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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05화 (105/200)

# 105

105화 말귀를 못 알아듣는 머리라면 필요 없겠지(2)

아몬이라 불린 바다 이무기는 당장이라도 루크와 라샤를 집어삼킬 기세로 혀를 날름거렸다. 머리 양옆에 달려 있는 두 개의 넓적한 지느러미가 목도리 도마뱀의 피막처럼 활짝 펴지며 그가 경계 태세에 돌입했음을 알려 줬다.

클로이는 사나운 짐승의 앞에 선 듯 자세를 낮추고 손을 내밀며 기다리란 제스처를 취했다.

“흥분하지 말고 제 말부터 들어 보세요, 아몬. 이 사람들을 데려온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클로이 공주, 예전에 섬을 떠나면서 반드시 섬을 탈환할 힘을 갖춰서 돌아오겠다고 했지. 설마 거기 있는 뭍의 생물들에게 섬 탈환을 맡길 생각인가?”

“바라지 않는 대답이겠지만 이분들이 머메이드들로부터 해저 섬을 해방시켜 줄 거예요.”

“인간이 바다에 저지른 죄를 모르진 않을 텐데? 수많은 어인들이 노예로 잡혀가고, 성스러운 생물들을 그물로 남획하는 대죄를 저지른 자들이지. 내가 보기엔 섬 탈환에 눈이 멀어 긍지마저 잃은 듯하구나.”

“아몬이 잘못 알고 있는 거겠죠. 여태까지 들은 모든 소문의 근원이 누구였나요? 머메이드들이죠. 그들이 언제 한번 소문의 실체를 제대로 증명한 적이 있긴 한가요?”

클로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섬을 떠나 보니까 세상이 더 잘 보이더군요. 인간의 나라에선 한참 전에 노예 제도가 사라졌어요. 어부들이 반딧불 돌고래들을 풀어 주는 광경도 여러 차례 목격했고요.”

“날 설득하려고 꾸민 이야기인 것 같구나.”

“이만해 두죠. 잡설이나 하려고 아몬을 찾아온 게 아니에요. 아몬이 정말로 긍지 높은 자라면 오래전부터 해저 섬의 주민들과 맺어 온 약속을 깨지 않을 거라 믿겠어요. 이분들은 제 손님이고 제가 인정한 친구들이에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때문에 맹세를 어기겠다면 말리지 않겠어요.”

아몬은 비늘로 덮인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루크와 라샤를 한번 더 훑어보았다. 촉촉하게 번들거리는 황금빛 눈동자와 가느다란 검은색 동공이 내면을 꿰뚫어 보려는 듯 오랫동안 루크와 라샤에게 머물렀다.

그의 눈빛 속에는 아직 인간의 왕국에 노예 제도가 남아 있을 무렵에 아몬이 직접 목격한 사실과 머메이드들의 선동이 어우러져 아직까지도 깊은 불신감이 서려 있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을 바라보던 아몬은 언짢은 기색을 그대로 남겨 둔 채로 클로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맹세는 맹세이니 지키도록 하마. 하지만 나도 보아 온 게 있고, 들어 온 게 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든 오래전에 인간들이 행한 일들을 잊을 거라 생각하진 말거라.”

아몬이 내뱉은 말 중 마지막 한마디는 명백히 루크와 라샤를 향한 경고였다.

어인들의 수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것은 좋으나 분노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그 당시에도 노예 제도를 허가한 나라가 있었고, 허가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

한데도 뭉뚱그려 모든 인간이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부족에서 오는 편견에 불과하다. 마치 인간이 머메이드만 보고 모든 어인이 어인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편견에 찌든 뱀 한 마리 혼내 주는 것이야 썩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하다만, 사전에 클로이가 뱀이 무례한 발언을 하리란 걸 미리 알려 주었으니 잠자코 넘어가 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검을 뽑진 않더라도 비꼬는 말로 대응 정도는 했을 것이다.

협상이 끝나면서 아몬을 타고 소용돌이 방벽을 넘는 걸로 결정되었다.

아몬은 아가리를 세로로 쩌억 벌리며 탑승을 허락했다.

“길게 시간 끌긴 싫으니 얼른 탑승하거라.”

분위기로 보건대 탑승이라는 것이 바다 이무기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소용돌이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니 어딘가 밀폐된 공간에 탑승해야 한다는 것을 예상하긴 했어도 뱀의 아가리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호의적이라면 모를까 아까부터 계속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뱀이지 않은가.

영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클로이는 루크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곤 살갑게 등을 툭툭 두드렸다.

“괜찮아요, 안 삼켜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마치 애완견을 기르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마구 짖어 대는 개를 두고 ‘괜찮아, 안 물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삼키니 마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몬의 입에 들어가서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변수투성이인 것이 루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환경에서 이동하는 만큼 사고가 발생하면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루크는 라샤와 함께 아몬의 입안으로 들어가며 미리 언질을 넣어 두었다.

“아몬의 입안에서도 공기막은 계속 유지해 둬. 어떤 사태에든 대비할 수 있게.”

“아몬이 우릴 삼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아니, 아마 삼키는 일은 없을 거야. 우릴 삼키려면 클로이도 삼키게 되니까.”

“혹시 모르죠. 싫어하는 음식을 먹을 때 일부러 좋아하는 음식과 섞어서 삼키는 경우도 있잖아요?”

“재미있는 농담이긴 하지만 웃어 주진 못하겠는걸? 아무튼 항상 긴장해 둬.”

한편 클로이와 그녀의 측근들은 루크와 라샤를 먼저 들여보내고 자신들도 아몬의 입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클로이가 막 헤엄을 치려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려 할 때, 측근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클로이 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탑승한 후에 하면 안 될까? 꾸물대다가 머메이드들에게 발각되는 것만큼 우스운 꼴도 없잖아?”

“인간들이 듣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라서요.”

“한배를 타기로 하고 여기까지 왔어. 어설픈 이유로 연대를 해치는 행동은 삼가 줬으면 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요.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10년 동안 오션 마린을 제공하고 상선 호위까지 해 줘야 하죠?”

“당신들도 그의 힘을 목격하지 않았나요? 그와 손을 잡으면 무조건 왕좌를 탈환할 수 있어요. 확실한 만큼 비싼 값을 지불하는 건 당연하죠.”

“혹시라도 지불하지 않아도 될 여지가 있다면요?”

“그리되기만 하면 좋기야 하겠죠. 문제는 그게 가능할 정도로 녹록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죠.”

클로이는 루크가 제시한 조건을 바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발백중으로 적중하는 화살이 있다면 일반 화살보다 10배가량 비싸다고 해도 살 사람은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긴 하다.

그녀의 측근들은 아몬의 어두운 입안을 힐끗힐끗 보면서 위험한 발언을 내뱉었다.

“공기막을 쳐 주고 있는 여자를 죽이면 주도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와요.”

살벌하기 그지없는 제안에 클로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그를 적으로 돌리자는 건가요?”

“과정을 잘 조립하기만 하면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요. 루크 공왕이 물속에서도 편하게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는 건 전부 라샤의 정령 덕분이에요.”

측근은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그러니 라샤를 제거하기만 하면 물속 활동에 제한이 생기죠. 저도 하급 바람의 정령을 다룰 수 있으니까 라샤의 역할을 대신 맡겠어요. 그리고 루크가 머메이드들을 정리한 후에…….”

“우리 쪽에서 임의로 공기막을 풀어서 죽이자는 거군요.”

“어차피 하니온 공국은 루크 공왕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거예요. 그들에겐 머메이드들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면 모든 게 해결되죠.”

즉, 라샤를 죽여서 공기막을 쳐 주는 조력자를 세이렌으로 대체하고, 일이 끝나면 공기막을 풀어서 루크마저 제거하잔 뜻이었다.

토사구팽.

머메이드들을 사냥하는 데까지만 이용하고 그 뒤에는 버리자는 거나 다름없었다.

거칠다 못해 과격하기 짝이 없는 수단인지라 내심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었다.

“너무 악랄하지 않나요?”

“저쪽의 제안은 어떻고요? 자꾸 합당한 조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용왕이 되신 후에 ‘인간들 덕분에 왕위를 탈환했으니 그들에게 봉사합시다’라고 말씀하실 생각이신가요? 앞으로 자라날 어린 세이렌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독하게 먹으셔야 해요.”

안 그래도 이득을 보는 방법인 데다 어린 세이렌들을 위해서란 명분이 양심의 가책을 덮어 주었다.

모든 건 해저 섬의 미래를 위해서.

그 한마디 앞에서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클로이의 판단력이 흐려졌다.

클로이는 사실상 허가나 다름없는 말을 하였다.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제거할 거죠?”

“아몬에게 협조를 구하도록 하죠. 인간을 제거하는 일이니 쌍수 들며 환영할 거예요.”

“루크 공왕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속하게 전달하세요.”

클로이와 측근들이 아몬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측근 중 한 명이 몰래 따로 움직여 아몬에게 라샤만 제거해 달라고 제안을 하였다.

안 그래도 인간을 입안에 들이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아몬으로선 바라 마지않던 제안이었다. 뱀이니 쌍수는 없어도 머리 옆에 달린 넓적한 지느러미를 파르르 흔들며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런 거라면 협조하마. 흙냄새 나는 것들은 하나라도 줄어들수록 좋지.”

* * *

아몬의 입속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하며 입 냄새가 진동했다. 속이 안 좋은 사람이 트림할 때나 날 법한 냄새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하수구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클로이가 말하길 소요 시간은 10분쯤 되며, 아몬이 알아서 머메이드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내려다 주기로 했다고 한다.

10분이면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이니 감수하기로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바깥에서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소용돌이 방벽 안에 돌입했다는 증거였다.

루크는 심상치 않은 바람 소리 속에서도 흔들림이 하나도 없는 점을 언급했다.

“아몬은 소용돌이에 영향을 받지 않나 보군.”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인데 클로이가 어깨를 흠칫 들썩이더니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소용돌이라곤 해도 결국 마법으로 만든 거니까요. 이무기의 비늘은 드래곤 스케일처럼 마나 면역을 띠고 있거든요.”

“아몬을 병기로 이용해 볼 생각은 한 적 없었나 보지?”

“맹세만 아니었다면 협조를 요청했겠죠. 옛날에 아몬은 해저 섬의 어인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거든요.”

이무기, 용인, 드래곤 등등 용족들은 맹세를 목숨보다 중히 여긴다. 머메이드들도 해저 섬의 어인들이니 아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한 발짝 물러나서 집안싸움은 집안사람들끼리 해결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멈추지 않던 중 별안간 아몬이 수상한 행동을 취했다.

갑자기 입을 살짝 벌려서 바닷물을 입안에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둑이 터진 듯 벌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쏟아지며 삽시간에 입안이 바닷물로 가득 찼다.

콸콸콸콸콸!

아몬의 입안에 머무르고 있던 루크 일행은 대응할 틈도 없이 물속을 부유했다. 물살에 휘말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가운데 루크는 목격했다.

아몬의 혀가 노린 듯이 라샤의 몸을 휘감고서 입밖으로 내던지는 것을.

난데없는 물난리는 아몬이 입을 닫고, 코로 물을 내뿜으면서 일단락되었다. 사전에 둘러 둔 공기막 덕에 루크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만 대신 몸이 상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공기막을 쳐 줄 라샤가 사라진 것이다.

옆에선 클로이 일행이 몸을 가누면서 일어나며 아몬을 탓했다.

“아몬! 갑자기 입을 벌리시면 어떡해요!”

“갑자기 하품이 나서 말이지.”

“어? 어라? 라샤? 라샤는 어디 갔죠?”

뒤늦게 라샤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클로이 일행을 두고 루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마나를 부여했다.

보랏빛 검날 주변에 쩍쩍 달라붙을 듯 진득한 농도의 마나가 일렁였다. 동시에 루크가 칼을 품은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들을 응시했다.

“손잡고 걸어갈 길을 제시해 주었는데도 제 발로 걷어차는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머리라면 필요 없을 테지.”

클로이 일행이 실수한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루크의 눈썰미를 얕잡아 보고 어설픈 연기를 했다는 것.

또 하나는 아몬의 마나인 이뮨은 놈의 입안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지금 이 순간, 아몬의 입안에서 용이 되지 못한 파충류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어인들을 베기 위한 투영검이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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