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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52화 (152/200)

# 152

152화 죽은 자를 위한 진혼식(1)

“쉬에엑!”

4개의 머리를 지닌 뱀 모습의 대형 마물이 자신의 그림자에 녹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뱀 마물의 모습은 사라졌으나 그림자는 여전히 바닥에 남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뱀 그림자가 동굴 바닥을 타고서 이동하더니 루크의 발치로 다가왔고, 이내 그림자 속에서 뱀의 머리가 일제히 튀어나왔다.

루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볍게 검을 그었다. 그에 따라 투영검이 튀어나오던 뱀의 머리 4개를 한 궤적에 담아 냈다.

서걱!

횡으로 일선을 그은 투영검이 루크로부터 멀리 벗어나며 동굴 벽을 강하게 긁었다.

드드드드득!

투영검이 루크의 곁을 떠나면서 루크의 전신이 훤히 드러났다.

이를 기회라 여긴 것인지 동굴 통로 안쪽에서 높은 톤의 공격 명령이 쩌렁쩌렁 울렸다.

“투영검만 빼면 평범한 마나마스터랑 다를 것도 없다! 이 틈을 놓치지 말고 총공세를 퍼부어라!”

다른 대형 마물들이 일제히 루크를 향해 돌격해 왔다.

제각기 특수 능력을 가진 듯했으나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왜냐하면 죄다 3성급 이하의 마물뿐이고 4성급 마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나 흡수 능력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4성급 마물이 없다면 이 전투에 복잡한 전략은 필요 없을 터.

오로지 힘만으로 압도하겠다.

루크는 다가오는 대형 마물 무리를 향해 해왕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해왕검의 표면에서 거대한 검격이 생성되며 통로를 가로질렀다.

대량의 마나를 듬뿍 머금은 검격이 대형 마물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검격이 지나칠 때마다 대형 마물의 움직임이 멎었고, 마물들의 몸통에 기다란 가로선이 그이며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쩌억! 쩌어억!

거대한 생물체들이 일제히 몸속에 든 것을 쏟아 내며 쓰러지는 광경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시체의 산을 쌓아 온 백전노장이라도 이 광경을 본다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동굴 통로 안쪽에 있던 데메그리 교 사제들은 눈살을 찌푸리긴커녕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에서 쓰러진 대형 마물의 시신들?

그깟 건 아무래도 좋다.

그것보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루크의 모습이 훨씬 살벌하면서도 괴기스러웠기에.

머릿속에 그리던 광경과 다른 탓에 서서히 공포심이 엄습하기 시작했으나 여기까지 와 놓고 등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데메그리 교 사제들은 발버둥 치듯 마법을 난사했다.

“본 커터!”

“애시드 니들!”

“커즈 클라우드!”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안전한 길만 택하지 왜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하냐고.

하지만 투자하는 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리스크가 있기에 얻는 것이 많으니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이다.

이 부분엔 루크도 다를 바 없었다.

그 역시 종종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을 택할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루크와 루크의 적 사이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힘의 차이.

권장 조건으로 도전하는 자와 최소 조건으로 도전하는 자 사이에는 같은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이라도 성공률이 극명하게 갈리는 법이다.

쏟아지는 마법 세례 속에서 루크의 입이 달싹였다.

“블링크.”

루크의 신형이 사라지며 데메그리 교 사제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나타났다.

이미 마법은 루크의 등 뒤로 떠난 후이며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던 라그나로스가 대신 마법을 맞고선 피격당한 부위를 긁적이는 여유를 내비쳤다.

루크의 접근은 곧 사자가 양 떼 사이에 파고든 격이다.

굶주린 사자가 양 떼 사이에서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며 기다란 직선을 그렸다.

서걱! 서걱!

“크아아악!”

비명 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직선 위에 새로운 직선이 더해졌다.

푸른빛이 직선을 그을 때마다 하늘거리는 마나 블레이드의 잔상이 뒤따랐고, 잔상의 잔상이 겹치며 동굴 안에 작은 오로라를 피워 냈다.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여러 다발의 비명 소리가 불협화음을 이루었고, 검이 그리는 궤적은 직선에서 점점 곡선으로 바뀌어 갔다.

가까이서 보면 학살이었으나 멀리서 보면 무희의 춤사위 저리 가라 할 진풍경이 펼쳐졌다.

적을 섬멸한다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극한까지 다듬은 동작들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모든 잡념을 의식하에 가라앉혀야 한다.

벤다.

그 하나만을 머릿속에 남겨 둔 채로 적을 베고 또 베었다.

한 번 벤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황천길조차 제대로 못 걷도록 영혼까지 토막 낼 기세로 오체를 분해해 주었다.

무아지경 속에서 적을 베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제들은 모두 바닥에 드러누운 후였다.

남은 자는 푸른색 머리카락을 지닌 사제 한 명뿐.

본인도 일이 수틀렸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부리나케 도주에 나서는 중이었다.

이전에 심문한 데메그리 교 사제를 통해 습격조로 편성된 자의 인상착의를 미리 들어 두었었다.

2인 습격조 중 한 명은 푸른색 머리카락에 늘 해골이 달린 스태프를 들고 다닌다 했었다.

이름은 페르난도라 했었나?

루크는 블링크를 시전하며 페르난도의 뒤를 쫓았다.

“블링크.”

반면에 페르난도의 머릿속은 온통 ‘엿 됐다!’란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대형 마물을 끼고 싸웠을 시 승률은 50 대 50이었다.

확률 50퍼센트짜리 복권이 있다면 누군들 안 긁고는 못 배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투를 벌이고 나니 전제 조건부터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50 대 50은 개뿔!

1퍼센트도 안 되는 확률이잖은가!

하지만 안 되는 놈은 왜 자신이 안 되는 놈인지 자각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냥 자신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일이 꼬이게 된 단서가 보란 듯이 널려 있는 마당에도 억지를 쓴다.

이 마당이 되어서도 페르난도는 제 잘못을 시인하기보단 먼저 출세한 동료를 탓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놈이 여기 남아 있기만 했었어도 할 만했을 텐데! 놈이 날 버리고 가면서 모든 게 꼬였어!

꼴에 자신은 5서클짜리 고급 인력이니 살아야 한답시고 블링크를 연달아 시전하는 페르난도였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루크와 페르난도의 블링크 추격전이 이어졌다.

추격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업장 용도로 쓰던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루크가 검격을 날려 페르난도의 다리를 날려 버렸기에.

서걱!

“커헉!”

무릎 아래가 뭉텅 잘려 나가면서 페르난도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그사이 루크가 금세 거리를 좁히고선 해왕검을 역수로 쥐었다.

변명을 요구하는 말 따윈 필요 없다는 양 곧장 해왕검이 아래로 떨어지며 페르난도의 어깨를 꿰뚫었다.

푸욱!

“으아아아! 그만! 그만! 제발 그만!”

“자신이 죽이는 건 괜찮은데 죽는 건 싫다? 엘리나는 이런 쪼잔한 근성을 가진 놈한테 죽었다는 거군.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든다고.”

“엘리나가 죽어? 난 죽이지 않… 크아아악!”

푸욱!

루크는 무심한 표정으로 맞은편 어깨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며 입을 열었다.

“상부의 지시를 따른 것이니 내게 죽인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걸로 내가 납득할 거라 생각하나 보지?”

“허억허억! 기… 기다려. 저, 정보! 정보를 제공하겠어! 그러니…….”

중요한 작업장의 책임자로 임명될 정도라면 상당한 정보를 쥐고 있을 것이다.

살려 주는 척하며 정보를 뽑아낸다는 선택지도 나쁘지 않긴 하다.

루크가 늘 지켜 왔던 감정보다 실리란 원칙에 따르면 정보를 뽑아내는 게 맞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고자 한다.

서걱!

해왕검이 페르난도의 어깨에 박힌 채로 마나 블레이드를 뿜으며 그의 몸 내부를 갈가리 찢었다.

“쿨럭! 쿨럭! 끄르륵!”

페르난도의 허리가 새우처럼 크게 휘었고, 그의 입에선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다가 이내 곧 피거품이 맺히며 경련이 멎었다.

진범을 찾는다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야 뒤늦게 허무함이 몰려왔다.

생각보다 엘리나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컸던 듯하다.

이제야 실감이 된다.

나는… 그녀를…….

자신의 심정을 자각했음에도 루크의 몸가짐엔 흐트러짐 한 점 없었다.

지금까지 그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살아야 할 위치에 있기에.

피에 젖은 검을 세로로 세워 가슴에 대고서 묵념을 올리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였다.

묵념을 마친 후에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동굴 입구 쪽으로 되돌아갔다.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라그나로스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으~ 기껏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벌써 끝나다니 아쉽구만. 이제 레이아랑 합류하러 갈 거냐?”

“그전에 마쳐 둬야 할 일이 있어.”

루크의 시선이 동굴 통로로 옮겨 갔다.

동굴 통로는 루크가 베어 낸 시체로 가득했고 시체 파편 사이에 드문드문 거대한 무기가 널려 있었다.

전부 무기형 마물이었다.

루크에게 있어 무기형 마물은 마나 회로를 늘려 주는 영약 중의 영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잖은가.

루크는 감정을 갈무리하듯 숨을 길게 내쉬곤 회로 흡수 작업에 착수했다.

* * *

한편 루크와 떨어져 행동하던 레이아는 파이를 타고 이동한 끝에 블러디 부족의 부락에 도착했다.

싸이클롭스와 더불어 거인국 2강의 일각을 맡고 있는 블러디 자이언트 무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부락 한복판에 착지하자 블러디 자이언트들의 전신이 눈에 들어왔다.

블러디 자이언트는 마치 전신이 홍조로 물든 양 붉은빛의 피부를 띠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흥분해서 열이 오른 사람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술만 마시면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 같기도 했다.

레이아를 목격한 블러디 자이언트 무리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간? 인간이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거지?”

“빌로스 왕국에서 온 걸지도 몰라. 그 외에 달리 우리한테 찾아올 만한 인간은 없잖아.”

“대족장께 알려! 그리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전사들도 부르고!”

전쟁을 부르짖는 강경파의 총본산이니 호의적이지 않으리란 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부락 안이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블러디 자이언트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다비드였다.

전쟁을 늦추기 위해 블러디 부족에 체류하고 있던 다비드가 소란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다비드는 인파 사이를 비집고 나오며 레이아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갑자기 레이아가 찾아온 것에 적잖이 놀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레이아,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왜 여기 있어?”

그에 레이아가 파이의 안장 뒷좌석에 묶여 있는 데메그리 교 사제를 가리켰다.

“습격 사건의 진범을 밝혀 줄 증인을 잡아 왔어요.”

“증인치곤 꼴이 말이 아니군.”

“참고로 저 사람, 데메그리 교 사제예요.”

“좀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지 그랬어?”

주거니 받거니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블러디 자이언트들은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적대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레이아는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하고선 웃음기를 지우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설득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었어요?”

“그게 말이야…….”

그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인파 사이로 생겨난 길을 통해 다른 거인들보다 한 뼘은 더 큰 신장을 지닌 거인들이 접근해 왔다.

다가오는 거인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블러디 자이언트가 아닌 일반 거인들이었다.

걸치고 있는 가죽 복장이나 진주나 보석 장신구를 걸친 것에서 다른 부족의 족장들임을 알 수 있었다.

다비드 외에도 타 부족의 족장들도 블러디 부족에 체류하며 전쟁 유무를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족장 무리의 선두에는 자이언트 루돌프의 머리를 통째로 박제하여 만든 모자를 쓴 블러디 자이언트가 있었다.

그는 레이아를 목격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뜸 적의부터 내비쳤다.

“인간 계집아, 항복 의사를 전하러 온 게 아니라면 썩 꺼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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