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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61화 (161/200)

# 161

161화 각성 카운트 2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혼란에 빠졌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며 그 무엇도 알고 있는 게 없다.

가장 먼저 품은 의문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정체였다.

‘난 누구지?’

이름은 물론이고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려고 힘을 주자 전신을 감싸고 있던 점액이 그녀를 압박하며 움직임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손에 힘을 주자 점액이 좌우로 밀려났고, 그녀의 손은 금세 점액을 담고 있는 두꺼운 껍질에 닿았다.

껍질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환영하는 양 스스로 갈라지며 길을 열어 주었다.

강하게 응축되어 있던 점액이 균열 바깥으로 한꺼번에 뿜어지며 그녀의 몸을 바깥으로 이끌었다.

철퍽!

여인은 껍질 바깥으로 빠져나오며 두 발을 바닥에 내디뎠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녹색 점액을 손으로 훑어 내자 맞은편에 있던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에 그녀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와 건드리면 부러질 듯 가느다란 몸, 금가루를 뿌린 양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인공적으로 물들인 느낌이 강한 부자연스러운 흑발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몸 곳곳에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의미하는 징표가 달려 있었다.

먼저 머리에는 다섯 개의 뿔이 고대 머리 장식처럼 돋아나 있었고, 등 뒤에는 까마귀의 날개를 확대시킨 것처럼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날개가 달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손톱은 마치 클로를 연상하게 하듯 길면서도 날카로웠고, 양쪽 허벅지엔 곡선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리에 비친 자신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게… 나?”

끼기기기긱!

기다란 손톱이 유리를 긁으며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지하실 널리 유리 긁는 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통로 모퉁이 너머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왔다.

검은 로브를 두른 이들은 여인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깨어났어! 성공했다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드디어 완성시켰어!”

그녀로선 저들이 왜 기뻐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여인도 자신이 원래 인간이었다는 정도의 자각은 있다. 다만 어떤 인간이었는지, 뭘 하던 인간이었는지는 기억이 지워졌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들의 말투로 보건대 저들이 바로 그녀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 것 같았다.

그러면 그녀가 이런 몸이 되기 전에 어떤 자였는지 알고 있을 터.

여인은 손톱에 마기를 부여하였다. 마치 처음부터 몸에 익었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기다란 손톱에 검은색 기운이 둘려지는가 싶더니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검은 로브를 두른 사내들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을 금하지 못했다.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지? 아무나 제어 술식을 써봐!”

“잊은 거야? 상부 명령 때문에 대주교님만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놨잖아!”

“당황하지 말고 지하실부터 봉쇄해! 조금 있으면 대주교님이 오시니… 커헉!”

사라진 여인은 사내들 한복판에서 나타났다.

그녀가 손을 뻗어 사내 중 한 명의 목을 움켜잡았고 단순 악력만으로 자기보다 2배는 몸집이 큰 사내를 들어 올렸다.

“나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말해.”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참지 말라고. 넘치는 힘을 분출하라고.

이 공격적인 성향이 그녀의 원래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몸뚱이가 되면서 만들어진 성향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썩 기분 나쁘진 않다.

마치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처럼 그녀는 힘의 해방에서 오는 쾌감을 거부하지 않고 아낌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활용했다.

목이 붙잡힌 사내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면서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에, 엘리나! 엘리나 님이십니다!”

엘리나.

그게 내 이름인가 보네.

엘리나는 사내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사내의 목에는 기다란 손톱이 남긴 혈선이 그어져 있었고, 피부에 남은 벌건 손자국은 그녀의 악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사내가 거칠게 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려던 찰나.

엘리나의 손톱이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으어헉!”

엘리나가 손목을 비틀자 가슴 속에 박힌 손톱이 한 바퀴 회전하였고, 정확히 심장만을 도려내어 바깥으로 빼냈다.

본능에 충실하자고 생각하자마자 배가 고파 왔다.

그녀의 본능은 인간의 피와 내장을 원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심장이 그녀의 식욕을 북돋웠다.

“왜일까. 마치 자주 먹었던 것처럼 계속 끌린단 말이지.”

엘리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모습을 보고 괴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금단의 과실을 입에 댄 타락한 천사의 모습과도 같았기에.

심장 하나를 모두 먹어 치운 엘리나가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았다.

입가에 묻은 핏물이 거칠게 립스틱을 닦아 낸 것처럼 뺨까지 번지며 퇴폐미를 자아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한층 깊어지며 주변 사람들을 훑었다.

“다음은 누가 대답을 해 볼래? 아직 알고 싶은 게 많아.”

질문에 답할 때마다 보답으로 심장을 먹어 주리라고 선언한 셈이었다.

업계 포상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자리에 심장을 내줄 정도로 과격한 취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사내들이 경외심을 느끼며 움직임이 굳어 버린 동안 그녀가 도도한 걸음으로 한 명을 지목하여 검지 손톱으로 한 사내의 턱을 치켜올렸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 주지 않겠어?”

눈송이가 내려앉은 듯 기다란 속눈썹과 독특한 매력이 물씬 넘치는 금안 앞에서 사내는 홀린 듯 입을 달싹였다.

“에, 엘리나 님은 원래…….”

“예전에는 한 나라의 왕녀였지.”

대답은 엘리나가 붙들고 있는 사내가 아닌 그녀의 등 뒤에 날아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지하실 입구에 서 있는 노인 한 명이 그녀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하얀색 제복과 금실로 수를 놓은 주케토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입고 있는 복장을 통해 늙은 사내가 이곳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지하실 안에 있던 사내들이 늙은 사내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대주교님!”

“모두 물러나거라. 내 직접 그녀와 얘기를 나눠 보마.”

“하지만…….”

“어허! 물러나래도.”

엘리나는 흑발을 위로 쓸어 넘기며 늙은 사내를 똑바로 응시했다.

고혹적인 눈빛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보니 단순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뇌쇄적인 느낌이 물씬 배어 나왔다.

“왕족이라… 어쩐지 부림을 당하는 것보다 부리는 쪽이 더 끌리더라고. 그래서 날 이런 꼴로 만들어서 어쩔 속셈이었지?”

“아무리 막 깨어났다지만 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군. 일단 꿇거라.”

늙은 사내의 손바닥에 검은색 원형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시커먼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인지 엘리나의 몸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옴짝달싹하질 않는다.

그사이 늙은 사내가 엘리나에게 접근해서 그녀의 머리채를 강하게 휘어잡아 강제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아슈타르 교 대주교인 나 오스카가 바로 네 주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예를 대하듯 거칠기 짝이 없는 대우에도 불구하고 엘리나는 피식 웃었다.

“훗, 사냥개로 삼으려고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네. 꿈 깨시지.”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널 부리기 위해서 내 직접 내 몸속의 회로를 잘라다가 술식에 첨가했단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넌 평생 내 노예로 살아야 하지.”

“그럼 바로 죽여 줄 테니 목이나 내밀지그래?”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짜악! 짜악!

오스카의 손이 매섭게 날아들며 엘리나의 양쪽 뺨을 번갈아 후려쳤다.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으나 정신적인 굴욕감이 그녀에게 지대한 타격을 주었다.

오스카는 엘리나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던 손을 놓으며 이번에는 발로 그녀의 머리를 꾹 밟았다.

비단결 같던 흑발이 흙발 아래에서 지저분해지는 가운데 오스카의 조롱이 이어졌다.

“데메그리 교 놈들도 참 불쌍하구나. 제 놈들 기술에 제 놈들이 당하리라곤 꿈에도 모를 테지.”

“사람을 이따위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걸 보니 거기도 변변한 집단은 못 되나 보네.”

“말살해야 할 쓰레기들이지.”

“하지만 내 눈엔 네가 더 쓰레기로 보이는걸?”

“마음대로 지껄이거라. 너 따위가 입을 나불거린다고 아슈타르 교의 아성이 무너질 것 같으냐. 뒤에서 수도 없이 구린 행위를 벌이고도 수백 년간 대륙에 군림하고 있는 게 우리 아슈타르 교란다. 조만간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좀 더 노예다운 마음가짐을 갖춰 놓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기는 오스카였다.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엘리나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며 서서히 눈꺼풀이 감겼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녀는 분명히 인지하게 되었다.

오스카를 죽여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슈타르 교는 쓰레기 집단이다.

그 사실만을 인지하며 엘리나는 동면 상태에 빠졌다.

엘리나가 의식을 잃은 직후 오스카는 따귀를 때린 여파로 아직도 얼얼한 손을 흔들었다.

“익숙하지도 않은 짓을 했더니 손이 다 아프군.”

한때 어떻게 되는가 싶었던 사제들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대주교님. 부화 전에 한 명은 남아서 구속 술식을 걸어 뒀어야 했는데…….”

“변명은 됐으니 다음 단계를 준비하거라.”

“그런데 정말로 진행하실 겁니까? 저흰 아직도 이 길이 맞는가 의문이 듭니다. 계획이 성공하면 대주교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이 목숨 하나 던져 주고 아슈타르 교와 데메그리 교의 위상을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한다면 싸게 먹히는 거 아니겠느냐.”

아슈타르 교 대주교란 높은 자리에 앉고도 그간 가만히 있었던 건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아슈타르 교를 악역으로 만들어 세간의 비판을 한 몸에 짊어지고,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존재인 5성급 마물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게 만들어 구세주 역할을 도맡게 할 생각이다.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작극을 통해 인위적으로 영웅을 만드는 일쯤이야 여태까지 늘상 해 왔던 일이지 않은가.

5성급 마물이라면 데메그리 교를 이끌고 신성 제국을 집어삼키는 것은 물론 그랜드마스터가 군림하고 있는 빌로스 왕국을 상대로도 절대 꿀리지 않을 것이다.

오스카는 데메그리 교의 교리가 올바른 질서로 자리 잡을 세상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신전에 아슈타르 교 책자를 가득 채우고 데메그리 교 신자들을 탄압하는 것처럼 꾸며 두거라. 이 아이로 하여금 데메그리 교가 약자로 보이게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하니 실수 없이 진행하도록.”

* * *

몇 주 후 신성 제국 수도에 있는 대신전에서 중대 발표가 이루어졌다.

지방 순회를 빌미로 대신전을 비웠던 오스카가 복귀하자마자 주장하길.

“내 직접 순회를 해 보니 신전들이 너무 비루하더구나. 지저분한 신전에서 어떻게 순결한 신앙심을 갈고 닦겠느냐. 집집마다 신전 발전 기금을 내도록 하고 면죄부를 발행해서 모든 신전을 새로 지어라!”

처음에는 주교들이 결사반대에 나섰다.

발전 기금까진 어떻게 이해해도 면죄부까진 너무 나간 게 아니냐는 이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오스카는 주교에게 갖가지 누명을 씌워 그들을 억지로 탄압하고선 독재자처럼 신전 신축 계획을 강행했다.

신전 신축 계획의 여파는 곧바로 백성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집집마다 강제로 발전 기금을 뜯어내면서 민심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고,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면죄부로 상쇄시킬 수 있으니 치안은 금세 최악으로 치달았다.

오스카가 세간에서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될 즈음 신성 제국 내에서 출처 모를 예언이 떠돌기 시작했다.

-서쪽 추운 땅에서 구세주가 찾아와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니.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일깨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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