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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06화 (106/200)

# 106

106화 말귀를 못 알아듣는 머리라면 필요 없겠지(3)

루크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해저 섬을 제압할 수 있다. 세이렌들이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바다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내려왔을지도 모르고, 소용돌이 방벽에 가로막힌다 하더라도 루크라면 어떻게든 돌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이렌들과 손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성 때문이다. 효율을 우선시하는 루크의 성격상 효율 좋은 방법을 놔두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때문에 이득을 볼 수 있는 협상안을 내민 것이고, 협상안이 전혀 바가지가 아니란 걸 납득시키기 위해 라이덴의 부대를 보란 듯이 처리한 것이었다.

한데 저쪽에서 먼저 라샤를 배제시키는 행동을 보였다.

왜겠는가?

현 상태에서 라샤의 역할은 공기막의 공급책이라고 할 수 있다. 라샤가 없다면 공기막의 공급이 끊길 테니, 만약에 클로이 측에 새로운 공기막을 제공할 능력자가 있다면 저쪽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루크를 사냥개처럼 쓰다 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한쪽은 오션 마린과 상선 호위를, 한쪽은 왕좌 탈환을.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서 입속에서 쑤셔 넣어 줬는데도 내뱉는다?

가만히 앉아서 왕좌만 날름 먹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양심을 벼룩시장에 내놓은 모양이다.

밀어붙이는 것에 약한 클로이가 생각할 법한 방안은 아닌 것 같고 측근들이 내놓은 작전으로 보인다. 그렇다 치더라도 결정은 클로이 본인이 내렸을 테니 변명거리로 삼기에는 빈약하다.

루크는 한 번 뱉은 것을 주워다 다시 입속에 쑤셔 넣어 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루크는 두 발을 단단히 딛고선 검을 횡으로 그었다.

서걱!

투영검이 루크의 동작을 따라 일선을 그리며 푸른 잔상을 남겼다.

변명을 내뱉으려던 클로이 일행은 혼비백산하여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개중에는 위협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공격형 아리아를 발산하는 세이렌도 있었다. 그러나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공격형 아리아를 노래하기도 전에 몸이 갈라졌기에.

쩌적!

유일하게 아몬의 어금니 근처에 있던 클로이만이 몸을 납작 엎드리면서 간신히 검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베여 나가는 측근들의 말로를 목격한 그녀의 표정이 이리 말하는 듯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함께한 정이 있는데 이리 단칼에 벤다고? 너무한 거 아냐?’

그녀들이 획책한 계획을 생각하면 단칼에 보내 주는 건 자비로운 편에 속했다.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심보 자체가 너무한 것 아닌가?

비단 루크의 일격에 잘려 나간 것은 세이렌들만이 아니었다. 아몬의 몸도 궤적에 포함된 만큼 잘려 나가며 상하로 쩌억 갈라졌다.

이전에 무기형 마물의 마나 회로를 흡수하면서 루크의 투영검 또한 길이가 예전에 비해 훨씬 길어졌다. 지금 소환한 투영검의 길이가 6미터이니 한 번의 휘두름으로 아몬의 몸뚱이 중 3분의 1이 잘려 나간 셈이었다.

벌어진 틈을 통해 아몬의 피가 치솟으면서 바닷물과 한데 섞였다. 핏물이 섞여 탁한 색을 띠게 된 바닷물이 루크가 서 있는 장소로 밀려들어 왔다.

루크는 클로이를 끝장내기 위해 한 번 더 검을 휘둘렀으나 탁한 바닷물이 연막처럼 시야를 가린 탓에 베어 냈는지 베지 못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확인 사살을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직 소용돌이 방벽을 완전히 지나가지 못했다. 방벽 한가운데에서 아몬이 죽었으니 소용돌이 한복판에 노출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 세찬 물살이 루크의 몸을 쓸어 담았고,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는 불안정한 해류에 휘말려 몸이 전후좌우 불규칙하게 마구잡이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탓에 멀미가 올라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기막이 유지되고 있어서 익사할 위험은 없다는 점이었다.

‘기절하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나 보군.’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안력을 돋우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라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용돌이에 휘말려 점차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태가 어떤지 자세하게 파악할 순 없으나 기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첫날 기절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계속 집중하고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돌발 상황 속에서도 매끄럽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루크는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블링크를 준비했다.

블링크는 시전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향해 이동하는 마법이다. 시야가 마구 흔들리는 상황 속에선 의도한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리스크를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한데 멀리서 라샤가 두 팔을 위로 들면서 × 자로 교차하였다.

그녀가 몸짓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다가오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 자를 풀었다가 다시 만들며 굳이 다가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를 여러 번 강조하는 라샤였다.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처 없이 부유하던 라샤가 별안간 방벽 안쪽으로 튕겨 나갔다.

아몬을 타고 이동하면서 이미 소용돌이 방벽을 거의 통과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해저 섬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궤도에 올라탔던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해저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구태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블링크는 삼가는 게 바람직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서 흐름에 몸을 맡기면 알아서 방벽 안쪽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그런데 방벽 아래에서 별안간 다수의 머메이드들이 몰려오는 것이 루크의 눈에 들어왔다. 아몬이 갈라지면서 튄 피가 바닷물에 번져 나가며 마치 화재 현장의 연기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연기를 보면 사람들이 몰려와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아몬을 벤 것이 시선을 끄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머메이드들에게 발각된 것까진 괜찮다. 방벽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조무래기쯤이야 얼마든지 실력으로 누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상황이라는 게 뭐든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방벽 바깥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머메이드들이 침입자를 퇴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뭘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냐! 흙냄새 나는 생물이 해저 섬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느냐! 방벽의 흐름을 바꿔라!”

마법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성된 소용돌이라 그런지 흐름을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도박을 해야 할 것 같다.

루크는 시야가 상하좌우로 마구 뒤집히는 상황 속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방벽의 안쪽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블링크.’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1이 나올지 6이 나올지는 운에 달려 있다.

블링크 사용과 동시에 루크의 몸이 방벽에서 사라졌다.

방벽 안쪽으로 들어온 건가?

루크는 주변을 살피며 해저 섬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확인해 보았는데 유감스러운 결과와 마주했다. 방벽 안쪽으로 블링크가 시전된 것이 아니라 방벽 바깥쪽으로 시전되었던 것이다.

최대한 방벽 안쪽으로 쓰려고 그쪽을 보았는데 마지막에 소용돌이의 흐름이 바뀌면서 방향이 틀어진 듯하다.

루크는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며 심호흡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짧은 시간 동안 뱃멀미가 여러 차례 중첩된 것 같은 수준의 멀미였다. 멀미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팔랑귀 세이렌 하나 때문에 일이 꼬이는군. 라샤는 알아서 자기 몸 하나 챙길 정신머리는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어떻게든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부터 다시 찾아봐야겠군.’

방법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방벽 아랫부분에 약간의 균열이 벌어지더니 일련의 무리가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이들은 다름 아닌 대포 해마를 탄 머메이드 전사들이었다.

안쪽에서는 방벽을 자유자재로 일부분만 열어서 출입구를 만들 수 있나 보다. 하지만 출입구를 여는 권한을 지니고 있는 게 머메이드들이다보니 루크가 이용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머메이드 전사들은 마치 모처럼의 사냥을 즐기려는 것처럼 유세를 떨었다.

“흙냄새 나는 놈이 찾아올 장소를 착각했나 보군. 저놈에게 주제란 것을 알려 주자꾸나.”

정말이지 기특하기도 하다.

안 그래도 클로이와 찢어지면서 방벽을 지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자를 따로 구해야 하던 참이었다. 머메이드든 세이렌이든 아무나 걸리기만 해라, 하는 마인드였는데 저쪽에서 알아서 기어 나와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루크는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으며 양손에 마나를 배열하였다.

“머메이드도 그렇고 세이렌도 그렇고 어인들이 붕어 대가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겠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바다 이무기가 누구한테 베인 건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저 아래에선 머메이드 전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트라이던트를 높이 들고 있었다. 트라이던트의 끄트머리에서 루크를 분쇄하기 위한 물 속성 마법이 난사되었다.

“워터볼!”

“워터볼!”

“워터볼!”

물속에서 쏘아 올린 물 속성 마법은 바닷물과 동화되어 카모플라쥬를 입힌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마법 다발을 앞에 두고 루크 또한 마법을 시전했다.

“트리플 캐스팅. 아쿠아 스파이럴, 하이웨이브, 아이스 월.”

루크 또한 머메이드들을 전멸시키는 게 아닌 제압만 하기 위해서 투영검 대신 마법으로 대응했다. 다만 머메이드들의 숫자가 50명이 족히 넘었기에 모두 공수 양면으로 활약할 수 있는 광역 마법을 위주로 시전하였다.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요란한 환경 속에서 루크와 머메이드 전사들의 마법이 격돌했다. 일 대 다수의 마법 전투는 일종의 무대 연출을 보는 듯 화려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만들어 냈다.

퍼버벙! 퍼벙! 펑!

* * *

수작을 부리다가 들켜 루크에게 베일 뻔한 클로이는 소용돌이 덕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몬의 시신에서 튕겨 나온 순간, 갑자기 소용돌이의 흐름이 바뀌면서 곧바로 방벽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살아남은 것까진 좋은데 하필이면 머메이드 전사들이 머무르고 있는 구역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말았다.

클로이에게 대응할 무력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 자리에서 제압당했다.

머메이드 전사들이 트라이던트의 창대로 클로이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상반신 전체에 문신을 한 사내가 다가왔다.

“이게 누구야? 겉으로만 고고한 척하는 개차반 왕족 아니시던가?”

주변 사람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한껏 목청을 키우며 조롱을 날리는 사내였다. 사내의 조롱에 동조하듯 둥그렇게 클로이를 둘러싸고 있던 전사들이 비웃음을 남발했다.

클로이는 얼굴로 바다 밑바닥을 문대면서 사내를 노려보았다.

“바알, 당신만큼은 제게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죠. 당신만 배신하지 않았다면…….”

“배신? 기억에 장애라도 왔나 본데 먼저 배신한 건 그쪽이야.”

“무, 무슨 헛소릴 하시는 건가요?”

“시치미 떼지 마시지. 스커필드 전하께 중역 자리를 권하면서 반란을 일으키자고 제안한 건 그쪽이 아니던가? 반란이 성공한 다음에 우릴 반역자로 몰아서 사형시키자고 한 게 누구였더라?”

“헛소리도 정도껏 하세요. 전 후계자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걸 같이 항의해 달라고 했을 뿐이었어요. 그쪽이 멋대로 의미를 곡해해서 반란을 일으킨 거고요.”

“아아~ 불쌍한 왕자님. 숙모가 여왕이 되고 싶어서 자기 아비를 죽인 걸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닥치세요!”

내막은 이랬다.

칼제론 용왕에겐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진짜로 피가 이어진 아들이 아니라 양자로 들인 자였다.

클로이는 가문의 피를 이어받지 않은 자가 용왕이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고, 후계자 결정 문제에 머메이드들을 끌어들였다.

입으로는 바알의 말을 부정하고 있으나 실제론 바알이 말한 대로였다. 용왕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겸사겸사 평소부터 문제만 일삼았던 골칫덩이들을 제거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의도를 들켜서 머메이드들에게 쫓겨난 것이고 말이다.

왕자가 머메이드들에게 쫓겨 다닐 때에도 그녀는 용왕의 상징인 오션 써클릿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세이렌들은 결국 말만 그럴싸하게 자신들이 정의인 양 떠들어 댔지 속내는 머메이드들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었다.

바알은 더 들어 볼 가치도 없다는 양 트라이던트를 거꾸로 들었다.

“능력은 없는데 욕심이 많으면 명이 짧아지기 마련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바알이 트라이던트를 내리찍으면서 클로이의 몸에 바람구멍 세 개를 뚫어 주었다.

푸욱!

바닷물에 클로이의 핏물이 자욱하게 번지는 가운데, 바알은 트라이던트를 한껏 비틀며 냉랭한 어투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션 써클릿을 스커필드 전하께 가져다드려라. 이 쓸모없는 몸뚱이도 얼른 치우고. 쳇, 한동안 쓰레기의 피가 물속에 섞여 다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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