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95화 (95/200)

# 95

95화 사냥과 절도의 차이(1)

파이를 타고 돌아가던 루크는 도중에 레이아와 합류했다.

두 사람은 저공비행으로 천천히 날며 그간의 성과를 확인했다.

“청문회는 어땠어요?”

“늘 똑같지. 상대방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고 방해하고, 난 어쩔 수 없이 줄 수밖에 없게 만들고.”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별로. 왜?”

“그렇게 보여서요.”

“그것보다는 실망했다는 게 맞겠지.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썩어 있을 줄은 몰랐거든.”

카이둔 국왕에게 루크의 공왕 즉위를 막을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마물을 아까워하지 말고 루크에게 소탕하라고 강하게 나섰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데메그리 교를 버렸다면 그들과의 관계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할 일도 없다. 데메그리 교를 버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예전의 군사 강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쉽고 편한 길을 고수했고, 그 결과 블린트가 세운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자신의 한계를 파악한 자가 취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거인국과의 전쟁에서 느낀 한계가 그리도 절망적이었던 걸까.

고양이는 호랑이가 될 수 없어도 호랑이는 고양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산증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나저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본거지를 발견했군. 눈에 띄는 위치에 있었나 보지?”

“그럴 리가요. 최근 몇 년간 실종 사건이 많은 지역을 알아봤어요. 거기서 인적이 드문 위치만 집중적으로 탐색했죠. 띠비가 많이 고생해 주기도 했고요.”

“띠비?”

“얘 이름이요.”

레이아가 손으로 삼색 제비의 뒷덜미를 쓸어내렸다.

쓰다듬는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삼색 제비가 간드러지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삐로로로~”

삼색 제비가 그리핀이나 와이번에 비하면 외견이 귀엽긴 해도 덩치는 황소만 하다. 귀여운 이름이 어울릴 법한 덩치는 아니었다.

“작명 센스 한번 최악이군.”

“사파이어라서 파이라 부르는 것보단 낫죠.”

“내 이름이 왜! 내 이름이 왜!”

“아, 미안, 미안. 파이란 이름이 나쁘단 게 아니었어. 백작님 작명 능력도 최악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말투가 거침없어졌군. 예전에는 그나마 순진한 맛이라도 있었는데 말이지.”

“살면서 딱히 순진했던 적은 없던 것 같은데요?”

“하긴 첫 만남부터 당사자 앞에서 당사자 욕을 하던 사람에겐 실례되는 말이었군.”

“아이참! 자꾸 흑역사 꺼낼래요? 그거 때문에 아직도 이불 찬단 말이에요.”

레이아는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에 삼색 제비의 갈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쩌겠는가. 평생 술안줏감을 제공해 버렸으니 평생 감당해야지.

“자는 건 아니지?”

“잠시 다른 직장을 알아볼까 말까 고민했어요.”

“사직서에 퇴사 사유로 흑역사라 적으면 수리해 주지.”

“기어코 확인 사살을 하시네요. 그 얘기는 이만하죠. 아무튼 공왕 즉위는 확정된 거죠?”

“그렇지. 영지에 돌아가면 짐 싸서 벤티버로 거주지를 옮길 예정이야.”

“공왕 전하라 불러야 되겠네요.”

“하니온 왕궁에서 약식으로 대관식을 거행한 후부터 호칭이 바뀌겠지. 정식 대관식은 좀 더 안정되면 할 거고.”

“백작이 되신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공왕이라니. 초고속 승진 정도가 아닌데요?”

“한 만큼 얻는 거지.”

“하아, 하니온 공국으로 넘어가시면 한동안 못 보내겠네요.”

그녀는 프랑크 마탑에 남기로 했다. 6서클의 경지에 오르긴 했으나, 가진 능력을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하려면 좀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안 그래도 일반 학생들과 수준 차이가 극심했는데 6서클에 오르면서 격차가 더욱 벌어져 일반 강의를 가지곤 턱도 없었다. 때문에 오즈가 직접 그녀의 개인 강습을 해 주기로 하였다.

게다가 하니온 공국에는 그녀의 개인 연구실을 유지할 만한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드래프트 영지에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했다.

“수업을 마치면 벤티버로 오도록 해. 그 삼색 제비도 계속 네가 데리고 있어. 비행 훈련을 계속해 둬야 나중에 바로 비행 부대 대장으로 임명할 수 있으니까.”

“띠비라니까요.”

“내가 그 이름을 입에 담길 바라는 거야?”

“네.”

“사양하지.”

“후후, 백작님도 꺼리는 게 다 있네요.”

“약점 잡힐 만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에이~ 아쉬워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비행하는 사이, 어느덧 두 사람은 이너프 산맥에 다다라 있었다. 이너프 산맥의 찬바람을 헤치며 가장 낮은 봉우리를 넘자 드래프트 영지가 나왔다.

드래프트 영지에 복귀한 직후, 루크는 간부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공왕 즉위가 확정됐어. 하니온 공국으로 떠날 준비해.”

* * *

드래프트 영지에 도착한 루크는 곧바로 하니온 왕국으로 이동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

드래프트 영지를 관장하는 업무는 러스트에게 맡겼다. 드래프트 영지의 인간과 오크의 비율은 7 대 3으로, 오크의 숫자가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양측 종족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책임자가 적격이었다.

“일단 지금은 권한 대행으로 업무를 맡아 줘. 약식 대관식을 마치면 자작 작위를 부여할 테니 그때부터 정식 영주로 취임시키는 걸로 하겠어.”

“자작 작위? 음, 개인적으로 작위는 너무 과분한 포상으로 느껴지는군요. 게다가 오크에게 작위를 부여하면 말이 많지 않겠습니까?”

“어째 작위 받는 사람이 가장 말이 많은 것 같은걸?”

“커흠! 저야 내려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 따름이지요. 어쩌면 백작님이 다스리실 때보다 더 발전할지도 모릅니다.”

“그거 기대되는군. 남자니까 자신이 한 말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하하하, 이거 무서워서 어디 농담이나 하겠습니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즈 학장과 그란데 백작에게도 언질을 넣어 뒀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조언을 구하도록 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레이아를 전령 삼아 벤티버에 연락을 넣도록 하고.”

“업무에 익숙해지면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찾아뵙겠습니다.”

러스트는 이만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떠날 준비를 하느라 바쁜 사람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는 것도 실례이지 않은가. 인수인계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겨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루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양 계속 말을 이었다.

“아 참, 조만간 상인 길드 사람들이 찾아올 거야. 상인 길드를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두고 경매를 진행하기로 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군대의 규모를 키워 두도록 해.”

“안 그래도 드골 집사로부터 얘기를 들어 뒀습니다. 지시하신 이상의 성과를 낼 테니 기대해 주십시오.”

“정찰 부대의 규모를 2배로 키울 예정이었던 건 하니온 공국에 가서 진행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리고…….”

“아이고, 눈물 나겠습니다. 거기까지만 해 두시지요. 생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챙겨 주시려 하십니까. 오즈 학장도 있고, 그란데 백작님도 있으니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떠나십시오. 큰 둥지로 옮겨 가시는 분이 작은 둥지에 미련을 두셔야 되겠습니까?”

“그냥 네가 못 미더워서 그런 거다만?”

“하하하, 그런 걸로 해 두겠습니다.”

러스트 외에 드골과 제랄드, 기사단과 비행 부대는 하니온 공국으로 데려가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대관식 후에 각각 직위에 걸맞은 작위를 부여할 것이다.

며칠 동안 가져가야 할 물품과 남겨 둘 물품을 정리하고, 챙긴 물품은 서쪽 해안으로 옮겨서 선박에 실었다.

* * *

하니온 공국으로 떠나는 날, 드래프트 영지의 모든 영지민들이 서쪽 해안으로 몰려와 루크를 배웅하였다.

사람의 인품은 그 사람이 떠날 때 드러난다 하였다.

안전을 위해서 일부러 송별 행사를 생략했건만, 영지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안에 모여서 루크를 떠나보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는지 해안선을 따라 두터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마탑은 또 언제 준비한 건지 사람들에게 한 호흡만으로 최대 크기까지 불 수 있는 ‘한숨 풍선’을 배부하고 있었다. 최대 크기에 이르면 하늘을 향해 저절로 날아가는 축제용 마법 풍선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한숨 풍선 끄트머리에 기다란 종이를 달아 하늘로 띄우며 루크를 전송했다. 풍선 수만 개가 각기 다른 색의 종이 꼬리를 달고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영지민들의 호흡이 담겨 있는 풍선은 떠나보내는 목소리를 대변하듯 가볍기 그지없었다.

마음 편히 더 큰 둥지로 옮겨 갔으면 하는 마음에 모두가 아쉬워하는 대신 감사의 의미를 담아 그들의 영주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송별회를 만들고 있었다.

루크는 갑판의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뭍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영지민 십수만 명을 아련히 지켜보았다.

“6년인가, 오래도 있었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망나니 귀족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태도에 일일이 당황하던 드골과 하녀, 제랄드의 모습이 어젯밤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이의 용기에 감명을 받아 하룻밤 만에 큰 바위 부족을 토벌했다. 그 뒤에 러스트가 간부에 합류했고, 그란데 백작가에서 오즈 학장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한 명 한 명 측근이 늘어나고, 방치되어 있던 평야에 황금빛 물결이 가득 찼으며 화물선이 한 척 두 척 늘어나는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지켜보았다.

영지 곳곳에 루크의 발자국이 없는 곳이 없다. 오래된 가게에 주인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영지를 키우기 위해 정말 많이 고생했고, 루크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작금의 드래프트 영지였다.

지금도 루크의 땅이긴 하다. 다만 이젠 주 무대가 아니게 되었을 뿐.

잘 있어라, 드래프트 영지여.

내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어 고맙다. 이젠 누가 뭐라 한들 둘도 없는 나의 고향일지니. 훗날 얼마나 큰 영토를 가지든 내 근본은 네게 있음을 잊지 않으리라.

감상에 잠겨 있던 가운데 제랄드가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백작님, 회의 시간을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향후 일정을 논하기 위한 회의를 하기로 했다. 루크가 영지민들의 송별회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배려 차원에서 회의를 연기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상에 젖어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아쉬움은 아교와도 같아서 털어 내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어 못 움직이게 되기 마련이다.

잠깐 뒤를 돌아보며 재충전을 했으니 이젠 다시 앞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루크는 감상에 젖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만하면 충분해. 안으로 들어가자고.”

“영주로서 마지막인데 영지 쪽을 지켜보시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런 건 살짝 맛만 보면 되는 거야. 괜히 심취해서 좋을 건 없지.”

어부가 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바다로 나가듯, 오늘 한 사내가 드래프트 영지란 항구를 떠나 더 큰 바다로 출항을 개시했다.

드래프트 영지의 영주에서 하니온 공국의 공왕으로. 하니온 공국 생활의 선전을 기원하듯 돛이 바람을 받아 팽팽하게 부풀어 선박을 서쪽으로 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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