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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35화 (135/200)

# 135

135화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엔 피가 고인다(1)

라그나로스가 전력일 때 내뿜는 화염의 온도는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용인이 내뿜는 브레스의 위력은 드래곤 브레스의 2할밖에 되지 않는다.

고로 ‘라그나로스 = 레드 드래곤 >>>>> 쟈칼’이란 등식이 성립한다.

라그나로스의 화염 속에서도 멀쩡하던 루크에게 드래고니안 브레스는 미지근한 수준이었다.

라그나로스 때처럼 실드 내에서 냉기를 채워 넣을 것도 없었다. 그저 실드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쟈칼의 브레스를 능히 막을 수 있었다.

자랑하던 브레스가 통하지 않은 탓일까.

루크가 접근하는 내내 쟈칼은 망연자실하여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자신감의 상실은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 사고가 정지해 버리니 반응이 극도로 둔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루크는 해왕검의 사정거리까지 거리를 좁히고선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그러자 뒤늦게 쟈칼이 허둥지둥하며 손톱을 교차했다.

카강!

“크윽!”

쟈칼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불안정한 자세에서 공격을 받아 낸 탓에 무릎이 한풀 꺾였다.

기세에서 눌리고 있는데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올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루크는 한번 잡은 주도권을 넘겨 줄 사람이 아니었다. 기세를 잡았다 싶을 때 베어 내야 뒤탈이 없다. 고로 기세를 타고 단숨에 승부를 굳히고자 검 자루를 양손으로 쥐며 디딘 발에 체중을 실었다.

까득! 까드득!

새하얀 검날이 조금씩 쟈칼의 손톱을 잘라 내며 그의 목에 접근했다.

쟈칼은 해왕검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늘 아래에 자리 잡은 두터운 근육이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켰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거졌다.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건만 무색하게도 해왕검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큭, 어째서냐. 내 손톱은 드래곤 본에 준하는 강도를 지니고 있거늘!”

“내 검이 드래곤 본보다 단단하기 때문이겠지. 그 정도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빌어먹을 놈, 끝까지 사람 신경을 긁는구나.”

“스스로 사람이라 칭하다니 놀랍군. 내가 보기엔 인간보단 파충류 쪽 지분이 더 많은 것 같다만?”

“크아! 죽여 버리겠다!”

말을 섞을수록 정신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쟈칼 쪽이었다.

안 그래도 밀리고 있는 마당에 상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껏 도발하고 있다.

지고 있을 때 상대의 도발을 듣는 것만큼 열 받는 일도 없다.

게다가 손에 넣고 싶은 이성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자니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더 이상 지킬 것도 없다는 듯 쟈칼이 스스로 해왕검에 몸을 내주었다.

서걱!

교차하며 해왕검을 붙들고 있던 손톱이 양옆으로 벌어지며 해왕검이 쟈칼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몸을 내주되 직격만은 피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비틀어 어깨를 내준 것이다.

쟈칼의 어깨로 파고든 해왕검이 쟈칼의 겨드랑이 아래로 빠져나오며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쟈칼은 죽음에 이르러도 이상하지 않을 큰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아 있는 팔을 휘둘렀다.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네놈의 목만큼은 가져가겠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설사 그 결과가 뼈를 내주고 뼈를 취하는 동귀어진이 된다 할지라도 루크만큼은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쟈칼이 수도를 내지르듯 손을 뻗었고, 기다란 손톱들이 한자리에 가지런히 모이며 한 자루의 클로처럼 루크의 목을 노렸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공격이었으나 그의 손톱이 루크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루크의 몸 주변을 두르고 있던 실드에 손톱이 부딪혔기에.

콰직!

쟈칼의 손톱은 해왕검을 막아 내는 과정에서 균열이 가 있었다. 안 그래도 극도로 약해져 강도가 떨어진 손톱이 루크의 실드를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어떤 명검보다도 날카롭고 단단하다고 자부했던 무기이건만 오늘만큼은 그의 기대를 배신하며 깔끔하게 부러졌다.

마지막 일격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쟈칼은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용인이 인간에게 무력에서 밀린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되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브레스를 쏴도 안 통하고, 힘으로 누르려 해도 안 통한다.

그런 괴물 같은 놈이 최강의 무기까지 쥐고 있다.

이런 놈을 어떻게 이기란 말인가!

고개를 떨군 쟈칼의 앞에 해왕검이 드리워졌다.

“포장지가 똑같으니 힘으로 뺏어 가겠다. 어떻게 하면 그따위 논리를 세울 수 있는지 궁금하군.”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과 닮은 사람에게 다시 반하는 것쯤이야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힘으로 뺏는 것 이외에도 방법은 많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힘으로 뺏는 방법만 고수했다.

이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결국은 본성에 근거하여 행동하게 되니까.

루크는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해왕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내 해왕검이 깔끔하게 세로로 일선을 그리며 떨어졌을 때, 쟈칼의 몸이 세로로 쪼개지며 생을 달리했다.

* * *

레이아와 함께 야영지로 돌아간 루크는 곧바로 쟈칼을 베어 낸 사실을 공표했다. 쟈칼의 죽음은 그간 다소 하락세를 보이던 하니온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겐크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았다.

소문은 금방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골디브로 흘러 들어갔다.

블린트는 쟈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분노를 금치 못했다.

“쟈칼이 죽었다니! 용인이지 않느냐! 인간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질 수가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거늘!”

“고, 고정하십시오. 왕자님.”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느냐! 그래, 매복하고 있던 병력이 있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쟈칼이 당할 리가 없지.”

“아마도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제아무리 그랜드마스터라 할지라도 마나를 쓰는 이상 일대일 대결에서 용인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블린트를 비롯한 왕궁 의원들은 쟈칼이 일대일 대결에서 졌을 리 없다며 있는 힘껏 부정했다.

여기서 인정해 버리면 루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루크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를 잃었다는 생각에 블린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도널드 후작은? 후작은 어떻게 됐느냐? 설마 도널드 후작도 쟈칼과 함께 죽었느냐?”

왕궁 의원들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뭘 꾸물대고 있느냐!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보고해라!”

“외람되오나 도널드 후작은 아예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런 미친 늙은이를 봤나! 도널드 후작이 가세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던 것 아니냐!”

쟈칼의 게릴라 부대만 작전에 참여했기에 매복에 당했다.

도널드 후작이 비행 부대의 출전을 허락했다면 매복이 있더라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 판단하고서 작전 실패의 책임을 도널드 후작에게 떠넘기는 블린트였다.

왕궁 의원들도 블린트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희들도 어째서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왕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냐?”

“아무리 늙었다지만 공문에 찍혀 있는 옥쇄를 구분치 못할 리가 없습니다. 혹시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게 아닌 건지 심히 염려되는군요.”

“최근 도널드 후작과 관련해서 흘려 넘길 수 없는 소문이 돌고 있긴 하지.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하기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시급히 도널드 후작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진의를 추궁하시지요.”

안 그래도 백성들이 왕가보다 도널드 후작을 더 떠받들기 시작한 것이 블린트는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비단 이와 같은 생각은 블린트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궁 의원들도 블린트와 한배를 타고 있는 이상, 왕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심기가 불편한 와중에 도널드 후작이 대놓고 왕명을 어긴 것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가 왕가를 우습게 보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블린트는 왕가의 위엄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심히 분개했다.

“얼마나 왕가가 우습게 보이면 다 늙어 빠진 퇴물 장수마저도 왕가를 업신여긴단 말이냐! 도널드 후작의 사령관 직책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고 죄인의 신분으로 이곳에 데려와라! 내 직접 도널드 후작을 추궁하겠다!”

* * *

블린트의 엄명이 담긴 공문이 헥토 요새에 전달되었다.

브리프가 공문 전달을 마치며 포승줄을 손에 쥐었다.

“일이 이리되어 유감입니다, 도널드 후작님. 왕명이니 거칠게 다루어도 나쁘게 생각지 마십시오.”

브리프를 비롯한 로얄 나이트 단원들이 도널드 후작에게 접근했다.

정작 도널드 후작은 아무 말도 않고 있었으나, 에드워드 백작이 브리프를 가로막으며 도널드 후작을 변호했다.

“잠깐만 기다리게! 안 그래도 출전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전서를 보내려던 참이었네. 왕명을 거부한 게 아니라 거부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주게!”

“비켜 주십시오, 에드워드 백작님. 왕자님께서 연행을 막는 자가 있으면 똑같이 호송하라 명하셨습니다.”

“가서 블린트 왕자님께 전해 주게. 지금까지 적의 공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성벽을 끼고 싸웠기 때문일세. 성벽 바깥으로 비행 부대를 내보냈다간 루크 공왕의 무위에 전멸당하기 때문에 파견하지 않은 걸세.”

그리핀이 창천 앵무보다 기동력에서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부족한 기동력을 메우려고 성벽을 끼고 싸웠다. 퇴각에 필요한 시간을 극한까지 줄임으로써 기동력이 부족해도 싸울 수 있도록 판을 짜 왔던 것이다.

게다가 도널드 후작은 루크가 일부러 유인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쟈칼과 도널드 후작이 모두 오더라도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일부러 기밀 정보를 유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도널드 후작의 판단은 옳았고,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 부대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가를 맹신하고 있는 브리프에겐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전 왕명에 따를 뿐입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왕자님 앞에서 하십시오.”

“브리프 경, 정말로 이래야겠나?”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백작님까지 연행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리 답답할 수가 있나! 루크 공왕과 수읽기 싸움을 하려면 도널드 후작님이 있어야 하네! 왜 그걸 모른단 말인가!”

에드워드 백작도 왕가에서 도널드 후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왕궁으로 잡혀갔다간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리프는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마저도 아깝다는 양 체포를 강행했다.

“도널드 후작님과 에드워드 백작님을 모두 연행해라! 두 분 모두 왕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시길.”

연행 대상에 에드워드 백작이 추가되면서 둘 다 포승줄에 묶일 위기에 처했다.

이에 잠자코 있던 도널드 후작이 스스로 투구를 벗으며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만해 두게. 내 발로 따라갈 테니 에드워드 백작은 놔 주게나.”

“후작님!”

“진심을 담아 전하면 왕자님도 이해해 주실걸세. 곧 돌아올 테니 자네는 염려 말고 요새를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해 주게.”

썩어 빠진 나라라도 조국은 조국이다.

의심받는 와중에도 충성심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나니.

반드시 의심을 풀고서 전장에 복귀하겠노라.

에드워드 백작은 도널드 후작의 한결같은 충의에 감복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후작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요새를 지키겠습니다.”

도널드 후작이 스스로 호송차에 오름으로써 소란이 일단락되었다.

요새에 남은 이들은 당연히 에드워드 백작이 도널드 후작의 빈자리를 메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요새에 남아 있는 유일한 마나마스터이자 가장 계급이 높은 귀족이니까. 그가 아닌 다른 자가 사령관이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데 브리프가 두 번째 전서를 꺼내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명령을 전달했다.

“왕가에서 도널드 후작에게 책임을 묻는 동안, 헥토 요새의 원래 책임자였던 헥토 백작이 사령관을 맡는다. 이는 국왕 대리로 계신 블린트 왕자님의 명령이니 왕명과 동일함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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