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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67화 (67/200)

# 67

67화 더 효율적, 더 효과적(1)

“에헤야디야~ 밀보다 더 머리를 숙이자~ 에헤야디야~ 눈송이가 앉기 전에 끝내세~”

추수철은 어느 나라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하니온 왕국도 추수철을 맞이하면서 어딜 가도 노동가가 들려왔다. 낫으로 볏단을 베어 내기 위해 힘을 줄 때마다 노동가에도 힘이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금빛 융단을 깐 듯 사락사락 소리가 일품인 가을 들판 사이로 남녀 한 쌍이 걷고 있었다.

루크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파이가 총총 뛰더니 레이아의 어깨 위로 옮겨 탔다.

“밀보다! 숙이자! 눈송이! 끝내자!”

노동가의 노랫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멋대로 편곡하여 불러 대는 파이였다. 성량과 음역은 높으나 박자가 엉망이었다. 농담으로라도 음유시인을 하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몹쓸 음치였다.

사람 귀에 대고 불협화음을 억지로 쑤셔 넣는데도 레이아는 마냥 파이를 귀여워해 주었다.

“파이는 노래도 잘 부르네.”

“잘 불러? 잘 불러!”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냐. 진짠 줄 알면 곤란해.”

“빈말! 거짓말! 나빠!”

“루크 씨는 너무 엄격해요. 아직 애인데 칭찬으로 키워야죠.”

“애는 무슨. 사람 나이로 치면 16살쯤 됐을걸? 그리고 나한텐 나만의 교육 방식이 있어.”

“후후, 애 딸린 아빠 같은 대답이네요.”

“파이 녀석 천성이 개구쟁이라서 거기에 맞춰서 기르고 있을 뿐이야.”

“확실히 개구쟁이이긴 하죠.”

“개굴! 개굴!”

“개구리 말고, 개구쟁이.”

하니온 왕국으로 넘어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파이넨을 떠난 이후 줄곧 유통 상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 마주친 적도 없고, 상인 측에서 루크와 레이아를 이상하게 여기는 낌새도 없었다.

상선에서 보름, 하니온 왕국에서 일주일.

근 20일 동안 함께 다니면서 루크와 레이아의 사이도 많이 가까워졌다. 이전까지는 아직 어색함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이젠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루크는 레이아에게 스스럼없이 지시를 내리게 되었으며, 레이아는 루크에게 남 대하듯 감사 인사나 사과를 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곤 해도 루크가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닌지라 대부분의 잡담은 레이아 혼자 떠들고, 루크는 그때그때 대답만 하는 형태의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마물이 득실거린다길래 긴장했는데 의외로 평범하네요.”

“이 근방은 토벌대가 한번 훑었다고 하더군. 본편은 남부 지방에 들어간 후부터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감각은 항상 곤두세워 둬야겠죠. 사고는 방심에서 온다잖아요?”

“좋은 자세군.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배웠으면 싶을 정도야.”

“제가 보기엔 다들 잘하고 계시던 것 같던데요. 다른 영지에선 월급만큼만 일하자는 마음가짐인데 드래프트 영지에선 다들 그 이상을 해내자고 마음먹고 계셔서 보기 좋았어요.”

“그 말도 영지에선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진짠 줄 알면 곤란하거든.”

“파이한테도 그렇고, 부하분들한테도 그렇고, 항상 엄격하시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보다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안주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

“그런 것치곤 저한테는 별로 엄격하게 대하지 않으시잖아요.”

“아직까진 잔소리할 건수를 못 찾았거든.”

“어이쿠, 조심해야겠네요.”

서로 귀족가 출신인 것치곤 도보로 걷고 있는데도 속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루크야 항상 단련해 왔고, 군대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간간이 행군 훈련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니 걷는 것엔 익숙하다.

하지만 레이아는 마법사로, 공부하며 항상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잘 걸었다.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들판을 지나쳐 산길에 들어섰다. 산길은 굽이굽이 감도는 길이 많은 탓에 멀리 떨어진 상인 일행이 시야에서 벗어났다가 나타나길 반복했다.

시야에서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려던 찰나,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툭! 툭툭! 투투투둑!

마른 땅바닥에 습기를 머금은 점이 하나둘씩 찍히더니 개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레이아는 손바닥을 위로 향해 들며 주문을 영창했다.

“실드!”

실드가 원반 모양으로 펼쳐지며 우산을 대신했다. 노인의 건강과 가을 산의 날씨는 쉬이 확신하지 말라더니, 어느새 먹구름이 끼여 비를 쏟아 내고 있었다.

실드를 우산 대용으로 쓴 건 좋은데 루크와 레이아의 신장 차이가 흠이 되었다. 루크의 키가 180센티미터 이상이고 레이아가 160센티미터이니 레이아가 한참 위로 손을 뻗어야 했다.

실드를 루크의 머리 위에 제대로 씌워 주기 위해서 까치발까지 들며 용을 쓰는 레이아였다.

“자, 잠시만요. 실드의 크기를 좀 더 늘리면 둘 다 쓸 수 있을 거예요.”

낑낑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레이아를 두고 루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팔을 위로 들어서 실드를 구사했다.

“실드.”

루크의 손바닥 위에 마나가 배열되며 넓은 실드가 생성되었다.

“키가 작으면 여러모로 고생이군.”

“아, 루크 씨가 시전하면 되는 건데 괜히 바보짓 했네요. 이렇게 보니 새삼 키 차이가 많이 나긴 나네요.”

“세끼 식단에 우유를 추가하는 건 어때?”

“여태까지 늘 그래 왔는데 효과가 없더라고요. 어렸을 땐 마법사가 되면 키 늘리는 마법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거 돈방석이 보장된 마법이군. 실제로 있나 보지?”

“있었다면 제 키가 좀 더 컸겠죠?”

실드 끝에 맺힌 물방울이 레이아의 어깨에 앉아 있던 파이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톡! 톡!

“차가! 차가! 안으로! 안으로!”

파이의 재촉에 레이아가 루크 쪽으로 몸을 붙였다. 그 과정에서 어깨가 살짝 닿자 금세 다시 거리를 벌리는 레이아였다.

녹음이 짙은 숲에 들어선 탓일까.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 풋내가 스며들어 전해져 오는 착각마저 든다.

레이아는 어깨를 한껏 움츠리며 실드 밑으로 완전히 들어와서는 입을 열었다.

“계속 실드를 펼치고 이동하는 것도 뭐 하니 비 피할 곳을 찾죠. 저기 어때요?”

그녀가 검지로 산 중턱을 가리켰다. 산 중턱에는 오두막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비의 세기와 구름의 상태로 추측하건대 오래 지속될 비는 아니었다.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이니 잠깐 비를 피했다 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두 사람은 오두막을 목표 삼아 산을 올랐다.

물웅덩이를 밟지 않기 위해 시선을 약간 아래로 두고 걷던 중.

문득 레이아가 표정을 달리했다.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싶더니 실드 아래에서 벗어나 오두막을 향해 뛰었다.

“뛰어요! 오두막에서 다수의 마기가 느껴져요! 마물이 있어요!”

동시에 루크의 목에 걸려 있던 마물 감지 펜던트도 강하게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잉!

앞서 이동하던 상인 일행이 비를 맞으며 어디로 이동했을까?

그들도 비를 피하기 위해 오두막으로 갔을 것이다. 한데 오두막에 다수의 마물이 머무르고 있었다면?

필시 전투를 피할 수 없을 터.

상인 일행이 죽으면 데메그리 교에게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끊어진다.

그 점을 알고 있기에 레이아는 곧바로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뒤이어 루크 또한 실드를 거두며 오두막을 향해 뛰었다. 보폭과 속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금세 레이아를 앞지르고선 평지에서 뜀박질하듯 산길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오두막에 가까워지니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대형을 유지해! 빈 구멍을 메… 크악!”

상인도 남부 지방에 유통하는 것이니 나름 실력 있는 용병을 고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비명 소리만 들려온다.

그만큼 마물의 숫자와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두막 앞에 도달하니 참혹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전신이 흑색 외갑에 팔다리가 검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물, 사마귀의 몸체에 새의 날개와 부리가 달린 마물, 한쪽 팔이 석궁의 형태를 띠고 있는 켄타로우스 풍의 반인반수 마물 등등.

뿔의 개수는 1개부터 3개까지 다양했다.

1~3성급 마물 다섯 마리가 상인 일행을 유린하며 그들의 살점을 게걸스럽게 포식했다.

“음~ 역시 사내놈이 양이 많아서 좋아. 특히 용병들은 덩치가 커서 먹을 게 더 많지.”

“양보다는 질이지. 근육질도 좋지만 난 여린 쪽이 더 좋더라고.”

“퉷, 전부 내 취향은 아냐. 몇 마리는 핏물을 빼서 숙성시킨 다음에 먹는 게 어때?”

이미 용병들은 전멸했고, 그나마 유일한 생존자는 술배가 불룩 튀어나온 중년의 상인이 고작이었다.

믿고 있던 용병들이 이리 맥없이 무너질 줄은 몰랐는지 새하얗게 질려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기듯이 물러가고 있는 상인을 두고 마물들이 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실실 웃었다.

“낄낄낄, 이 자식, 이미 지렸나 본데? 냄새가 진동하지 않아?”

“아저씨 냄새에 지린내까지, 인간의 음식으로 치면 삭힌 청어쯤 되겠군. 난 됐어.”

상인은 뒤로 기어가다가 고여 있던 흙탕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어푸, 어푸! 저리 가, 이 괴물 자식들아! 저리 가라고!”

“이봐, 아저씨. 돼지 흉내라도 내 보는 게 어때? 우린 인간은 먹어도 가축은 안 먹거든. 먹으면 배탈이 나서 말이야.”

누가 봐도 명백히 놀리는 것인데 상인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사리 분별을 할 수 없었다. 오직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돼지 흉내를 내었다.

“꿀꿀, 꿀꿀!”

“하하하, 하란다고 진짜로 하잖아? 살고 싶긴 한가 봐?”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서 생존 여부를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사마귀 마물의 칼질이었다.

서걱!

사마귀 마물의 낫같이 생긴 팔이 횡을 그으며 상인의 목을 베어 냈다. 상인의 목이 흙탕물 속에 꾸르륵 잠김과 동시에 비웃음 섞인 조롱이 내려앉았다.

“흉내를 낼 거면 끝까지 했어야지. 돼지는 살려 주냐고 묻지 않잖아?”

“어이, 저기 한 놈 더 있는데? 저쪽은 좀 내 취향이군.”

“겁대가리 없는 놈이네. 못 알아차리는 동안 도망이나 칠 것이지.”

“너, 분명 질보다 양이라고 했지? 저놈은 내게 넘겨.”

“마음대로 해. 목에 기름칠부터 해야겠어.”

켄타로우스를 닮은 잿빛 피부의 마물이 루크에게 석궁 형태의 팔을 겨누었다. 그러고는 등에 박혀 있는 쐐기를 뽑아내어 석궁에 걸쳤다.

시위를 놓자 말뚝 굵기의 쐐기가 루크를 노리고 쇄도했다.

마물들 모두 쐐기가 상대의 몸을 관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켄타로우스 같은 마물은 뿔 세 개, 즉 3성급 마물이다. 용병 나부랭이 수준으론 쐐기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완벽하게 빗나갔다.

루크는 날아드는 쐐기를 두고 투창 자세를 취하며 주문을 영창했다.

“파이어 스피어.”

마침 실전에서 마법을 써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겸사겸사 일을 꼬이게 만든 마물들에게 철퇴도 가하고 말이다.

루크는 붉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창을 손바닥 위에 생성함과 동시에 투척했다.

루크의 손을 떠난 파이어 스피어가 정확하게 쐐기와 격돌했다.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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