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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36화 (136/200)

# 136

136화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엔 피가 고인다(2)

겐크군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하니온군 진영에도 전해졌다.

도널드 후작이 골디브로 연행되고, 헥토 백작이 새로운 사령관으로 부임했다고 한다.

도널드 후작의 연행까진 루크의 계획대로이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관이 에드워드 백작이 아니란 점이 하니온군 간부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바이스는 특유의 가느다란 턱선을 매만지며 의문을 표했다.

“에드워드 백작이 아니라 헥토 백작이라니 의외군요. 헥토 백작이 누굽니까?”

겐크 왕국에선 헥토 백작이 에드워드 백작보다 더 유명한 편이다.

군사적 요충지인 헥토 요새를 품고 있는 영지의 영주이기도 하고, 최근까진 중앙 정계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던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 참가 횟수만 따지면 도널드 후작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일신에 마나가 한 줌도 없어서 대부분 후방 지원 역할만 도맡았기에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다만 타국 출신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적국의 마나마스터만 기억하게 되다 보니 헥토 백작을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루크는 헥토 백작을 떠올리며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녀석이 있어. 녀석 덕분에 한결 편하게 공왕이 될 수 있었지.”

라그나로스 계획을 무너뜨린 직후, ‘주인 없는 땅의 공왕이 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과정에서 헥토 백작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블린트는 루크의 즉위를 막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그리고 헥토 백작의 경거망동 때문에 준비한 것들을 하나도 써 보지 못하고 참패했고 말이다.

그 일로 블린트의 눈 밖에 나게 되어 중앙 정계에서 퇴출된 사람이다.

루크를 통해 헥토 백작의 내력을 들은 바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중요한 국면에 한 번 내친 자를 최후의 방어선에 배치했단 말씀이십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사이동이군요.”

“헥토 백작은 블린트의 열렬한 추종자야. 한 번 내쳐진 걸로 블린트에게 앙심을 품을 사람이 아니지.”

“도널드 후작과 달리 배신할 확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불러들인 거군요.”

“도널드 후작도 배신할 리가 없는 인물인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하지만 전하께서 의심하도록 만드셨죠.”

“이런 걸 보면 인간관계라는 게 참 가볍게 느껴지지 않아?”

옆에서 보면 구불구불한 선이 위에서 보면 일직선의 곧은 선으로 보이는 것처럼, 같은 물체라도 어느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루크가 한 것이라곤 블린트가 다른 시점에서 도널드 백작이란 인물을 이해하게 만든 것뿐이다.

과거의 블린트라면 이쯤은 간단하게 간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블린트에게 아군의 반란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청렴결백의 대명사인 그란데 백작이나 바커스 백작 같은 자들도 반기를 일으켰으니까.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도널드 후작이라고 반기를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한참 대화를 이어 나가던 도중, 레이아가 입을 열며 아직 문제가 남아 있음을 상기시켰다.

“지휘관이 누구든 카라스코의 성벽과 그리핀 라이더 부대는 여전히 건재해요. 둘 중 하나를 뚫을 방법을 찾아보죠.”

찾아보자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루크에게 꽂혀 있었다.

늘 그래 왔듯, 방법을 찾아보자고 할 때마다 루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법은 생각해 놨으니 지시대로 움직여.”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설마 헥토 백작이 사령관으로 임명될 것도 예상하고 계셨어요?”

“사령관 후보 중 한 명에 넣어 두긴 했지. 오랫동안 헥토 요새를 관리해 온 장본인이니 사령관으로 임명돼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만약에 에드워드 백작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해도 루크는 금방 작전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제 나름대로 사령관 후보들을 머릿속에 나열해 놓고선 사령관마다 맞춤식 작전을 세워 둔 게 틀림없다.

경우의 수를 세워 두는 거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플랜B 정도는 세워 두지 않는가.

단지 루크는 남들보다 경우의 수를 따지는 범위가 몇 배는 더 넓다. 덕분에 어떤 상황을 맞이하든 즉각 해답이 나오는 것이고 말이다. 계획을 세우는 능력만 있으면 모를까 임기응변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당하는 입장에선 루크를 상대로 뭘 하든 소용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레이아는 못 당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작전 개요를 물었다.

“지시를 내려 주세요. 이번엔 뭘 하면 되나요?”

“저번이랑은 반대야. 내일 아침 일찍 나 혼자 부대를 이탈하겠어. 내가 아는 헥토 백작이라면 비행 부대를 파견해서 우리 야영지에 폭격을 가하려 들겠지.”

“폭격을 가하러 오는 비행 부대를 섬멸하면 되는 건가요?”

“제대로 이해했군. 바이스, 넌 적의 비행 부대를 섬멸한 직후에 바로 요새를 공격할 수 있도록 병력을 갈무리해 둬.”

적의 비행 부대만 사라진다면 요새 점령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작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바이스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적의 그리핀 부대는 250명쯤 남았고, 6서클 마법사 3명이 여전히 건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레이아 양과 비행 대원 10명만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건 도박이 아닐는지…….”

비행 부대는 비행 부대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성벽을 끼고 방어하는 측에선 격추 장비를 갖춰 놓고 요격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하니온군은 공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격추 장비 같은 대형 장비까지 가지고 오지 않았다. 가지고 왔다 한들 배치할 장소가 없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말이다.

고로 그리핀 부대에 맞설 수단이라곤 천공 섬의 새들밖에 없는데 가장 큰 전력인 루크가 빠져 버리면 레이아의 힘만으로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레이아도 6서클 마법사이긴 하나, 적군에도 6서클 마법사가 3명이나 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리다 보니 바이스로서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아는 군사 지도 위에 놓인 그리핀 모형을 넘어뜨리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하는 제가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셔서 명령을 내리신 거예요. 할 수 없는 일을 지시할 분으로 보이시나요?”

“당치도 않습니다. 어찌 전하의 판단을 의심하겠습니까. 저… 레이아 양, 정말로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성벽 바깥으로 나와 주기만 하면 못 할 것도 없죠. 성벽 밖에서라면 기동력을 살린 전투를 할 수 있으니까요.”

“흐음, 알겠습니다. 저는 제 일에 집중하도록 하죠. 그리핀 라이더는 레이아 양께 맡기겠습니다.”

그리하여 적의 비행 부대를 끌어내기 위한 작전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하니온군 본대에 있어선 처음으로 루크 없이 벌이는 전투였다.

루크는 전력 차를 극복하기 위해 대량의 마나 영약을 비행 부대에 지급했고, 모든 준비를 갖추자마자 파이의 등 위에 올라타 부대를 이탈하였다.

* * *

같은 시각, 겐크군 정찰 부대는 하니온군 본대에서 루크가 이탈한 것을 확인하고선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헥토 백작은 요새 내에서 간부들을 소집하여 방금 들어온 정보를 알려 주었다.

“루크 공왕이 단독으로 야영지를 이탈했다는군. 망할 자식 같으니, 왕이면서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똥 마려운 개처럼 싸돌아다니는구나.”

도널드 후작이 연행된 덕에 일선에 복귀한 헥토 백작이다. 복귀 허가가 떨어짐과 동시에 남다른 각오로 사령관 자리에 임했다.

이전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블린트의 열렬한 추종자이기에 반드시 공을 세워 다시금 블린트의 오른팔로서 활동하고 싶었다.

냉정하지 못한 욕지거리는 그가 공을 세우고 싶어 조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에드워드 백작은 그에게 조급한 기색이 감돌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진정시키려 애썼다.

“일단 루크 공왕의 목적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일세. 대응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네.”

도널드 후작은 진득하게 정보를 수집하고서 판단을 내렸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바위처럼 단단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널드 후작의 성향이었다.

그러나 헥토 백작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수집된 정보에 자신의 경험을 조합하여 결론을 산출했다.

“놈은 동쪽으로 향했어. 동부 전장에서 오크 부대가 북상하고 있지. 동부 전선에 합류해서 오크 부대가 이곳에 도착하는 시간을 앞당기려는 의도로군.”

중앙군끼리 대치를 이루고 있는 동안,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에선 하니온군이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다.

서부 전선에선 바커스 백작이 겐크군의 마나마스터를 베어 내었고, 동부 전선에선 오크 부대가 특유의 강인한 신체를 앞세워 전장을 압도하는 중이었다.

다른 전선에 있는 적군이 헥토 요새에 도착하면 전황이 급격히 기운다.

헥토 백작은 루크의 이탈을 기회 삼아 먼저 선공을 취하고자 마음먹었다.

“비행 부대에게 출격 지시를 내려 두게. 루크 공왕이 없는 틈을 타서 적의 본대에 타격을 입혀 둬야겠어.”

그에 에드워드 백작이 반대하고 나섰다.

“진정하게. 비행 부대 출격은 마지막까지 보류해야 하네. 도널드 후작님은 비행 부대만큼은 변수 없이 운영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네. 요새의 운명이 달린 결정이니 부디 심사숙고해서 판단을 내려 주게.”

“에드워드 백작, 방금 내게 뭐라고 했나?”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말자고 했네. 자네도 비행 부대와 성벽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않나.”

“입조심하게, 지금 요새의 사령관은 나일세. 나보다 왕명을 어겨 연행된 자를 믿는다 이 말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지 않은가.”

“아니긴 뭐가 아닌가! 적이 코앞에 있고 적의 비행 부대에 구멍이 뻥 뚫린 상황일세.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일세!”

천막 내에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와중에 헥토 백작의 손이 검 자루 위에 올라가 있었다. 더 이상 반대하면 군법에 따라 베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판단력이든, 개인적인 무력이든 모든 지표에서 에드워드 백작이 헥토 백작보다 앞선다.

헥토 백작이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은 오로지 정치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유능한 상관은 승리를 안겨다 주고, 무능한 상관은 피를 부른다 했으니.

위가 썩으면 아래에 피가 고일 따름이다.

에드워드 백작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명령을 받들었다.

“알겠네. 6서클 마법사들에게 출전 명령을 내려 두겠네.”

* * *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요새 동쪽의 산 정상에서 봉화가 피어올랐다.

루크가 헥토 백작령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동시에 헥토 요새에서 그리핀 라이더들이 일제히 요새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산기슭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이아는 그리핀 라이더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말한 대로 착착 맞아떨어지는 거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줄곧 반신반의하고 있던 비행 부대 대원들은 마찬가지로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요.”

“설마 머릿수 차이에 겁먹은 사람은 없겠죠?”

“이 정도로 겁먹을 거면 지금까지 먹은 영약 다 토해 내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대장으로서 내릴 명령은 하나뿐이에요. 마나가 남은 상태로 복귀하지 말 것. 이번 전투에 모든 걸 쏟아 내세요.”

“네! 레이아 대장님!”

전력을 쏟아라.

비행 대원들은 그 한 가지 명령만 가지고 레이아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핀은 독수리, 삼색 제비는 제비.

오늘은 제비가 독수리를 사냥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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