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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45화 (145/200)

# 145

145화 빌어먹을 팔자(2)

검은색 구체가 마차 뒷바퀴 아래에서 폭발하며 강한 후폭풍을 만들었다.

폭발의 여파로 마차가 기울어지며 요란하게 뒤집혔다.

콰앙!

마차는 제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며 뒤집힌 이후에도 한참 동안 미끄러졌고, 그 과정에서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말과 마부는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마차 안에 있던 엘리나는 난데없는 폭발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마차 칸 내벽에 마구 부딪혔다.

흡사 채집통에 나비 한 마리를 넣고 마구 뒤흔든 것처럼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엘리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모든 운이 그녀를 거부하는 가운데 항상 악운만은 그녀를 놓지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악운이 작용했다.

충격으로 마차 좌석 아래에 채워 두었던 옷가지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면서 마차 안이 마구 흐트러진 것이다.

솜이 꽉 채워져 있는 겨울옷이 마차 내부의 돌출된 부분을 덮으면서 최소한 즉사에 이르는 충돌만큼은 막아 주었다.

쿠당탕탕!

마차는 한참을 미끄러진 후에야 멈춰 섰다.

엉망진창이 된 마차 안에서 엘리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하아.”

놀란 나머지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마치 몸 전체가 하나의 심장이 된 듯 고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몸이 산소를 요구하며 호흡을 재촉하는데 갈비뼈라도 부러졌는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이 번져 나왔다.

더불어 마차 바깥에서 거인족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감히 우리가 호위하고 있는 데 기습을 걸어?”

“진정하고 대열을 정비해라! 습격자들 중에 마법사가 섞여 있다! 한 명은 엘리나 왕녀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나머지는… 크악!”

콰아앙! 콰앙! 쾅!

호위단 단장의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차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마차 안이라 바깥 상황이 보이진 않으나 거인의 비명 소리만 들려오는 걸로 봐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요한 볼모를 인수인계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된 호위단이다.

호위단 단장은 마나유저 상급이고 병사들도 정예병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같은 마나유저 상급이라도 인간의 마나유저 상급과 거인의 마나유저 상급은 명백히 다르다.

거대한 신체에서 파생되는 강한 힘과 전투에서 이점으로 작용하는 신체적 특징은 감히 얕볼 수 없다.

한데도 거인 호위단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그만큼 습격자 무리의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습격 속에서도 엘리나는 어떻게든 냉정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아하아, 진정하자. 진정해, 엘리나. 여기서 멍하니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해. 나한텐 생각하는 재주밖에 없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정을 추스르고 몸 상태부터 가늠했다.

전신이 타박상으로 아픈 와중에 특히 옆구리랑 어깨 쪽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정도면 괜찮다. 걸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크윽! 으으으.”

깨진 유리 조각 위로 몸을 끌며 뚫려 있는 차창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고자 머리를 들이밀었다.

몸통과 다리는 긴 드레스로 덮여 있어 유리 조각 위에서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손바닥과 팔은 움직일수록 자잘한 생채기가 늘어나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엘리나는 마차 바깥으로 몸을 빼내는 내내 의문에 휩싸였다.

‘아까 그건 분명 마법이었어. 평범한 산적 무리는 아냐. 처음으로 의도하고 습격한 게 틀림없어. 하지만 왜? 이제 와서 날 공격할 이유가 없을 텐데…….’

지금의 엘리나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다.

겐크 왕국이 건재하던 시절이라면 블린트가 왕위 계승권자 제거 차원에서 매복을 준비해 뒀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그저 아무런 뒷배 없는 일개 일반인에 불과하다.

아니, 굳이 적을 상정한다면 한 부류가 있긴 하다.

‘설마 빌로스 왕국의 귀족들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빌로스 왕국이 건국되면서 새롭게 귀족 작위를 받은 자들 입장에선 엘리나를 꺼림칙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 겐크 왕국의 왕족인 엘리나가 빌로스의 행정 업무를 맡는 게 마냥 모양새가 좋은 편은 아니다.

루크야 신경 쓰지 않는다곤 해도 그의 휘하에 있는 자들까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엘리나의 기용이 대외적으로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구겐크 왕족은 언제나 반역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루크도 모르게 암살자를 보낸 걸지도 모른다.

‘일단 어떻게든 국경까지 가야 해. 국경까지만 가면 거인족 군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어.’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만 하면 습격자들의 정체를 추려 낼 수 있다.

거인족 호위단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는 얼마 없고, 그중에서 검은색 구체를 날릴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자만 꼽으면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의지를 불사르는 엘리나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현실은 그녀의 의욕을 단숨에 꺾어 버렸다.

마차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누군가가 위에서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잡고 강하게 찍어 눌렀다.

“어딜 도망가려고?”

투퍽!

“으윽!”

안면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코끝에서 찡한 통증이 번져 나왔다.

머리가 짓눌린 상태라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흙바닥에 얼굴을 문대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 위해 머리를 비틀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양 습격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이쿠, 확인하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그리 얼굴을 막 다루면 쓰나. 외모 낭비도 정도껏 해야 하지 않겠어?”

조롱기 가득한 비아냥이 가슴에 불을 지핀다.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지금까지 버텨 왔는데…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다. 억울해서라도 못 죽는다.

하나 거인들도 못 당해 낸 습격자들을 상대로 비전투원인 엘리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내 곧 목덜미에 차가운 금속 날붙이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개차반이었던 형제들은 유배형으로 끝났는데 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는 신세라니 말이야. 이래서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구만.”

습격자가 그녀의 목을 그으려고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려던 찰나.

또 다른 습격자가 그의 암살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잠깐.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데려가는 걸로 하지.”

“응? 방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생포해서 데려간다고 말했다.”

“이유를 들어 볼까? 이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는 시시한 소리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잘 생각해 보라고. 루크 국왕은 이 여자를 원해. 그냥 버리고 거인국의 국보를 취해도 될 것을 일부러 반환하면서까지 돌려받으려 하고 있어. 데리고 있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여기서 죽이면 모든 게 깔끔하게 끝나.”

“이용 가치가 없으면 그때 가서 죽여도 늦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책임지지.”

“…….”

죽이자고 주장하던 습격자가 한동안 침묵을 고수하더니 퉁명스럽게 한마디 중얼거렸다.

“쳇, 넌 항상 쓸데없이 일을 늘리는 게 문제야.”

“투덜거리면서도 내 결정에 따르는 게 네 장점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지. 악운 하나는 끝내 주는 여자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엘리나는 정신을 잃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기에 습격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죽지 않고 생포당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다니 말이다.

악운도 운이라면 운일 테지만 그녀에게 있어선 그저 고통이 연장되었을 따름이었다.

이제야 능력을 한껏 펼칠 수 있나 싶었으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에게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 * *

“죄송합니다, 거인국에서도 전력을 다해 수색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엘리나 실종 사건은 루크에게도 전해졌다.

거인국에서 온 사신은 왕궁 안의 정원에 한쪽 무릎을 꿇고선 거듭 사과의 말을 전했다.

신장이 5미터나 되는 거구이다 보니 대회의장에 들이지 못하고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거인이라곤 해도 외견은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덩치가 큰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루크는 뒷짐을 지고서 거인들 앞으로 다가갔다. 신장 차 때문인지 거인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데도 그들의 얼굴이 훤히 보인다.

거인들은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긴 하나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사죄의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위화감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루크가 입을 열었다.

“습격자들의 정체는 알아냈나?”

“아직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분명 사건은 한 달 전에 일어났는데 아직 알아보고 있다라… 아무런 단서를 못 잡았다는 걸 얼버무리는 것치곤 조잡한 변명이군.”

“한 가지 확실한 건 습격자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사건 현장 근처에 말을 타고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목격 증언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범인은 인간이라는 말에 루크가 표정을 달리했다.

거인 도적의 소행이 아닌 인간의 소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철저하게 계획된 습격이 틀림없다.

가장 의심스러운 자들은 다름 아닌 빌로스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구겐크 왕족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 루크 몰래 암살자를 파견했을 수도 있다.

루크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아직 왕국의 기반을 다지는 단계이니 벌써부터 귀족을 처형하는 사태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어지는 거인의 말을 통해 내부 소행이 아님이 밝혀졌다.

“거인국에선 범인으로 데메그리 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데메그리 교가 거인국에서도 활동하고 있나 보지?”

“최근 들어 거인을 소재로 한 마물이 마을을 습격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무쪼록 시급히 볼모의 소재를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합니다만 국내의 강경파 거인들은 빌로스 왕국의 자작극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어서 말이죠.”

거인국은 과거의 오크족과 마찬가지로 부족 국가이며 족장 회담을 통해 나라를 대표하는 왕을 뽑는다.

더불어 거인국의 부족들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다.

강경파는 힘으로 따뜻한 남쪽 땅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고, 온건파는 자국 내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거인국 강경파에게 있어 이번 사태는 남쪽 땅 침략을 위한 구실로써 이용하기 좋은 사건이었다.

때문에 거인국의 사신은 전쟁을 우려하여 국보의 반환 여부를 거론했다.

“혹시 지금 당장 담보로 잡고 계신 국보를 넘겨주실 순 없으십니까? 그리해 주신다면 국내 강경파의 항의를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사정은 알겠다. 하지만 납득이 안 된다.

자신들이 실수해 놓고 문제가 생겼다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꼴이잖은가.

루크는 남이 싸지른 것을 치우다 못해 뒤까지 닦아 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이 아니었다.

“사람이 가만히 있어 주니 물로 보이나 보군. 그쪽이 지금 당당히 국보를 요구할 수 있는 처지라고 생각하나?”

“뻔뻔한 요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저희와의 마찰은 피하고 싶으실 테지요.”

“당초에 볼모를 넘겨주면 국보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었지.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자작극이라고 의심한다? 뻔뻔한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전하께서 뜻을 꺾지 않으신다면 강경파를 설득하기 힘들겠지요. 저희도 할 만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까부터 위화감이 느껴진다 싶더라니 이제야 명확해졌다.

거인국은 이미 엘리나가 죽었다고 판단하고선 이득을 취하러 나선 것이다.

강경파의 움직임을 핑계 삼아 국보를 돌려받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고, 루크가 거부하더라도 자작극이라고 몰아붙이며 전쟁의 명분으로 삼으려던 게 틀림없다.

전쟁을 마치고 이제 막 회복기에 들어간 빌로스 왕국은 거인국에 있어 좋은 먹잇감일 터.

거인국의 의도를 간파한 루크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선수를 쳤다.

“유예 기간을 주도록 하지. 그 기간 내에 엘리나를 찾아내지 못하면 국보를 부수겠어.”

루크의 발언에 거인국 사신들이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곤란한 건 빌로스 왕국 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터라 충격이 배가 되었다.

그들의 표정이 말해 주고 있다.

미친 건가? 먼저 굽혀도 모자랄 판국에 되레 도발을 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사신들을 두고 루크가 나지막이 말을 덧붙였다.

“돌아가서 너희들 왕에게 전하도록 해. 나한테 개수작은 안 통한다고 말이야.”

* * *

거인국의 사신이 돌아간 후 침실로 돌아가는 루크에게 그란데 공작이 급히 따라붙었다.

“괜찮겠습니까? 아직 거인국을 상대하기엔 시기상조입니다.”

분명 거인국은 지난 수년간 힘을 비축해 왔을 것이다.

겐크 지방 북쪽 국경에 카라스코의 장벽이 있다 한들 버텨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기세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함이라곤 해도 이쪽에서 먼저 도발을 날리는 건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하지만 루크도 마냥 자존심 때문에 허세를 부린 것이 아니다.

“이 일에는 분명 배후가 있어. 이대로 거인국과 싸움을 붙이는 게 놈들의 목적이겠지.”

“그럼 거인국은 데메그리 교가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쟁을 벌이려 한다, 이 말씀이십니까?”

“아직 데메그리 교가 범인이라고 확정 짓기 어려워. 신성 제국일 수도 있고, 데메그리 교일 수도 있어. 내가 적이 좀 많아야지.”

“흐음, 어쨌거나 놈들에겐 따뜻한 남쪽 땅을 차지할 기회니까 배후가 누구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군요.”

“거인은 덩칫값 못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아무튼 지금 당장 전쟁은 무리입니다. 따로 묘안이라도 있으신지요?”

거인국이 자작극을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면 그 주장 자체를 타파하면 될 일이다.

솔직히 루크도 아직 엘리나가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진범은 아직 살아 있을 터.

진범만 잡아내면 거인국에서도 아무 말 못하고 루크의 요구대로 피해 보상을 토해 낼 것이다. 겸사겸사 엘리나의 한도 달래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루크는 여태까지 그래 왔듯 역마살 기질을 드러냈다.

“내가 직접 거인국으로 가서 진범을 잡겠어. 레이아를 데려갈 테니 준비하라고 전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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