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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42화 (142/200)

# 142

142화 신성 제국과의 마찰(1)

고드름이 맺힐 즈음에 시작된 전쟁은 고드름이 녹을 즈음에 끝났다.

루크는 봄 내내 골디브의 왕궁에 남아 전후 처리에 전념했다.

가장 먼저 공적에 따른 포상을 내렸다.

이번 전쟁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란데 백작이었다. 이 부분 만큼은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바커스 백작을 포함한 수많은 귀족들을 포섭하여 겐크군의 전력 약화 및 하니온군의 전력 상승을 이뤄 냈고, 고문 속에서도 끝내 기밀을 유출하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저택과 지인들을 모두 잃었으니 그 부분에 관한 보상 판정까지 적용하여 합당한 포상이 주어졌다.

“그란데 백작에게 공작의 작위를 내리고 황금과 비단을 하사하겠다. 그리고 사이온 자작령을 비롯한 총 5개의 영지를 그란데 백작령에 규합하여 그란데 공작령으로 개편할 것을 명한다.”

작위 상승과 땅, 황금과 비단을 내림으로써 그란데 백작이 겪었던 고생을 말끔히 보상해 주었다.

그란데 백작… 아니, 그란데 공작은 아직 고문의 영향이 남아 있는지 레이아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사리 단상 위로 올라섰다.

“모자란 인물에게 큰 기대를 걸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이 한 몸 닳고 닳을 때까지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데 회복 경과는 어때?”

“다행히도 후유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더군요. 한 달쯤 푹 쉬면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푹 쉴 수 있게 해 줘야겠군. 빨리 나아야 빨리 부려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을 부를 걸 그랬습니다.”

“넉살 좋은 건 여전하군. 레이아, 한 달 휴가를 줄 테니 옆에서 잘 보살피도록 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그란데 백작이 가장 호화스러운 포상을 받긴 했으나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드래프트 영지 시절 때부터 루크를 섬겨 왔던 기사들이었다.

현재 조사단이 각 지방을 돌면서 지방 귀족들의 과거 행실을 낱낱이 조사하고 있다.

귀족의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 행사한 자들은 가차 없이 작위를 박탈하여 법에 따른 처벌을 내릴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용할 법은 당연히 하니온의 법률이었다.

기존 겐크 왕국의 법률은 구멍투성이에 기득권층을 위한 조항으로 가득한 쓰레기 법률이니 말이다.

여하튼 조사가 끝나면 많은 귀족들이 적출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하여 드래프트 영지 시절 때부터 루크를 섬겨 온 기사들에게 남작 위를 부여하여 비어 있는 영지를 부여할 생각이었다.

다만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귀족 작위를 거부한 자가 있었다.

“제랄드, 겸손도 지나치면 악덕이 되기 마련이야. 이룬 만큼 받는 것이니 부담스러워 하지 마.”

“전 싸우는 것은 그럭저럭 1인분 몫을 할 줄 알아도 백성을 다스리는 일엔 전혀 재능이 없습니다. 이번 포상의 취지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라면 제가 영주가 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꼭 네가 직접 다스리지 않더라도 적합한 인물을 뽑아 대리를 맡기면 될 일이야.”

“하사받은 영지를 다른 이에게 맡겨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 포상을 내리고자 하신다면 언제 한번 전하와 술잔을 기울일 기회를 주십시오. 제겐 그쪽이 더 분에 넘치는 포상이 될 겁니다.”

귀족 작위를 거부하는 대신 업계 포상을 요구하는 제랄드였다.

저 스스로 영주로서의 활동과 군대의 지휘관을 겸임할 그릇이 아니라 판단하여 한쪽에만 집중하고자 거부하는 것이었다.

안 받겠다는 것을 억지로 주었다가 악영향을 끼치면 본말전도다.

때문에 루크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보류라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럼 귀족이 될 권리를 하사하는 걸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가서 권리를 행사하도록.”

“헤아려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적 평가가 끝난 후 귀족들의 이목이 루크에게 모였다.

이젠 점령한 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정할 차례였다.

지난날 겐크 왕국은 아레나와 하니온을 속국으로 전락시켜서 책임과 권한을 분산시켰었다.

타국을 점령했을 시에 가장 편하게 단물만 빨아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에 루크가 겐크, 아레나, 하니온 중 하나만 관리하고 나머지 두 나라는 공국으로 선정한다면 각 나라를 관리할 공왕을 뽑게 될 것이다.

루크의 판단에 따라 공왕이 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는 노릇인지라 장내에 긴장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루크는 과거의 경우를 답습하여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카이둔 국왕의 가장 큰 실책은 자기 편하자고 책임과 권한을 분산시킨 것이었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점령한 두 나라를 공국으로 선정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그 말대로야. 이 자리에서 선언하지. 겐크, 아레나, 하니온을 하나로 통합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겠다. 국명은 빌로스. 조만간 대관식을 거쳐 빌로스 왕국의 1대 국왕으로 취임할 테니 모든 귀족들은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대륙 남부를 포괄하는 광활한 영토와 해협을 끼고 있는 섬나라.

이 모든 땅에 왕권이 미치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루크의 결정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루크와 카이둔 국왕은 다르다. 카이둔 국왕에겐 넓은 영토를 관장할 능력이 없었으나 루크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루크의 선언 앞에서 모든 귀족들이 스스로 무릎을 꿇으며 그의 명령을 받들었다.

“귀족 일동 전원, 새 왕국의 일원으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 * *

석 달 후 루크는 구아레나 공국의 수도인 헤테룬으로 자리를 옮겨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와 동시에 공식적으로 빌로스 왕국의 출범을 선포했으며 헤테룬을 수도로 선정했다.

그간 공을 들여 발전시켰던 벤티버를 놔두고 헤테룬을 수도로 선정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론 세 나라의 영토를 모두 합쳤을 때 지리적으로 헤테룬이 정중앙에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두 번째론 세 나라의 옛 수도 가운데 카라스코의 성벽으로 보호받고 있는 도시는 헤테룬밖에 없었다.

세 번째론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금빛 의자 틀과 빛바랜 붉은 쿠션, 의자 다리에 양각으로 새겨 놓은 버드나무 무늬.

이 왕좌에 앉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래전 내 것이었던 왕좌다.

카인의 이름을 달고 있을 무렵에 잃었던 왕좌를 루크의 이름을 달고서 다시 앉게 되었다.

참 오래도 걸렸다.

배신자 로메우를 처단하고 나서 한 번 앉을 기회가 있긴 했으나 그땐 거부했었다.

당시에 공왕의 자리를 거부한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공왕으로서’ 앉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원래 내 왕좌이거늘 어째서 속국의 왕으로서 앉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이 왕좌에 앉는 것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젠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당당히 왕좌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루크는 그토록 그렸던 자신의 왕좌에 앉으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빌로스 왕국 첫 국정 회의를 실시하도록 하지.”

새로운 국가를 발족했으니 집행부의 구성 인원이 바뀌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엔 벤티버에 있는 드골을 부를까 고민했는데 구하니온 공국, 지금의 하니온 지방도 아직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당에 자꾸 인사이동이 이루어져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하여 현지에 남겨 두기로 했다.

대신 새롭게 합류하게 된 그란데 공작을 새 집행부의 총책임자로 선정하여 행정을 보좌하게 했다.

그란데 공작은 준비해 온 양피지를 펼쳤다.

주르르르륵!

길이가 워낙에 긴 탓에 양피지의 아랫부분이 바닥에 닿으며 켜켜이 겹쳐졌다.

양피지의 길이는 곧 그란데 공작의 의욕을 의미했다. 첫 국정 회의라서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은데 의욕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그란데 공작은 자신이 중앙 정계의 주역이란 것이 감격스러운지 힘을 주어 헛기침을 하였다.

“흠! 흠! 첫 번째 안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륙 북쪽의 국가들이 빌로스 왕국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축하 선물을 보내 왔습니다.”

“선물 내역을 읊어 봐.”

“대부분 곡식과 목화, 그리고 목재라고 합니다. 양이 상당히 많아서 다음 추수철 때까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왕의 자리에 올라 구겐크, 구아레나의 재정 상황을 면밀히 살펴봤는데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국고가 전부 바닥나 있고, 없는 돈을 만들어 내려고 가치가 높은 신종 화폐를 마구 발행해 댄 탓에 물가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하니온 지방의 그레이트 쉘 산업과 드래프트 영지의 농산물 산업이 물이 올라 있어서 화폐 개혁을 위한 자금을 당겨쓸 수 있었다.

각기 달랐던 화폐를 모두 일괄적으로 통일시켜서 서서히 물가가 안정되고 있긴 하나 다음 추수철까지 텅 빈 국고로 버텨야 하는 상황은 변함없었다.

그 와중에 대륙 북쪽에서 선물을 빙자한 원조를 해 줬다고 하니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대가 없는 지원은 없는 법이다.

루크는 단박에 대륙 북쪽 국가들의 의중을 간파했다.

“어지간히도 나와 친분을 트고 싶은 모양이군.”

“누구도 그랜드 마스터를 보유한 나라와 척을 지고 싶진 않겠지요. 그런데 대륙 북쪽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선물을 보내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다.”

“보나마나 신성 제국일 테지.”

“네, 자기네들은 그랜드 마스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어필할 심산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선물 대신 공문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공문의 내용은?”

“데메그리 교와 내통한 카이둔 국왕과 친족들을 인계받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이 경우엔 내통한 본인은 사망했으니 옥에 갇혀 있는 블린트 왕자만 데려가겠지요.”

원래라면 블린트와 엘리나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엘리나는 볼모로서 거인국에 체류하고 있으니 데려갈 수 있는 자는 블린트밖에 없었다.

블린트를 인수인계하는 거야 예정된 수순이니 크게 신기할 것도 없었다.

다만 공문에 피해 보상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피해 보상을 해 준다는 내용은 없나?”

“피해 보상 말입니까?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이신지…….”

“예전에 데메그리 교 사제들이 아슈타르 교 사제로 위장해서 하니온에 잠복했었지. 데메그리 교 사제인 걸 간파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파견했으니 그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하라고 전령을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라서 말이야.”

“흐음, 거절할 거면 거절한다는 대답이라도 보내기 마련인데 말이죠.”

“어쩌면 기 싸움을 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신성 제국은 수백 년 동안 대륙의 패자로서 군림해 왔다.

그들의 입장에서 대륙 남부의 국가들을 통합한 새로운 강국의 존재가 마냥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뭐가 신성 제국이냐.

결국은 신의 가르침을 빌미로 패권을 유지하려는 일개 정치꾼들이잖은가.

저쪽에서 불의를 품고 있다면, 이쪽은 적의를 드러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 * *

빌로스 북쪽 국경에 하얀색 제복을 입은 대규모 집단이 나타났다.

순백의 제복 가슴팍에는 아슈타르 교를 상징하는 십자 문양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집단을 이끌고 있는 자는 흑발을 어깨까지 기른 30대 중반의 한 사내였다.

장발 사내는 빌로스 국경을 넘자마자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며 독실한 종교인의 모습을 과시했다.

“아아! 신을 저버린 나라답게 온통 구원받지 못한 자들밖에 없구나. 신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빌로스의 왕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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