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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51화 (151/200)

# 151

151화 오순도순 저승 땅이나 밟아보도록(2)

툰드라 산맥.

1년 내내 추운 거인국에서도 가장 추운 곳이자 거인국 중앙을 세로로 관통하는 거대한 산맥이기도 하다.

툰드라 산맥을 얕보고 어설프게 준비한 채로 등산했다간 변화무쌍한 날씨에 혹독히 당하고, 단단히 준비한답시고 바리바리 싸 들고 오르면 두텁게 쌓인 눈 때문에 제풀에 지치고 만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사태는 거인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규모여서 인간, 거인 불문하고 오를 엄두조차 못 내는 곳이었다.

바꿔서 말하면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하려는 자들에겐 이만한 은신처가 없는 셈이다.

루크는 말을 몰고 이동하다가 툰드라 산맥 초입 부근에서 고삐를 강하게 당겼다.

“히이잉!”

눈이 녹아 얼음벽을 이루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덮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들어진 얼음층은 장관이었다.

다만 산 밖에서 볼 때나 아름답지 산속에선 쉴 새 없이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능선 너머에서 눈사태의 규모를 짐작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아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눈사태가 파쇄음을 자아냈고,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초대형 맹수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루크는 라그나로스를 소환하여 몸 주위에 열기를 두르게 하고선 마법을 시전했다.

“플라이.”

지상 루트를 피하기 위해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으나 공중 루트도 험난한 건 마찬가지였다.

산맥 상층부를 감싸고 있는 칼바람이 자잘한 얼음 조각을 품고서 날아드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루크의 로브 앞주머니 안에 있던 라그나로스는 귓가에 들리는 바람 소리에 몸서리를 쳤다.

“어후야, 바람 소리 봐라. 아주 그냥 절단 낼 기세로 불어닥치네.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데메그리 교 지부 박살 내러.”

“응? 근데 파이 녀석은 어쩌고 네가 직접 날아?”

“일이 있어서 레이아랑 같이 다른 곳에 보냈어.”

“그럼 조심해야겠는걸. 마물을 감지할 수 있는 아가씨 없이 데메그리 교 놈들이 숨어 있는 곳에 가는 거잖냐. 마물이라도 잠복해 있으면 골치 아파지겠는걸.”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로 마물의 기습을 받았다.

한창 봉우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 눈 쌓인 능선에서 붉은 물체가 쑥 날아오는 게 아닌가.

붉은 물체는 다름 아닌 개구리의 혀였다.

더불어 아까까지는 눈밖에 보이지 않았던 능선에서 거대한 개구리의 윤곽이 드러났다.

턱에 수염처럼 세 개의 뿔이 돋아나 있는 3성급 마물이 보호색을 띠고선 숨어 있었던 것이다.

라그나로스는 자잘한 돌기로 덮여 있는 혓바닥을 보며 학을 뗐다.

“고놈 혓바닥 모양 한번 고약하구만. 개구리답게 동면이나 취할 것이지 어디서 혀를 들이대?”

모처럼 파이가 없어 살맛이 나는지 신나게 떠들어 대는 라그나로스였다.

라그나로스의 익살스러운 말투와 달리 마물의 혓바닥은 마냥 얕볼 수만은 없었다.

이전에 심문한 사제의 말에 의하면 3성급 이상의 대형 마물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1, 2성급 마물은 아무렇게나 풀어 둔다고 했었다.

한데도 3성급 대형 마물이 버젓이 남아 있다는 건 사제들이 일부러 남겨 둔 것일 터.

아지트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말하면 이 근처에 데메그리 교의 아지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루크는 투영검을 소환하며 날아드는 혓바닥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해왕검의 궤적을 따라 투영검이 똑같은 궤적을 그리며 굵직한 혓바닥에 파고들었다.

대형 마물과의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라 투영검이 제대로 먹힐지가 관건이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단 한 번의 칼질로 마물의 혓바닥이 뱀의 혀처럼 좌우로 갈라졌고, 투영검은 기세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혓바닥을 양단하다가 마물의 몸까지 호쾌하게 베어 냈다.

서걱!

* * *

쿠구구구구!

능선에서 무거운 물체라도 구르고 있는지 요란한 소음이 들려온다.

산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어느 동굴 안, 약에 취한 거인들에게 마물화 시술을 집도하던 사제들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오늘따라 눈사태가 자주 일어나는구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신경 꺼. 그보다 어서 작업이나 마무리하자고. 페르난도 사제께서 화내실라.”

신경질 내듯 스태프로 지면을 강하게 짚으며 걸어 다니던 청발의 사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이달 내로 작업을 마치고 철수하라는 말 못 들었어? 기한 내 못 끝내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 빨리빨리 진행해!”

데메그리 교의 고위 사제인 페르난도는 현재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페르난도로 말할 것 같으면 몇 달 전에 상부의 명령을 받고 엘리나 일행을 습격한 전적이 있었다.

당시에 작전 자체는 성공했으나 동료의 권유로 엘리나를 죽이는 대신 생포하는 쪽을 선택했었다.

그 뒤에 그녀에게 5성급 마물이 될 자질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상부에 상납하여 성과를 올린 참이었다.

그런데 정작 공적을 인정받은 건 동료뿐이고 페르난도의 공적은 과소평가되었다.

동료가 선수를 쳐서 엘리나를 생포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사람은 자신이지 페르난도가 아니라고 보고를 올려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동료는 곧바로 상층부에 불려갔으나 페르난도에겐 거인국 지부 작업장에서 끝까지 감독관 역할을 마치고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적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 아군에게 뒤통수를 맞는 게 더 아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페르난도는 속이 쓰린 나머지 신경질적으로 스태프를 지면에 찧었다.

“빌어먹을 자식, 자기 혼자 출세하겠다고 십년지기 친구를 버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데메그리 교 내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는 자신이 추운 오지에 파견된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동기 놈은 벌써 출세해서 대신전으로 가 버렸으니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쿠구구구!

오늘따라 유달리 눈사태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도 이리 짧은 주기로 눈사태가 발생하진 않는다.

점점 더 짜증이 더해져 가던 중 보초를 서고 있던 사제들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페르난도 사제님! 놈입니다! 놈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적을 발견한 양 다급하게 적의 접근을 알리는 보초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부에 들킬 만한 장소가 아닌데 적에게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치솟는데 보초가 보고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자꾸 놈놈놈 거리기만 하니 더더욱 열이 올랐다.

“놈이라고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군지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루… 루크 국왕입니다! 루크 국왕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페르난도는 일순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가 찾아와?

놈이 왜 여기에 와?

방금 듣고도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나머지 저도 모르게 다시 묻게 되었다.

“루크 국왕? 놈인 게 확실해?”

“경비용으로 세워 둔 대형 마물을 투영검으로 베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페르난도였으나 서서히 감정을 수습하며 냉정을 되찾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놀랄 일까진 아니다. 전례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한다.

어디 놈이 보통 신출귀몰하던가.

항상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현장을 급습하던 놈이다.

라그나로스 계획 때도 그랬고 해저 섬 몰살 사건 때도 그랬다.

중요한 건 놈이 왜 여기에 있느냐가 아니라 놈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다.

마냥 불행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기회로 여기자.

여기서 놈을 제거하면 출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주교의 측근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력은 얼마나 끌고 왔는지 확인했고?”

“그… 아직까진 루크 국왕 한 명만 확인된 상황입니다.”

“머릿수를 늘리는 대신 기동력과 은밀함을 택한 모양이군. 혼자 오는 거라면 차라리 잘됐어. 이곳을 놈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네? 과거의 전례도 있고 하니 이대로 후퇴하는 게…….”

“무슨 개소리야? 장비랑 소재를 모두 버리고 가자고? 전부 더하면 얼마짜린데 그걸 버리자? 상부에서 문제 삼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건 아니지만…….”

“책임질 게 아니면 닥치고 명령대로 움직여. 성공하면 전원 3계급 특진이야. 일생일대의 기회를 시궁창에 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사제들은 3계급 특진이라는 말에 솔깃해하며 의욕을 가졌다.

으레 투자할 때 성공한 사례만 보고 섣불리 투자하는 것처럼 페르난도 일행은 3계급 특진이라는 성공 보수에 자신들의 목숨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마물화에 성공한 대형 마물들을 동굴 통로에 배치해 둬! 놈이 난입하자마자 마물과 함께 총공세를 펼칠 테니 어서 준비들 해!”

* * *

경비 차원에서 배치되어 있던 대형 마물들은 전원 투영검 앞에 썰려 나갔다.

루크는 10여 구에 달하는 3성급 대형 마물의 파편을 뒤로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통로 안쪽에서 대형 마물들이 일제히 덤벼 왔다.

“쉐에에엑!”

“쿠어어어!”

“크르릉!”

대형 마물은 모습도 공격 방식도 제각각 달랐다.

사자의 머리에 산양의 뿔이 달린 마물도 있었고, 네 개의 머리를 지닌 뱀도 있었으며 나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물 등등 각기 다른 모습의 마물들이 거대한 육체를 과시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류는 무기형 마물에 잠식당한 거인들이었다.

마물화될 가능성이 적은 거인들에겐 대형 무기를 쥐여 주어 강제로 버서커화시킨 것이다.

속성 공격, 특수 능력이 가미된 듯한 낌새가 보이는 나방 분진, 육탄 공세 등등.

그 외에도 대형 마물 너머의 어둠 속에서 사제로 추정되는 자들의 주문 영창이 들려왔다.

“디코이 코일!”

“본 홀드!”

“커럽션 파이어볼!”

각종 공격이 통로 가득 빡빡하게 날아든다.

루크는 같잖다는 양 냉랭한 눈빛을 띠었다.

“도망치지 않은 건 하나는 칭찬해 주지.”

능선을 오르며 꽤나 요란하게 전투를 벌였었다.

적들도 사전에 루크의 접근을 알아차렸으리란 건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이다.

도망을 칠지, 응전해 올지 그 부분에서 의견이 갈릴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아무래도 응전을 택한 모양이었다.

사제들이 응전해 올 때를 대비한 수라면 미리 세워 두었다.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루크는 엄지와 중지를 맞물리며 경쾌하게 튕겼다.

따악!

“쓸어버려.”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신호 삼아 루크의 뒤에서 거대한 불꽃이 치솟았다.

루크로부터 대량의 마나를 부여받아 간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라그나로스가 신명 나게 주먹을 뻗었다.

“크하하하! 이제야 이 몸을 용도에 맞게 쓰는구나!”

지금껏 난방 용구로만 쓰였던 것에 한이 맺혔는지 어깨가 빠질 기세로 주먹을 뻗는 라그나로스였다.

라그나로스의 주먹에서 뻗어 나온 화염이 동굴 안을 가득 메우며 적의 공격을 집어삼켰다.

마나번 능력이 가미된 화염 앞에서 적의 공격은 달군 팬 위에 떨어뜨린 물방울처럼 삽시간에 증발했다.

화르르륵!

화염은 거칠 것 없이 통로 안쪽으로 파고들다가 대형 마물들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라그나로스도 크게 마음먹고 내지른 주먹임에도 대형 마물의 몸집이 워낙 큰 탓에 기껏해야 통로 가까이에 있던 몇 마리만 태워 죽이는 데 그쳤다.

이대로 라그나로스에게 맡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선 귀중한 마나 회로 연장 재료인 무기형 마물까지 태워 버릴 테니 이쯤에서 바통을 넘겨받는 게 좋을 듯했다.

무엇보다도 그저 태워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로 끝내는 걸론 제대로 된 진혼식이라 부를 수 없다.

루크는 라그나로스에게 대기 신호를 보내며 동굴 안의 사제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피차 긴 말은 필요 없겠지. 남김없이 보내 줄 테니 오순도순 저승 땅이나 밟아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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