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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02화 (102/200)

# 102

102화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다(2)

세이렌의 종족 특성이라 불리는 ‘아리아’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상대방의 육체나 정신에 타격을 주는 공격형 아리아가 있고, 전투력을 끌어 올리거나 심신을 안정시키는 보조형 아리아가 있다. 모든 아리아는 소리란 형태로 발현되며 세이렌들은 신체 구조상 자신들의 공격형 아리아에 면역을 띤다.

세이렌의 공격형 아리아는 보통 수단으로는 막을 수 없다. 소리란 게 방패나 실드 마법을 무시하고 귀에 흘러들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격형 아리아를 막아 내려면 아예 귀를 틀어막거나 또 다른 소리를 내어 아리아를 단순한 불협화음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루크는 후자 쪽을 택했다.

좌우 양옆으로 3서클 마법인 워터볼을 쏘았고, 루크의 손을 떠난 워터볼이 실드 바깥으로 빠져나가서 근거리 폭발을 일으켰다.

펑! 퍼벙! 퍼엉!

폭발음과 아리아가 한데 섞이며 이도 저도 아닌 불협화음으로 변했다.

세이렌이 아리아라는 수단을 가지고도 그다지 공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게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아리아는 소음에 너무 취약하다. 루크는 폭발음으로 아리아를 흐트러뜨렸지만 만약에 다수 대 다수의 전투가 될 경우엔 함성만 질러도 쉽게 아리아를 막을 수 있다.

폭발음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배에 복귀해서 상황을 지켜보든가, 바로 반격에 나서든가.

만약에 세이렌들이 계속 공격해 온다면 선박을 전장 삼아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간다면 어인들이 인간을 상대할 때 자주 쓰는 전법인 선박 파괴를 시도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반격에 나서는 게 낫다.

루크는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지 머릿속에서 빠르게 주판을 튕기고선 행동에 나섰다. 검을 뽑아 마나를 부여했고, 바닷속에 루크의 검을 빼닮은 투영검이 생성되었다.

폭발음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투영검을 해저 바위로 보내며 세로로 그으려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별안간 해저 바위의 틈새에서 세이렌 하나가 다급하게 헤엄쳐서 투영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 다들 그만하세요!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본 거예요! 머메이드가 아니니까 다들 그만두세요! 그쪽도요!”

오해를 호소하며 겁도 없이 투영검 앞에 두 팔을 벌리고 그 자리에서 유영하는 세이렌이었다.

투영검 앞을 가로막은 세이렌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중년 여성이었다. 하늘색 비늘이 오프 숄더 드레스처럼 꼬리지느러미부터 가슴팍까지 붙어 있었으며, 이마에는 오션 마린이 박힌 서클릿을 착용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도 세이렌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의 외침에 쉼 없이 공명하던 공격형 아리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동시에 루크도 세로로 긋기 위한 동작을 멈추었다.

해저 바위를 향해 떨어지던 투영검은 정확하게 여자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루크는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계속 검을 겨누고선 입을 열었다.

“그쪽의 행동에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군.”

“먼저 사과부터 드릴게요. 일행분께 위해를 가한 것은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해요.”

“고작 한마디로 청산할 정도로 가벼운 행동이 아니었을 텐데?”

“어떤 형태로든 갚도록 하죠. 상황이 개선되면 성의가 느껴질 만한 보상을 하겠어요. 그리고 공격을 한 건 머메이드로 착각해서 그래요. 인간이 그만한 속도로 헤엄을 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공격한 이유는 그렇다고 치도록 하지. 하지만 보상을 하겠다는 말에서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걸? 외상은 평소에 신용을 쌓아 둔 사람이나 걸 수 있는 거야. 초면에 다짜고짜 공격한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루크는 타인에게 빚을 지우는 걸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써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빚을 받아 낼 수 있는 상대일 때의 이야기다. 불쑥 선공을 가하는 신원 미상의 타 종족에게 외상을 허락할 정도로 관대하진 않다.

투영검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지며 세이렌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잘라냈다. 하늘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어지러이 물속을 부유했다.

여자는 은은히 푸른 빛을 발하고 있는 투영검을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전 용왕의 동생이자 해저 섬 저항군의 대장 클로이라고 해요. 자랑은 아니지만 갚아야 할 것을 떼먹은 적은 없어요. 그게 은혜든, 원한이든.”

어쩐지 분위기가 남다르다 싶었는데 세이렌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였다. 해저 섬의 왕족 출신이라면 외상을 달아 둘 정도의 이름값은 된다.

루크는 투영검을 해제하며 라샤의 상태를 살폈다. 물을 먹었는지 상태가 많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아무래도 빨리 갑판으로 데려가 응급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클로이라고 했나? 이번 일은 장부에 달아 두도록 하지.”

클로이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렸으나 루크는 듣지 않고 곧바로 수면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여기까지 타고 온 선박은 한참 떨어진 곳까지 흘러가 있었다. 시운전을 겸하여 알아서 속도를 맞출 테니 항해 속도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루크의 발이 멈췄으니 거리가 벌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소 떨어지긴 했어도 따라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루크는 블링크를 연달아 시전하여 선박을 따라잡고선 갑판에 올라 라샤부터 뉘였다. 곧바로 응급 처치부터 시행하려는데 다행히 손을 쓰기 전에 라샤가 알아서 물을 토해 내며 호흡을 터트렸다.

“쿨럭! 쿨럭! 허억, 허억!”

호흡이 터지면서 정신을 되찾았는지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눈동자가 드러났다.

라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두리번거렸다.

“전하? 전하?”

“여기 있어, 숨부터 골라.”

“하아, 하아, 죄송해요. 그, 제가…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진정하고 심호흡부터 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일은 없었어. 네가 기절했고, 내가 바로 발견해서 건져 낸 게 전부야.”

기절한 탓에 루크의 신변에 위험을 초래했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라샤였다. 그러고는 루크에게 별일 없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 후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후에야 차분함을 되찾으며 두 무릎을 꿇었다.

“제 실수로 전하께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어요.”

“호들갑 떨지 마. 갑자기 아리아 공격이 날아든 게 네 탓은 아니니까.”

“아리아?”

“세이렌이 우릴 보고 머메이드인 줄 알았나 봐. 어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웬디의 추진력이 뛰어났다는 거겠지.”

“좀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면 아리아 공격 속에서도 기절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모자라서 자초한 일이니 벌을 받는 게 마땅해요.”

“분명히 내가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 죄송합니다.”

거기에 세이렌이 있고, 또 그들이 기습을 해 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우연까지 예측할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다.

신처럼 행동하지 못했다고 탓할 정도로 루크는 오만하진 않다.

“일단 쉬어 둬. 그리고 공기막의 성능은 확인했으니 내일부턴 기절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을 검토해 봐야겠어.”

“두 번 기절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서 보험을 들어 두지 말라는 건가?”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전 그저 각오를 밝혀 두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것만큼은 명확히 해 두자고. 출발하기 전에 넌 이번 일의 위험성을 내게 어필했고, 난 네가 어필한 위험 요소까지 감안해도 충분히 할 만하다고 판단했어. 그러니 모든 변수에 대응하는 건 내 일이야. 나는 내 일을 하고, 네가 네 일을 하면 모든 게 무사히 끝날 거야. 이해했어?”

“네, 이해했어요.”

“그럼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있겠지?”

“쉬는 거죠.”

“잘 알고 있군. 내일 다시 잠수할 수 있도록 쉬어 둬.”

“네.”

선실로 들어가는 라샤의 모습은 납득한 것치곤 분한 기색이 다분했다. 루크에게 한 소리 들어서 분하기보다는 첫날부터 안 좋은 모습을 보인 자신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제랄드가 평하기론, 실력 기복에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개념은 똑바로 잡혀 있는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저런 성격은 자존심이 강한 게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긍지가 높다고 하는 게 맞다.

떠돌이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앞뒤가 안 맞긴 하다. 하지만 그게 노력하여 성공한 자의 긍지인지, 타고난 출신에서 온 긍지인지는 아직은 알 길이 없었다.

‘그나저나 슬슬 접근해 올 때가 됐는데.’

아까 물속에서 클로이가 아직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라샤를 갑판 위로 데려다 놓느라 흐름을 끊긴 했는데 상당히 급해 보였으니 저쪽에서 먼저 찾아올 것이다.

용건은 대강 짐작이 간다.

세이렌의 처지를 생각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터.

최근 하니온 공국의 북쪽 바다에서 생긴 일을 알고 있다면 반드시 접근해 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기다리니 선박 아래쪽 수면에서 클로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요! 들리나요? 아까 그 세이렌인데 제 목소리 들리면 대답 좀 해 주세요!”

갑판 근처에 서 있던 선원들이 먼저 바다를 내려다보고선 루크에게 보고를 올렸다.

“전하, 세이렌 하나가 배 아래에서 대화를 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다들 물러나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루크는 선원들을 뒤로 물리며 갑판 난간 쪽으로 이동했다.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클로이가 배에 바짝 붙어 헤엄을 치면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용건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을 반드시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건 아니다. 최대한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때론 모르는 척하는 기술도 필요한 법이다.

때문에 찾아온 용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루크는 일부러 능청스럽게 물었다.

“방금 일은 장부에 달아 두기로 하면서 일단락된 걸로 아는데?”

“그것 말고 따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최근에 하니온 공국 근처 해역에서 머메이드 전사들을 베신 분 아닌가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어 본 적은 있지.”

“당시에 멀리서 현장을 지켜본 세이렌이 있어요. 방금 저희 앞에서 보인 것과 동일한 기술을 구사했단 걸 듣고 온 거예요.”

“당신들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일 텐데?”

“과연 그럴까요? 그 사건으로 머메이드들은 하니온 공국을 복수 대상으로 여길 거예요. 저흰 머메이드들을 해저 섬에서 몰아내고 싶고, 그쪽은 머메이드들의 습격을 사전에 막고 싶을 테죠. 이만하면 공공의 적 아닌가요?”

“손을 잡고 머메이드들을 치자는 거군.”

“그렇죠. 아까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호흡할 수 있는 기술을 구사하신 것 같은데 보급화가 되어 있는 기술인가요? 만약에 보급화가 된 기술이라면 공국으로 가서 병력을 요청해 주셨으면 해요.”

루크가 머메이드 전사들을 벤 사람이라는 것만 알지 하니온 공국의 공왕이라는 것까진 모르고 있는 듯하다.

공공의 적을 제압하자는 명분하에 이미 손을 잡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아줄이 눈에 보이기만 하는 것과 실제로 잡을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온 것은 명백히 다르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아직 루크는 동아줄을 내려 준 적이 없다.

“그쪽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만?”

“네? 방금 말씀드렸지만 머메이드들은 공공의 적…….”

“그건 그쪽의 생각이지. 우린 머메이드들이 올 때마다 잡아 족치면 그만이야. 일부러 해저 섬까지 내려가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후우, 이거까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머메이드들이 고대 정령왕 중 하나인 아쿠아의 봉인석을 가지고 있어요. 아쿠아의 봉인을 풀어서 이용하기 시작하면 하니온 공국도 마냥 안전하진 않을 거예요.”

“그거 기대되는군. 우리 공왕 전하는 같은 고대 정령왕 중 하나인 라그나로스를 쓰러뜨린 대단하신 분이라서 말이야.”

“정말 손잡을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슬슬 꼬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걸로 봐선 이제 협상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루크는 칼자루를 쥐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은 언제나 멀리서 동아줄을 살랑살랑 흔들며 애간장을 태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그쪽이 뭘 줄 수 있는지부터 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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