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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80화 (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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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쓰레기 소각(2)

아닌 밤중에 하니온 왕궁으로부터 소집령이 떨어졌다.

긴급회의의 의제는 게데스 자작 일당이 역모를 모의했는지의 진위 여부와 그에 대한 대처였다.

대부분 장로는 신전에서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가 소집되었다. 안건이 안건인 만큼 취중임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왕궁으로 이동했다.

그중에는 네드 주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다 깨어 갑자기 긴급회의를 소집하게 된 미네르바는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왕가의 은혜를 입고도 불손한 생각을 품은 작자들이 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요?”

베아니치 공작을 비롯한 외척 세력 일동은 입을 모아 역모가 확실함을 어필했다.

“금일 19시경, 게데스 자작을 비롯한 장로회의 말단 장로들과 그들을 따르던 귀족들, 기사들이 일거에 벤티버 북쪽 성문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저택에 남아 있던 시종들을 추궁하니 역모를 논의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에 주동자인 게데스 자작의 저택을 살피니 이와 같은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베아니치 공작이 직접 단상에 올라 미네르바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는 게데스 자작을 중심으로 역모를 꾸민 자들의 지장이 찍힌 연판장이었다.

미네르바는 격노하며 찢어질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이 중요한 시기에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어찌 이리도 불손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저희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대비마마. 신속하게 병력을 파견하여 사로잡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거에 북쪽으로 갔다고 했죠? 갑자기 그곳으로 이동한 이유는 알아냈나요?”

“추가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북쪽 해안에서 대량의 병력과 무기를 입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병력을 보충하고, 싣고 온 무기로 무장하여 왕궁으로 돌입할 생각인 거겠지요.”

“불손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모자라네요. 당장 병력을 이끌고 가서 처단하세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뇨?”

“얼마 전에 대량의 병력을 남부 지방으로 파견한 탓에 남아 있는 수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징집병은 장식인가 보죠?”

“징집을 실시하면 어찌어찌 머릿수는 맞출 수 있는데 지휘관이 모자라서…….”

병력을 파견한다는 건 일반 병사뿐만 아니라 지휘관도 함께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대량의 병력을 남부 지방으로 보내면서 남아 있는 지휘관의 숫자도 얼마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 지휘관을 맡을 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외척 세력도 프라임 왕국과의 전쟁 때 전장에서 지휘한 경험이 있으니 직접 지휘관을 맡으면 된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방탕하게 생활했기 때문에 몸이 둔해진 데다, 칼침을 맞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모두 꺼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는 떠안겠거니 싶어 모두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이다.

편안한 생활에 찌들어 엉덩이로 의자를 닦는 것 외의 능력은 모두 퇴화한 자들인지라 피를 흘리는 걸 극도로 기피하고 있었다.

외척 세력과는 별개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양 당황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네드 주교는 북쪽 해안에 무엇이 오고 있는지 깨닫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오늘 밤에 라그나로스 봉인석이 오기로 되어 있건만! 지금 병력이 북쪽으로 가면 봉인을 풀기도 전에 제압당해 버려. 설마 반역은 위장이고, 미네르바가 병력을 파견하게 만들 속셈으로 움직이고 있나? 그럴 리가. 게데스 자작 따위가 생각해 낼 법한 계책이 아냐. 누구지? 분명 뒤에 누군가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게데스 자작의 계책치곤 너무 파격적이다.

기껏해야 행정 업무에 특화되어 있고, 간이 작아 늘 한마디 하면 깨갱거리며 기부금을 빙자한 상납금을 꼬박꼬박 내던 자가 생각해 낼 방법이라고 보긴 어렵다.

따로 조력자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슈탈랭 영지의 신전을 박살 낸 자.

그자가 뒤에 있는 것이 틀림없을 터.

네드 주교는 왕가에 의해 봉인이 저지당하는 것을 막고자 머리를 쥐어짰다.

“대비마마, 급하게 움직이지 마시고 차라리 성문을 걸어 잠그는 쪽으로 움직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저들의 목적은 왕궁을 점령하는 것이니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올 겁니다.”

“얕보이고 가만히 있어서야 왕가의 위엄이 서질 않죠. 아슈타르 신께서 평소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불손한 자들의 봉기 따윈 손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겠죠.”

“저는 그저 걱정되어 안전한 길을 제시해 드린 것일 뿐입니다.”

“마음은 고맙게 받도록 하죠. 병력을 파견하고 나면 신전에 찾아갈 테니 준비해 주세요. 불손한 무리를 무사히 처단하도록 기도를 올리겠어요.”

머저리 같은 년이 신을 들먹이며 나서니 안 그래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 아파 왔다.

세뇌를 시켜도 너무 시켰나 보다. 자신의 신앙심을 강조하며 기도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여기서 부정하면 네드 주교 스스로 신앙심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시인하는 꼴이 된다.

아무래도 조력자 놈은 지휘관의 부재와 미네르바의 성향까지 모두 고려하여 계획을 짠 것 같다.

이토록 촘촘하게 판을 짜 놨다면 어지간해선 조력자 놈의 계획을 비틀기 어려울 터.

일이 이리된 이상 차라리 자신도 파격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선박에 직접 연락해서 바다 위에서 봉인을 풀라 하는 수밖에 없나. 뭐, 어차피 볼 장 다 봤으니 아쉬울 건 없다만 도망치듯 내빼는 게 마음에 안 드는군.’

라그나로스의 봉인이 풀리면 벤티버는 불바다가 된다.

그리되면 휘말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 그 전에 몸을 빼기 위한 준비를 해 두었다.

그간 쌓아 뒀던 재산은 모두 갈무리하여 비밀리에 데메그리 교 본단으로 보내 두었고, 하니온 전국 각지의 사제들도 숨겨 두었던 마물들을 모두 풀어놓은 후에 왕국을 탈출하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는 중이었다.

조력자의 존재에 다소 당황하긴 했으나 예정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네드 주교의 실체를 모르는 미네르바는 별 볼 일 없는 반역 정도로만 사건을 관망하며 외척 세력들에게 강제로 출전을 명했다.

“뭣들 하고 있나요? 산 채로든 주검이든 게데스 자작을 내 앞에 데려다 놓으세요. 지금 당장요!”

* * *

베아니치 공작은 귀족들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벤티버 북쪽으로 진군했다.

안장이 불편한 나머지 말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런 젠장맞을! 게데스 자작 그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원. 아직 신전에서 마신 술이 깨지도 않았건만.”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부터 뭐만 하면 불평만 늘어놓더니 결국 사고를 치는군요. 그나저나 어디 불편하십니까?”

“오랜만에 갑옷을 입었더니 여기저기 끼여서 말일세.”

“어차피 오합지졸에 제대로 된 실력자는 없을 테니 금방 끝날 겁니다. 진군 속도를 높여서 빨리 끝내고 돌아가시지요.”

“그래야겠네. 속도를 높이라고 전하게나.”

수도에 남아 있던 상비군이 1,500명, 부랴부랴 소집한 징집병이 3,500명.

3시간 만에 모은 것치곤 꽤 많은 숫자다.

아무리 많은 병력을 파견했어도 수도는 수도인 만큼 상당수의 병력을 모을 수 있었다.

게데스 자작 일당의 영향력과 수완을 감안하면 아무리 많이 모아 봤자 1,000~2,000명일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마나유저나 마법사는 거의 없을 테니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닐 터.

베아니치 공작을 비롯한 외척 세력은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북쪽으로 이동했다.

* * *

북쪽 해안으로 가는 길목의 어느 언덕 위.

루크와 게데스 자작은 말을 타고 어둠을 엄폐물 삼아 언덕 위에 머무르며 외척 세력의 움직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게데스 자작은 루크의 말대로 진행되는 것이 신기한 나머지 감탄을 자아냈다.

“오, 정말로 외척 세력이 직접 군을 이끌고 나왔군요. 백작님의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척 세력 중에 인재가 없나 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중요한 연판장을 왜 저택에 방치해 뒀는지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죠.”

“행사에 참가해서 부어라 마셔라 한 영향도 적잖이 있지 않겠습니까.”

추수 감사절 때마다 사제와 외척 세력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정치 헌금을 전달하는 것은 귀족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관례와 같이 자리 잡았다.

원래부터 뇌에 기름이 낀 자들인 데다 만취한 상태에서 긴급 상황에 대처하게 되었으니 사소한 부분은 대충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온전히 이용한 기습책이라 할 수 있겠다.

“네드 주교의 대처에 따라 정황이 달라지겠군요. 베아니치 공작이 봉인석을 해제하는 것을 저지하면 라그나로스 계획서와 조직도가 사실이라는 게 밝혀질 테니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겁니다.”

“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면 예정을 앞당겨 바다 위에서 라그나로스의 봉인을 푸는 정도겠지요.”

“네? 봉인이 풀리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 전에 저지하려고 반역까지 연기하면서 병력을 파견하게 만든 거 아닙니까.”

루크는 검지로 경쾌하게 검갑을 튕기며 자신이 직접 검을 뽑을 것을 암시했다.

“구닥다리 정령왕이 외척 세력과 그들의 사병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아 줘야 하니 말이죠. 그 뒤에 제압해도 충분합니다.”

봉인된 상태든 봉인이 풀린 상태든 라그나로스가 서클 생성에 유용한 열기를 뿜어내는 건 변함없다.

이왕이면 좀 더 유용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봉인이 풀린 라그나로스는 한눈팔지 않고 벤티버로 돌격해 올 것이다.

왕가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대재앙이라 불리는 정령왕까지 등장한다? 백성들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한 마나마스터가 라그나로스를 처치하면 백성들의 눈에 그가 어떻게 비칠까?

필시 구세주처럼 보일 터.

이 모든 과정은 카이둔 국왕이 그리고 있던 그림이 아닌가.

즉, 루크는 카이둔 국왕이 꾀하던 ‘영웅 자작극’ 계획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 * *

북쪽 해안에 도착한 베아니치 공작은 모래사장에서 고삐를 당기며 멈췄다.

“이상하군. 자작의 저택에 남아 있던 계획서엔 여기서 병력과 무기를 공급받기로 되어 있었건만.”

“저희가 오는 줄 알고 내뺀 것이 아닐는지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급하게 병력을 모으느라 요란하게 출발한 감이 적잖이 있지. 그래도 멀리 가진 못했을 게야. 흩어져서 찾아보거라.”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옛날 옷이 자꾸 끼어 빨리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은 사람처럼 다들 빨리 일을 끝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추수 감사절이라 쉬고 있던 것은 병사들도 마찬가지라서 때아닌 소집에 짜증이 한껏 치솟아 있었다.

부대를 나누어 수색에 나서려던 찰나, 베아니치 공작의 눈에 바다 위의 선박 한 척이 포착되었다.

“저거 그거 아니더냐?”

“뭘 말씀하시는 건지요?”

“저기 보거라. 배가 떠 있지 않느냐. 반역자들과 합류하기로 했던 배가 저 배인 것 같구나.”

“즉시 배를 수배하겠습니다.”

“놈들을 잡으면 나머지도 줄줄이 잡을 수 있을 테지. 서둘러 배를 준비하거라.”

게데스 자작 일당 외에도 누가 반역에 가담했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배를 수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별안간 해상의 배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선박이 늦게 도착한 탓에 게데스 자작 일당이 도망친 줄 모르고 해안에 신호를 보내느라 횃불을 피운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불꽃이 점점 도저히 횃불로는 볼 수 없는 크기로 커졌다.

불꽃은 이내 선박보다도 커다랗게 불어났으며, 램프의 요정처럼 인간의 상반신만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일순 베아니치 공작의 뇌리에 얼마 전에 접한 계획서의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라그나로스지 않느냐! 젠장! 그 문서가 사실이었다니!”

해상에서 풀려난 라그나로스는 삽시간에 선박을 불태워 버리며 제 몸의 불꽃으로 주변을 환히 밝혔다.

불꽃의 기세가 어찌나 센지 베아니치 공작이 있는 해안까지 대낮처럼 환히 밝힐 정도였다.

오랫동안 봉인된 것에 한이 뼈에 사무쳤는지, 한풀이하듯 주먹을 길게 뻗었다.

라그나로스가 내지른 화염이 길게 뻗어 나오며 해안으로 날아들었다.

집채만 한 불꽃 앞에서 베아니치 공작의 얼굴이 불빛 때문에 벌겋게 물들었고, 욕지거리가 단말마를 대신했다.

“빌어먹을!”

화르륵! 쿠구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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