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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11화 (111/200)

# 111

111화 혈족 귀속(2)

실드를 둘러 준 후에야 라그나로스는 몸부림을 멈추고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후우, 하마터면 숨질 뻔했네. 주인아, 솔직히 인간적으로 소환하는 때와 장소는 좀 가리자, 응?”

“그래서 실드 둘러 줬잖아.”

“에고고, 죽겄다. 그나저나 저 마기 섞인 물은 또 뭐냐? 기술만 보면 아쿠아 녀석의 워터 프레셔 같은데 풍기는 기운은 마족 녀석들의 기운이 풍기네.”

“아쿠아의 봉인을 해제하는 데 데메그리 교 놈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지.”

“또 그놈들인가, 나 때도 그랬지. 아무튼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소환한 거 아냐?”

“네 몸으로 공기막 주변을 둘러 줘.”

웬디는 자신의 몸을 바람으로 바꾸어 공기막을 형성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그나로스도 정령이니 같은 기술을 구사할 수 있을 터. 라그나로스의 화염을 두르고 워터 프레셔 안으로 뛰어들면 마나번 효과로 마기를 태울 수 있을 것이다.

루크는 마기를 태우며 아쿠아의 본체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루크의 의도를 알게 된 라그나로스는 우물쭈물하며 망설였다.

“음, 마나번 효과로 몸을 지키면서 아쿠아 녀석의 본체를 찾겠다 이거지? 뭐, 좋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해.”

“좋다고 말하는 것치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하아, 돌겠구만. 생각을 해 봐. 내 몸으로 공기막 주변을 감싼다 치자. 그럼 내 몸이 물에 노출되겠지?”

“그렇겠지.”

“그럼 난 무사할까, 무사하지 않을까?”

“불 안 꺼지게 계속 마나 공급해 줄 테니 우는소리 그만해.”

“초 단위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도?”

“그래도 죽진 않잖아?”

“야, 이 악마야! 사탄도 울고 가겠다, 인마!”

“아쿠아와 해저 섬을 손에 넣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거든.”

“주인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하아, 할 수 없지. 마나나 불어넣어 줘.”

라그나로스에게 마나를 공급해 주자 밤톨만 한 몸집이 한참 커지더니 실드를 뚫고 튀어나왔다. 마나를 계속 공급해 주고 있기에 물속에서도 화염이 꺼지는 일은 없었으나 라그나로스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

밤톨 녀석이 힘들어하니 최대한 빨리 끝내 줘야 할 것 같다.

이내 곧 라그나로스가 몸을 이루고 있는 화염을 넓게 퍼뜨리며 공기막 위에 화염을 한 겹 더해 주었다.

공기막 위에 덧씌워진 화염막에서 라그나로스가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로 루크를 재촉했다.

“야, 주인아. 나 죽으면… 파이 녀석도… 같이 묻어 주라.”

농담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직까진 살 만한가 보다.

루크는 라그나로스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아쿠아를 사냥하기 위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 * *

슈타인이 해저 섬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소용돌이 방벽을 정지시켰기에 루크는 방벽을 걱정할 필요 없이 곧바로 해저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저 섬에 몸을 들이자마자 자욱하게 퍼져 있던 시커먼 물이 루크를 덮쳤다.

워터 프레셔.

원래는 정령의 기운이 섞인 물속에 적을 가두어 압사시켜 버리는 기술이다. 게다가 마기가 섞여서 기존의 워터 프레셔보다 한층 강력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마나유저 상급의 오라에도 끄떡없는 피부를 지닌 크라켄마저도 한순간에 압사당할 정도면 말 다 했다.

루크는 라그나로스의 마나번 효과를 믿고 워터 프레셔 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커먼 물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수압이 루크를 뭉개려고 죄어들었다.

몸 주변에 두르고 있는 라그나로스의 불길은 워터 프레셔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정령의 기운과 마기를 불태웠다.

치이이이익!

기름이 섞인 물속에 불을 붙이면 기름에만 불이 붙듯, 마기와 정령의 기운이 증발하면서 워터 프레셔가 와해되었다.

마치 인간 청소기가 된 양 루크가 지나간 자리마다 시커멓던 시야가 맑게 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워터 프레셔에 갇힌 주민들은 목숨을 잃은 지 오래였고, 워터 프레셔가 와해될 때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이 축 늘어진 채 수면을 향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워터 프레셔에 갇힌 자들의 대부분이 스커필드의 추종자거나 슈타인이 데려온 옥토버들이라는 것이었다.

루크는 블링크를 쓰며 정화 작업을 빙자한 수색을 이어 가던 중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검은 로브를 쓴 인간 무리가 워터 프레셔 한복판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자들은 모두 갇히자마자 압사당하여 죽었는데 놈들만 압박을 받지 않는 것처럼 멀쩡했다.

놈들이 아쿠아를 깨운 장본인들이리라.

‘역시 데메그리 교가 개입되어 있었군.’

추측만 하는 것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느낌부터가 다르다.

이 모든 사태의 뒤에 데메그리 교가 있다는 게 명백해지면서 도식이 단순해졌다. 데메그리 교 사제들이 임의로 마물의 의식을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 아쿠아도 마물화가 되면서 의식이 제거된 상태일 것이다.

하면 데메그리 교 사제들만 처리하면 조종당하고 있는 아쿠아가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대에도 스스로 봉인해 달라고 요청할 만큼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니 의식만 되찾으면 곧바로 전의를 거둘 것이다.

루크는 마나를 한껏 뽑아내며 투영검을 소환했다. 그러고는 쥐고 있던 검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치며 투영검을 단두대의 날처럼 직각으로 내리꽂았다.

그런데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투영검이 별안간 얼어붙으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콰지지지직! 쨍강!

뿐만 아니라 몸 주위를 두르고 있던 화염막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투영검은 사라지고, 라그나로스에게 마나를 보내려 해도 마나가 전달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몸속의 마나가 얼어붙은 듯 완전히 흐름이 멈추었다.

남아 있는 거라곤 라샤가 걸어 준 공기막밖에 없었다.

라그나로스가 공기막 안으로 피신하며 루크의 어깨에 착지했다.

“크윽, 왜 갑자기 마나 공급을 끊은 거야?”

“끊고 싶어서 끊은 게 아냐. 갑자기 마나의 움직임이 멈춰서 움직이지 않아.”

“마나가 멈춰?”

“어이, 아쿠아에 대해서 전부 말한 거 맞아?”

“적어도 내가 아는 건 다 말했어. 나라고 다른 정령왕의 능력을 전부 아는 건 아냐. 특히 아쿠아 녀석은 전투 능력을 보여 준 적이 없어서 알려진 정보가 남들보다 적어.”

라그나로스에게 마나번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아쿠아에게도 특수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나의 움직임을 동결시키는 능력 말이다.

데메그리 교 사제들은 멀쩡하게 실드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봐선 특정 상대에게만 마나 동결을 거는 능력인 듯하다.

루크가 최대 강점이자 최고의 무기인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가운데, 검은 로브 사내 중 나이 지긋한 고위 사제가 루크를 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하니온의 끄나풀아, 노력은 가상하다만 한발 늦은 것 같구나.”

얼굴까지 구분하기엔 물이 탁한지라 루크 본인이 아닌 하니온의 기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정체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마나가 동결된 상태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웬디의 공기막뿐, 루크는 웬디의 추진력을 이용하여 워터 프레셔의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웬디의 추진력보다 워터 프레셔가 뻗어 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더 이상 마나번 능력을 발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시금 탁한 물이 뻗어 와 루크를 집어삼켰다.

사방에서 물이 옥죄어 오는 가운데 루크는 힘으로라도 마나 동결을 풀고자 한껏 마나를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마나는 엄동설한 속에 노출된 빨랫감처럼 빳빳해져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자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중, 루크는 문득 워터 프레셔에 갇힌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라샤인가, 하나같이 중요한 건 입 밖으로 내질 않는군.”

워터 프레셔 공격은 웬디의 공기막을 뚫지 못하고 공기막의 겉면을 맴돌았다. 웬디의 공기막이 이리 뛰어난 방어벽이었나? 그렇지 않다. 루크가 알기로 웬디의 공기막은 기껏해야 2서클 수준의 실드와 비슷한 강도에 불과했다.

결코 아쿠아의 공격을 막을 수준은 아니다.

하면 라샤에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웬디 또한 특수성을 띠고 있는 것일 터.

전부터 평범한 출신은 아닐 거란 심증은 있었는데 아무래도 보통 평범한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비단 루크만이 아니었다.

루크가 압사당하여 죽는 것을 기대하고 있던 고위 사제, 칸트 또한 피해가 하나 없이 멀쩡한 루크의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워터 프레셔가 가해지고 있는 거 아닌가?”

마나가 동결되었는데도 바람의 정령이 건재한 것까진 납득할 수 있다. 따로 정령사를 일행으로 두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워터 프레셔 속에서도 멀쩡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왜 무사한 거지? 어째서 압사당하지 않는 거지?

칸트는 루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부랴부랴 전투 준비에 나섰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저대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이고……. 하는 수 없구나. 우리도 전투에 가담한다. 다들 놈에게 흑마법을 시전하거라.”

등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불안감 속에서 칸트가 고개를 돌렸다.

뒤에 머무르고 있어야 할 부하들이 어느새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척에 있었음에도 부하들이 하나둘씩 제거당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수준 높은 암살자가 그들의 등 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 무섭게 단검 두 자루가 탁한 물속을 헤집으며 칸트에게 날아들었다.

쉬이이이익!

단검 두 자루에는 마나 블레이드가 깃들어 있었다.

적중당하면 마나 블레이드가 몸 내부에서 한껏 요동치며 분쇄기처럼 육체를 찢어 버릴 것이다. 단검을 쓰는 마나마스터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칸트도 6서클 수준의 흑마법사이기 때문에 실드, 에어볼을 유지한 채로 블링크를 시전했다.

“블링크!”

칸트의 신형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10미터가량 떨어진 측면으로 이동하며 단검으로부터 멀어졌다.

칸트가 회피할 것을 예측이라도 한 걸까.

탁한 물속에서 새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하프 엘프가 튀어나오며 새로이 단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단검에 각기 마나 블레이드가 부여되며 실오라기 같은 강기가 칸트의 실드 위에 떨어졌다.

카갸갸갸갹!

마나 블레이드가 실드 표면을 거칠게 긁어 대면서 귀를 어지럽히는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칸트는 황급히 실드에 마나를 더하며 아쿠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뭐 하고 있느냐, 아쿠아! 이년에게도 마나 동결을 걸어라!”

탁한 물속 어딘가에 있는 아쿠아가 반응하며 하프 엘프에게도 마나 동결을 걸었다. 마나의 흐름이 멈추었으니 단검에 부여되어 있는 마나 블레이드가 와해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하프 엘프가 쥐고 있는 단검의 기세는 더해지면 더해졌지 와해될 기미가 안 보였다.

흡사 아쿠아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여인의 입에서 정령의 공격에 면역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어머, 이거 미안한걸? 빌어먹을 태생 덕에 정령한테 죽을 일은 없거든.”

정령의 공격에 면역을 띠는 태생이라면 전 대륙을 통틀어 한 가문밖에 없다.

대대로 엘프의 숲을 다스려 온 가문이자 정령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일족이다. 정령의 신에게 사랑받는 그들은 정령의 공격에는 해를 입지 않으며 그들이 부리는 정령 또한 다른 정령의 공격에 면역을 띤다.

칸트는 그 일족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설마 요정왕 일족의…….”

콰드드득! 서걱!

요정왕 일족이란 단어를 입에 담은 순간, 단검에 부여된 마나 블레이드가 격노하듯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실드를 깨부수었다.

마나 블레이드 앞에 맨몸이 노출된 칸트가 무사할 리 만무했다

마나 블레이드가 한 줄기로 뭉쳐 떨어지면서 그의 몸을 가차 없이 세로로 양단했다.

라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단검을 홀더에 착착 꽂아 넣으며 나지막이 입을 달싹였다.

“맞아, 순혈이 아니면 폐기물 취급하는 쓰레기 같은 일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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