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08화 (108/200)

# 108

108화 생선이 위협한다고 발톱을 거두는 고양이는 없다(1)

데메그리 교의 숙원은 누가 뭐래도 전 대륙에 자신들의 종교를 퍼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숙원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신성 제국의 존재였다.

전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이자 데메그리 교를 이단으로 지정하여 학살한 주범이다. 데메그리 교에게 있어 신성 제국은 가증스러운 숙적이자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원수였다.

게다가 추가로 데메그리 교에선 루크를 경계하고 있다.

신성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첫걸음으로 겐크 왕국을 밀어주고 데메그리 교의 총본산으로 삼았다. 그리고 카이둔 국왕을 제국의 황제급으로 키워서 신성 제국과 싸움을 붙이려 했다.

한데 데메그리 교를 겐크 왕국의 국교로 삼으려는 계획의 주춧돌이 될 라그나로스 계획을 루크가 저지해 버렸다. 데메그리 교에선 루크에게 신성 제국급의 숙적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가 더욱 세력을 키우기 전에 제거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아쿠아의 힘을 이용한다면 루크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신성 제국까지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쿠아 계획의 책임자를 맡게 된 데메그리 교의 고위 사제, 칸트는 스커필드와 함께 이동하며 자신이 목격한 불안 요소를 지적했다.

“해저 섬 앞에서 누군가가 머메이드 전사들과 싸우고 있던데, 계획에 지장을 주는 일을 벌이는 건 아닐 테지요?”

일이 잘못되면 스커필드의 책임이라고 미리 판을 깔아 두는 것이다.

책임을 묻는 듯한 칸트의 말투가 스커필드의 심기를 건드렸다.

라이덴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보고를 들은 후라서 그리 기분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션 써클릿을 손에 넣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예정이고 나발이고 손수 침입자를 찢어 버리러 뛰쳐나갔을 것이다.

안 그래도 스커필드는 민머리에 산적처럼 수염을 길러 험악한 인상인데, 얼굴을 구기자 더더욱 성난 얼굴이 되었다.

“지금 누구에게 그따위 말투를 쓰는 것이냐?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네놈부터 찢어 주랴?”

“대륙과 바다를 아울러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계획이니 신중을 기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침입자의 정체를 꼭 알아야겠습니다.”

“쳇, 하니온 공국 놈 중 하나겠지. 얼마 전에 놈들과 충돌이 있었으니까.”

실드 안에서 칸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데자뷔가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라그나로스 계획 때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실마리에서 루크가 개입하여 모든 계획이 망가졌다.

눈치가 백 단인 놈이니 벌써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소용돌이 방벽의 바깥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놈이 루크일 수도 있다.

거미줄처럼 생각이 천파만파로 뻗어 가는 중 칸트는 생각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백작 때라면 모를까 이젠 공왕인데 설마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을 리가 있나. 하니온 공국의 정찰 부대에 속한 마법사가 들렀다가 발각됐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공왕이 된 자가 휘하의 마나마스터들을 놔두고 단독으로 움직인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그랜드마스터라지만 왕은 왕이다. 왕이 호위도 없이 하니온 공국과 한참 떨어진 해저에서 노닥거리고 있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게다가 공왕이 자리를 비웠다면 하니온 공국에 심어 둔 밀정들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을 터.

하니온 공국의 신하들에게 루크의 존재를 철저하게 감출 정도의 능력은 없다.

특히 이번에 하니온 공국 행정부의 실권자로 등극한 드골 백작은 이전에 귀족가의 집사 노릇이나 하던 자로 알고 있다. 집사 출신의 늙은이에게 공왕의 부재를 감출 수 있을 만한 수완이 있을 리 없다.

칸트는 속으로 ‘정찰 부대의 일원이겠지’라며 낙관적인 판단을 내렸다.

“아무튼 하니온 공국의 끄나풀에게 많은 정보를 줘서 좋은 건 없으니 확실하게 제거해 주십시오.”

“누가 들으면 내가 데려온 줄 알겠군. 세이렌 놈들이 데려온 걸 나보고 어쩌란 것이냐?”

“제 말의 어디에 화를 낼 부분이 있었습니까? 어디까지나 전 완벽하게 이 일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데메그리 교를 위해서도, 전하를 위해서도 일 처리는 철저하게 할수록 좋지요.”

“주제넘은 참견이라고 해 두지.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네놈은 네놈의 본분인 봉인석 해제 의식에만 집중해라.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주제넘은 참견을 했다간 의식을 치르기 전이라 할지라도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득으로 겨우 묶여 있는 동맹인지라 대화 내용마저도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가시 돋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용궁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 앞에 이르렀다.

아쿠아 봉인석은 용궁 지하에 보관해 두었다.

스커필드는 손에 쥐고 있던 오션 써클릿을 칸트에게 건넸다.

“이게 있으면 아쿠아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단 게 사실이길 바라지.”

“그 부분은 의심치 않으셔도 됩니다. 최근에 연구를 통해서 많은 성과를 얻었지요. 고대의 정령왕을 부릴 수 있는 기술력도 확보해 뒀으니 외부의 방해만 막아 주시면 됩니다.”

겐크 왕국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카이둔 국왕으로부터 정말 많은 지원금을 빨아먹었다.

카이둔 국왕이 무력 확보에 눈이 멀어 아낌없이 막 퍼 준 덕분에 5성급 마물 연구에 많은 진척이 있었고, 고대 정령왕의 봉인을 푼 후에 그들을 조종할 방법도 알아냈다.

연구 결과, 고대 정령왕의 기운과 마기를 섞어서 의식에 활용하면 정령왕을 마물을 다루듯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션 써클릿에 박혀 있는 아쿠아의 눈물은 아쿠아가 봉인당하기 직전에 흘린 눈물이 오션 마린에 스며들면서 생겨난 물건이기에 아쿠아의 기운을 추출할 수 있었다.

라그나로스 녀석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봉인을 푼 다음에 운에 맡기는 방식이었으나, 아쿠아는 직접 조종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악랄한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

먼바다에서 해일만 일으키며 치고 빠지는 방식만 사용해도 당하는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그 와중에 스커필드는 확실히 스스로 미친놈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동생이 죽고, 혐오하던 인간들을 용궁 가장 깊숙한 곳에 들이는 와중에도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지하를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만들 테니 당장 의식을 거행하거라. 그리고 의식에는 우리 전사들도 몇 명 참가시키겠다. 그 부분은 이견이 없을 테지?”

한마디로 아쿠아의 조종 권한을 주지 않는 식의 배신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칸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마음대로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칸트 일행과 머메이드 1급 전사들이 지하로 내려간 직후, 스커필드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지하실 입구를 봉하라고 명했다. 그러고는 칸트가 오기 직전에 들은 인간 침입자의 생존 여부를 물었다.

“아까 방벽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는 인간은 어떻게 됐느냐?”

스커필드의 부하들은 배에 신호가 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폭탄 돌리기를 하듯 서로에게 보고를 떠맡기려고 눈치를 보던 중 결국 말단에 있던 자가 총대를 멨다.

“이런 보고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방금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침입자를 제압하러 나섰던 자들이 거의 전멸했다고 합니다.”

스커필드는 순간 부하가 말실수를 한 줄 알았다.

10, 20명도 아니고 50명이 넘는 전사가 방벽 바깥으로 헤엄쳐 나간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작 인간 한 명을 못 죽여?

게다가 보고에 섞여 있는 ‘거의 전멸’이라는 애매한 표현이 심히 거슬렸다.

“거의 전멸은 또 무슨 머저리 같은 표현 방식인 거냐? 전멸했다는 것이냐, 하지 않았다는 것이냐!”

“노, 놈이 우리 전사들을 모두 죽이고 세 명만 남겨 놓았습니다. 전사들에게 방벽을 통과할 방법을 캐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개자식을 봤나! 잠깐, 50명이 넘는 전사가 갔는데도 못 죽였어? 혹시 라이덴을 죽인 녀석과 동일 인물인 건 아니겠지?”

“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길! 네놈들은 아는 게 있긴 한 것이냐! 멍청하게 지느러미만 흔들지 말고 한 번이라도 보고다운 보고를 가져와 보란 말이다!”

“괜찮을 겁니다. 붙잡힌 전사들은 방벽을 여는 방법을 모르니 놈이 문책해도 방벽 안으로 들어올 방법을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게 다냐? 내 동생을 죽인 놈이 저 밖에서 내 병사들을 죽이고 있는데, 방벽 안에서 몸 사리고 있으라는 게 네놈들이 생각하는 최선의 수란 말이냐?”

“전하, 클로이가 방치되어 있던 건 인간들과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일 테지요. 클로이의 추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알아서 저 인간의 정체를 실토할 겁니다. 전하께서 직접 나설지 말지는 적의 정체를 알아본 후에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닥쳐라! 내 당장 놈을 찢어발기고 말겠다! 제기랄, 이딴 것들도 부하랍시고 밑에 두고 있다니 환장할 노릇이군. 뭣들 하느냐! 어서 내 트라이던트와 갑옷을 가져오지 않고!”

신중을 기하자는 부하들의 말을 독불장군의 기질을 드러내며 모조리 팽개치는 스커필드였다.

부하들로선 기어코 출격을 고집하는 스커필드를 막을 도리가 없어 저희끼리 어떻게든 미지의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바쁘게 서로 귓속말을 나누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침입자가 저리 뻣뻣하게 버티고 있는 건 스커필드 전하보다 실력이 뛰어나서일 수도 있네.”

“흐음, 세이렌들에게 이쪽의 정보를 전해 들었을 테니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근데 어쩌겠나. 전하가 우리말을 무시하고 방벽 바깥으로 뛰쳐나갈 기세인데, 이 용궁 안에서 전하를 막을 간 큰 자가 어디 있겠나.”

“어서 세이렌 추종자들에게 연락할 방도나 찾아보게. 혹시 상대를 잘못 골라서 전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데메그리 교 놈들이 이때다, 하고 약속을 파기할걸세.”

부하들은 스커필드의 성질 머리를 막을 방도가 없으니 최소한 상대방의 정체만이라도 알아보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밑에서 부하들이 개고생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스커필드는 트라이던트를 쥐며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몸소 소용돌이 방벽으로 향했다.

* * *

“정말 모릅니다, 진짜라고요. 전 명령에만 따른 것뿐이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비굴의 상징이라 불리는 ‘모른다, 진짜다, 용서해 줘’의 3단 세트가 한 호흡에 튀어나오고 있었다.

체면을 내버리고 손을 싹싹 빌고 있는 자는 루크를 잡으러 나섰던 머메이드 전사 중 한 명이었다.

50명 중에서 3명이 남았는데, 루크에게 방벽을 넘는 방법을 실토하면 살려 준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나 머메이드 군의 정보 체계는 말단에게 방벽을 넘는 방법을 알려 줄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했는데 3명 중 2명이 루크의 검에 목이 달아났다.

루크는 마지막 남은 머메이드 전사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며 단호한 태도를 일관했다.

“‘저놈에게 주제를 알려 주자’고 했지? 이 말을 한 장본인이 내뱉을 말은 아니지 않나?”

“모르는 걸 어떻게 대답한단 말입니까. 저도 제 목숨 귀한 줄 압니다. 목숨이 걸린 마당에 거짓말을 왜 합니까?”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너를 죽이려 했지만 네가 원하는 정보는 나에게 없으니 일단 살려 주기나 해라.

어쩜 이리도 근본 없는 논리를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자신에게 이용 가치가 없다는 걸 1초라도 빨리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같다. 앞서 죽은 머메이드가 그랬고, 그 전에 죽은 머메이드도 똑같았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건 시간 낭비였다.

“믿어 주지. 근데 그게 널 살려 줄 이유는 못 되는 것 같군.”

“그러지 말…….”

서걱!

기껏 직위가 높아 보이는 자만 골라서 생포했는데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생각해 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시행할지 고민되긴 한다.

그런데 루크가 고민하기도 전에 그중 첫 번째 방법이 알아서 다가와 주었다.

첫 번째 차선책? 별것 아니다. 적들을 도발하여 다시 한 번 방벽을 열게 하고선 그 틈을 타서 블링크로 난입하는 작전이었다.

산적처럼 생긴 남다른 풍모의 머메이드가 방벽 안쪽에서 루크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빌어먹을 인간 놈아! 내 당장 네놈의 목을 포장해서 뭍으로 보낼 터이니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