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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56화 (156/200)

# 156

156화 카라스코 건축물에서 보인 징조(3)

바위를 이용한 투석전이 진행되는 동안 장벽 아래에는 장벽에 부딪혀서 떨어진 바위들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높은 망루에서 상황을 관측하던 도널드 후작은 장벽 아래를 보고선 시급히 추가 지시를 내렸다.

“장벽 아래로 기름을 부어라! 어서!”

거인들은 다가올 기미도 안 보이건만 벌써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머지 기사들이 망루 쪽으로 달려와 연유를 물었다.

“적들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부으란 말씀이십니까?”

“온 다음에 부으면 늦는다! 장벽 아래를 봐라! 바위가 계단처럼 쌓여 있지 않느냐!”

장벽 아래에는 거인들이 던진 바위가 계단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쩐지 장벽을 넘는 바위보다 장벽에 가로막히는 바위가 많다 싶었다.

일부러 장벽에 맞도록 힘 조절을 하며 던진 게 틀림없다.

처음부터 바위 계단을 만들면 빌로스군이 저지하려 들었을 테니 투석 전투를 벌이는 척하며 천천히 바위 계단을 쌓아 왔던 것이다.

장벽의 높이가 15미터. 반면에 거인의 평균 신장은 5, 6미터이고 거기에 바위 계단의 높이가 10미터쯤 된다.

거인이 바위 계단에 올라서면 장벽이 가지는 높이의 이점이 완전히 사라진다.

거인이 망치로 장벽 위를 쓱 훑기만 해도 기름 솥이 뒤집힐 것이다. 기껏 끓인 기름이 적의 무기로 쓰이는 걸 보느니 차라리 미리 버려 버리는 게 훨씬 나았다.

기름을 붓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잠깐 주춤하는 사이, 거인 군대가 있는 방향에서 모건의 우렁찬 돌격 명령이 들려왔다.

“저 가증스런 장벽을 넘을 때가 왔다! 전원 돌격하라!”

“돌격하라!”

“우오오오!”

거인 군대가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하니 그 위세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처럼 육중하기 그지없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염색을 마친 노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거인들의 뜀박질에서 파생된 진동이 어찌나 강렬한지 마치 거대한 북 속에 갇힌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기세 좋게 돌격해 오는 거인 군대를 앞두고 도널드 후작은 기사와 병사들을 재촉했다.

“보거라! 바위 계단이 완성되자마자 돌격해 오지 않느냐! 얼른 병사들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전달하거라!”

“아, 네! 당장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름 붓는 작업이 끝나면 횃불도 전부 장벽 바깥으로 떨어뜨리도록!”

“네!”

도널드 후작의 재촉 속에서 장벽 위의 기름 솥이 하나둘씩 기울어졌다.

걸쭉한 기름이 떨어지면서 바위에 촘촘한 기름 코팅을 입혔고, 기름 범벅이 된 바위에 횃불이 떨어지며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화르륵!

거인 전사들은 거센 불길을 앞두고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붙였다.

도움닫기를 하여 바위를 디딤대 삼아 단번에 불의 장벽을 돌파할 생각인 것이다.

이론상으로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거인의 피부는 인간에 비해 훨씬 두꺼우니 약간의 화상만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의 장벽은 겉보기에만 요란할 뿐 거인들을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은 뜨겁게 달구어진 바위였다.

치이이익!

“으아악! 내 발! 발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제기랄! 밀지 마! 먼저 들어간 애들 살 붙은 거 안 보여? 밀지 말라고!”

거인들은 기본적으로 맨발로 다닌다. 거인의 덩치를 감당하려면 자이언트 루돌프의 가죽을 사용해야 하는데, 가죽을 얻는다 하더라도 천막이나 상, 하의를 만드는 데에 우선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신발까지 생산해 낼 여력이 없었다.

끓는 기름과 불길로 인해 한껏 달구어진 바위다. 제아무리 굳은살 박인 발바닥이라도 맨살인 이상 버틸 수 있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바위 위에 발을 디딘 거인들은 열기 때문에 살이 녹아내려 경련을 일으켰다.

“끄아아악! 끄르르륵!”

뒤이어 장벽에 도달한 거인들이 바위 위에서 쓰러지는 거인들을 받쳐 주며 뒤로 빼내려 했다.

그러나 살이 바위에 들러붙은 상태에서 억지로 당기다 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잔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쩌저적!

이 모든 상황은 도널드 후작의 빠른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바위를 치울 수 없으면 차라리 바위를 장애물로 만들자.

수비의 달인이라 불리는 백전노장답게 수성전에 있어서 판을 읽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쟁은 모름지기 기세가 절반이라 했으니 기세를 잡았을 때 강하게 몰아쳐야 한다.

도널드 후작은 여세를 몰아 그간 계속 대기시켜 두었던 궁수대를 움직였다.

“지금이다! 궁수대 전원 사격 개시!”

“사격 개시!”

장벽 계단에서 대기 중이던 궁수대가 일제히 장벽 위로 올라와서 시위를 당겼다.

정밀한 조준을 할 것도 없다.

장벽 바깥엔 거인들이 널려 있고, 놈들의 덩치는 궁수대에 있어 맞추기 쉬운 커다란 과녁에 불과하니까.

궁수들이 시위를 놓으면서 화살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광경이 마치 메뚜기 떼가 하늘을 가득 메운 듯했다.

화살 세례 속에서 거인들은 삽시간에 고슴도치와 같은 꼴이 되긴 했으나 피부가 워낙에 두꺼운 탓에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몸에 화살이 박혔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인간으로 치면 피부에 나무 가시가 박힌 격이다.

특히 발톱 사이나 손톱 사이에 나무 가시가 끼면 무척 짜증이 나듯 거인들도 화살이 특정 부위에 파고들 때마다 격렬한 짜증에 잠겼다.

“아으! 화살 진짜 뭐 같네. 별것도 아닌 주제에 짜증만 나게 하는 빌어먹을 공격 같으니!”

“긁지 마, 병신 자식아! 긁으면 화살촉이 더 파고든다는 거 몰라?”

거인군은 완전히 도널드 후작의 페이스에 휘말려 대열이 크게 흐트러졌다.

후방에 머물러 있던 모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달궈진 바위 때문에 장벽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불길이 잦아들고 바위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기다렸다가 공격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만한 규모라면 바위가 식을 때까지 한나절… 아니, 하루는 꼬박 걸리겠군. 지금 낭비할 시간 따윈 없거늘.”

루크가 부재중인 때에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고자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겼다.

하루하루가 귀중한 마당에 바위 식는 걸 기다리자고 하룻밤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지휘관으로서 퇴각 명령을 내릴지, 동료의 시체를 밟으며 전진하라고 명할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최후방에서 대기 중인 엘프군이 움직였다.

라울은 물의 상급 정령인 엘리움을 소환하며 정령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물의 정령을 전방으로 보내라! 불길을 잡아서 거인들에게 길을 열어 주자꾸나!”

물로 이루어진 늑대 형태의 엘리움이 먼저 뛰쳐나가자 다른 정령사들이 소환한 물의 중급 정령과 물의 하급 정령들이 엘리움을 뒤따랐다.

물의 정령들은 거인군 사이를 신속하게 빠져나오며 화염에 휩싸인 바위를 향해 물세례를 쏟아 냈다.

쏴아아아아!

물의 정령 군단이 내뿜은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쉴 새 없이 떨어지면서 불길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마저도 차갑게 식혔고, 바위 틈틈이 기름 섞인 물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했다.

엘프군이 바로 나섰으면 거인군도 별다른 피해 없이 바위 계단을 오를 수 있었을 거다.

하나 후방에 머물러 모건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엘프군이 거인군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1차적인 책임은 서둘러 엘프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모건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모건은 라울을 책망했다.

“망할 엘프 놈 같으니. 끌 수 있었으면 진작에 끌 것이지 뭐 저리 늑장을 부려? 자기네 군대였으면 금방 껐을 거면서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모건은 엘프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이 필요해서 동맹을 맺은 거지 좋아서 맺은 건 아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엘프들이 아직까지도 동맹을 맺은 이유를 알려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 말로는 빌로스 왕국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어린애 같은 이유로 병사 수천 명을 파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땅이 목적인지, 보물이 목적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목적인지 아직까지 아는 바가 없다.

엘프들의 목적을 모르는 이상 거인들로선 계속 불안 요소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불안하긴 해도 엘프들의 힘이 필요한 건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모건은 불편한 마음을 눌러두고서 재차 돌격 명령을 내렸다.

“비켜라! 내가 앞장서겠다! 블러디 부족은 날 따라오고, 나머지 부족들은 대열을 정비한 후에 따라오도록!”

시간을 지체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모건이 직접 선두로 치고 나갔다.

다른 블러디 자이언트들도 모건을 따라 전진하며 거인용 단검으로 자신의 팔목을 그었다.

피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블러드 프레임 능력은 기본적으로 강철 수준의 강도를 자랑한다.

주로 공격용 무기로는 망치나 몽둥이, 방어용 무기로는 피로 이루어진 갑옷을 만들어 내는 편이다.

무기의 길이는 보통 3, 4미터 되기에 평범한 휘두르기조차 광역 공격으로 변모해 버린다. 고로 거인들이 장벽을 넘는 순간 대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모건은 전신에 피의 갑옷을 두르며 바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 화살 세례가 쏟아졌으나 모조리 갑옷에 맞고 튕겨 나가기 일쑤였다.

팅! 티잉! 팅!

맥없이 튕겨 나가는 화살 다발을 두고 모건이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머금었다.

“그런 이쑤시개 같은 무기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나도 어지간히 얕보이고 있나 보구나.”

그러고선 피의 갑옷의 장갑 부분을 핏물로 변환시켜 장벽 위를 향해 뿌렸다.

촤악!

모건의 피는 다른 블러디 자이언트와는 달리 맹독을 품고 있는 독혈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블러디 부족의 비전 수련법인 ‘포이즌 도핑’을 연마해 왔다.

포이즌 도핑은 마나 영약 중에서도 독성을 띤 영약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여 마나가 독성을 띠게 만드는 수련법으로, 최소 마나마스터급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성공할 확률조차 희박하여 열에 아홉은 죽기 때문에 대부분은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내는 편이나, 성공하기만 하면 한 방울만으로도 수십 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모건은 장벽 위로 뿌린 피를 안개로 변형시켰다.

“난쟁이 놈들아, 네깟 것들에게 줄 시간은 없으니 썩 길을 열거라.”

장벽 위에 도달한 핏물이 뿌옇게 번지면서 빌로스군 병사들을 뒤덮었다.

안개 형태로 변형시켰기에 약간의 호흡만으로도 중독될 수밖에 없었고, 안개의 범위 안에 있던 병사들은 일절 예외 없이 각혈을 토했다.

“쿨럭! 쿨럭!”

“구웨에엑!”

모건은 병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지점을 향해 다가가 장벽 위에 손을 걸쳤다.

피 안개는 한동안 유지될 테니 장벽을 넘어갈 때까지 그 누구도 모건을 저지하지 못할 터.

누구도 맹독을 들이마시면서까지 피 안개 속으로 돌진해 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이 주춤하는 동안 유일하게 일체 망설임 없이 피 안개 속으로 돌진하는 이가 있었으니.

도널드 후작이 피 안개 속으로 돌격해 들어와선 검으로 모건의 손목을 내리쳤다.

“하아앗!”

서걱!

예리하게 날이 선 마나 블레이드가 섬광처럼 떨어지며 모건의 손목을 통째로 절단했다.

모건은 손을 잃은 상실감과 함께 강한 통증을 느끼며 도널드 후작을 노려보았다.

“미친놈! 맹독인 걸 알면서도 접근해? 살고 싶지 않은 것이냐!”

피 안개가 맹독을 띠고 있다는 건 도널드 후작도 아는 바이다.

벌써 중독 증세가 나타나며 도널드 후작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렀다.

그럼에도 도널드 후작의 자세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전장에 선 자, 생보다는 사를 가까이 두는 게 마땅할지어니.

평소에도 사생결단의 마음을 품으며 살아왔기에.

절체절명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기분은 평소와 같이 잔잔하노라.

도널드 후작은 소매로 입가를 거칠게 닦아 내고선 가진 마나를 모두 검에 부여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는군. 적어도 네놈보다는 오래 살 것이니 잔말 말고 덤비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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