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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22화 (122/200)

# 122

122화 역대급 재능의 두 사람(2)

백사장에 다다른 레이아가 나선을 그리며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거대한 날개에서 파생된 날개바람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는 와중에 삼색 제비가 사뿐히 착륙했다.

삼색 제비 위에 앉아 있던 레이아가 2인용 안장의 뒷좌석을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웃었다.

“아저씨, 저랑 드라이브하실래요?”

오랜만에 마주친 레이아의 인상은 종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이상할 것도 없다. 드래프트 영지는 루크를 신격화하고 있는 곳인 만큼 루크와 친한 사이란 것만으로도 친절하게 대해 준다.

게다가 6서클이 되면서 더 이상 마탑 안에서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졌을 테니 하루하루가 편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루크는 제비의 몸통에 둘러져 있는 안전줄을 잡고선 삼색 제비의 등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안장 뒷좌석에 앉으면서 레이아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저씨가 아니라 공왕 전하일 텐데?”

“아야야, 너무 반가워서 농담 좀 한 거예요. 아니면 내려서 다시 예를 갖출까요?”

“사양하지. 번거로운 건 딱 질색이야.”

“전하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네가 여기엔 웬일이야?”

“마탑 휴식기라서 할 것도 없고 해서 관광차 벤티버에 찾아갔거든요. 전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수색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라샤가 돌아가서 드골에게 전했나 보군. 다른 비행 부대원들은?”

“한 명씩 흩어져서 수색 중이었어요. 아마 며칠쯤 수색하다가 알아서 공국에 복귀할 거예요.”

출발하기에 앞서 루크는 손잡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2인용 안장에는 뒷좌석에 손잡이가 있는 타입이 있고, 없는 타입이 있다.

손잡이가 있는 타입은 귀빈을 태우기 위한 용도이고, 손잡이가 없는 타입은 2인 운행을 위해 고삐가 2개라서 따로 손잡이가 없는 것이었다.

레이아가 달고 온 안장은 명백히 2인 운행용 안장이었다.

“어이, 손잡이가 없는데?”

“어라? 거기 없어요?”

“너 2인 운행용 안장을 달고 왔어.”

“급하게 나온다고 잘못 들고 왔나 봐요. 어쩔 수 없죠. 허리에 팔 두르세요.”

“예전과 정반대로군.”

“그렇네요. 라그나로스 계획을 저지할 땐 제가 뒤에 탔었는데 말이죠. 지금이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저 그때 몇 번이나 떨어질 뻔했어요. 안 떨어지려고 엄청 필사적으로 붙잡았죠.”

“알아. 하도 세게 끌어안는 통에 갈비뼈가 나갈 뻔했지.”

“에이, 너무 조미료 치신다. 저 그 정도로 힘세진 않거든요?”

“여기 달려 있는 굵직한 팔뚝이 명백한 증거지.”

“후후후, 실종되셨다고 들었을 땐 걱정했는데 여전하신 거 보니까 한시름 놓이네요.”

“내 걱정이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거 알잖아?”

“그거야 그렇죠.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걱정할 땐 하게 되니까요. 아무튼 이제 출발하죠. 다들 전하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에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불의에 적의를, 선의에 호의를.

말만 다를 뿐이지 속뜻은 똑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레이아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고 했을 때 루크도 동일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은 야심을 우선시하고, 다른 한쪽 또한 이쪽 방면으로 요령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실현되는 거라곤 풋내 나는 상황뿐이었다.

루크는 팔을 레이아의 양쪽 허리에 두르며 꽈악 붙들었다.

루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앞 좌석 전면에서 레이아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꼼꼼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정말로 승객용 안장과 운행용 안장을 착각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레이아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자, 출발할게요. 꽉 붙드세요.”

고삐를 당기자 삼색 제비가 활기차게 지저귀며 날개를 퍼덕였다.

삼색 제비의 신형이 공중에 뜨면서 역대급 재능을 가진 두 남녀는 옥토버의 해안 동굴을 뒤로하며 하니온 공국으로 돌아갔다.

* * *

레이아가 전멸시킨 시몬의 부대는 일개 파편이 되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옥토버들의 파편도 있긴 하다만 대부분은 크라켄의 파편이었다.

10마리에 달하는 크라켄이 몸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힘없이 해저로 떨어졌다. 해저에 머무르고 있던 심해어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모처럼의 만찬을 만끽했다.

그 와중에 심해어 말고도 만찬을 즐기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엑튜러스의 호출을 받고도 지원하러 가지 않은 샤크족들이었다.

샤크족의 어인들은 가라앉고 있는 파편 가운데 옥토버의 파편만 능숙하게 낚아채어 살점을 뜯었다.

죠스도 떨어지던 고깃덩이 중 하나를 쥐었다. 그러고는 흡사 길가에 자라난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서 먹듯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나 몇 번 씹고선 맛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고깃덩이를 거칠게 내뱉었다.

“퉤! 제길, 더럽게 맛없군. 이거 늙은이 시몬 녀석의 살점인 게 분명해.”

조롱과 경멸이 섞인 한마디에 다른 샤크족 어인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죠스는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파편들을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마터면 엑튜러스 녀석의 길동무가 될 뻔했군.”

샤크족이 지원을 가지 않은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호출을 받고 지원하러 가던 중 먼바다에서 크라켄을 불러 모으고 있는 시몬을 목격했다. 어차피 옥토버의 거점으로 가던 참이었으니 함께 가고자 시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몬에게 접근하고 있는데 별안간 수면 위에서부터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다만 빛의 기둥이 떨어져 내리는 걸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강심장이라 자부하고 있는 죠스마저 쫄아서 주춤거릴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빛의 기둥 아래에서 옥토버, 크라켄 군단이 차츰차츰 분쇄되는 걸 보면서 죠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원을 가면 안 된다.

지원을 갔다간 해안 동굴이 곧 내 묫자리가 되리라.

그리 판단하여 지원을 가지 않고 발을 빼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죠스의 빠른 판단이 샤크족을 살렸다.

살아남은 것까진 좋으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배부르게 먹은 샤크족 어인들이 죠스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낄낄낄. 족장, 이걸로 네튤 제도 전역이 우리 사냥터가 됐네. 옥토버들이 사라졌으니까 맘 놓고 사냥하자고.”

“쯧쯧,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냐. 신조차 딱히 여길 저능아들 같으니.”

“말이 좀 심한걸? 배고프면 앞다리 살이라도 하나 뜯어.”

“생각을 해 봐라, 이것들아. 하니온 공국 놈들이 네튤 제도를 점령하면 어떻게 할 건데? 녀석들이 잘도 우릴 놔두겠다.”

죠스의 질책에 샤크족 어인들이 아까 목격한 빛의 기둥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샤크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머메이드처럼 인종 차별 주의자도, 옥토버처럼 고향 땅에 애착이 강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당장 배가 부르면 만족하는 단순무식한 종족에 불과하다. 네튤 제도만 한 사냥터를 포기하는 건 아쉽지만 목숨을 걸고 차지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죠스는 터전을 옮기는 것을 고려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대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알아봐 둔 곳 있어?”

“하아, 이런 모지리들을 봤나. 얼마 전에 인간 놈 하나가 찾아와서 제안하지 않았냐. 먹을 걸 줄 테니 자기네들 산하에 들어오라고 했던 거 말이야.”

“아~ 그 말 듣자마자 족장이 지금도 먹을 거 많다고 꺼지라고 했지. 지금 찾아간다고 걔네들이 받아 줄까?”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으니 받아 주기야 하겠지. 어차피 갈 곳도 없고 하니 녀석들이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지내자고.”

“우리야 배불리 먹을 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근데 걔네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죠스는 거인국이 있는 북쪽으로 몸을 틀며 무심한 투로 부하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데메그리 교였나? 그런 웃기는 이름이었지, 아마?”

* * *

루크가 해상에서 많은 것을 취하고 있을 무렵, 겐크 왕국은 서서히 곯아 들어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몰락한 조짐이 보이고 있긴 했다. 나탈리 왕녀가 건재할 때부터 사치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었고, 거인국과의 전쟁 및 아레나 공국과의 전쟁으로 국고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게다가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력을 자랑하는 드래프트 영지가 하니온 공국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경제 성장률이 급락했다.

더욱이 왕궁 내에서 몇 안 되는 정상인이던 엘리나 왕녀마저 거인국과의 휴전 협정에 의해 볼모로 떠나 버렸으니 행정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카이둔 국왕이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국정 회의에도 참가하지 않게 되었고, 즉위 이래 쉴 새 없이 진행해 오던 대륙 정복 계획도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왕관을 넘겨주지 않았다 뿐이지 모든 업무와 권한을 블린트 왕자에게 일임하고 매일 술에 절어 살아가고 있었다.

“아바마마, 블린트입니다. 문안 인사드리러 왔는데 안으로 들어가도 될는지요?”

아무리 매정한 아비라 할지라도 아비는 아비다.

정치판에 부모 자식은 없다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자식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게 블린트의 지론이었다.

권한을 일임한 이후로 침소에서 거의 나오질 않는 아비가 걱정되어 찾아왔거늘, 돌아오는 것은 문전 박대뿐이었다.

“물러가거라. 권한은 모두 주지 않았느냐. 내게서 더 무엇을 뺏어 가려고 그러느냐?”

“뺏어 가다뇨. 전 아바마마께서 쾌차하실 때까지 잠시 맡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시는 건지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국왕과 왕자가 아닌 아비와 자식으로서 속마음을 털어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쨍그랑!

유리병이라도 던졌는지 문 안쪽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 아침에 문진을 본 왕궁 의원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날 것을 권했다.

“오늘은 이만하시고 물러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문진을 봤는데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더군요. 흥분하시면 더 악화될지도 모르니 쉬게 해 드리는 게 어떨는지요?”

“그렇게 많이 안 좋아지셨느냐?”

“이걸 참… 어떻게 말씀드릴지…….”

“사실대로 고하거라.”

“심장과 간이 많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매일 과음하신 탓인지 풍 증세도 보이더군요.”

“그걸 좋게 만드는 게 네 일이지 않느냐!”

“감히 말씀드리온데 마음의 병이 곯고 곯아서 몸의 병이 된 사례인지라, 국왕 전하께서 스스로 쾌차하시고자 마음을 먹지 않으면 저희로서도 결과를 장담 드리기 힘듭니다.”

카이둔 국왕이 예전부터 남몰래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측근조차 모르도록 시행하던 일이 실패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모르니 어떻게 근심을 풀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비의 병은 갈수록 깊어지고, 나라의 꼴은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가니 중간에 낀 블린트로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블린트는 왕궁 의원의 걱정 어린 진언을 받아들여 왕의 침소에서 물러났다.

본궁에서 나와 왕궁 정원을 가로질러 걷고 있던 가운데, 블린트의 측근 중 한 명인 애덤 백작이 급히 달려왔다.

애덤 백작은 시급히 보고를 요하는 사항이라도 가져왔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왕자님, 지금 당장 대회의장으로 가시지요. 나탈리 왕녀님의 유배지에서 쉬이 흘려 넘길 수 없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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