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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99화 (99/200)

# 99

99화 무조건 따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1)

포획에 성공한 루크는 기절한 머메이드들을 데리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투영검에 올라타선 사방을 둘러보았다.

“멀리도 왔군. 내가 온 방향이 저기던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사방에 온통 바다밖에 없었다. 어딜 봐도 수평선뿐이고 육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추격에 나선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육지가 안 보이는 위치까지 온 것이다.

나침반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원래 양식장 시찰만 하려던 터라 루크에게 여행에 유용한 장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나마 밤이 되면 별자리를 나침반 삼아 이동할 수 있긴 하다. 그때까지 기절한 머메이드들을 데리고 바다에 떠 있어야 한다는 게 별로 내키진 않지만 말이다.

다행히 밤까지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이동하던 차에 루크는 사업장의 소형 선박들을 발견했다. 바이스가 루크의 뒤를 쫓기 위해 양식장에 있던 배를 끌고 바다로 나온 것이다.

루크는 바이스가 있는 배에 올라타며 사로잡은 머메이드들을 갑판 위에 내던졌다.

“이것들 묶어 놔.”

머메이드들의 모습을 본 바이스와 부하 기사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험한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보기에도 머메이드들의 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상반신에 화상 자국이 만연했고, 하반신의 비늘은 대부분이 떨어져 나가 살집이 벌어져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정말로 루크가 선언한 대로 머메이드들을 잡아 왔다는 것이었다. 구 하니온 왕국 시절, 머메이드를 잡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병력과 자금이 투입되었던가.

비싼 비용을 들여 강철 그물을 설치해도 값비싼 탐지용 마법 장비를 구비해도, 3교대로 24시간 내내 해상 경비를 펼쳐도 소용없었다.

그걸 루크는 ‘한 놈 낚아오겠다.’라는 한마디를 하고선 곧바로 실현하였다.

드골의 조언대로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루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바이스를 비롯한 기사들은 루크가 머메이드를 너무 쉽게 잡은 것 같아서 얼떨떨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젖은 웃옷을 벗던 루크가 기사들의 멍한 모습을 스윽 둘러보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뭐랄까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 버리셔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포박부터 하지그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살아 있긴 한 겁니까?”

“힘 조절은 했어. 스물쯤 있었는데 그 셋만 살려 뒀지.”

“스물? 20명이나 있었습니까?”

“스물보다 조금 많았던가?”

바이스는 부하 기사들에게 포박을 명하면서도 연신 눈을 끔뻑였다.

그가 괜히 놀란 게 아니다. 머메이드 스무 명이면 해상전에 한하여 중형 선박급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그마저도 해상전일 때나 싸울 법하단 것이다. 수중전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특성상 머메이드를 상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루크의 언행을 보면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랜드마스터의 편린만 엿봤는데도 이 정도인데 전력을 다하면 턱이 얼마나 벌어질까.

바이스는 턱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뭍으로 돌아가는 도중 돛대 아래 묶어 둔 머메이드 셋이 눈을 떴다.

그들은 깨어나자마자 몸을 움찔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으윽, 크으윽!”

“윽! 따거! 허억허억.”

통증에 익숙해질 즈음에 가서야 정신을 잃기 전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거대한 검의 잔상이었다. 푸른 빛을 띠던 검 한 자루 앞에서 고래 앞의 정어리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더불어 정신을 읽기 직전에 본 한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들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은 인간 한 명이었다. 인간에게 당했다고 생각하자 그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왜냐하면 물속은 어인의 영역이며 인간은 뭍에서나 떵떵거리는 하등한 생물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인들, 정확히는 머메이드 사이에서 인간은 하등 생물로 분류되고 있었다. 육지가 아무리 넓다 한들 바다는 육지의 몇 배나 더 넓었기 때문이다.

해저 섬 외에도 어인들의 나라, 어인의 종류와 수는 뭍에 있는 자들에 못지않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머메이드는 유달리 인종 차별이 심한 종족으로 유명하며 어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앞에 그들을 베어낸 금발의 청년이 우뚝 서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질문할 건데 사실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군.”

루크의 말에 머메이드 전사들은 가래를 끌어 올려 내뱉었다.

“카약! 퉤! 어디 하등한 종족 따위가 우릴 내려다보느냐? 네놈에게 해 줄 말은 없다. 차라리 죽여라!”

루크는 몸을 옆으로 틀어 가볍게 침을 피했다.

어인 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종족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접해 보니 우월주의라기보다는 인간 혐오에 가까웠다.

대화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극단적인 우월주의자조차도 대화의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고까운 자존심을 꺾어 버리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제로 몸을 꺾어 버리는 것이다.

루크는 검을 뽑아 차라리 죽이라고 말했던 머메이드를 베었다.

서걱!

머메이드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검을 뽑는 것마저도 보지 못했는지 성난 얼굴인 채로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반응은 금세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다른 두 머메이드는 목 없는 시체가 된 동료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자 죽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정말로 죽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루크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보랏빛 검신을 다른 머메이드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다시 한번 묻지. 지금부터 질문할 건데, 대답할 의향은 있나?”

두 번째 답변자가 된 머메이드 전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표정에서 목숨과 자존심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고는 이내 곧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내놓았다.

제 나름대로 자존심과 목숨을 모두 보존한답시고 내놓은 대답이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모질게 구는 것이냐? 그깟 조개 몇 마리 먹은 게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의 잘못이란 말이냐!”

“모순이군.”

“뭐라고?”

“농작물에 해충이 달라붙으면 박멸하는 게 당연하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해충 취급하는 건 모순 아닌가?”

“그런 뜻이…….”

서걱!

두 번째 머메이드의 목도 아래로 떨어졌다.

루크에게 해충과 문답을 나누는 취미는 없다. 말이 안 통하는 자를 상대로 설득하려고 끙끙대 봤자 기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기네들 전쟁에 쓰려고 타국의 재산을 좀먹으러 온 것이지 않은가. 마치 가난에 못 이겨 생계형 범죄라도 저지른 양 포장하려는 게 역겨워서 더 이상 들어 줄 수 없었다.

루크는 마지막 남은 머메이드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검에 마나 오라를 부여하며 대답의 기회조차 주지 않을 태세를 취하였다.

“해충과 대화를 하자니 시간이 아깝군.”

“자, 잠깐 기다려! 나는? 나한테는 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야? 적어도 물어보기라도 하란 말이야!”

“어차피 대답은 똑같을 것 같다만?”

“저, 전혀 아냐! 나, 난 대답할 의향이 있어! 다른 녀석들만큼 편견이 심한 편은 아니라고!”

흔히 편함에 찌든 자가 격식을 갖추면 우월주의가 탄생한다고들 한다. 편함을 걷어 낸 후에 상자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추악한 시궁쥐가 자리 잡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만큼은 불변의 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까지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오지 않았는가.

여전히 검이 드리워진 상황 속에서 루크의 입이 열렸다.

“항상 대화의 여지를 남겨 둬라, 목숨을 지켜주는 고마운 말이지. 이름과 소속부터 들어 볼까?”

“터, 터너. 해저 섬 기병 관리부 3급 전사.”

“좋아, 터너. 지금부터 기탄없는 대화를 기대하도록 하지. 먼저 해저 섬의 위치부터 말하도록.”

과거의 자료를 살펴보니 대략적으로 어느 해역의 해저 어딘가에 있다고만 기록되어 있지 정확한 위치는 나와 있지 않았다.

여차하면 루크는 해저 섬까지 가서 직접 협상(?)을 할 의향이 있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터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나, 드리워진 검 앞에서 다른 선택지가 존재할 리 없었다.

“아리아구 해역의 북서쪽 끄트머리 해저에 있다.”

루크는 확인 차 바이스에게 눈길을 주었다.

“아리아구 해역에서 어인이 발견된 적은 있나?”

“외람되오나 아리아구 해역이란 말을 들은 적이 처음입니다. 인간과 어인의 해도는 지명 표기가 달라서 아마 해도에 직접 표시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해도를 가져와.”

“네.”

루크가 단칼에 머메이드들을 참수한 것 때문에 얼어붙은 것은 터너만이 아니었다. 바이스를 비롯한 기사들도 그의 냉철한 모습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군의 시점에서 그를 보아 왔다. 그런데 적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나니 가깝게만 느껴지던 루크가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다.

적이 되면 저렇게 되는구나.

절대로 눈 밖에 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바이스가 해도를 가져왔고, 터너에게 손가락으로 해도를 짚으라고 하여 해저 섬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다.

구 하니온 왕국 시절의 자료와 일치하는 구역이라 신빙성에 있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다음으론 해저 섬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위치는 얼추 맞는 것 같고, 인간의 몸으로 거기에 갈 방법은 없나?”

“없어.”

“음, 두 번째 질문부터 갑자기 유료가 됐나 보지? 조건을 붙이는 거라면 별로 좋은 방법이라고는 말해 줄 수 없겠는걸.”

“저, 정말 없다고! 믿어 줘! 애당초 인간과 교류할 생각이 없는데 인간을 들일 방법을 강구해 놓을 리가 없잖아! 진짜라고!”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인간을 하등 종족으로 보는 자들이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며 인간과 교류할 방법을 만들어 놓을 리 없다.

결국 해저 섬으로 가려면 루크처럼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루크도 마나가 많다뿐이지 무한한 건 아니다. 즉,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방법은 찾아보면 있다.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루크는 마무리로 해저 섬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대포 해마에게 그레이트 쉘을 먹이러 온다는 건, 해저 섬의 내전이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건가?”

“내전? 그래, 아직 진행되고 있긴 하지.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이야. 세이렌 놈들을 끝장낼 최종 병기를 손에 넣었으니까.”

“최종 병기라면?”

“…….”

터너가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사내는 숨긴다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훨씬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루크가 검을 쥔 손을 위로 들며 일도양단의 태세를 취하였다.

경고 따윈 사치라는 양 거침없이 벨 자세부터 취하고 보는 루크의 강경함에 터너는 자포자기한 듯 고함을 내질렀다.

“아, 알겠어! 알겠다고! 말하면 될 거 아냐!”

그는 내적 갈등을 한 차례 더 거치고선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최종 병기라 하길래 무기의 일종이겠거니 했는데, 예상과 달리 쉬이 흘려들을 수 없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고대의 4대 정령왕 중에서 물의 정령왕, 아쿠아의 봉인석을 손에 넣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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