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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55화 (155/200)

# 155

155화 카라스코 건축물에서 보인 징조(2)

거인 2,000명, 엘프 3,000명.

총 5,000명의 군대가 빌로스 국경을 향해 남하했다.

총 5,000명이라고 하면 다소 빈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인이 소모하는 군량미만 하더라도 인간으로 치면 2만 명 분량에 달한다.

군량미가 곧 병력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 아니지만 거인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감안하면 인간 2만 군세에도 뒤지지 않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소수의 정령사가 포함된 엘프 궁수대까지 더해졌으니 마냥 머릿수만 보고 얕볼 전력이 아니었다.

빌로스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사흘이 남은 시점에 이르러 거인, 엘프 동맹군에 급전이 날아들었다.

“뭐? 난쟁이 마을의 난쟁이들이 부락을 습격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더냐!”

쿵!

모건이 강하게 발을 구르며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발을 구른 자리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나풀거렸고, 그에 놀란 전령이 몸을 흠칫 떨더니 냉큼 설명에 나섰다.

“그게 말입니다. 난쟁이들이 수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각 부락에 남아 있는 식량을 훔쳐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락을 지키고 있는 자들과 난쟁이들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사의 숫자가 극도로 줄어든 틈을 타서 식량을 훔쳐다 팔아서 고칠 생각인 것이다.

거인에겐 충분하지 않은 양일지 몰라도 인간에겐 팔자 고치기엔 충분한 양일 터.

부락 창고에 쌓아 둔 식량 일부만 갈취해도 대형 상선을 채우고도 남을 양이니 이때다 싶어 노략질에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부족마다 부락에 최소한의 전사들을 남겨 두긴 했다.

초반에는 도적 떼를 몰살시키는 등 호전을 펼쳤으나 시도 때도 없이 도적 무리가 찾아오다 보니 힘이 부쳐 더 이상 응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전사들이 힘이 빠지다 보니 난쟁이들이 더욱 기가 살아서 선을 넘고 있습니다.”

“선을 넘고 있다면?”

“보석이나 장신구를 노리고 민가를 습격하는 만행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합니다.”

“이런 망할 것들을 봤나! 오갈 것 없는 것들에게 살 땅을 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추방자들을 받아 준 것은 어디까지나 대족장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대대로 블러디 부족의 대족장은 난쟁이 마을의 존재를 허락하는 대신 추방자들로부터 많은 뒷돈을 갈취해 왔다.

즉, 난쟁이 마을은 대대로 대족장의 개인 용돈 창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는 다른 부족의 족장들도 모두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대족장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쉬쉬해 왔을 뿐.

불순한 의도로 유지해온 마을이 어찌 순기능만 유지하겠는가.

빈틈을 보이면 곧바로 역기능으로 전환되리란 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이었다.

다른 거인 족장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곤 나름대로 의견을 내었다.

“병력 일부를 회군시켜 난쟁이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200명쯤 보내면 충분할 겁니다.”

“벌써 노략질하느라 대부분 난쟁이가 마을을 떠나 있을 텐데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걸로 노략질이 멎겠습니까? 각 부족에 충분한 수비벽을 갖출 수 있는 병력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 부족당 70~80명씩은 보내야 할 텐데 700~800명씩이나 되는 병력이 빠지면 빌로스는 어떻게 치자는 겁니까?”

본보기로 난쟁이 마을을 초토화시키자.

아니다, 각 부족에 수비 병력을 보내야 한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모건은 천막 한편에서 계속 침묵을 유지 중인 엘프 사내를 쳐다보았다.

“라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엘프 사내의 이름은 라울.

엘프 왕족인 요정왕 일족의 일원이자 상급 정령사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이번에 거인들과 합류한 엘프군을 이끄는 지휘관이기도 하기에 군사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라울은 모건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달리 할 말이 없음을 알렸다.

“제가 함부로 의견을 낼 사안이 아닌 듯하니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당장은 동맹을 맺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남의 나라 사정이다.

라울이 뭐라고 말하든 외부인이니까 그리 말할 수 있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괜히 의견을 냈다가 욕을 먹느니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사람치곤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라울이었다.

라울의 입이 닫힌 순간 일부 족장들은 발언권이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양 매우 극단적인 의견을 내었다.

“대족장, 차라리 부락을 털게 놔두시지요. 애매하게 병력을 회군시키느니 후방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온전한 병력으로 진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도적 떼들이 마음껏 활개 치게 놔두자는 건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시기에 난쟁이들이 일제히 노략질에 나서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우리 동맹군의 진군을 늦추고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손을 쓴 게 틀림없습니다.”

“그 누군가가 루크 국왕일 거다?”

“정황상 그렇게 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 시점에서 후방에 있는 자들이 고생할 건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부분 아닙니까?”

어차피 전쟁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리 주장하며 이대로 진군할 것을 권하는 자들의 숫자가 제법 된다.

말이야 쉽다.

하나 모건으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리적으로 따지면 후방의 어려움 따윈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게 옳다.

그러나 도의적으로 따지면 가족과 이웃을 구하기 위해 병력의 일부를 돌려보내는 게 맞다.

최악의 경우는 이대로 진군했다가 빌로스를 굴복시키는 데 실패해서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부족민의 고통을 등한시한 채로 싸우러 갔는데 지고 돌아가기까지 해 봐라. 기다리고 있는 건 부족민의 싸늘한 눈빛뿐이리라.

일부 거인 족장들은 계속 강행군을 주장했고.

“뭘 고민하십니까? 따뜻한 남쪽 땅을 차지하는 게 비원이라고 하셨으면 그 비원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머지 거인 족장들은 일부 병력의 회군을 주장했다.

“소수의 병력을 보낸다고 전세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겁니다. 이대로 가면 후방 보급에도 차질이 생길 텐데 어찌 등한시한단 말입니까?”

양쪽에서 상반된 주장이 빗발치는 가운데 모건은 눈을 감고서 고민을 거듭했다.

장고 끝에 내린 판단은 이대로 강행군을 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후방에는 병력을 보내지 않는 걸로 하지. 이대로 남쪽으로 내려가겠다.”

강행군을 주장한 부류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양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 병력 회군을 주장한 부류는 조급한 듯 한쪽 다리를 떨었다.

여기에는 모건 나름의 계산이 가미되어 있었다.

후방에 남겨 둔 가족과 이웃이 걱정되는 자들은 그만큼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질 것이다.

속전속결에 대한 열망이 커진 만큼 가진 힘을 쥐어짜 낼 테니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상반된 반응 속에서 거인, 엘프 동맹군은 진군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남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 * *

파이는 레이아의 지시에 따라 거인, 엘프 동맹군의 남하 소식을 미리 국경에 알리러 왔다가 그대로 정찰조로서 머무르게 되었다.

파이로선 거인, 엘프 동맹군보다 루크와 레이아가 먼저 도착하길 바랐으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 발견! 적 발견!”

장벽 상공에서 날던 파이가 적의 접근을 알리면서 장벽 수비대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현재 겐크 북부 장벽을 지키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도널드 후작이었다.

한때 겐크 왕가에 충성을 다했던 사람이었던 터라 루크 입장에선 선뜻 중용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후방에 배치하여 시간을 두고 중용 여부를 결정하려 했는데, 그란데 공작이 직접 루크에게 건의안을 올렸다.

당시 그란데 공작이 말하길.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나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명을 반납할 기회는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용하기만 한다면 황천길 걸을 무릎 연골까지도 모두 소모하여 충성할 자라는 주장에 루크도 마음을 돌렸다.

도널드 후작 또한 한때 적으로 만났던 자신을 믿어 준 루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다른 각오를 품고 있었다.

도널드 후작은 장벽 위의 망루에 오르며 수성전 준비에 나섰다.

“장작에 불을 지펴라!”

전성기 때부터 수비의 달인이라 불리던 도널드 후작이다.

카라스코의 장벽을 끼고 싸웠다곤 해도 한때 루크의 공세도 막아 낸 전적이 있다.

겐크 북부 장벽도 카라스코의 작품인 만큼 조건은 루크를 상대했던 헥터 요새 전투와 동일하다.

“후작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기름을 끓여라!”

“적군이 육안으로 포착 가능한 거리까지 들어왔으니 서둘러라!”

지평선 부근에서 시커먼 인영이 기다란 선처럼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다란 선이 사람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장벽 위에 있는 빌로스군의 시력이 좋아서 잘 보이는 게 아니다.

적의 덩치가 큰 탓에 벌써부터 육안으로 모습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거인 군대의 전신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거센 땅울림이 장벽까지 전해져 왔다.

쿵! 쿵! 쿵! 쿵!

거인들이 발을 강하게 내디딜 때마다 그 소리가 빌로스군의 귀를 때렸다.

거인 군대의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엘프 군대가 거인들의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게 얼핏 보였다.

이윽고 거인 군대가 장벽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 거인들이 무기 대신 다른 물체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인들이 들고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큼지막한 바위였다.

도널드 후작은 무기가 아닌 바위를 실어 날랐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다급히 외쳤다.

“거석 투척이다! 어서 투석기의 밧줄을 끊어라! 놈들이 먼저 던지게 해선 안 된다!”

장벽의 높이는 무려 15미터.

거인들도 쉬이 올라올 수 없는 높이다.

이전 구 겐크 왕국 시절 땐 거인들이 2인 1조로 한 명은 발판 역할을, 한 명은 장벽 위에 손을 걸치는 방법으로 장벽을 오르려 했었다.

하지만 끓는 기름을 부으면 장벽에 오르려는 자와 발판 역할을 맡은 자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거인들 입장에선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전의 실수에서 느낀 게 있는 듯 이번에는 바위를 장벽 위에 던져서 먼저 기름 솥부터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도널드 후작의 명령하에 장벽 뒤편에 있던 투석기 부대가 시급히 도끼를 위로 들었다.

“투석 신호가 떨어졌다! 밧줄을 끊어라!”

도끼가 떨어지며 망고넬 타입의 투석기에 매여 있던 밧줄을 끊어 냈다.

밧줄이 끊기면서 포대가 크게 튕겨 나갔고 포대에 담겨 있던 바위가 장벽을 넘어 적진에 떨어졌다.

쿠우웅!

투석과 함께 거인들의 단말마가 여기저기서 퍼졌다.

인간을 상대로 했다면 수십 명이 전사하고 진영이 무너졌을 터이나 거인에겐 1바위 1사망이라는 미미한 효과만 건질 수 있을 따름이었다.

모건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는 듯 응전을 명했다.

“뭘 멍청하게 서 있느냐! 받은 대로 갚아 줘라!”

“우오오오!”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거인들도 가져온 바위를 투포환 던지듯 힘껏 던지기 시작했다.

던진다는 단순한 행위임에도 마치 투석기로 발사한 듯 바위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장벽 위로 떨어졌다.

쿵! 쿠쿵! 쿠우웅!

몇몇 바위는 힘이 부족하여 장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몇몇 바위는 장벽 위를 타격하기도 했고, 몇몇 바위는 장벽을 넘어 투석기를 박살 내기도 했다.

시작부터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북부 장벽은 유례없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장벽에 누적된 데미지가 일정 수준을 돌파했을 때.

일순 장벽이 들썩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말이다.

꿈틀!

하지만 움직임은 아주 미미했고 꿈틀거린 순간도 찰나에 불과했던지라 이 사실을 알아차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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