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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21화 (121/200)

# 121

121화 역대급 재능의 두 사람(1)

하니온 공국이 건국된 이후 레이아는 줄곧 드래프트 영지에 머무르며 개인 연구 및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같은 6서클 마법사인 오즈에게 많은 요령을 배웠고, 차기 비행 부대의 대장으로서 매일매일 삼색 제비를 타고 홀로 비행을 훈련해 왔다.

루크와 둘이서 여행을 갔다 온 경험은 그녀에게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루크의 페이스에 맞춘 스파르타식 실전 경험은 그녀에게 노련미를 주었고, 6서클 경지에 올랐다는 성취감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마탑이 휴식기인지라 레이아는 루크의 얼굴을 볼 겸 하니온 공국에 들른 참에 드골로부터 루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전히 이리저리 잘도 쏘아 다니는 사람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백작일 때도 호위 병력 없이 훌쩍 원정을 가 버리던 사람이 공왕이 되었다고 바뀌겠는가.

그녀로선 어차피 루크 얼굴을 보는 게 목적이었기에 흔쾌히 루크 수색 작전에 참여했다.

“띠비야, 조금만 더 속력을 낮추자. 아마 이 근처에 네튤 제도가 있을 거야.”

삐로로로!

띠비라 불린 삼색 제비가 목을 굴리며 힘차게 지저귀었다.

왜 이름이 띠비냐고?

제비란 단어를 혀 짧은 소리로 빨리 말하면 띠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으레 높은 서클의 마법사들이 그렇듯, 레이아 또한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할 때가 더러 있었다. 띠비란 이름도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탄생한 이름이다.

전방을 멀리 바라보던 레이아는 금세 커다란 섬을 발견했다. 레이아는 맞바람이 부는 상공에서 어렵사리 지도를 펼쳐 네튤 제도가 맞는지 거듭 확인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루크를 수색하던 중에 우연히 거인국의 상선 한 척과 마주쳤다. 상선에 올라탄 거인들이 말하길, 특이하게도 어떤 인간이 혼자 하늘을 날아서 네튤 제도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알기로 인간이 아무런 도구 없이 혼자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이라곤 6서클 마법인 플라이 마법밖에 없었다.

6서클 마법사는 흔하지 않고 루크가 6서클 마법사이기도 하니, 루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그 뒤 거인들의 상선에서 구입한 대형 지도를 짚으며 이동한 끝에 네튤 제도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네튤 제도를 코앞에 둔 마당에 별안간 이변이 발생했다.

갑자기 그녀의 주변에 푸른색 고리가 생성되었다.

빠지직! 빠지지직!

고리 표면에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는 곧 구속 마법의 일종인 바인딩에 저격이 가미된 형태로, 라이트닝 바인드라는 것을 의미했다. 누군가가 레이아에게 기습을 가한 것이다.

레이아는 고삐를 당기며 능수능란하게 삼색 제비를 몰았다.

“다짜고짜 숙녀를 구속하려 들다니, 신사는 못 되는 작자네.”

시선을 아래로 두니 물속에 다수의 무리가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십중팔구 어인일 것이다. 더군다나 선박 분쇄기라 불리는 크라켄까지 다수 섞여 있었다.

출발 전 라샤가 문어를 닮은 어인들이 크라켄을 부려 선박을 파괴했다고 했다.

종족 이름이 옥토버였나?

십중팔구 하니온 공국의 병사인 줄 알고 기습을 시행한 것 같았다.

상대가 옥토버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레이아의 눈빛이 달라졌다.

“귀중한 휴식기를 낭비하게 된 게 전부 너희들 때문이라 이거지? 이거 그냥은 못 넘어가겠는걸?”

루크 한 명을 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다.

드래프트 영지에서 벤티버로 가려면 배를 타고 15일, 그리고 육로로 5일을 이동해야 하기에 무려 20일이란 시간이 소요된다.

편도가 20일이니 왕복으로 치면 40일인 셈이다. 프랑크 마탑의 휴식기가 60일이니, 루크를 보려고 휴식기의 3분의 2를 이동하는 데 쓰는 격이다.

그런데 막상 벤티버에 도착하니까 그 사람이 없네?

황금 같은 휴식기의 3분의 2나 썼는데!

심지어 어제가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 선물까진 무리라도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정도는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촉수가 달린 반인 반어들 때문에 허망하게 무산되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뿐이지 레이아의 속에선 천불이 일고 있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열 받는 와중에 실종의 원흉이 나타났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리.

레이아는 양손의 손바닥을 활짝 펴며 마나를 거침없이 배열했다. 모처럼이니 인심이 넉넉하게 마나를 잔뜩 부여한 마법을 선사할 생각이다.

배열을 마친 순간, 그녀의 입에서 힘찬 영창이 터져 나왔다.

“이니시 에로우!”

레이아의 몸 주위에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생성되었다. 겉보기에는 2서클 마법인 매직 미사일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마나가 고압축되어 있고, 화살의 개수가 수백 개에 달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장전이 완료됨과 동시에 레아아가 엄지를 척 들었다. 그러고는 물속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살기 발랄한 미소를 보이며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죽어.”

허공에 머물러 있던 고농축의 마나 화살 다발이 일제히 어인들에게 떨어졌다. 화살 수백 다발이 남긴 푸른 잔상은 마치 푸른 빛기둥과 같은 형태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했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고농축의 마나 화살이 수면을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물속에 있던 생물체는 어인, 크라켄, 어류 가릴 것 없이 레이아의 공격에 꿰뚫려 생을 달리했다.

핏물로 시커멓게 물드는 바다 위에 푸른 빛기둥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위에서 레이아가 남색 로브를 펄럭이며 헝클어진 은발을 뒤로 쓸어 넘겼다.

“후우, 이제야 좀 속이 풀리네.”

흡사 술을 먹은 다음 날 해장이라도 한 듯 명치 부근에서 짜르르한 느낌이 타고 흘렀다. 이 맛에 법사 노릇을 하는 것이다. 한 방에 잔챙이들이 쓸려 나가는 광경은 손으로 직접 적을 베어 내는 타격감 못지않은 해방감을 자아낸다.

레이아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사이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수면을 바라보던 중 하얀색 스태프 한 자루가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레이아의 눈에 들어왔다.

기분 탓일까.

스태프 같은 지팡이류의 무기는 쥐고 있으면 노인 같아 보여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길이 간다.

흡사 사람을 홀리는 투명 효과가 새겨진 반지처럼 말이다.

그녀는 삼색 제비를 아래로 몰아 저공비행을 하면서 스태프를 건져 올렸다. 그러고선 스태프를 한 바퀴 빙글 돌려서 물기를 털어 내고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잘빠진 자태에 마법사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다.

레이아는 이내 곧 익살스레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선 스태프를 챙겼다.

“나한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뭐.”

* * *

엑튜러스와의 전투를 마친 루크는 해왕검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새하얀 검신에 마나가 가미되면서 별 가루를 뿌린 양 검신 곳곳이 반짝였다. 뿐만 아니라 전신의 마나가 갑자기 급증한 것이 실감되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몇 배나 많은 마나를 보유하고 있는데, 거기에 2배 증가 효과까지 더해졌다.

마나의 출력 또한 배로 늘어났으니 어지간한 방어 수단으론 투영검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루크는 해왕검을 가볍게 휘둘러 검격을 방출해 보았다.

해왕검 표면에서 반짝이던 빛이 궤적을 따라 잔상을 만들었고, 잔상은 곧 검격이 되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루크의 검격은 엑튜러스가 난사하던 검격과는 궤를 달리했다. 엑튜러스의 검격이 과일이나 깎는 과도라고 치면, 루크의 검격은 짐승의 뼈와 살을 가르는 도축 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다른 검격이 발산되었다.

검격은 시야가 닿지 않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몇 초 후, 동굴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쿠구구구.

동굴이 사람이었다면 지금 이 진동은 복통쯤 될까.

안쪽엔 아직 옥토버들이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깊이 뉘우치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휘발성 후회에 불과할 것이다.

남을 등쳐 먹는 것에 익숙해진 종족이 크게 한 번 데인 정도로 본성이 바뀔까. 그 정도로 본성이 바뀐다면 이 세상에 전과 2범 이상의 범죄자는 없어야 정상이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 가지치기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고로 뿌리를 통째로 도려내는 것이 옳을 터.

루크는 연달아 해왕검을 휘둘러 다수의 검격을 동굴 안쪽으로 쏘아 보냈다. 검격은 동굴 내부를 마구 휘저으며 충격을 가하였고, 그에 따른 연쇄 현상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구!

커다란 굉음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엑튜러스의 행동을 통해 동굴 안쪽에는 달리 출구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안쪽에 있는 옥토버들, 그리고 질질 짜던 세이렌은 꼼짝없이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명을 달리할 것이다.

루크가 몸을 돌려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걸로 선장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지.”

가라앉는 선박 위에서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마당에도 루크부터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선장과 선원들.

그들의 시신조차 수습해 주지 못했다.

무너지는 동굴 안에서 옥토버들의 숨이 끊어지기까지 3, 4분쯤 되는 시간이 걸릴 터.

그 시간을 죽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바치겠다.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와 잘못했다고 비는 옥토버들의 비명이 장송곡처럼 흘러나오는 가운데 루크는 유유히 해안 동굴을 빠져나갔다.

* * *

이로써 옥토버와의 갈등은 해소되었으나 루크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해안 동굴 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샤크족이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인다.

해안 동굴 근처의 바다는 파도가 하나 없이 잔잔했다. 에메랄드빛 맑은 물속에선 잡어 떼가 굉음에 놀라 부산을 떠는 것이 전부였다.

세이렌에게서 뽑아낸 정보에 따르면 옥토버와 샤크족은 손을 잡았다고 했다. 놈들은 옥토버가 궁지에 몰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사태가 불리하다고 판단하자마자 도망간 건가. 애당초 놈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목숨 걸며 싸우는 것보단 발을 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르지.’

루크와 갈등을 빚은 건 옥토버지 샤크족이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게 증명된 와중에 구태여 죽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매정하다면 매정하다고 할 수 있을 터이나,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루크는 네튤 제도의 풍부한 어장과 넓은 땅덩어리를 스윽 훑어보곤 생각에 잠겼다.

‘여길 산하에 두면 북방 진출에 도움이 되겠는걸.’

여기서 말하는 북방 진출이란 거인국, 엘프의 숲, 신성 제국 등등 대륙 북부에 위치한 모든 나라를 말한다.

네튤 제도를 산하에 두면 영해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해양 전초 기지로도 안성맞춤이다. 세이렌들을 통해 꾀하려 했던 수군을 강화하는 계획을 네튤 제도를 통하여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산하에 둘지 말지는 이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어인 종족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협상은 나중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진행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은 공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앞섰다.

별 모래가 깔려 있는 백사장 위에서 루크가 기지개를 한껏 켰다.

“후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군.”

여기서 하니온 공국까지 열흘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동 기간 내내 플라이 마법을 유지해야 하니 고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익숙한 외견의 새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삼색 제비의 등에 이곳에 올 리가 없는 여인이 올라타 있었다.

남색 로브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휘날리는 가운데, 삼색 제비 위에서 레이아가 루크를 발견하고선 활기차게 손을 흔들었다.

“찾았다! 공왕 전하! 저예요! 데리러 왔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마중이 기쁜 것은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루크는 저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띠며 삼색 제비가 착륙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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