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01화 (101/200)

# 101

101화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다(1)

다음 국정 회의 때 루크는 해저 섬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들 부정적인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전까지와 달리 반대 의견을 입 밖으로 내는 자는 없었다. 직접 겪어 보니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간다는 것도 아니고 해저섬에서 활동할 방법을 갖추고 가는 것이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부재중의 권한 대행은 드골이 맡기로 했다. 루크는 제랄드에겐 라샤가 부재중인 동안 정보 부대를 통솔하여 겐크 왕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자세하게 알아 두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루크와 라샤의 해저 섬행이 정식으로 결정되면서 두 사람은 각각 떠날 준비를 했다.

국정 회의가 끝난 직후, 라샤는 필요한 물건을 구비해 두기 위해 서둘러 왕국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회의장을 빠져나와 로비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복도 정중앙에서 근육질의 장신 사내와 마주쳤다.

아캄프였다.

라샤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전하와 해저 섬에 간다고 들었어.”

“그게 뭐? 너랑은 아무 상관없잖아.”

“상관있지. 혹시라도 네가 실수하면 전하의 복귀를 장담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잔소리라도 하러 온 거야? 신경 끄시지. 난 더 이상 네 약혼자가 아냐.”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싸우는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본인들에겐 이게 평상시의 대화였다. 서로 억양이 센 편이라서 종종 오해를 사곤 한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의도로 말한 거라는 듯 아캄프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은퇴하는 게 어때? 평생 쓸 돈은 모아 놨잖아. 공왕 전하는 공국에서 만족할 인물이 아냐. 만약에 대륙 본토에 진출하게 되면 네 출신이…….”

“그만해 둬. 출신 같은 건 일족에게 내쳐지면서 버린 지 오래야. 아무리 너라도 더 이상 내 삶에 간섭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약혼자랍시고 너한테 모든 걸 얘기한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하지 마.”

아캄프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기에 라샤의 평상시 말투와 화났을 때 말투를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지금은 화를 내는 것이었다.

라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신의 어깨로 아캄프의 어깨를 강하게 밀치면서 지나갔다.

그녀가 떠나고 홀로 복도에 남은 아캄프가 벽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성질 드센 공주님을 챙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구먼.”

* * *

아리아구 해역의 어느 해저.

빛마저 들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 거대한 산호초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하우스 산호라 불리는 거대 산호초는 겉은 단단하되 속은 비어 있어서 어인들의 주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하우스 산호는 햇빛을 담은 양 강한 빛을 내뿜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빛에 의해 해저 섬은 365일 24시간 내내 대낮처럼 밝은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정글처럼 끝없이 펼쳐진 하우스 산호 중심부에 산호 가지를 이어 만든 커다란 궁전이 존재했다.

궁전 안에선 녹색 비늘을 지닌 머메이드들이 대포 해마를 타고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으며 궁전 전체가 빨랫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궁전 안의 왕좌에는 민머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가 왕관을 쓰고서 앉아 있었다.

기존 용왕을 처단하고 빈 왕좌를 차지한 머메이드족의 수장, 스커필드란 자였다.

스커필드는 쥐고 있던 트라이던트의 창대 아랫부분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쿠웅!

“해마 강화를 위해 떠난 자들은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냐!”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는 것밖에 모르는 폭군 앞에서 같은 머메이드조차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다.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을 자행해 온 자이기 때문에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특히 스커필드가 호통을 칠 때는 더더욱 몸을 사리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평범한 보고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트라이던트로 꿰어 버리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용궁 내에서 유일하게 스커필드와 기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스커필드의 동생이자 오른팔인 라이덴이었다.

라이덴은 자신이 알아낸 바를 가감 없이 보고하였다.

“용왕 전하, 인간들의 나라 근처에서 대포 해마와 동지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인간들의 나라라면 하니온 왕국을 말하는 것이더냐?”

“소문을 들어 보니 왕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흥! 지랄 맞은 것들 같으니! 세이렌을 정리하고 나서 놈들에게도 본때를 보여 주어야겠구나.”

“어쩌면 세이렌들이 힘이 부족한 나머지 인간들과 손을 잡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인간 놈들이 바닷속에 있는 우리 전사들을 건드렸겠습니까?”

“어이가 없군. 손잡을 놈들이 없어서 인간 같은 하등 종족과 손을 잡아?”

“만약에 정말로 인간들과 손을 잡은 거라면 아직도 인간의 나라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전사들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걸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반란군 놈들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해저 섬 내전이 길어지고 있는 원인으로 세이렌들이 바다 어딘가에 꽁꽁 숨어 게릴라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혹시라도 세이렌들의 본거지를 찾아낸다면 놈들에게 지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왕국 근처에 병력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게 병력을 주시면 당장에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내겠습니다.”

가진 힘만 믿고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드는 스커필드이긴 하나 동생의 말만큼은 항상 귀담아듣는다. 라이덴은 자제력이 부족한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 수단이었다.

스커필드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라이덴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네게 머메이드 전사 300명을 주마. 인간이든 세이렌이든 상관없으니 모조리 몰살하고 와라.”

* * *

며칠 후, 루크와 라샤는 벤티버 북쪽 해안에서 중형 선박에 올라탔다. 먼저 배를 타고 아리아구 해역까지 이동한 뒤, 현지에서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해저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아리아구 해역까지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동하는 동안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수중 이동을 연습해 두기로 했다.

루크는 라샤와 함께 갑판 위에 나란히 서서 수중 호흡 및 수중 이동의 요령을 전달받았다.

“지금부터 제가 하급 바람의 정령에게 명령을 내릴 거예요. 전하께 계속 산소를 공급하고, 전하께서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보조하라고 말해 둘게요.”

라샤가 손바닥을 위로 펼치더니 하급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바람이 모여들더니 반투명한 초록색 몸뚱이를 지닌 하급 바람의 정령, 웬디가 소환되었다.

자그마한 몸뚱이에 산들바람을 벨벳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산들바람이 실크처럼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게 굉장히 앙증맞아 보였다.

“웬디, 이분께 공기막을 둘러 줘.”

웬디는 몸체에 비해 커다란, 2등신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머리를 끄덕이며 루크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한 줄기의 바람으로 변하며 루크의 몸을 감쌌다.

루크는 몸의 테두리를 따라 얇은 바람의 막이 생성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막이 형성되니 들이마시는 공기의 냄새부터가 달랐다. 방금까진 짠 내 섞인 바다 냄새가 코안에서 맴돌았는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녹음이 짙은 산속에 있는 것처럼 들숨에 청량한 느낌이 가득했다.

“이대로 물에 뛰어들면 되는 건가?”

“네, 들어가신 후에 가볍게 자맥질을 하면 웬디가 바람을 뿜어서 추진력을 붙여 줄 거예요. 정령사는 정령하고 떨어져 있어도 계속 마나를 공급할 수 있으니까 제가 기절하거나 사고로 죽지만 않으면 계속 공기막을 이용하실 수 있어요. 직접 물속에 들어가서 시험해 보시겠어요?”

“그래야지. 너도 들어와, 실전에선 두 사람 몫을 유지해야 할 테니까 미리 익숙해져야지.”

“그러죠, 바로 준비할게요.”

루크는 선원들에겐 항해 속도를 계속 유지하라고 말해 두었다. 감각을 익혀 둘 겸 물속에서 배를 따라 이동할 것이니 일부러 일정을 늦출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루크와 라샤는 각자 공기막을 두른 채로 갑판에 걸터앉았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면서 갑판 너머로 몸을 기울이자 아래로 떨어지며 머리부터 물속에 입수했다.

풍덩! 풍덩!

공기막을 두른 채로 헤엄치는 건 여태까지의 헤엄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실드를 두르면 실드와 함께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아서 헤엄치는 게 불가능한데 공기막은 몸의 테두리를 따라 얇은 막이 생긴 것이라서 온전히 헤엄을 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물기가 몸에 전혀 닿지 않고 뭍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호흡할 수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맥질을 하자 웬디가 반응하며 공기막의 후방 부분에서 대량의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그 바람이 추진력을 더해 주면서 어류에도 뒤지지 않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바닷속에서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던 정어리 떼가 루크의 난입에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해저 바위의 굴속에선 곰치가 머리를 내밀며 난데없는 불청객의 모습을 확인하러 나섰고, 발광 해파리들은 몸을 오므렸다 펴며 움직이는 조명을 자처했다.

‘수심 50미터치곤 꽤 밝은걸.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해저 도시나 잠수 부대 창설도 고려해 봐야겠어.’

루크는 막간을 이용해 바람의 정령을 다방면으로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별안간 발밑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공기막의 아랫부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면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왔고, 삽시간에 온몸이 물에 젖었다. 물이 들어온 것은 숨을 참으면 잠시나마 버틸 수 있으나 문제는 수압이었다.

해녀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 한계까지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30~40미터라고 한다. 그마저도 충분한 장비가 갖추어졌을 때의 이야기지 맨몸으로 갑자기 40미터 깊이에 노출되면 무사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루크의 현재 위치는 수심 50미터 지점이다.

루크는 초인적인 반사 신경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즉시 실드를 펼쳤다.

“실드.”

에어볼로 실드 안에 공기를 채워 넣은 후에야 심해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새 루크의 몸 주변에 머무르고 있던 웬디가 사라지고 없었다.

입수하기 직전 라샤가 말했다. 자신이 기절하거나 죽으면 웬디가 사라진다고.

이는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재빨리 루크는 위를 쳐다보았는데, 수심 10미터 지점에서 라샤의 몸이 축 늘어진 채로 부상하고 있었다.

“블링크.”

트리플 캐스팅의 이치를 가미하여 루크는 실드와 에어볼을 유지한 상태에서 블링크를 활용해 위로 올라갔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라샤의 몸을 붙잡는 데 성공한 루크는 그대로 그녀를 데리고 수면으로 올라갔다.

혹시나 습격 같은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 건가 싶어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주변을 둘러보던 차에 해저 바위 모서리에서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얼핏 보기엔 물고기 같았으나 상반신이 인간의 실루엣을 띠고 있었다.

머메이드가 잠복하고 있었던 것일까?

일단 라샤를 수면 위로 데려가는 것이 급선무다.

검을 빼 들어 사주 경계를 하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던 찰나, 발광 해파리 떼가 해저 바위 근처를 지나가면서 숨어 있는 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은 머메이드가 아니었다.

머메이드는 하반신만 물고기 형태이고, 상반신은 온전히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다. 반면에 지금 해저 바위 근처에 숨어 있는 자들은 상반신까지 비늘로 덮여 있고, 손에 물갈퀴가 붙어 있었다.

목소리로 다른 이를 홀리는 종족으로 유명한 세이렌이었다.

일순 루크와 세이렌들의 눈이 마주쳤다.

궁지에 몰린 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법한 퀭한 눈 속에 적의가 담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이렌들이 입을 벌리며 그들 종족의 주특기인 아리아를 내뿜었다.

아아아아아!

에워싸듯 사방에서 날아드는 음공 속에서 루크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농담으로라도 잘 부른다고는 못하겠군.”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가운데 루크가 블링크 대신 소음이 큰 마법을 연사했다.

펑! 퍼벙! 퍼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