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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77화 (77/200)

# 77

77화 오물통 속에선 누구든 함부로 믿는 게 아니다(2)

파이를 타면 빠르게 이동할 순 있어도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다.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맞바람의 압박과 가속도에 의한 반작용이 탑승자의 몸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 부대에서도 탑승자의 비행시간을 최대 3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루크와 레이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리해서 이동하지 않아도 바다로 운반 중인 라그나로스 봉인석보다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망치는 강행군은 필요 없었다.

오전과 오후에 각각 3시간만 비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하거나 경지를 끌어 올리는 데 매진했다.

루크는 레이아로부터 마법 이론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레이아는 실전 감각을 끌어 올리고자 루크와 가벼운 대련을 가졌다.

“블링크.”

인적 드문 산속, 오전 비행을 마치고 잠깐 쉴 요량으로 둘은 산기슭에서 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 사이로 루크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며 레이아의 눈을 어지럽혔다.

레이아는 마찬가지로 블링크를 연달아 시전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모의 전투의 규칙은 간단했다.

1. 서로 마법만 쓸 것.

2. 봐주지 않고 죽일 기세로 공격할 것.

두 번째 규칙은 레이아에게만 해당되는 항목이었다. 루크가 말하길 죽일 기세로 덤비지 않으면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할 거라 했다.

처음에는 너무 얕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루크가 정상급의 실력자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마나유저로서의 능력이다.

마법사의 경지는 4서클이고, 제아무리 전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와 화력은 레이아보다 뒤처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마당에 레이아는 전력을 다하는데 루크는 봐주면서 한다?

너무 도가 지나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모의 전투에 돌입하니 왜 루크가 전력으로 덤비라고 했는지 레이아는 단박에 실감할 수 있었다.

“더블 캐스팅, 아이스 필드! 그래비티!”

그녀는 루크의 현재 위치와 다음 이동 경로를 예상하여 마법을 시전했다. 뿐만 아니라 상급의 위력을 지닌 광역기를 시전했으니 제아무리 루크라도 쉬이 피할 순 없을 터.

그러나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분명 전방에 있었건만 정작 루크가 나타난 곳은 레이아가 마법을 시전한 장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루크는 보란 듯이 손바닥을 레이아에게 향하도록 펼치며 마법을 시전했다.

“우드 홀드.”

레이아의 발밑에서 나무뿌리가 역방향으로 솟아오르며 발을 휘감고자 했다.

그에 회피를 위해 블링크를 시전했는데 별안간 몸이 나무기둥에 부딪히며 강한 충격이 그녀의 전신에 엄습했다.

쿠웅!

“끄윽!”

블링크는 일정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대신 시전자와 목적지 사이에 장애물이 있으면 부딪히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전력으로 달려 스스로 거목에 몸통을 박은 꼴이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충격 속에서도 레이아는 자신의 몸 주변에 실드를 둘러 재정비할 시간을 벌고자 했다.

“실드!”

그러나 이미 루크는 레이아가 실드를 시전하기 직전에 코앞까지 다가온 참이었다. 뒤늦게 실드가 둘려지긴 했으나 루크까지 실드 안에 같이 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좁은 실드 안에서 루크가 손날로 레이아의 목을 톡톡 두드렸다.

“첫 모의 전투치곤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6점 주도록 하지.”

칭찬이라기보단 놀림에 가까운 말투였다.

모의 전투 내내 누군가 목을 조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던 레이아는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듯 숨을 내뱉었다.

“푸하, 10점 만점에 6점이요?”

“20점 만점에 6점.”

“100점 만점으로 쳐도 30점밖에 안 되네요.”

“판단은 나쁘지 않은데 화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음, 제 나름대로 계산하고 쓴 건데 말이죠. 방금 그래비티와 아이스 필드, 더블 캐스팅이 빗나간 게 컸어요. 어떻게 피한 거예요?”

“시선 관리가 어설퍼. 어디에 쓸지 뻔히 보이니 피하기도 쉽지. 내가 간파하고 반대편으로 피할 것까지 예상하고 반대편에도 공격할 준비를 해 뒀어야 했어.”

“만약에 루크 씨가 그것까지 예상하고 피하면요?”

“그럼 너도 거기까지 예상하고 다시 저격해야지.”

“예상에, 예상에 또 예상을 더하면 고려할 게 많아지지 않아요?”

“그게 수 싸움이고 심리전이야.”

“후우, 복잡하네요. 예상했다가 헛다리를 짚으면 손해고, 그렇다고 예상을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중요한 건 자기 판단에 몸을 맡기는 과감함이 있느냐 없느냐지. 잘못됐을 경우가 무서워서 엉덩이를 뒤로 빼면 빈틈만 생길 뿐이야. 그 결과가 이거고.”

루크가 손을 뻗어 레이아의 팔뚝을 잡았다.

피멍이 들었는지 레이아가 아파하며 얕은 신음을 흘렸다.

“아얏.”

“뼈는 괜찮아 보이는군. 다음 모의 전투는 일이 끝나고 영지에 돌아갈 때 하는 걸로 하지. 부상 때문에 일을 그르쳐야 본말전도니까.”

슈탈랭 영지의 신전에서 상당수의 마물을 처리하는 데 성공하며 자신감이 한껏 오른 레이아였다.

그녀는 자신의 마법이 실전에서도 먹힌다는 것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루크와 붙어 보니 자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강해 봤자 어차피 인간의 영역. 루크와 같은 초인의 영역에 이르기엔 아직 한참 모자란다는 걸 실감한 참이다.

언젠가 도달해 보고 싶다.

무릇 천재라 불리며 자라 온 만큼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법.

강하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더하여 그들이 어떤 경치를 보고 있는 건지 부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루크와 레이아는 마을에서 구입한 여행용 보존식을 먹으며 벤티버에서의 행보를 논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벤티버인데, 도착하면 뭐부터 할 거예요?”

“아슈타르 교의 중심지인 하니온 대신전부터 가자고. 이번에야말로 카이둔 국왕과 연관되어 있단 물증을 확보할 수 있겠지.”

“그래도 명색이 대신전이니 머무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저번처럼 뒷문으로 잠입하는 방법은 안 먹힐 거예요. 게다가 왕궁과 가까우니 소란을 일으켰다간 하니온 왕국군까지 상대하게 될 테죠.”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론 작전을 세우기 어려워. 현지에 도착해서 정보부터 수집해 봐야지.”

“현지 귀족을 통해서 대신전에 들어가면 좀 더 쉽게 고위 사제에게 접근할 수 있을 테죠.”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나 보지?”

“벤티버에 친척이 한 명 있어요. 게데스 자작님이라고, 외가 쪽 오촌 당숙이신데 몇 번 얼굴을 뵌 적이 있으니 사정을 설명하면 협조해 주실지 몰라요.”

오촌이면 애매한 촌수다.

마냥 남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친척치고는 연이 닿을 일도 별로 없는 위치이다. 그래도 타국의 귀족인데도 몇 번 얼굴을 볼 정도면 마냥 소원한 사이는 아니다.

게다가 데메그리 교를 소탕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미치는 셈이니 공적을 세우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터.

루크는 레이아의 의견에 동의했다.

“맨땅에 부딪히는 것보단 낫겠군.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 두는 게 좋겠지. 어이, 파이. 일어나.”

루크의 부름에 나무 열매를 쪼던 파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어깨 위에 앉았다.

“왜 불러! 왜 불러!”

“그란데 백작가 어딘지 알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고 그란데. 그 왜, 전쟁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딸의 옷 입는 감각이 꽝이라고 하던 아저씨 말이야.”

“딸 바보! 딸 바보!”

“그 아저씨한테 가서 말 좀 전해 줘.”

루크는 파이에게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전해야 할 말을 들려주었다. 혹시라도 제대로 기억을 못 할까 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잠시 후 루크는 파이가 제대로 기억하는지 확인까지 한 후에 하늘로 날려 보냈다. 파이는 혼자 날면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데다 휴식 시간도 필요 없으니 며칠이면 다녀올 것이다.

벤티버에 거의 다 왔으니 여기서부턴 걸어서 이동해도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다.

파이를 날려 보낸 후 레이아는 넌지시 아까 루크가 언급한 말을 되짚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저의 옷 입는 감각을 꽝이라고 하셨어요?”

본인도 평소에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인지 묻는 투가 꽤 조심스럽다.

루크는 로브를 걸치지 않았을 때의 레이아를 떠올리며 적당히 둘러댔다.

“글쎄, 나도 옷 입는 거엔 조예가 없어서 말이지.”

말을 아끼는 듯한 낌새 속에서 레이아가 자신의 로브 앞섬을 살짝 벌리고 안에 입은 옷을 힐끗 확인하였다. 그러고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란데 백작의 말을 부정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나도 안 이상한데…….”

* * *

하니온 왕국의 수도인 벤티버의 상황은 개판이라는 말도 아까울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프라임 왕국과의 전쟁이 끝난 뒤부터 계속 도시를 정비하지 않았는지 배수로는 쓰레기로 막혀 구정물이 철철 흘러넘쳤다.

골목에선 병사들이 대놓고 화대를 회수하러 다녔으며 전쟁에서 불구가 된 이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는지 바가지를 입에 물고 기어 다니며 구걸하고 있었다.

이게 정녕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이었다.

거리 안으로 들어서니 부랑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레이아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가방을 노리는 듯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벤티버에 처음 온 것처럼 보이는 뜨내기 여행자들을 노리고 소매치기를 시도하려는 모양이다. 근처에서 배회하던 경비병들은 부랑자들의 뻔한 움직임을 보고도 귀찮다는 양 피식 웃으며 내기를 걸었다.

“어이, 저기 봐 봐. 뜨내기가 소매치기당하는지 안 당하는지로 내기 안 할래?”

“난 당하는 쪽에 5,000루소.”

“나도 당하는 쪽에 10,000루소.”

“이것들아 전부 당하는 쪽에 걸면 내기가 안 되잖아.”

듣자 하니 소매치기는 벤티버를 처음 방문한 자에 대한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루크는 로브를 슬쩍 옆으로 젖혀 검집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검집을 쥐고 엄지로 검자루를 슬쩍 밀어서 검날을 드러냈다.

검날로 경고를 대신하자 그제야 다가오던 소매치기들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레이아는 어깨에 걸쳐 둔 가방끈을 머리 위로 넘겨서 사선 방향으로 단단히 걸쳤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진 않네요.”

“분명 하니온 왕국의 국왕은 10살짜리 어린애고 왕의 어머니가 대리청정하고 있다고 했었지.”

“역사상 외척의 득세가 좋은 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던가요?”

“거의 없지.”

도시 중심부에 들어서자 빈민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가 더러운 건 마찬가지이나 대신 대형 호화 저택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누구의 것이 더 화려한지 자랑하듯 휘황찬란한 마차가 즐비했다.

행인에게 길을 물으며 헤맨 끝에 게데스 자작의 저택에 도착했는데, 그나마 게데스 자작의 저택은 다른 귀족들의 저택보단 검소한 편이었다.

철창으로 이루어진 정문에 다가서자 안쪽에 있던 경비병 두 명이 걸어 나와 눈을 부라렸다.

“뭘 기웃거리고 있느냐? 뭇매를 맞기 전에 썩 꺼지거라.”

오랜 여행으로 로브에 먼지가 내려앉은 탓에 부랑자라 여겼나 보다.

다짜고짜 면박을 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레이아가 신경질적으로 로브의 후드를 젖히며 경비병들을 강하게 쏘아붙였다.

“안에 들어가서 전하세요. 그란데 백작의 딸, 레이아가 도착했다고 하면 아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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