, 아, 죄송해요. 두 분이 대화 나누실 때마다 죽이 너무 잘 맞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웃어 버렸네요.”

“잘못을 혼내는 건데 죽이 잘 맞긴.”

“다른 분들과 대화 나누실 때도 다들 어려워하지 않고 편한 게 보기 좋더라고요. 그렇다고 격식이 없는 것도 아니었죠. 그런 분위기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저도 아버지 곁에서 많이 봐 왔거든요.”

“능글맞은 아저씨이긴 해도 귀족 중에선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지.”

“능글맞다는 거에 저도 한 표 던질게요. 아 참, 어쩌다 마법을 익히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루크 씨 수준이면 마법 없이도 이미 정점이시지 않아요?”

“오즈 학장의 연구에 어울려 주고 있어. 거기에 마나마스터이면서 최소 6, 7서클의 수준이 필요하다고 해서 말이야.”

“그게 가능한 재능이 부럽네요. 후후후, 제가 남의 재능을 부러워할 날이 오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긴 해요.”

“오늘 말한 것 중에서 가장 실없는 농담이군. 20대 초반에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말한다라…….”

“아이참,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무튼 서클이 활성화되어 있으니까 주문만 익히면 바로 실전에서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주문에 필요한 마나 배열 공식이 이해가 안 되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루크는 그녀의 사심 없는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원래 드래프트 영지에서 하니온 왕국으로 가는 배에는 화물 말고도 항상 많은 승객이 탑승했다.

그러나 이번에 루크가 탄 상선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하니온 왕국이 여행 제한 국가로 선정되면서 관광객이 급감한 것이다.

상선에 탄 사람이라곤 루크와 레이아, 몇몇 평범한 승객, 배를 모는 데 필요한 선원들이 전부였다.

승객의 숫자가 급감한 덕에 좋은 선실을 어렵지 않게 예약할 수 있었다.

루크는 레이아와 찢어지며 2등급 1인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음과 동시에 배낭을 내려놓고, 로브를 벗어 벽에 박아 둔 못에 걸어 두었다.

선실에 도착한 것을 감지했는지 로브 안쪽에서 파이가 난리를 쳤다.

“숨 쉴래! 숨 쉴래!”

숨통 좀 트게 해달라는 말인 것 같다.

보는 이도 없는데 방 안에서 뛰어다니게 하는 것 정돈 허락해야 하지 않겠는가.

파이를 꺼내려 주려고 로브를 젖히던 와중 목에 걸친 펜던트형 마물 감지기가 빛을 발했다.

이미 배는 항구를 떠나 바다에 떠 있는 상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 배 안에 마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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