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68화 더 효율적, 더 효과적(2)
파이어 스피어는 4서클 마법이나 부여된 마나는 그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거센 불길을 품고 있는 파이어 스피어가 삽시간에 쐐기를 불태웠다.
쐐기를 집어삼켰음에도 불의 창은 기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마물들에게 날아갔다.
켄타로우스 마물은 흰자위밖에 없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어이쿠야! 손맛 한번 매섭구먼.”
말의 하반신답게 도움닫기 없이도 상당한 도약력을 자랑하며 파이어 스피어를 피해 내는 마물이었다.
켄타로우스 마물이 피하자 뒤에 서 있던 1성급 마물이 대신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투콱!
파이어 스피어가 뿔 하나 달린 마물의 몸에 틀어박히며 내부를 새까맣게 불태웠다. 이글거리는 화염에 내장이 잿더미로 화하며 1성급 마물이 게거품을 물었다.
“커어어어! 끄르륵!”
일격 일살.
한 방에 1성급 마물이 고꾸라졌다.
단 일격으로 루크가 방금 학살한 용병들과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마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장난감에서 사냥감을 보는 눈빛으로 말이다.
“베크 녀석이 일격에 죽었어. 한 수 하는 놈인가 본데?”
“평소에 기름진 것만 찾으니 몸이 둔해진 거지. 죽을 만했으니까 죽은 거야. 그보다 모처럼 사냥다운 사냥을 할 수 있겠는걸?”
그들이 사냥꾼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니온 왕국 남부 지방의 깊숙한 곳에서 머무르다가 다른 강한 마물들에게 밀려 어슬렁어슬렁 중부 지방으로 올라온 녀석들이다. 토벌대가 훑고 지난 후 이곳에 도착한 것이라 아직 제대로 된 실력자와 마주친 적이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우물 입구의 크기가 하늘 전부인 것처럼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견식이 부족했다.
알고나 있는 걸까.
자신들이 루크에게 마법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한 표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오늘은 사냥꾼이 사냥당하는 날이다.
루크는 새로운 파이어 스피어를 소환해 허공에 유려하게 돌리더니 양손으로 창자루를 쥐었다.
“3성급 두 마리에 2성급 두 마리 남았나. 연습용 허수아비보다 조금 나은 정도겠군.”
“하? 푸하하하! 이거 우리보다 더 미친놈을 만난 것 같은데? 우리보고 허수아비란다.”
“불을 다루더니 뇌까지 타 버린 거 아냐?”
조소 속에서 루크의 입이 달싹였다.
“블링크.”
주문 영창과 함께 루크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루크는 사마귀 마물 옆에서 나타났다.
더불어 쥐고 있던 파이어 스피어를 실제 창처럼 휘두르며 창술을 펼쳤다.
화르륵!
사마귀 마물도 흰자위를 번뜩이며 날랜 반응을 보였다. 루크가 놈의 옆에 도달해 있을 때 이미 마물의 시선은 루크를 향해 있었다.
“베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구먼. 알아서 다가와 주다니 말이야.”
대낫과도 같은 예리함을 자랑하는 사마귀 마물의 양팔이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루크는 왼손을 창자루에서 떼며 사마귀 마물의 양팔을 향해 번갈아 내밀었다.
“푸시!”
푸시는 마나의 압력으로 물체를 밀쳐 내는 것이 고작인 1서클 마법이다. 마법사들 사이에선 라이트 마법과 더불어 기초 마법 정도로 취급되는 마법에 불과했다.
하나 개똥도 쓰기 나름이라고, 볼품없는 기술도 쓰기에 따라서는 고 서클 마법보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루크의 지론이다.
1서클 마법이라 마나를 배열하는 시간, 즉 캐스팅 시간이 매우 짧다. 연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마나가 무지막지하여 루크의 푸시 마법은 미는 강도부터가 남다르다.
푸시 마법이 시전되자 사마귀 마물의 양팔이 망치에 두들겨 맞은 듯 크게 튕겨 나갔다.
“어어? 어어어?”
사마귀 마물은 졸지에 양팔을 크게 벌린 자세가 되어 머리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무방비한 자세에서 날아드는 파이어 스피어를 막아 낼 턱이 없었다.
파이어 스피어는 가차 없이 사마귀 마물의 머리를 꿰뚫으며 그 안의 내용물을 불태웠다. 뇌까지 타 버린 것 아니냐는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셈이다.
이걸로 두 마리째.
사마귀 마물의 시신이 고꾸라지기도 전에 루크는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디그.”
루크의 등 뒤에선 양팔과 양다리가 검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의 마물이 팽그르르 돌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물 본연의 특수 능력을 발동했는지 곤충의 것을 닮은 외갑에 푸른 실드가 둘러져 있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것도 잠시뿐, 2서클 마법인 디그가 시전되며 쌍수검 마물의 진로에 구덩이가 생겼다. 쌍수검 마물은 빙그르르 돌며 다가오다가 구덩이에 빠져 애꿎은 구덩이 속을 파헤쳤다.
드드드드득!
“블링크.”
다시 한 번 블링크를 발동하면서 루크의 신형이 사라졌다. 루크가 서 있던 자리에 켄타로우스 마물이 쏜 쐐기가 다발로 꽂혔다.
투두두둑!
루크의 몸이 켄타로우스 마물의 등 위로 옮겨 가며 야생마에 올라탄 수렵꾼 같은 모양이 되었다.
“흥! 촐랑촐랑 도망쳐 다니긴! 거기가 지옥문 입구인 줄은 알고 있느냐!”
켄타로우스 마물은 갈기털처럼 목덜미를 따라 자라나 있는 쐐기를 한 번에 방출했다. 등 위에 올라탄 이를 공격하기 위한 특수 능력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쐐기를 방출하기 무섭게 곧바로 새로운 쐐기가 돋아나는 것으로 봐선 마기를 소모하여 쐐기를 다루는 것이 놈의 특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루크는 왼손을 옆으로 뻗으며 측면에서 다가오던 또 다른 3성급 마물에게 마법을 사출했다.
“파이어볼.”
3서클 마법에 폭발 효과를 지닌 파이어볼이 측면으로 날아갔다.
측면에선 늑대 모습의 마물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핏빛 송곳니를 들이대는 중이었다.
그러나 루크에게 늑대 마물의 이빨이 틀어박히는 일은 없었다. 파이어볼이 늑대 마물의 아가리 속에 틀어박히면서 폭발을 일으켰기에.
퍼버벙!
근거리에서의 폭발은 심한 반동을 유발했고, 루크는 반동에 몸을 맡기며 켄타로우스 풍 마물의 등 위에서 떨어져 나갔다.
켄타로우스 마물이 방출한 쐐기는 루크의 반동을 이용한 회피 앞에 모조리 허공을 갈랐다.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 것을 알게 된 켄타로우스 마물이 헛숨을 들이켰다.
“헉! 그걸 피해?”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군. 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비 쪽이 더 날렵하겠어.”
허공에 몸이 뜬 상태에서 파이어 스피어가 루크의 손을 떠났다. 아까처럼 도약할 시간은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지척에서 투척된 파이어 스피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켄타로우스 마물의 목 정중앙을 꿰뚫었다.
화르륵!
바닥에 착지한 후에도 반동의 여파가 남아 있어 루크의 발이 진흙탕 위에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주변에 서 있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곤 그은 자국이 만연한 마물들의 시체뿐.
이 모든 것이 오직 지금까지 배운 마법으로만 이뤄 낸 성과였다.
한편 먼발치에서 루크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레이아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두막 앞에 도착한 지는 좀 됐다. 한데도 감히 가세하지 못했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루크의 전투 방식에 홀려 그만 넋이 빠지고 말았다.
“마법이란 게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는 거였구나.”
실전 경험이라곤 거의 없는 그녀다. 유일한 실전 경험이 마탑 안에서 3성급 마물을 일격에 쓰러뜨린 게 전부이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마법을 이용한 실전 경험이 없는 건 루크도 마찬가지다. 한데도 마치 숙달된 조교처럼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
마법의 위력? 마나? 시전 속도?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그녀가 무엇보다 놀라워하는 부분은 루크가 판단을 내리는 속도가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찰나에 어떤 마법을 어떻게 써야 가장 효과적인지 그때그때 판단을 내리고 사용하고 있다.
이 마법은 어느 순간에 좋다, 저 마법은 어떤 때에 좋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마법을 시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이아는 루크의 전투 방식을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프랑크 마탑에 들어간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어. 다른 마탑에 들어갔다면 다른 사람처럼 경지가 전부인 줄 알고 현실에 안주했을 거야.’
한편으로는 루크가 왜 다른 이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지 공감이 되었다.
1, 2서클 마법을 쓰는 거나 자신의 업무를 행하는 거나 실질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상위 마법이나 고난이도의 업무에 필적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무리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니라 가진 역량을 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길 바라는 것이다.
대부분 귀족은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온다던데 어찌 된 게 루크는 파고들수록 존경스러운 부분만 보인다.
‘잔소리할 구석이 없다고 하셨지. 그만큼 내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계신 거겠지. 이거 어설프게 노력해선 죽도 밥도 안 되겠는걸.’
레이아는 아이스 스피어를 소환하여 손에 쥐고선 마물의 시체에 다가갔다. 감탄하느라 보조를 맞춰 주지 못했으니 뒤처리라도 도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로브 앞섶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일일이 확인 사살을 했다.
퍼석! 퍼석!
아이스 스피어로 마물의 시신을 찌를 때마다 찌른 부위를 중심으로 빙결 현상이 일어나며 시신이 박살 났다.
그녀가 확인 사살을 하는 동안 루크는 오두막집에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했다.
산속에 번듯한 오두막이 있으니 살던 자가 있을 터. 한데도 싸움이 끝날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은 게 이상하여 들어가 보았다.
오두막에 들어갔던 루크가 이내 곧 바깥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안에 사람은 없고 말라붙은 핏자국만 있더군. 오래전에 마물들이 집주인을 처치하고 대신 들어앉아 있던 거겠지.”
“곤란하게 됐네요. 상인이 죽었으니 데메그리 교도 배달을 받지 못하겠죠. 슈탈랭 영지 어딘가에 있다는 단서만으로는 골디브에서 스미스 씨 찾기나 마찬가지예요.”
모순된 일이다.
데메그리 교에서 풀어놓은 마물들 때문에 정작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전해 받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걸로 유통 업자를 통한 데메그리 교 꼬리잡기는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유통 업자가 죽었다면 다른 사람이 유통 업자의 역할을 대신하면 그만이야.”
위험 구역으로 유통할 정도의 상인이라면 그에 준하는 대가와 신용도를 갖추고 있었을 터. 잔뼈가 굵은 상인이니 실수로 잘못 배달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기록해 뒀을 것이다.
상인의 시신을 확인해 봤다.
잠시 뒤져 보니 역시나 시신 안에서 기름을 먹인 토끼 가죽 표지의 수첩이 나왔다. 고급 수첩답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안의 종이는 멀쩡했다.
오두막의 처마 아래로 가서 수첩을 펼쳐 보니 각 물품을 배달할 주소지가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었다.
루크는 최근에 기록한 페이지를 레이아에게 보이도록 펼쳐 들었다. 그러면서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수취인 주소 가운데서 유일하게 슈탈랭 영지 안에 있는 주소를 검지로 짚었다.
“여기 있군. 물건도 있겠다, 우리가 직접 가져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