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화 사냥과 절도의 차이(4)
루크의 발검이 뒤쫓겠다는 뜻임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머메이드를 사로잡는다면 해저 섬의 현황과 그들의 습격 패턴, 해저 섬으로 가는 방법 등등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걸 몰라서 도망치는 걸 가만히 두고 보기만 했겠는가.
알고도 잡을 방법이 없으니 문제지.
루크의 뜻을 짐작한 바이스는 마찬가지로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손에 쥐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하께서 머메이드들을 추격하려고 하신다.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준비해라.”
바다로 도망친 놈들을 쫓아야 하니 추격하려면 배에 올라타는 게 상식이었다.
지금 배에 탄다고 해서 놈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군이 직접 추격한다는데, 멀뚱히 서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추격에 임하려고 준비하려던 찰나, 바이스의 생각을 뒤집듯 루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금방 한 놈 낚아 올 테니 피해 상황이나 파악해 둬.”
“네? 배를 타고 가시는 게…….”
바이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루크의 신형이 바다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모래사장을 박차며 뛰쳐나간 루크는 물속에 뛰어들며 마법을 시전했다.
“더블 캐스팅. 에어볼, 실드.”
라그나로스와의 전투에서 실드 안의 환경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당시 루크는 라그나로스의 열기에 맞서 실드 안을 냉기로 가득 채워서 버텼다.
그렇다면 계속 공기를 공급하는 것도 가능할 터.
에어볼은 공기를 압축시켜 상대방에게 날리는 3서클 마법이다. 이 마법은 압축된 공기를 임의로 조금씩 풀어 헤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공기로 이루어진 실타래를 한 올씩 풀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루크는 실드를 두른 채로 물속으로 들어가 에어볼로 압축한 공기를 조금씩 풀었다. 물 밖에서 압축하여 가지고 들어온 에어볼이 계속해서 실드 안에 공기를 공급하여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렇다면 이동은 어떻게 하느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물속에서도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실드와 에어볼 유지, 게다가 블링크까지 사용하려면 트리플 캐스팅을 줄곧 유지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마나를 엄청 잡아먹는다.
물 항아리 하나로 세수, 요리, 청소를 동시에 하는 격이니 어지간히 큰 항아리가 아니면 소비량을 감당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루크는 애당초 평범한(?) 천재들보다 마나가 3배 이상 많았고, 무기형 마물로부터 대량의 마나 회로를 흡수했다. 그 덕에 현재 루크의 마나은 다른 마나마스터의 무려 7배에 달했다.
연봉이 1억 루소인 자가 1천만 루소를 쓰는 것과 연봉이 2천만 루소인 자가 1천만 루소를 쓰는 것은 같은 금액이라도 누구에겐 사치가 아니고, 누구에겐 사치인 것처럼.
루크는 마나를 물 쓰듯 소비하며 트리플 캐스팅을 연사했다.
“트리플 캐스팅. 블링크.”
물속에서 루크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반복하며 어지간한 어류에 못지않은 기동력을 선보였다.
바닥까지 훤히 비쳐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안에서 루크는 블링크를 거듭 시전하며 머메이드 추격에 나섰다.
* * *
한편 해변에 덩그러니 남은 바이스와 호위 기사들은 망치라도 맞은 양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의 새로운 왕이 행동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건 사전에 알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귀로 듣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루크의 행동력을 직접 겪고 나니 상상한 것 이상이어서 머리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안 그래도 호위에 임하기 전에 드골 백작이 바이스에게 미리 조언해 주었다.
‘아마 같이 있다 보면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을 하실 때가 있을 걸세. 그땐 당황하지 말고 무슨 생각이 들든 전하가 옳고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하게. 시찰 나가는 건데 무슨 일이야 있겠냐고? 허허허, 나도 자네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
조언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 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말이 안 나온다.
국왕이 호위 기사들을 무시하고 혼자 그냥 떠나 버려?
평지에 있는 적이면 모를까 상대는 바닷속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지만 자신이 일국의 왕이란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바닷속에서 돌아다니다가 마나가 떨어지면 그대로 익사하여 시체마저도 건지지 못하게 되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루크의 행동에 당황하던 중 바이스는 이제야 드골의 말을 이해했다.
“아~ 이래서 의구심이 들면 내 생각을 틀렸다고 여기란 거였군.”
대부분 사람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바이스처럼 생각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바이스가 옳고, 루크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바이스도 그랬고 말이다.
아마 드골은 바이스와 같은 사람을 몇 번이나 봐 왔을 것이다. 본인도 그중 한 명이었을 테고.
피부로 직접 실감하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도 내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배기 앞에선 평범한 사람이랑 다를 게 없구만.”
타고난 외모, 마나마스터의 재능, 명문가 출신.
전부 비범함이 느껴지는 특징이다. 그래서 바이스는 자신이 조금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건만, 방금 일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확 와닿았다.
그와 동시에 진짜배기를 섬기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주군을 가지게 된 것 같군. 자, 다들 움직여라! 절반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절반은 나와 함께 배를 타고 전하를 찾으러 간다! 첫 임무부터 전하께 실망을 안겨 드릴 생각은 아니겠지? 다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 * *
블링크로 바닷속을 이동하던 루크는 무작정 돌아다니기보단 추격의 실마리가 될 단서부터 찾아보았다.
만약 내가 그레이트 쉘을 약탈하고 도망간다면 어떻게 할까?
최대한 빠른 루트로 도망쳤을 거다. 그렇다면 바닷속의 길이라 불리는 해류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놈들은 바닷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왔으니 해류를 타는 것에 익숙할 터. 안전한 길을 놔두고 다른 곳을 이용할 리가 없다.
“라이트.”
루크는 블링크를 멈추고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여 주변을 비춰 보았다. 진녹색의 바닷물을 환히 비추자 바닷물 속의 자잘한 부유물이 눈에 들어왔다. 부유물은 해류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기에 해류의 방향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루크는 해류의 방향을 가닥 삼아 다시금 블링크를 시전했다.
“블링크.”
쉴 새 없이 블링크를 쓰다 보니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 갔다.
그래도 바쁘게 움직인 보람은 있었다.
전방 수십 미터 앞에서 하반신은 물고기, 상반신은 인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들이 이동 중인 게 보였다. 그들은 타조만 한 몸집의 해마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수중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해마의 주둥이가 대포의 포신처럼 기다란 형태를 띠고 있는 걸로 봐선 대포 해마가 확실한 것 같았다.
대포 해마의 숫자는 약 20마리, 머메이드의 숫자도 똑같이 약 20명에 달했다. 머메이드 전사들은 손에 트라이던트를 쥐고 있었는데, 트라이던트의 창대와 창날의 이음매에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오션 마린이라 하여 겉모양은 아쿠아 마린과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같은 크기의 마나석에 비해 5배는 더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머메이드는 마나에 재능이 있든 없든 오션 마린이 박힌 트라이던트를 지팡이 삼아 물 계열의 마법을 펼친다.
지금 눈앞에 있는 머메이드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나 될진 몰라도, 루크는 적에게 반격의 여지를 줄 만큼 아량이 넓진 않다.
초장부터 세게 나갔다.
루크는 실드, 에어볼, 블링크의 트리플 캐스팅을 유지하면서 검을 쥐었다. 아마 오즈가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트리플 캐스팅을 유지하면서 마나 통의 절반을 소모하는 기술을 병행하고 있는 거니까.
“투영.”
루크가 해석한 그랜드마스터의 경지가 그대로 기술에 반영되어 구현되었다.
바닷속에 루크의 검을 빼닮은 거대한 마나의 검이 생성되었고, 투영된 검은 루크의 동작을 따라 움직였다.
전방을 향해 검을 쭉 뻗으니 투영검이 전방으로 튀어 나가며 머메이드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머메이드 전사들이 투영검의 존재를 깨달은 것은 몇 초 후의 일이었다. 못 알아차릴 수가 없다. 겨울철의 저녁처럼 어둠과 빛의 비율이 8 대 2로 섞여 있는 밝기였다. 어둡다면 어둡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등 뒤에서 빛나고 있는 10미터짜리 마나 검을 못 알아차릴 정도의 장님은 없었다.
머메이드 전사들은 시야 언저리에 아른거리는 푸른 빛을 감지한 후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귀신 장난질이야?”
“어? 어어? 어어어?”
“뭐야? 뭔데? 잠시, 잠시만……. 으아아아!”
알아차렸다곤 하나 투영검은 그들의 바로 등 뒤에서 휘둘러지기 직전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루크가 검을 횡으로 긋자 투영검도 똑같은 각도로 스스로를 내던지며 바닷물을 거칠게 헤집었다.
투영검과 가까이에 있던 자들부터 차례차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덤으로 대포 해마들도 못난 주인을 따라 명을 달리했다.
그나마 투영검과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은 본능적으로 수면을 향해 솟구쳐 검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났다. 20여 명 중에 살아남은 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상을 논하자면 그들이 재빨리 반응해서 벗어난 게 아니었다. 루크가 3명만 살아남도록 조절해서 검을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죽은 자에게서 정보를 캐낼 순 없으니까.
정보원으로서 쓰이기 위해 살아남았다는 걸 모르는 머메이드 전사들은 난데없는 습격에 역정을 내었다.
“뭐야, 이 개 같은 상황은? 대체 뭐냐고? 아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설명 좀 해 봐, 어? 어!”
“닥쳐! 이 지느러미로 기포만 만들 줄 아는 새끼야! 뭔 줄 알면 이러고 있겠어? 징징대지 말고 뭔지 알아볼 생각부터 해!”
“우욱! 제기랄! 내 해마까지 죽었어! 어떤 새끼인 줄 몰라도 가만두지 않겠어!”
머메이드 전사 셋은 거친 말을 쏟아 내며 동료와 해마를 찢어발긴 범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인간과 달리 심해에서도 밝은 눈을 자랑하는 어인족답게 사방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야에 범인으로 짐작되는 생물체는 없었다.
왜냐고?
투영검을 휘두른 장본인은 벌써 그들의 후방으로 이동한 지 오래니까.
머메이드 전사 셋의 뒤에서 5서클 마법이 시전되었다.
“라이트닝 바인드.”
전격을 머금은 마나의 고리가 머메이드 전사들을 두르듯 생성되었고, 루크가 주먹을 쥐자 그에 반응하듯 고리가 줄어들며 머메이드 전사들을 한데 묶었다.
고리 표면에서 반짝이던 전류는 전사들의 몸에 닿자마자 감전을 일으켰다.
파지지지직!
정보를 빼낼 것이니 죽이진 않을 것이다. 대신 죽기 직전까지 몰아갈 뿐.
머메이드 전사들은 바르르 떨며 게거품을 물더니 흰자위를 드러내고 기절했다.
루크는 인양을 하듯 투영검의 검면으로 그들을 떠받쳐 수면으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그런 세 머메이드를 두고 루크의 입이 달싹였다.
“사냥과 절도를 착각하면 쓰나. 이전 주인 때 달아 둔 외상까지 톡톡히 받아 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